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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28화 (28/157)
  • 28화. 반격 (4)

    칼루가 북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유흐노프.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에 검은색 세단 차량 한 대가 전차와 장갑차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들어섰다.

    “각하, 여기가 돌출부의 초입 부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들어가시면 위험

    합니다.”

    “알겠네. 그럼 저 언덕 위까지만 올라가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앞서가는 하노마그 장갑차들의 호위를 받으며 따라가던 검은색 세단 차량은

    유흐노프 일대의 한 언덕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차량의 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붉은색 깃이 달린 정복을 차려입

    은 두 남자가 내렸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현장 시찰을 나온 클루게 원수와 3기갑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클루게 원수는 원수 봉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쪽 방향이 칼루가인가?”

    “예, 좌측의 오카강을 기준으로 건너편이 소련군 점령지입니다. 그리고 그 끝

    에 칼루가가 있습니다.”

    “그럼 그 반대편이 칼루가 돌출부 안쪽이겠군.”

    “예, 맞습니다.”

    클루게 원수는 원수봉을 부관에게 맡기고 쌍안경을 꺼내 들었다.

    쌍안경 너머, 저 평원 끝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포화와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호트 장군, 현재의 전황은 어떤가?”

    “지금은 돌출부의 목 부분에서 아군과 적군이 힘겨루기에 들어간 양상입니다

    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전진하고 있는 것은 아군 측입니다.”

    “그건 참 다행이군. 그럼 보급과 후방의 상황은 어떤가.”

    “적군 공수부대 놈들이 활개를 치고 다녀서 한동안 고생을 좀 하긴 했습니다

    만, 이제는 놈들도 많이 약화 되어서 파르티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가.”

    클루게 원수는 언덕 너머의 전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여기가 이번 모스크바 전투의 분수령이 되겠군.’

    현재 중부집단군은 전 전선에 걸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르제프 방어선의 9군과 이를 뚫으려는 칼리닌 전선군이 매일 피나

    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이곳 칼루가 돌출부에서는 아군 전선을 돌파하려는

    브리얀스크 전선군과 이를 막으려는 2군, 4군 간의 격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브리얀스크 전선군을 역으로 포위하려는 2기갑군과 3기갑

    군이, 후방 지대에서는 어떻게든 아군을 교란하려는 공수부대 놈들이 이 전투

    의 무게추를 가져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클루게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중부집단군은 이미 진즉에 예비대를 투입하면서 칼루가 돌출부를 역포위하는

    도박에 모든 판돈을 다 걸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이는 소련군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칼루가 돌출부의 퇴각을 포기하고 돌파를 선택한 이상, 소련군에게 다른 길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놈들은 공수부대를 저렇게 대규모로 투입하면서까지 마지막 도박을

    시도해봤던 거겠지.

    그러나 놈들의 노림수는 무효로 돌아갔고, 이제 남은 것은 아군의 전선이 뚫

    리느냐, 아니면 놈들을 역포위하는데 성공하느냐의 정면 힘 싸움뿐이다.

    과연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를 지어줄 것인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는 일선의 병사들이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치열한 전장의 광경을 마지막까지 눈에 담으면서, 클루게는 다시 사령부로

    돌아가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

    클루게 원수가 돌출부 일대를 시찰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프란츠의 302호

    전차는 3기갑군의 최일선에 서서 소련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다.

    “여기는 겔베1. 겔베2, 겔베3. 현재 9시 방향에사 T-34 다섯 마리가 접근 중

    이다. 아니, 제일 앞의 한 마리는 KV-1인 것 같군. 일단 둘이서 처리해보도

    록. 이상.”

    “여기는 겔베2, 수신 완료.”

    “겔베3, 알겠다.”

    포수석에 앉아서 벌써 몇 시간째 스코프만 들여다보고 있던 프란츠는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대장의 무전에 무심코 뒤에 앉은 하버 상사를 돌아보았다.

    “상사님, 저희들만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나만 나와도 골치 아픈 T-34가 네 마리에 하나는 무려 KV-1이라니.

    어지간히 운 좋은 상황이 아니라면 고작 3호 전차 둘이서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프란츠,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칠 생각이냐. 지레 겁먹지 말고 조준이나 똑바

    로 해라.”

    “후, 알겠습니다. 까짓거 해보죠.”

    너무나도 단호한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스코프를 노려보

    았다.

    “한스, 위장은 제대로 해 뒀겠지?”

    “걱정 마십시오. 동계 위장 위에다가 눈까지 퍼서 덮어놨으니, 어지간하면 안

    들킬 겁니다. 게다가 소련 놈들 전차는 사주 시야 확보도 제대로 안 되지 않

    습니까.”

    “그럼 다행이군. 프란츠, 놈들이 나타나면 바로 사격하지 말고 대기해라. 최

    대한 끌어들인 다음 근거리에서 유효타를 때려 넣는 거다.”

    “어디까지 끌어들이실 생각입니까?”

    “최소 300m 이내까지는 내버려 둬라. 그리고 가급적이면 KV-1부터 처리한다.”

    “예.”

    잠시 뒤, 저 도로 너머에서 진한 녹색으로 칠해진 소련군 전차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사님,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나도 확인했다. 거리는··· 약 500이군. 좋아, 좀 더 끌어들여.”

    프란츠는 일렬로 길을 따라 움직이는 다섯 대의 전차들을 스코프로 주시하며

    포탑을 천천히 움직였다.

