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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3화 (33/157)
  • 33화 남쪽으로 (2)

    “도착했습니다, 각하.”

    “고맙네.”

    나는 차에서 내려 하르코프 시내에 위치한 거대한 원형의 자유 광장에 섰다.

    그곳의 중심에 위치한 6군 사령부 건물은 내가 마지막으로 복무했던 15년 전

    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드디어 돌아왔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아담 대령의 재

    촉에 6군 사령부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내부의 구조와 위치도 모든 것이 다 내 기억대로였다.

    “가, 각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괜찮네. 군단장과 참모들은 어디서 기다리고 있나? 주 회의실인가?”

    “···예, 맞습니다. 그쪽입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복도를 천천히 가로질러 회의실로 향했다.

    낡은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친숙한 얼굴들이 거대한 테이블에 둘러

    앉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반갑군.”

    “하일! 히틀러!”

    갑자기 등장한 내 모습에 장군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치식 경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그래.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6군 사령관으로 새롭게 취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파울루스 상급대장일세. 앞으로 잘 부탁하네.”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국방군식 거수경례로 그들의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그런 내 모습에 의아해하는 군단장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아담 대령에게 이미 말해뒀네만, 아무래도 한 번 더 말해야 할 것 같군. 현

    시간부로 라이헤나우 원수가 내린 강조 명령은 폐기할걸세. 그리고 앞으로 나

    에게는 나치식 경례를 하지 말게나. 알겠나?”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회의실에 앉은 장군들의 면면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6군 참모장 슈미트 중장부터 8군단장 발터 하이츠 대장, 17군단장 칼 스트레

    커 대장, 51군단장 발터 폰 자이들리츠-쿠어츠바흐 대장, 40기갑군단장 슈베

    펜부르크 대장까지.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하는 그 순간까지 나와 함께 싸

    웠던 전우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서 각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지.’

    나는 반가움과 죄책감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군단장들

    도 다들 자리에 앉았다.

    “좋네. 그럼 우선 현재 남부집단군과 6군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

    군. 자네가 참모장인가?”

    “예, 6군 참모장을 맡고 있는 아서 슈미트 중장입니다.”

    “좋네, 슈미트 중장. 우선 전황부터 간략하게 설명해주게.”

    “알겠습니다.”

    슈미트 중장은 남부집단군 작전 지도를 가져와 지시봉으로 짚으며 설명을 시

    작했다.

    블라우 직전 상황 (회귀 전의 전선).png

    “현재 남부집단군은 북쪽의 쿠르스크부터 벨고로트, 하리코프, 이지움, 도네

    츠크, 마리우폴까지 각각 2군, 4기갑군, 6군, 1기갑군, 17군이 전선을 담당하

    고 있습니다.

    중부집단군과의 전투지경선은 오룔과 쿠르스크의 중간이며, 그 외에도 크림

    반도에서 만슈타인 장군이 이끄는 11군이 세바스토폴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습

    니다.”

    “그렇군.”

    슈미트 중장이 설명하는 현재의 남부 전선은 내가 기억하는 1942년 당시의 모

    습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조금씩 더 전진해있는 데다가, 하리코프 남쪽으로 깊숙이 파고들

    어 있던 이지움 돌출부도 없어졌군. 레닌그라드 함락과 중부집단군의 선전 덕

    분에 남부집단군의 전황도 같이 나아진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도네츠강까지

    만 진격하도록 했던 것이 오히려 좋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군.’

    내가 바뀐 전선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자, 슈미트 중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하리코프 동쪽에 있는 볼첸스크부터 이지움까지가 6군이 담당하고

    있는 전선입니다.

    북쪽부터 차례대로 17군단, 8군단, 51군단이 맡고 있으며, 40기갑군단은 현재

    예비대로 후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현재 전선의 상황은 어떤가? 작년 겨울에 룬트슈테트 원수 각하께서 후퇴를

    지시했다가 사임하신 것을 보면 남부집단군의 상황도 그리 만만하지 않아 보

    이네만.”

    내 물음에 슈미트 중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뭐, 매일 혈전이 벌어지는 중부집단군만 하겠습니까. 적어도 저희 6

    군은 작년 10월에 이곳 일대까지 진격한 이래로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두 큰

    공세는 없었습니다.”

    “···그런가.”

    모스크바 공방전에 참여했던 4기갑군과 병력을 일부 차출당했던 1기갑군은 회

    귀 전과 마찬가지로 전력의 손실이 있는 상태겠지만, 그 외에 남부집단군의

    전반적인 상황은 내 예상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이지움 돌출부도 사라진 것을 보면 회귀 전, 42년 5월에 있었던 2차

    하르코프 공방전도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군.’

