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1화 (31/157)
  • 31화. 양자택일

    갑작스러운 호출에 나는 곧장 히틀러의 집무실로 향했다.

    “작전 참모차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 드디어 오셨군. 어서 들어오시오!”

    히틀러의 허락이 떨어진 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총통 혼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곳

    에는 이미 선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손님들의 정체는 바로 클루게 원수와 할더, 그리고 남부집단군 사령관 라

    이헤나우 원수였다.

    ‘할더와 클루게 원수는 그렇다 쳐도, 라이헤나우 원수는 이 자리에 무슨 일이

    지?’

    나는 어울리지 않게 끼어있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우선 경례를 올린

    뒤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자, 드디어 총통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귀관들 덕분에 우리 독일이 지난 겨울의 위기를 극복하

    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소. 그리고 특히 파울루스 장군! 이번에도 장군의 혜

    안이 아니었다면 정말 힘든 싸움이 되었을 거요. 정말로 수고가 많으셨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번 승리는 중부집단군과 클루게 원수께서 힘써주신

    덕분이지, 어찌 저의 공이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클루게 원수가 입을 열었다.

    “아니, 모스크바 전투를 이렇게 대역전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파울

    루스 장군의 공이 컸소. 지나친 겸양은 오히려 예가 아닌 법이오.”

    “하하, 감사합니다. 높게 평가해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회의는 자연스럽게 진짜 본론으로

    주제를 옮겨갔다.

    “그래, 어쨌든 이번의 빛나는 승리를 통해서 모스크바 일대의 전세는 완전히

    역전된 거라고 봐도 되겠소?”

    “완전한 역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련 놈들은 한동안 피해를 복구하느

    라 바쁠 테니 어쨌든 현재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아군 측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다음 공세 목표는 어디를 노리는 것이 좋겠소?”

    ‘다음 공세 목표라. 역시 이게 본론이었나.’

    역시 히틀러가 이 자리에 이들을 불러 모은 것은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총통의 이 질문에 다른 장군들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내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갑자기 뜻밖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카프카스 일대를 정복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건 바로, 이제껏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남부집단군 사령관 라이헤나우

    원수였다.

    “라이헤나우 원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모스

    크바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지 않소!”

    “하하, 클루게 장군. 진정하고 라이헤나우 원수의 말도 일단 한번 들어봅시다.”

    이에 클루게 원수가 발끈하며 나섰지만, 히틀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

    헤나우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라이헤나우 원수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군이 모스크바가 아닌 카프카스를 점령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석유 산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곳을 점령한다면 부족한 석유 자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적의 자원줄을

    차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할더가 라이헤나우의 주장을 논박하며 나섰다.

    “물론 성공한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카프카스 일대의 유전을 점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현재 남부집단군의 위치에서 마이코프까지는 460km, 그로즈니까지는 780km입

    니다.

    이는 지금까지 남부집단군이 진격해 온 것과 맞먹는 거리입니다.”

    현실적인 할더의 지적에, 라이헤나우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바르바로사 작전을 입안할 당시에 할더 참

    모총장께서는 적을 일거에 섬멸할 수만 있다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소?”

    “···으음.”

    이에 할더가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클루게가 말을 이었다.

    “만약 기동포위전이 실패해서 소련놈들을 놓친다면 어떻게 할 거요? 이젠 놈

    들도 예전처럼 쉽게 당해주지는 않소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련놈들의 참호가 기다리고 있는 모스크바로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카프카스 공략을 두고 벌어진 할더와 클루게, 라이헤나우의 논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다 문득, 세 사람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로 모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바로 나였다.

    “좋소. 그럼 다른 사람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파울루스 장군, 자네

    는 어떻게 생각하나?”

    “파울루스 대장, 한번 답해보게. 모스크바와 카프카스 중에 어느 쪽을 공략하

    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클루게와 라이헤나우는 내가 당연히 자신의 주장을 지지할 거라는 듯 확신에

    찬 어조로 물어왔다.

    ‘모스크바와 카프카스라···.’

    나는 두 사람의 시선 속에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카프카스를 공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희비가 갈렸다.

    라이헤나우와 히틀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클루게와 할더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인가. 모스크바까지 고작 80km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공을 다른 곳

    으로 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말해보게.”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 클루게 원수에게 나는 오히려 반문했다.

    “각하, 각하께서는 아직도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이 전쟁이 끝날 거라고 생각

    하십니까?”

    내 말에 클루게와 할더는 침묵에 잠겼다.

