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4화 (34/157)
  • 34화. 남쪽으로 (3)

    - 남부집단군 사령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 사망.

    - 11군 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를 남부집단군 사령관에 임명함.

    나는 내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의 전보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임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만슈타인 원수를 임명한다고?’

    라이헤나우 원수가 죽은 뒤, 그 자리에 신임 사령관이 오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지금쯤 세바스토폴에서 한창 격전을 치르고 있을

    만슈타인 장군이 벌써 원수로 진급해서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오다니.

    기껏해야 원래의 역사대로 남부집단군 사령관이었던 보크 원수나 A집단군 사

    령관이었던 리스트 원수가 오리라 생각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인

    사였다.

    ‘설마 레닌그라드 함락과 모스크바 전투가 세바스토폴 전투에까지 영향을 끼

    친 건가?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만슈타인 원수가 과연 블라우

    작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다.’

    만슈타인은 분명 이견의 여지가 없는 독일군 최고의 명장이었다.

    그런 그가 남부집단군 사령관이 되었으니 이는 분명 좋은 일라고 할 수 있으

    리라.

    그러나 나는 그의 지휘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슈타인은 너

    무나도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블라우 작전은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히틀러의 자만과 욕심 때문에 실

    패한 것이었지. 결국, 이번 작전이 성공하려면 누군가가 히틀러와 맞서 싸워

    야 하는데 과연 만슈타인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회귀 전의 만슈타인이 보였던 행보를 보면, 그는 히틀러에게 충성한 것도 아

    니지만 그렇다고 정면으로 맞서지도 못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전략적 판단과 히틀러의 명령 사이에서 타협했다.

    그렇다면 만슈타인이 지휘하게 된 블라우 작전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아무래도 이번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만슈타인 장군을 한번 만나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전보 쪽지를 담뱃불에 태워버렸다.

    *****

    그러나 나는 예상외로 빠르게 만슈타인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영전한 만슈타인 원수가 전선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6군 사령부를 방문한 것이었다.

    나는 하리코프 외곽의 비행장까지 직접 차를 타고 나가서 수송기에서 내리는

    만슈타인 원수를 맞이했다.

    “세바스토폴의 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슈타인 원수 각하.”

    “나 또한 파울루스 장군을 만나게 되어 반갑소. 내 듣자 하니 레닌그라드 함

    락도, 모스크바 전투도 모두 귀관의 작품이었다지?”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끝장낸 낫질 작전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블라우 작품도 자네가 입안한 거라고 하던데 직접 설명을 한번 듣고 싶

    군. 기대하고 있겠소.”

    “준비하겠습니다.”

    만슈타인 원수는 그렇게 친근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눈 뒤, 전선을 시찰하러

    떠났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의례적인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우리는 집무실에서 단둘이

    마주 앉았다.

    “전선 시찰은 어떠셨습니까?”

    “뭐, 자네도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전선이나 시찰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닐

    세.”

    “···역시 그렇습니까.”

    만슈타인 원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나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파울루스 장군. 귀관은 이번 작전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블라우 작전의 목표라.

    그의 의중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던 나는 일단 가장 일반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가장 일차적인 목표는 역시 카프카스 일대를 점령하고 적의 유전을 탈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다음은 소련군의 자원줄을 끊는 것이겠지요.”

    “하하, 모범생 같은 말을 하는군. 그래, 적어도 표면적인 목표는 그렇지. 하

    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죄송하지만, 저는 각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

    다.”

    내 말에 만슈타인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실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

    나 그는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가. 어쩐지 자네의 작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네만, 정말 진심으로 유

    전이 목표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제 작전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닐세. 정말로 유전을 노리는 거라면 자네의 작전은 문제가

    없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했네만.”

    ‘이번 블라우 작전으로 큰 그림을 그린다고? 그리고 유전은 표면적인 목표라.’

    거기까지 들은 나는 만슈타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 각하께서는 기동포위전을 통한 소련군의 섬멸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계

    십니까?”

    만슈타인 장군은 그제서야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바로 정확하게 맞췄네. 자네가 그렇게 말했다지? 우리가 이기려면 아군의 전

    력은 보존하면서 적의 전력은 소모시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리

    고, 그것을 위해서 모스크바가 아닌 이곳 남부를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들었네.”

    “예, 맞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참으로 맞는 말이라 생각했네.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

    소련군을 일거에 무너뜨리겠다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자네의 이 작전은 좀 이상하지 않나?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을 소모 시키려면 적을 크게 포위해서 섬멸해야 할 텐데, 자

    네의 작전은 보로네슈도 우회하고 곧장 스탈린그라드로 가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일세.”

