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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2화 (32/157)
  • 32화. 남쪽으로 (1)

    사실상 유명무실한 자리이긴 하지만, 총통의 개인 참모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방군 최고 사령부 참모부장.

    그리고 동부전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최대의 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직

    접 지휘할 수 있는 6군 사령관.

    일장일단이 있는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저는··· 6군 사령관으로 가겠습니다.”

    내 말에 방안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총통은 내 대답이 자신의 기대와는 달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없이 나를 바

    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감이군.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귀관이 내 곁에 남아 주기를 바랬는데 말이

    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총통은 여전히 미련이 남았는지, 나에게 다시 한번 되물어 왔다.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6군 사령관도 좋은 자리지만, 참모부장이 된다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걸세.”

    사실 히틀러의 말대로였다.

    독립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있다지만, 기껏해야 1개 야전군밖에 움직일 수 없

    는 6군 사령관보다는 간접적이나마 전 전선에 걸쳐서 개입할 수 있는 참모부

    장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6군 사령관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곧 시작될 블라우 작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향방에 따라서 이

    빌어먹을 전쟁의 결과가, 내 조국 독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이번 블라우 작전 때문입니다.”

    “블라우 작전 때문이라고? 이해하기 어렵군. 물론 이번 공세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네만, 굳이 자네가 내려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여기 동부전선 작전 지도를 한번 봐 주십시오.”

    나는 히틀러의 앞에 남부집단군의 전선 일대가 그려진 거대한 작전 지도를 펼

    친 뒤 손가락으로 도시들을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블라우 작전.png

    “보시다시피, 현재 남부집단군은 북쪽의 쿠르스크부터 하리코프, 마리우폴까

    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아군이 유전을 점령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 행동이 요구됩니다.”

    “두 가지?”

    “그렇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보로네슈부터 돈강 일대를 따라 스탈린그라드까

    지 점령한 뒤, 소련의 남하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이코프, 그로즈니, 바쿠에 위치한 유전들을 점령하면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군.”

    내가 회귀 전의 블라우 작전을 대략적으로 설명하자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였

    다. 나는 지도 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중 핵심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스탈린그라드입니다.”

    “스탈린그라드라고?”

    “예, 그렇습니다. 스탈린그라드는 러시아 남부로 향하는 두 철도선 중 하나이

    자, 볼가강의 수운을 통제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즉, 카프카스에서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길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탈린그

    라드 일대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일단 카프카스 일대를 점령하기로 결정한 이상,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서라도 스탈린그라드와 돈강 일대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남부로 향하는 요지인 이도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필사

    적으로 저항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회귀 전과 같은 끔찍한 소모전으로 이어질

    터였다.

    ‘만약 또다시 전생과 같은 시가전, 소모전에 휘말렸다가는 이 작전은··· 아

    니, 이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스탈린그라

    드의 비극이 반복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원래의 역사를 아는 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참모부장이 아닌 6군 사령관직을 선택한 이유였다.

    ‘···게다가 참모부장으로 남더라도 어차피 스탈린그라드에 미쳐버린 히틀러의

    고집은 못 막을 테고 말이지.’

    나는 아직도 지도 위에 적힌 스탈린그라드라는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히

    틀러에게 말했다.

    “각하. 만약 저에게 6군 사령관직을 맡겨주신다면 제가 스탈린의 도시, 스탈

    린그라드를 점령해 보이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히틀러는 흡족스럽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장군은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군. 좋소! 반드시 저 도시를 점령하시

    오! 그걸 위해서라면 내 필요한 지원은 뭐든지 아끼지 않으리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전생에 이어 두 번째로 6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

    그날 이후, 나는 후임자에게 참모차관 업무를 인계하면서 할더와 함께 블라우

    작전의 계획을 입안하고 다듬었다. 그것이 참모차장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마

    지막 임무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육군 총참모본부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이상으로, 블라우 작전 안의 최종 수정안이었습니다.”

    “좋군. 그동안 고생 많았네.”

    “참모총장님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할더에게 블라우 작전을 브리핑한 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경례를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부집단군으로 내려가면 한동안은 그와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방문을 나서려고 할 때, 뜻밖에도 할더가 나를

    붙잡아 세웠다.

    “파울루스 장군,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하지 않겠나?”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나는 할더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여,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당번병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우리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할더는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리

    고 나는 그의 침묵을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적막만이 감돌던 찰나, 할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믿기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가 참모부에 남기를 바랬네.”

    “···그렇습니까.”

    “그래. 한동안 의견 차이로 인해서 우리 사이가 썩 좋지 않았지만, 돌이켜보

    니 알겠더군. 자네의 전략적 안목과 작전술은 진짜라는 걸 말이야.”

