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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0화 (30/157)
  • 30화. 반격 (6)

    1942년 3월.

    차가운 봄비와 함께 시작된 라스푸티차는 다시 한번 대지를 진흙탕으로 만들

    며 양측의 발을 꽁꽁 묶어버렸다.

    그로 인해 수개월 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던 모스크바 일대에는 잠시 평화가

    찾아왔고, 계속 수세에 몰리던 독일군은 오랜만에 한숨 돌릴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입장은 달랐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금 이 순간에도 10군과 50군은 여전히 포위망 안

    에 갇힌 채 말라 죽어가고 있었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놈들의 포

    위망을 돌파해야만 했다.

    “주코프 동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위망 돌파 작전은 예정대로 실행할 것이오. 비록 라스푸티차로 인해 상황

    이 여의치 않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3월 2일.

    칼루가 서쪽 방면에서 기갑 부대를 앞세운 2개 야전군이 포위망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소련군의 진격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돌격! 돌격해!”

    “주, 중대장 동지! 적 전차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기랄, 아군 전차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지원 요청을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안 오는 거야!”

    “기갑 부대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현재 전차들이 진흙탕에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독일군 전차들은 지난 열흘 동안 튼튼하게 구축해둔 전차 호에 들어가서 가만

    히 버티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반면에, 소련군 기갑부대는 라스푸티차의 진흙밭을 뚫고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적 손실과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활약한 것은 독일군의 날아다니는 야포, 슈투카였다.

    에에에에엥-

    “젠장, 슈투카다! 엄폐해!”

    “전원 하차! 전차를 버리고 탈출한다!”

    겨울이 끝나고 날이 풀리면서 지상은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렸지만, 반대로 하

    늘은 작전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날씨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슈투카 편대는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진흙탕에 빠진 전차와

    보병들을 유린하며 다녔고, 그 때문에 소련군의 진격은 더더욱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련군 병사들은 불굴의 의지로 조금씩

    조금씩 진격해나갔다.

    슈투카가 날아오면 나무와 수풀 사이로 숨고, 진흙탕은 통나무 더미로 길을

    만들어서 건넜다.

    그리고 그렇게 독일군의 진지에 도달한 뒤에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돌

    격해서 기어코 방어선을 돌파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이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독일군 측이었다.

    몰려오는 소련군에 맞서서 독일군은 예비대를 투입하려고 했지만, 만민에게

    평등한 라스푸타차 덕분에 예비대도 소련군의 돌파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

    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련군 병사들의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해서, 독일군의 포위망이 조금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코프 동지! 현재 61군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 중이라고 합니다!”

    “좋소! 그럼 그곳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시오. 어디든 좋으니 단 한 군데

    만이라도 통로를 만들면 우리의 승리나 다름없소!”

    “예!”

    어쩌면 정말로 놈들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포위망 내부의 아군들을 구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전선의 병사들에게도, 스타브카의 지휘관들에게도 퍼져나가기 시

    작했다.

    *****

    그렇게 포위망 바깥에서 승리의 희망이 싹트는 동안, 칼루가 포위망 안쪽에서

    는 50군 사령관 이반 볼딘 상장의 지휘하에 살아남은 소련군 25만 명이 최후

    의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칼루가까지의 거리는 얼마인가?”

    “약 40km입니다.”

    “멀군. ···아니, 고작 40km조차도 멀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궁지에 몰린 것

    인가.”

    언덕 위에서 전선을 내려다보던 볼딘 상장은 전투를 준비 중인 소련군 병사들

    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포위망 안에 갇힌 소련군의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은 벌써 몇 주째 제대로 된 배식을 받지 못한 채 하루에 빵 한 조각으

    로 간신히 연명해야 했고, 끊임없이 압박해 들어오는 독일군에 맞서 싸우느라

    늘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있었다.

    게다가 탄약과 연료마저 부족해서 파괴된 전차의 연료와 포탄을 전부 빼내서

    재활용해야 했고, 보병들의 총알조차도 모자라서 서로 나눠 쓰거나 죽은 병사

    의 탄을 회수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볼딘 상장은 이렇게 지친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조차 제공할 수

    없었다.

    어차피 포위망 내부의 사정은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였고,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돌파를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차피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그것을 알기에 볼딘 상장은 이번 돌파를 위해서 포위망 내부에 있는 모든 자

    원과 전력을 다 긁어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 창고를 개방해서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필요 없는 물

    건과 남은 짐들은 모두 불태웠다.

    설령 부상병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은 전부 동원되었고, 포병들조차도

    마지막 남은 포탄을 전부 발사한 뒤 각자 소총을 쥐고서 전선에 나섰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전력은 총합 25만에 전차 20여 대.

    이 병력으로 과연 독일놈들의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탈출에 성공한다면 영웅이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되리라.

