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5화 (35/157)
  • 35화. 스탈린그라드 (1)

    1942년 6월 15일.

    남쪽에서 블라우 작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모스크바의 스타

    브카에서는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독일군의 다음 공세에 대해서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주코프 동지, 독일놈들의 다음 공세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모스크바겠지.”

    바실렙스키의 질문에 주코프는 즉답했다.

    그가 보기에 모스크바까지 고작 100km 남짓밖에 남지 않은 지금, 독일군이 모

    스크바 공략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저놈들은 지난해 겨울,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끝끝내 저 자리를

    지키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것은 모스크바 공략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력하

    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현재 모스크바 방어선에는 독일놈들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병

    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놈들이 정말로 맞서 싸우려 하겠습니까?”

    “아니, 그건 아닐 거요. 분명 놈들은 방어선을 우회하려고 하겠지. 지난번처

    럼 양익 포위를 시도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남쪽이나 북쪽으로 크게 우회할지

    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놈들은 분명히 모스크바로 올 것이라는 거요.”

    주코프의 말에 바실렙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노리지 않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보로네슈 서쪽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에도 이것을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주, 주코프 동지! 급보입니다! 쿠르스크 방면에서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남서전선군이 포위당한 상태입니다!”

    “쿠르스크 방면이라면··· 놈들이 노리는 목표는 아마 보로네슈겠군.”

    “보로네슈와 모스크바 간에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그 사이는 아무런 장애

    물도 없는 평야 지대입니다. 그러니 아마 보로네슈를 점령한 뒤 북진해서 모

    스크바를 공략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그럴 테지. 좋소, 그럼 보로네슈로 62, 63, 64군을 보내도록 하시오.

    어차피 놈들의 목표가 모스크바라면 그리 많이 보낼 필요는 없을 거요.”

    이때까지도 남부집단군의 공세가 당연히 모스크바 공략의 일환이라고 생각했

    던 이들은 예비대로 고작 3개 야전군밖에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1기갑군과 17군, 6군까지 일제히 진격을 시작하자 전황은 완

    전히 달라져 버렸다.

    “···동지. 현재 타간로크와 루한시크 일대에서 남부전선군 예하의 8군과 9군

    이 포위되었습니다. 나머지 부대들은 로스토프까지 퇴각하는 데 성공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제 누가 보더라도 상황은 명확했다.

    저 빌어먹을 나치 놈들의 공세 목표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카프카스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 설마 모스크바가 아니라 남부의 자원줄을 끊겠다는 건가. 한

    방 크게 먹었군.’

    “주코프 동지, 남부의 구멍이 더 벌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전선을 재구축해

    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소.”

    주코프는 침음을 삼키며 작전 지도를 노려보았다.

    블라우 작전 7월 전개 상황.png

    현재 독일군의 전선은 돈강의 만곡부를 따라서 동쪽으로 크게 돌출된 상태였다.

    현재까지의 진격 방향을 미루어 보건데, 놈들의 목적지는 아마 스탈린그라드

    와 로스토프 이남 지역이리라.

    ‘젠장··· 남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이 거의 전멸당한 게 너무 크군. 도대체 어

    디서 병력을 끌어와서 전선을 재건한단 말인가.’

    현재 주코프는 독일군의 공세에 대비해서 모든 전략 예비대를 모스크바 일대

    에 배치해둔 상태였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그라드까지의 거리는 약 880km, 거기서 로스토프까지는

    다시 400km를 더 가야 한다.

    이 부대들을 지금 즉시 내려보낸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로스토프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모든 싸움이 끝나 있을 터였다.

    ‘···어쩔 수 없군. 둘 다 지킬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수밖에.’

    고민 끝에 주코프는 결단을 내렸다.

    “44군과 47군은 로스토프를 버리고 퇴각하도록 하시오. 최대한 후퇴하면서 전

    력을 온존하고 독일놈들의 전력을 소진시키는 거요.

    그리고 보로네슈로 간 62, 63, 64군과 나머지 예비대는··· 전부 스탈린그라드

    로 보내도록 하시오.”

    어차피 스탈린그라드만 지키면 카프카스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주코프는 가용한 모든 전력을 스탈린그라드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수십만에 달하는 대군이 모두 스탈린그라드로 향하기 시작했다.

    *****

    스탈린그라드 시가지에 가운데 위치한 기차역의 화물 승강장.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기차가 플랫폼을 떠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또다시 다른

    기차가 밀려 들어왔다.

    기차가 승강장에 멈춰 서자, 근처에 서 있던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재빨리 차량

    으로 뛰어들어가 화물칸의 문을 열어젖혔다.

    “내려라, 이 얼간이들아!”

    “비켜요, 비켜!”

    화물칸에서 쏟아지듯이 내리는 것은 바로 누런 군복을 입은 소련군 병사들이

    었다.

    그들이 내리자 밑에서 기다리던 장교들은 병사들을 밀치고 발로 차면서 광장

    한가운데에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서라! 거기! 빨리 뛰어와!”

    “물러나! 뒤로 가라고!”

    그렇게 화물칸에서 하역작업이 일어나는 동안, 제일 앞에 붙어있던 유일한 승

    객 칸에서는 카라에 붉은 견장을 단 남자가 내렸다.