    갑작스러운, 그리고 뜻밖의 말이었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미 떠나

    는 마당에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나는 할더의 의중을 알지 못해서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니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

    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이 전쟁이 끝나리라는 그의 예상이 어긋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련이 생각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덕분일까.

    어울리지 않게 약한 말을 꺼내는 할더에게, 나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지난번 회의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아군의 전력은 보존하면서 적의 병력을

    소모 시키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네는 정말 그 방법으로 소련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반신반의하듯이 묻는 그에게 나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건 아마 어려울 겁니다.”

    “···뭐, 뭐라고?”

    “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소련군의 병력 동원 능력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입

    니다. 저런 군대를 무너뜨리려면 일거에 엄청난 대병력을 몰살시켜야 할 텐

    데,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2차대전 기간 동안, 소련군은 평균적으로 아군의 약 3배에 달하는 병력을 동

    원해냈다.

    그 말인즉슨, 아군이 소련군을 무너트리려면 그 3배의 벽을 넘는 타격을 일시

    에 입혀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지 사수 명령에 묶여있던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라면 몰라도, 이제는 그런

    대규모 포위전은 잘 안 나오겠지.’

    “그렇다면 역시, 이 전쟁은 결국 아군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란 말인가?”

    “하지만 소련놈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강요한다면 놈들을 협상장으로 나오

    도록 만들 수는 있습니다. KO승이 불가능하다면 판정승이라도 거둬야 하지 않

    겠습니까.”

    적백내전을 겪었던 스탈린은 독일과 혈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전후에 미국과

    영국 등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거라고 늘 의심하며 대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철천지 원수처럼 싸우고 있지만, 소련의 피해 규

    모가 일정 이상으로 커지면 강화 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내는 것도 충분히 가

    능할 터였다.

    “···강화라. 하지만 총통께서는 그런 결말은 결코 납득하지 않으실 걸세.”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뭐, 비정상적인 시대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자, 자네···!”

    내 마지막 말에 할더는 깜짝 놀라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런 할더에게 마지막으로 경례를 올린 뒤,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1942년 4월 15일.

    나는 어깨에는 상급대장의 견장을, 가슴에는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을 달고서

    하리코프의 6군 사령부로 향하는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

    “···운전병, 비행장은 아직 멀었나?”

    “죄송합니다. 속도를 더 올리겠습니다.”

    “그래. 신임 사령관님이 오시는 날인데 지각하면 단순한 경고로는 안 끝날 걸

    세.”

    “······.”

    전 6군 사령관, 라이헤나우 원수의 부관이었던 빌헬름 아담 대령은 점점 더

    빨라지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으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제기랄, 제시간에 도착하기는 글렀나. 비행기가 늦게 오기를 기도해야겠군.’

    그러나 다행히도 하늘이 도운 것일까, 아담 대령을 태운 차량이 비행장에 들

    어서기 무섭게 저 멀리서 수송기 한 대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담은 재빨리 차에서 내린 뒤, 옷매무새를 다듬고 부동자세로 섰다.

    그리고 잠시 뒤, 수송기가 활주로 위에 완전히 멈추고 그곳에서 붉은색 깃이

    달린 정복을 차려입은 장신의 남자가 내렸다.

    계급과 가슴에 달린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을 보아하니, 그가 신임 6군 사령

    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상급대장임에 분명했다.

    “하일 히틀러!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분명 파울루스 상급대장도 유명한 친나치파 장성이라고 했었지. 그렇게 알고

    있던 아담 대령은 힘차게 오른팔을 뻗으며 큰 소리로 나치식 경례를 올렸다.

    그러나 파울루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국방군식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아주

    었다.

    “···반갑군. 자네가 내 부관인가?”

    “예, 저는 라이헤나우 원수 각하의 부관이었던 빌헬름 아담 대령입니다.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각하를 모시겠습니다.”

    “좋네, 그럼 앞으로 잘해보세.”

    신임 6군 사령관은 아담 대령과 가볍게 악수한 뒤, 자연스럽게 차량으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아담 대령에게 말했다.

    “···갑작스럽지만, 자네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네.”

    “예! 말씀해주십시오.”

    “사령부로 돌아가자마자 라이헤나우 원수가 내렸던 강조 명령을 폐기하게. 그

    리고, 앞으로 나에게는 나치식 경례를 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아담 대령은 앞서 걸어가는 파울루스의 뒤를 따라 기분 좋게 걸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이헤나우 원수의 강조명령은 ‘이 전쟁의 목표는 통상적인 전쟁이 아니

    라, 유대-볼셰비즘을 절멸하기 위한 투쟁이며 그리하기 위해 독일의 전사

    들이 싸워야 한다.’는 나치의 이념을 공식 인정한 지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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