    볼딘은 공세에 나서는 병사들의 뒷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돌격 앞으로! 파시스트 압제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자! 우라!!”

    “우라!!”

    “어머니 러시아를 위하여!”

    “도망치지 마라! 지금 돌파하지 못하면 어차피 죽는다!”

    그러나 볼딘 상장의 걱정과는 다르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소련군 병사들은 기대 이상으로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며 독일군을 몰아붙였다.

    앞사람이 쓰러져도 멈추지 않고 돌격한다.

    평소라면 드르륵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바닥에 엎드렸을 기관총 진지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진격하는 소련군의 기세에 오히려 독일군 병사들이 주춤할 정도

    였다.

    ‘어쩌면··· 이대로 놈들을 몰아붙일 수만 있다면, 정말로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볼딘 상장의 마음속에도 일말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오래지 않아서 금방 꺼져버리고 말았다.

    “아악!!”

    “사, 살려줘! 항복! 항복!”

    “어··· 어머니···.”

    3월의 라스푸티차가 만들어낸 진흙밭은 기세만으로 넘기에는 너무나도 깊었

    고, 이미 신체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소련군 병사들은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지쳐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열흘 동안 강화된 독일군의 방어선은 보이는 것 이

    상으로 강력하고 악랄했다.

    일어선 자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기관총탄이 꿰뚫었고, 쓰러지면 하늘에서 떨

    어지는 박격포탄이 내려찍는다.

    그렇게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 사이를 지나서 어떻게든 진흙탕을 통과하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윤형 철조망과 지뢰밭이었다.

    이런 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극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결국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나.’

    언덕 위에서 전투의 경과를 지켜보던 볼딘은 더 이상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

    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더라면··· 아니, 알고 있었더라도 결국 돌파를 감행해

    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도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볼딘은 허탈하게 웃으며 옆에 서 있던 부관에게 말했다.

    “···전 군에 전파하게. 현 시간부로 모든 공세를 중단하고 무조건 항복하라고

    말이야. 더 이상의 전투는··· 아무런 의미도 없네.”

    그러나 무의미한 희생을 막으려던 볼딘의 마지막 지시는 병사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 돌파 시도와 그 피해로 인해 포위망 내부의 지휘체계가 말 그

    대로 와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병사들은 중대 단위로, 소대 단위로 뿔뿔이 흩어진 채 각자 탈출을

    시도하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사히 항복하거나 탈출에 성공하는 이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독일군을 만나서 항복을 외치기도 전에 엄청난 양의 포탄과

    공습이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3월 17일.

    마지막 소련군 중대가 독일군에게 투항하면서 칼루가 포위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각하, 중부집단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고맙네.”

    동프로이센, 라스탄부르크에 위치한 총통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부집단군으로부터 날아온 보고를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후, 그래도 결국은 이겼군.”

    사실 아군의 승리는 포위망을 완성한 순간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3월 초부터 시작된 주코프의 돌파 시도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

    도록 만들었다.

    ‘역시 명장은 명장이라 이건가. 공수부대 투입부터 이번 돌파 시도까지, 때마

    침 라스푸티차가 시작되지 않았으면 정말 우리가 졌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결국 소련군은 아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외부로부터의 공세는 충분히 강력했지만, 포위망 안의 소련군은 이미 돌파를

    시도할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보고서였다.

    ‘사상자 15만에 포로 10만. 게다가 전차 400대 격파라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

    다도 훨씬 더 대승이군.’

    전리품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승리로 인해 르제프를 감싸던 소련군의 돌출부와 칼루가 포위망이 사라

    졌을 뿐만 아니라, 모자이스크부터 칼루가 일대까지 소련군을 밀어내는 데 성

    공한 것이다.

    비록 새롭게 얻어낸 영토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승리가 의미하

    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건 바로 공세의 주도권이 소련군에게서 아군에게로 넘어왔다는 거지.’

    모스크바 방어전의 승리로 소련이 얻어낸 작전적 우위는 이번 포위전의 대승

    을 통해서 완전히 상쇄되어 버렸고, 이제 공격권은 다시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비록 아직은 라스푸티차의 여파로 양측 모두 소강상태에 빠져 있지만, 이 사

    태가 끝난 뒤 이어질 하계 전투는 아군의 공격을 소련군이 막는 양상으로 진

    행되게 될 터였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다가올 42년 하계 공세에서 아군은 어디를 공격해야 할 것인가?

    원래의 역사대로 석유와 자원의 산지인 남부를 향해서 진격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의 역사보다 훨씬 약해진 모스크바를 다시 한번 공격해 볼 것인가?

    ‘···어렵군.’

    내가 지도를 바라보며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참모 장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참모차장님, 총통 각하의 호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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