    놈들은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쪽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현재 거리는··· 약 300인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차피 저놈들의 76.2mm 주포는 거리에 상관없이 맞추기만 하면 3호 전차의

    정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프란츠는 차라리 3호 전차의 60구경장 5cm 주포로도 T-34의 정면 장

    갑을 관통할 수 있는 근거리에서 교전을 시작하는 편이 좋았다.

    “멍청한 놈들, 역시 아직도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군.”

    “이게 다 제 위장 덕분 아니겠습니까.”

    “프란츠, 우리가 제일 앞에 있는 KV-1을 먼저 친다. 겔베3, 너희는 제일 후미

    에 있는 놈을 공격하도록.”

    “예.”

    프란츠는 이쪽 방향으로 측면을 훤히 보여주며 일렬로 나아가는 KV-1를 여유

    롭게 조준했다. 조준점은 포탑 뒤편의 펑퍼짐한 엔진룸이었다.

    “발사!”

    쾅!

    커다란 포성과 함께 KV-1의 후미에 검은 점이 하나 생기고, 엔진룸에서 불꽃

    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다시 한번 포성이 울렸다. 마찬가지로 우리 옆에 숨

    어있던 303호 전차가 제일 우측, 최후미의 T-34를 날려버리는 소리였다.

    “좋았어! 이제 놈들은 도로 한복판에 갇힌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반격하

    는 놈부터 하나씩 처리하도록.”

    하버 상사의 말대로 격파된 두 전차 사이에 끼여버린 나머지 T-34 세 대는 갈

    팡질팡하면서 조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놈은 제자리에서 응사하는군. 다른 놈은 도로를 벗어나서 이쪽으로 접근

    중이고, 마지막 한 놈은··· 어디로 갔지?’

    “프란츠, 일단 접근하는 놈부터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프란츠는 하버 상사의 지시대로 접근하는 T-34에 조준점을 맞췄다. 사라진 전

    차 한 대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것을 찾아내고 확인하는 건 포수가 할 일

    이 아니었으니까.

    쾅!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지고, 달려오던 T-34는 거대한 불꽃에 휩싸인 채 포

    탑이 날아가 버렸다.

    “하하하! 유폭이다. 불쌍한 놈들, 재수 없게 탄약고에 맞은 모양이군.”

    “···장관이군요.”

    모두가 감탄하는 동안 조준경을 돌려보니, 길 위에서 응사하던 T-34도 어느새

    격파되어 있었다.

    “겔베1. 여기는 겔베3, T-34를 모두 격파했다. 한 놈이 안 보이는데, 아마 도

    주한 것 같다. 이상.”

    “···여기는 겔베1. 수고했다.”

    프란츠는 상사와 소대장의 무전을 들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허리를 쭉

    폈다.

    ‘하아, 오늘은 그래도 쉽게 이겼군.’

    어디서 이렇게 많이 만들어내는 것인지 소련놈들의 전차부대는 날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그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특히, 저 T-34 전차들은 너무 많이 만나서 이제는 멀리서 외곽의 실루엣만 보

    고도 구별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소련군 전차병들의 미숙함 덕분에 어떻게든 이기고 있지

    만, 이런 승리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만에 하나 저놈들 중에서 전차 에이스라도 나온다면··· 과연 우리의 3호 전

    차로 언제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프란츠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쓸데없는 걱정을 털어버렸다.

    결국 한 놈을 놓치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이번에도 이겼고, 살아남았다.

    그래, 오늘은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자, 이제 슬슬 움직이자고. 한스, 숙영지로 복귀한다.”

    “예!”

    그렇게 프란츠의 302호 전차가 위장을 털어내고 길가를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3··· 3시 방향! 적 전차입니다!”

    “뭐? 프란츠, 포탑 돌려!”

    “예!”

    장전수 발터의 갑작스러운 말에 프란츠는 미친 듯이 포탑 회전 레버를 돌렸다.

    ‘젠장, 설마 아까 놓친 놈인가!’

    끼릭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조준경의 시야가 빠르게 움직인다. 이윽고,

    스코프의 십자선 위에 T-34 한 대가 나타났다.

    “빌어먹을, 너무 가깝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조준경의 시야를 가리듯이 가득 채운 그 전차는 순식간에 프란츠네 302호의

    옆을 스치듯이 지나쳐 통과해버렸다.

    ‘···설마 후미를 노리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303호를 먼저 처리하려고?’

    프란츠가 혼란에 빠져서 미친 듯이 레버를 돌리고 있을 그때, 관측창을 통해

    놈을 계속 주시하던 하버 상사가 말했다.

    “프란츠, 아무래도 아군인 모양이다.”

    “예? 저거 T-34 아닙니까?”

    “부대 소속은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니까 포탑에 철십자가 그려져 있다. 아무

    래도 노획전차인 모양이군.”

    하버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포탑 측면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프란츠네 전차 옆에 멈춰있던 T-34 전차의 전차장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음, 구텐탁?”

    그들의 전차 포탑 측면에는 황록색의 사각형 안에 하얀 G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2기갑군의 상징과도 같은 구데리안 장군의 마크였다.

    “···혹시 2기갑군 소속이십니까?”

    “그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 그쪽은 3기갑군 소속인가 보군. 하하, 반갑소. 아

    무래도 우리가 포위망을 닫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1942년 2월 20일.

    2기갑군과 3기갑군이 만나서, 칼루가 돌출부가 완전히 역포위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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