    아마 저 두 사람도 모스크바를 점령해봤자 소련이 붕괴하거나 항복하지는 않

    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저들이 모스크바 공략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눈앞에 놓인 대

    어를 놓치는 것이 아깝기 때문일 터였다.

    “제가 작년부터 계속 말씀드려왔듯이, 이 전쟁은 이미 소모전의 늪에 빠져버

    렸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들은 아군의 전력은 보존하면서 적의 전력은 소모시

    키는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전장은 이미 겹겹이 방어선이 구축된 모스크바 일대가

    아니라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카프카스 지역입니다.”

    “아군의 전력은 보존하면서 적은 소모시키는 싸움이라···.”

    2차 세계대전을 전략적으로 되돌아봤을 때, 독소전쟁은 독일군의 전투 효율성

    과 소련군의 병력 동원능력이 맞부딪힌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이 전쟁에서 독일군이 승리하려면 아군의 뛰어난 전술 능력으로 소

    련군에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피해를 입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을 소모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스크바를 포위하고 점령해도 되

    지 않나?”

    “물론 카프카스 대신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경우 아군

    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겁니다.

    각하, 이미 철저하게 방어 준비가 끝난 현재의 모스크바는 대어가 아니라 독

    이 든 사과입니다.”

    내 말에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던 클루게 원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히틀러는 흡족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좋소! 그럼 카프카스 일대를 점령할 공세 계획을 세워서 보고하도록 하시오!”

    그것으로 회의는 끝났다.

    그렇게 독일군의 42년 하계 공세는 다시 한번 남쪽의 끝, 카프카스로 향하게

    되었다.

    *****

    “파울루스 장군, 잠깐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갑작스러운 히틀러의 부름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나머지 인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고 회의실 안에 단둘만 남게 되자

    총통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하, 오늘 회의도 정말 잘 해주셨소. 아무래도 파울루스 장군은 나와 마음

    이 잘 통하는 것 같구려.”

    “···아닙니다. 전 그저 제가 옳다고 생각한 바를 직언했을 뿐입니다.”

    “이번뿐만이 아니오. 레닌그라드도, 모스크바도 결국은 파울루스 장군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히틀러는 그런 내 대답에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믿기 힘든 말을 꺼냈다.

    “장군은 다음 달에 있을 서훈식 때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 수훈과 함께 상급

    대장으로 진급하게 될 것이오.”

    “상급대장··· 말씀이십니까.”

    작년 5월에 대장으로 진급한 것도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그로부터 1년도 지나

    지 않은 지금 벌써 상급대장이라니. 놀라울 정도로 빠른 진급이었다.

    “하하, 놀라지 마시오. 지금까지 장군이 우리 군을 위해 공헌해온 바를 보면

    상급대장이라는 자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니까.”

    “···영광입니다.”

    “그나저나 파울루스 장군이 상급대장이 된다면 현재의 직위가 좀 걸리는구려.

    참모차장이 상급대장이라니, 정해진 계급은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급이 너

    무 안 맞지 않소?”

    사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참모차장은 원래 중장이 임명되는 자리인 데다가, 육군 참모총장인 할더가 상

    급대장인데 같은 계급인 내가 참모차장인 것도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장군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려고 하오. 우선, 첫 번째는 국방군 최

    고사령부 참모부장으로 영전하는 것이오.”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육군과 공군, 해군을 효율적으로 통합 지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지휘본부였다.

    그러나 각 군 간의 합동 작전이랄 것이 거의 없어진 데다가 동부전선 전역이

    사실상 육군의 관할로 놓여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방군 최고사령부 참모부장이라는 자리가 별 볼 일 없

    는 한직인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총통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며 조언을 해야 하는 업무특성 상,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육군 참모총장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

    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개인 참모가 되라는 말이군.’

    분명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지만 나는 즉답 대신 두 번째 선택지를 먼저 물어

    보았다.

    “두 번째 선택지가 무엇인지 먼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물론이오. 파울루스 장군도 알고 있겠지만, 라이헤나우 원수가 남부집

    단군 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그가 원래 맡고 있던 6군 사령관직이 공석이 되

    었소.”

    거기까지 들은 나는 총통이 어떤 제안을 할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해서, 이번에 라이헤나우 원수가 신임 6군 사령관으로 파울루스 장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더군. 어떻게 하시겠소?”

    ‘후··· 6군 사령관이라.’

    총통의 개인 참모나 다름없는 국방군 최고사령부 참모부장과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6군 사령관.

    어느 쪽을 택해야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