    그는 바로 새롭게 창설된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사령관,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예료멘코 대장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료멘코 동지! 저는 62군 사령관 바

    실리 이바노비치 추이코프 소장입니다.”

    “반갑소.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예료멘코요.”

    예료멘코는 추이코프가 내민 손을 강하게 맞잡으며 악수한 뒤, 그의 안내에

    따라서 차량에 올랐다.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은 곧바로 시가지를 가로질러서 62군 사령부로 향했다.

    스탈린그라드 시가지에는 아직도 대피하지 못한 인민들이 생필품을 구하러 거

    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민간인들이 많이 보이는군. 아직 대피를 완료하지 못한 것이오?”

    “방어선 구축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서기장 동지께서 대피를 금지하셨습니다.”

    “···그렇군.”

    예료멘코는 사정을 깊이 묻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사령부에 도착한 예료멘코는 곧바로 전황부터 파

    악하기 시작했다.

    “좋소, 이제 상황을 들어보고 싶군. 현재 아군의 규모와 배치, 그리고 방어선

    구축 현황까지. 전부 다 보고하시오.”

    “현재 스탈린그라드 일대에는 62군, 63군, 64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시가지의 방어를 담당하는 것은 저희 62군과 64군이고, 63군은 모스크바와 이

    어지는 북쪽의 통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료멘코는 추이코프를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코프 동지가 스탈린그라드를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다른 무

    엇보다도 카프카스로 통하는 마지막 남은 통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뜻일 터.

    그렇다면 시가지를 지키는 62군, 64군만큼이나 북쪽의 철로를 지키는 63군의

    역할이 중요해질 터였다.

    “그럼 방어선은 어떻게 구축되어 있소? 만약 독일군 기갑부대가 돌파를 시도

    한다면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겠소?”

    예료멘코의 질문에, 추이코프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동지,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소, 무슨 말이든 해보시오.”

    “가감없이 표현하자면, 현재 스탈린그라드 외곽에 준비된 방어선들은 없는 것

    보다 조금 나은 수준입니다.

    기갑부대를 막는 것은 어렵고, 보병부대를 상대로나 겨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추이코프의 말에, 이번에는 예료멘코가 침묵에 잠겼다. 추이코프는 그런 그에

    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야전이 아니라 시가전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놈들의 체계적인 제병

    합동 전술은 시가지의 복잡한 건물들이 막아줄 것이고, 독일군의 우월한 포

    병, 공군 전력은 아군 오사의 우려 때문에 봉인될 것입니다.

    그러니 놈들을 시가지로 끌어들여서 난전과 근접전을 유도하십시오.”

    추이코프 소장의 말에 예료멘코는 고민에 빠졌다.

    ‘소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 확실히, 전술적인 측면만 바라본다면 독일군과 야

    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시가지에서 백병전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겠지. 하지

    만···.’

    예료멘코는 방금 보았던 민간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

    과 빵을 구하러 다니던 노파, 그리고 트랙터 공장으로 출근하던 노동자들까지.

    승리를 위해서 독일군을 시가지로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

    고민 끝에, 결국 예료멘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소장의 작전은 수용할 수 없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스탈린그라

    드가 아니라 카프카스로 통하는 마지막 통로요. 그러니 싸워보지도 않고 철도

    를 포기할 수는 없소.”

    “···하지만, 동지!”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증원이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으니. 어떻게든 저 철도만 지켜낸다면 우리의 승리요.”

    비록 불리한 싸움이기는 하지만, 철도를 통해 계속해서 증원을 받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예료멘코는 명령을 내렸다.

    “북쪽의 방어선을 더욱 굳건히 다지고, 기갑부대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시오.

    우리는 저곳에서 반드시 독일놈들의 진격을 멈춰 세워야 하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예료멘코는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방어선 앞까지 도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

    1942년 7월 15일.

    블라우 작전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우리 6군은 드디어 스탈린

    그라드 에 도착했다.

    “각하, 저기 너머에 보이는 도시가 바로 스탈린그라드입니다.”

    “그렇군.”

    나는 드넓은 벌판을 뒤덮은 방어선과 그 너머에 있는 회색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스탈린그라드.

    전생에 나를 패배시키고 내 부하들을 집어삼켰던 악마 같은 도시가 그곳에 서

    있었다.

    ‘···빌어먹을.’

    그 모습을 보자, 과거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건물을, 방 하나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벌어지는 끝없는 소모전.

    시체와 오물, 잔해와 절망만이 남은 거리.

    포로가 되어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병사들.

    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저 도시를 사수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도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비참한 패배뿐이

    었다.

    “후우···.”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혹여나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눈앞에 서 있는 저 도시를 노려보면서 결의를 다졌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저 도시를,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한다!’

    소련 철도망.jpg

    * 위의 이미지는 1946-50년까지의 소련 철도망 재설 및 개발 계획안입니다.

    여기서 검은색 실선으로 된 부분들이 1945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철도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위의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스크바에서 카프카스로 이어지는 철도는

    로스토프를 통하는 것과 스탈린그라드를 통하는 것, 두개의 라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블라우 작전 당시 로스토프 일대는 이미 독일군에게 점령되었으니, 소

    련의 입장에서는 스탈린그라드 철로가 마지막 남은 통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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