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29화 (29/157)
  • 29화. 반격 (5)

    1942년 2월 21일.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던 주코프는 다급하게 뛰어들어온 전령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주코프 동지! 브리얀스크 전선군 사령부로부터의 전화입니다. 예료멘코 상장

    동지가 주코프 동지를 급히 찾고 있습니다.”

    “예료멘코 동지가?”

    칼루가 돌출부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브리얀스크 전선군에게서 전

    화가 걸려왔다면 이는 필시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뚫었거나, 아니면 포위당했거나.’

    어느 쪽이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주코프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통신실로 들어가자, 통신 장교 하나가 수화기를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주코프는 그 수화기를 낚아채듯이 받아들고서 말했다.

    “전화 바꿨소. 나 주코프요.”

    “···주코프 동지. 예료멘코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머뭇거리는 목소리에, 주코프는 불길한 기분을 느끼

    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 예료멘코 동지. 무슨 일이오? 어서 말해보시오.”

    “죄송합니다. 칼루가 돌출부의 10군과 50군이 포위당했습니다.”

    “······결국 그리 되었나.”

    작전이 실패했다는 예료멘코의 말에 주코프는 의외로 담담하게 답했다.

    사실 그는 양익 포위에 실패했을 때부터 브리얀스크 전선군의 공세를 밀어붙

    이면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코프에게는 서기장의 뜻에 정면으로 맞설만한 용기가 없었고, 그래

    서 브리얀스크 전선군을 물리는 대신 차선책으로 공수부대 투입에 도박을 걸

    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투입했던 공수부대는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고,

    그 결과 무려 2개 야전군이 독일군의 포위망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공수부대 정도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안일함 때문인가.

    아니면, 서기장께 후퇴를 주장하지 못했던 나의 비겁함 때문인가. 어쨌든 결

    국은 내 불찰이로군.’

    “후··· 빌어먹을.”

    주코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미 결과는 정해졌고 이제 서기장께서는 인민들이 흘린

    피의 책임을 물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짊어질 것인가.

    ‘···연방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나 한 사람이 다 뒤집어쓰고 물러나는 수밖에.’

    결국, 뒤늦은 결단을 내린 주코프는 예료멘코에게 말했다.

    “예료멘코 장군, 지금 즉시 10군과 50군을 탈출시키시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도, 동지.”

    “아시겠소?”

    “···알겠습니다.”

    예료멘코의 대답을 들은 뒤, 주코프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곧바로 서기장의 집

    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앞에는 언제나처럼 푸른 베레모를 쓴 NKVD 요원이 방문을 지키고 있었다.

    “모스크바 방위군 사령관 주코프 대장이네. 서기장 동지께서는 지금 안에 계

    시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뒤, 안으로 들어갔던 경호원이 나와서 물었다.

    “급한 일이십니까?”

    “급한 일이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복도에서 몇 분을 기다린 뒤, 주코프는 드디어 허락을 받아 안으로 들

    어갈 수 있었다.

    주코프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지도자 이오시프 스

    탈린은 언제나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코프 동지, 기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그런 그의 앞에 선 주코프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긴급 사태입니다. 현재 10군과 50군이 독일군에 의해 포위당했습니다.”

    거기까지 말을 꺼낸 주코프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제 곧 강철의 대원수께서는 그에게 온갖 질타와 모욕을 쏟아내리라.

    그러나 주코프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스탈린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무엇이 문제요?”

    스탈린의 질문에, 주코프는 눈을 떴다.

    강철의 대원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주코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냐고?’

    도대체 이 질문은 무슨 의미인가.

    정말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나를 책망하는 말일뿐인가?

    잠깐의 고민 끝에, 주코프는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열었다.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하들의 헛된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것

    만큼은 분명히 말해야 했다.

    “···우선, 이번 대반격은 그 자체로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모스크바 방어전의 승리 이후 병사들이 지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

    깐의 휴식조차 주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공세에 나서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기

    어려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주코프는 다시 한번 스탈린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스탈린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얼굴로 조용히 말을 경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주코프는 용기를 얻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할 말은 다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군은 차선책으로 양익 포위를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북쪽 방어선이 너무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바람에 부득

    이하게 일점 돌파의 양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게 문제인가? 그래서 한 군데에 병력을 집중한 탓에 포위당했단 말이오?”

    여전히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스탈린을 보면서, 주코프는 직설적으

    로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서기장 동지, 이번 작전의 진짜 문제는 공세에 나서지 말아야 할

    때 공세를 감행했다는 점입니다.