    만약 그렇다면 블라우 작전의 개시일과 전개도 많은 부분이 달라질 터. 그것

    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지도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좋네. 전선을 직접 한번 시찰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상

    황 같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네. 귀관들은 이미 들어서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 이제 곧 남쪽을 향해서 대공세가 시작될 걸세.”

    이어지는 내 말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군단장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특히, 회귀 전에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을 맡았던 51군단장 자이들리츠 대장은

    아까와는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제가 듣기로는 이번 블라우 작전은 파울루스 상급대장님께서 직접 입안하셨

    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네.”

    “그렇다면 이번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저희 6군은 어떤 임무를 맡

    게 될지 혹시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군단장들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 과

    연 이들에게 어디까지 말해줘도 괜찮은 걸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알게 될 일이니 미리 말해준다고 해도 상관없겠지.’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지도 위의 한 점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바로 여기. 우리는 스탈린그라드로 간다.”

    “스탈린그라드···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내 말에 군단장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저들로서는 아마 카프카스나 유전 얘기 정도밖에 못 들었을 테니, 스탈

    린그라드로 간다는 말이 뜬금없이 들릴 터였다.

    “그래. 우리 6군의 역할은 모스크바에서 카프카스로 이어지는 길목인 스탈린

    그라드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남하하는 소련군을 막는 것이다. 쉽지 않은 싸

    움이 될 테지.”

    “···그렇습니까.”

    작전의 목표물인 카프카스나 유전이 아닌, 스탈린그라드로 간다는 말에 실망

    을 감추지 못했던 군단장들은 쉽지 않을 거라는 내 말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

    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현 시간부로, 우리 6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준비를 시작할

    걸세.”

    *****

    1942년 5월 17일.

    그렇게 6군이 한창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무렵.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폴타바의 남부집단군 사령부에서 라이헤나우 원수와

    접견하고 있었다.

    “하하, 파울루스 장군. 이렇게 다시 보게 되서 정말 반갑군. 폴란드 전쟁 때

    자네와 함께 진격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자네는 정말 최고의 참모

    장이었지.”

    “저도 이렇게 각하를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말에 라이헤나우 원수는 가식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이렇게 야전군 사령관이 된 기분이 어떤가? 이제야 내 고생을 알겠나?”

    “이렇게 편한 자리인 줄 알았으면 진즉에 총참모본부를 나왔을 겁니다.”

    “하하! 사실 참모에 비하면 지휘관은 정말 편한 자리긴 하지.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만 빼면 말이야.”

    “하지만 그것을 짊어지는 것이야말로 지휘관의 과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 말대로지.”

    그렇게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라이헤나우가 눈빛을 바꾸며 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설마 자네가 진짜로 잡담이

    나 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말이야.”

    사실 그의 말대로였다.

    오늘 내가 라이헤나우를 찾아온 것은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오늘이 그가 죽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 라이헤나우 원수는 1942년 5월 17일 오늘, 뇌출혈로 쓰러

    진다.

    그래서 수술을 하기 위해 수송기를 타고 본국으로 이송되지만, 수송기의 고장

    으로 야지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결국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렇기에, 오늘 내가 라이헤나우를 고장나지 않은 수송기에 실어서 보내기만

    한다면 그를 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를 살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

    기 위해서, 나는 라이헤나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맞습니다. 사실 각하께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만약 각하께서는, 각하의 전략적 판단과 총통의 명령이 상충하는 살황이

    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라이헤나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이해하네. 현장의 군인으로서, 그리

    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참모로서 총통의 전쟁 지도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지.”

    “그렇습니까?”

    비록 친나치 인사이긴 했지만, 라이헤나우는 결코 무능한 군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오래전부터 나치를 도와왔기 때문에 히틀러를 상대로도 충분히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총통의 잘못된 개입에 맞서겠다고 대답한다면 오늘, 그를

    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라이헤나우의 대답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총통의 군사적 미숙함이 아닌 그의 번뜩이는 통찰력을 봐야

    하네.

    안슐루스부터 폴란드 전쟁, 그리고 프랑스 전쟁까지. 이제껏 군부가 반대했던

    일들을 총통께서는 모두 성공시켜내시지 않았나?

    그러니 우리들은 총통의 거시적인 영감을 믿고 따라야 하네.”

    “···알겠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뒤로, 나는 라이헤나우와 잠깐 더 대화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틀 뒤 아침, 6군 사령부에서 업무를 보던 나는 예상 밖의 전보를 받

    았다.

    - 남부집단군 사령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 사망.

    - 11군 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를 남부집단군 사령관에 임명함.

    작가의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원래의 역사에서 라이헤나우 원수가 실제로 사망한 날짜는 42년 1월 17

    일입니다만, 소설 전개의 편의를 위해서 본 작품에서는 5월 17일에 사망

    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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