    “······.”

    현재 내가 작성한 블라우 작전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블라우 작전 파울루스 안.png

    첫 번째는 우선, 북쪽의 2군이 소련군을 밀어내며 쿠르스크로 진격한다.

    그다음, 4기갑군과 6군은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하고 돈강 일대는 이탈리아, 루

    마니아, 헝가리 등 동맹국이 맡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기갑군과 17군은 로스토프로 곧장 향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든 스탈린그라드까지 빠르게 도달해서 시가전에서 아군이 입을 피

    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만슈타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럼 각하께서는 작전 개시 직후에 소련군을 대규모로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

    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거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카프카스 일대는 광활하고, 남쪽 끝에는 드

    높은 카프카스 산맥이 펼쳐져 있지. 만약 소련놈들이 끝없이 후퇴하거나 산맥

    안으로 들어가버린다면 골치 아파질걸세. 그러니 초전에 놈들을 섬멸해버리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만슈타인의 말이 옳았다.

    소련군을 소모 시키는 것과 카프카스를 점령하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분명 초

    전에 대규모 포위전을 펼치는 것이 옳으리라.

    그렇지만 그 경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아군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끔찍한

    소모전이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로서는 스탈린그라드가 지옥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나뿐이라는 거지.’

    나는 고개를 들어 만슈타인 원수를 바라보았다. 만슈타인 장군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미래의 지식이 아닌 우리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정보

    와 사실을 바탕으로 만슈타인 장군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는 이번 블라우 작전의 승부처가 어디가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승부처라···. 역시 작전 직후의 포위 기동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그때 얼

    마나 많은 소련군을 섬멸할 수 있느냐에 이번 작전의 성패가 갈릴걸세.”

    “죄송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각하의 말씀대로 작전 직후 소련군을

    모두 섬멸한다 하더라도 놈들은 카프카스를 되찾기 위해 대규모 반격을 감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소련군을 막아낼 수 있는가에 따라 이번 작전의 결과가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그 결전이 벌어질 곳이 바로 스탈린그라드라 이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내 말에 만슈타인은 카프카스 일대의 지도를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자네 말도 타당하네만, 그렇다고 해서 소련군을 섬멸하지도 않고 스탈린

    그라드로 직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네.

    자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작전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나는 만슈타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만슈타인 원수의 정론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스탈린그라드로 빨리 가는 것이 무리라면 차선책이라도 택

    하는 수밖에.’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각하의 뜻대로 대규모 포위 작전을 우선시하도록 작

    전 계획안을 수정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기대하고 있겠네.”

    “대신, 한가지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만슈타인 원수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듣기로는 현재,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고 알고 있

    습니다.”

    “맞네. 이미 요새 지대는 무력화되었고, 시가지에 남은 잔여 병력들만 처리하

    고 있는 상태지.”

    “그렇다면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사용되었던 중(重)야포 부대들을 저희 6군에

    배속시켜 주십시오.”

    내가 생각해낸 차선책은 바로, 중(重)야포 부대를 이용한 초토화 작전이었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블라우 작전 계획의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정된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블라우 작전 만슈타인 안.png

    “우선, 쿠르스크의 2군과 벨고르트의 4기갑군이 소련군을 양익으로 포위하며

    섬멸합니다. 그 후, 보로네슈를 점령한 뒤, 2군은 보로네슈 일대를 방어하고

    4기갑군은 스탈린그라드를 향해 남하합니다.

    그와 동시에, 도네츠크의 1기갑군과 마리우폴의 17군도 루한시크 일대를 포위

    하여 적을 섬멸한 뒤, 로스토프를 점령합니다.”

    “좋네. 그럼 6군은 그동안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건가?”

    “예, 아마 보로네슈를 점령한 뒤 출발한 4기갑군이 도착할 즈음에 스탈린그라

    드에 도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보로네슈부터 스탈린그라드까지의 돈강 일대는 헝가리 2군, 이탈리아

    8군, 루마니아 3군이 방어를 맡을 예정입니다.”

    “알겠네. 이렇게 진행하도록 하지.”

    그 후로 남부집단군은 블라우 작전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했다.

    우리 6군에 새롭게 배속된 중(重)야포 부대를 비롯해서 각 부대에는 새로운

    전력이 증강되었으며, 동맹군들도 차례대로 전선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2년 6월 15일, 드디어 블라우 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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