    비록 저희들이 작년의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독일군을 한차례 물리치긴 했지

    만, 이는 방어자의 이점과 인민들의 적극적인 도움, 그리고 지난 겨울의 맹추

    위 덕분이지, 소련군이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제 겨우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고 독일군은 여전히 막강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주코프는 초연하게 스탈린의 처분을 기다렸다.

    방금 그가 한 말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것이었다. 스탈린이 이 발언을 문제

    삼고자 한다면 단지 군복을 벗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주코프는 불안함보다는 후련한 마음이었다.

    말도 안 되는 공세 명령 때문에 죽어가는 부하들을 보는 것보단 차라리 이쪽

    이 훨씬 나았으니까.

    그러나 스탈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주코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좋소. 그럼 결국, 내 판단이 틀렸던 탓이로군. 그렇지 않소?”

    “서기장 동지···.”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세계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르

    는 이 시국에, 나 한 사람의 아집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서기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코프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서기장 동지는 신장이 고작 168cm밖에 되지 않는 단신이었건만, 지금의 주코

    프에게는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거인처럼 느껴졌다.

    그는 잔뜩 긴장한 주코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작전술이나 전략적 안목은 나보다 주코프 동지가 훨씬 나은 것 같군.

    현 시간부로 주코프 대장을 최고 사령관 대리 겸 총 군부 사령관에 임명하겠

    소. 그럼 이제부터 어디 한번, 동무의 뜻대로 붉은 군대를 마음껏 지휘해보시

    오.”

    갑작스러운 스탈린의 말에 주코프는 잠깐 동안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그는 힘차게 경례하며 큰 소리로 답했다.

    “···영광입니다! 반드시 소비에트 연방에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소련의 영원한 명장으로 남을 남자, 게오르기 주코프가 소련군의 지휘봉을 잡

    게 되는 순간이었다.

    *****

    스탈린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주코프는 그 길로 곧장 포위망 안에 갇힌 브

    리얀스크 전선군을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코프 동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동지께서도 아시겠지만 더 이상

    은 투입할 예비대가 없습니다.”

    “예비대가 없다면 만들어야겠지. 칼리닌 전선군의 30군과 5군을 뒤로 물려서

    전선을 축소하고 그곳에 방어진지를 깊게 구축하도록 하게. 저쪽에서 병력을

    차출할 테니.”

    “알겠습니다.”

    “코네프 상장, 칼리닌 전선군은 병력을 얼마나 차출할 수 있겠소?”

    주코프의 물음에 코네프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최소 8개 사단 정도는 가능합니다.”

    “정말로 가능하겠소? 괜히 무리하다가 칼리닌 전선군이 뚫려버리면 더 큰 문

    제요.”

    “걱정 마십시오. 비록 저희들이 르제프 방어선을 넘지는 못했지만, 결코 일방

    적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르제프를 지키고 있는 독일 놈들도 손

    실이 커서 공세에 나설만한 여유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다행히도 칼리닌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상장은 지금까지의 졸전을 벌충

    하겠다는 듯이 자신의 병력을 내어주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좋소, 그럼 바실렙스키 중장. 그럼 새롭게 편성된 부대는 얼마나 있소?”

    “신규 사단들로 이루어진 61군과 2개 탱크 여단이 대기 중입니다.”

    “그럼 칼리닌 전선군에서 차출한 병력과 합치면 최소 2개 야전군 규모는 투입

    할 수 있겠군.”

    보고에 따르면, 현재 독일군 포위망의 바깥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두 개

    의 기갑군이라고 했던가.

    기갑군은 일반적인 야전군보다 훨씬 강력하긴 하지만, 내부의 2개 야전군과

    바깥의 2개 야전군으로 협공을 하면 일시적으로 통로를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동지, 구원군이 전선에 투입될 때까지 포위망 안에 갇힌 동무들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미 단단하게 형성된 포위망을 돌파하려면 대규모 병력을 양쪽에서 일시에

    투입해야 하는데, 칼리닌 전선군에서 병력을 차출하고 칼루가까지 이동하는

    동안 과연 10군과 50군이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보급품을 공수 낙하시켜서 포위망 내부에 보급을 지속할 수는 없겠나?”

    “어렵습니다. 비록 이동 거리가 짧다고는 하나 안에 갇힌 병력은 무려 2개 야

    전군 규모입니다. 이들을 모두 공중 보급만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공수작전을 감행하면서 수송기를 너무 많이 잃어서 출격할

    수 있는 수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바실렙스키의 말에 주코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준비를 서두르는 수밖에. 코네프 장군,

    부탁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칼루가 일대에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병력들이 속속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는 포위망이 닫힌 지 무려 열흘이나 지난 후였다.

    그리고 이 열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비가 오는군.”

    지난해 가을에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 세웠던 소련의 명장, 라스푸티차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