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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26화 (26/157)
  • 26화. 반격 (2)

    “자, 가자! 전차 전진!”

    “전진!”

    1942년 2월 5일.

    한때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던 최악의 겨울은 어느새 지나가고 다시 봄이 왔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반격의 예봉에 선 기갑부대의 진격에서 영광스러웠던 작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적군. 우리 대대의 전차를 모두 동원했다더니, 그래 봤자 고작 22대

    밖에 안 돼.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큐폴라 밖으로 상체를 내민 하버 상사가 주변의 아군 전차들을 세어보며 중얼

    거렸다.

    “뭐, 지난 겨울 내내 구멍을 막느라고 여기저기 불려 다녔지 않습니까. 다들

    그런 식으로 소모된 거겠죠.”

    “하하, 사실 우리 전차도 움직이는 게 기적인 상황이지 않습니까? 재수가 없

    었으면 저희들도 밖에서 소총수 노릇이나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버 상사의 말대로, 대부분의 기갑부대들이 가용 전차의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고, 그나마 움직이는 전차들도 대부분 언제 퍼질지 모를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그래, 우린 운이 좋았지. 한스, 변속기 고장 안 나도록 조심해서 운전해라.

    정비관이 이번에 또 부서지면 진짜 못 고친다더라.”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리고 사정이 딱한 것은 프란츠의 302호 전차도 마찬가지였다.

    변속기는 기어를 바꿀 때마다 출력이 떨어지면서 덜덜거렸고, 포탑을 회전시

    키는 모터도 맛이 가버려서 수동레버를 직접 돌려야 하는 처지였다.

    “뭐, 그래도 완전히 퍼질 때까지는 같이 가보자고. 이 녀석도 크렘린까지 같

    이 봤던 전우 아니냐.”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독일군의 진격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

    고 있었다.

    “3시, 기관총 진지! 거리 300! 고폭탄이나 한발 먹여줘라.”

    “예! 고폭탄 장전 완료!”

    “프란츠!”

    “알겠습니다.”

    프란츠는 천천히 레버를 돌려 조준점을 맞췄다. 기관총 사수도 우리를 발견한

    것인지, 이쪽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응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차를 상대로 기관총탄을 응사해봤자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조준경에 총탄이 맞아서 전차가 무력화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

    ‘도망치지도 않는 걸 보면 신병인 건가. 전쟁의 무서움을 알려줘야겠군.’

    프란츠는 여유롭게 거리를 계산하고 조준을 맞춘 뒤, 레버를 당겼다.

    쾅!

    시원한 발사음과 함께, 5cm 구경의 1.82kg짜리 고폭탄 탄두가 아름다운 포물

    선을 그리며 기관총 진지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수류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폭발과 함께 기관총

    진지는 거대한 흙구덩이로 변해 버렸다.

    “명중입니다. 기관총 침묵.”

    “생각보다 훨씬 쉽구만. 그리고 소련놈들의 전차는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슬

    슬 나올 때가 됐는데.”

    “중대장님 말씀대로 소련놈들이 아군 전선을 돌파하려고 시도하는 중이라면,

    지금쯤 그쪽으로 다 몰려가지 않았겠습니까?”

    프란츠의 말에 하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소련군 기갑부대 놈들은 정면을 돌파하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돌

    파구의 측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측면을 담당해야할 후속 부대와의 속도 조절에 실패해서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어쨌든 이런 식이라면 50km 정도는 금방 돌파하겠어.”

    “반대편의 2기갑군 놈들이 제대로 일해줘야 50km로 끝날 텐데 말입니다.”

    “그놈들이 안 오면 우리가 그만큼 더 가면 되겠지. 자, 가자! 전차 전진!”

    “전진!”

    힘찬 구령과 함께, 프란츠의 302호 전차는 약해진 소련군의 측면을 깊숙이 파

    고들며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다.

    *****

    “주코프 동지! 독일군 놈들이 브리얀스크 전선군의 측면을 남북에서 동시에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대처해야 합니다!”

    “···나도 이미 들었소.”

    황급히 뛰어들어오며 외치는 바실렙스키의 말에, 주코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차분한 대답과는 다르게, 그의 마음은 이미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놈들에게 아직도 이 정도의 전력이 남아 있을 줄이야.’

    솔직히 말해서,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처음에 입안했던 양익 포위 전술은 이

    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선 포위망의 일익을 맡아줘야 할 코네프 장군의 칼리닌 전선군은 르제프의

    방어선을 조금도 밀어내지 못한 데다가, 그나마 방어선을 돌파한 브리얀스크

    전선군도 점점 더 원래의 목적지였던 뱌지마와는 방향이 틀어지고 있었으니까.

    ‘계획대로 독일군을 전부 포위망에 가두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포위망 한두 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어긋나버릴 줄이야···.’

    사실 현재의 이 전선은 주코프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예료멘코 장군이 만들어낸 저 거대한 단일 돌출부는 겉으로 보기에만

    대단하지, 지금과 같이 실제로는 오히려 역으로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코프는 브리얀스크 전선군의 공세를 계속해서 감행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강철의 대원수께서는 저 대단해 보이는 돌출부에 크게 고무되셔서

    남쪽으로 모든 공세를 집중하도록 친히 지시를 내리셨기 때문이다.

    “사령관 동지! 지금 즉시 브리얀스크 전선군을 퇴각시켜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소, 빌어먹을···.”

    주코프는 작전 지도를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실렙스키의 말대로, 전략적으로 올바른 선택은 당연히 브리얀스크 전선군을

    퇴각시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랬다가는 서기장의 지시로 시작된 이 총공세가 전부 실패로 돌아갈

    텐데, 그때 그 분노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주코프의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안위와 지휘관으로서의 책무, 그리고 조국의 운명까지.

    이 모든 것을 한참 동안 저울질한 끝에, 그는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3군과 49군을 투입해서 칼루가 돌출부의 목을 방어하도록 하시오. 10군과 50

    군의 퇴각은··· 불허하겠소.”

    “···알겠습니다.”

    바실렙스키는 결국 책임을 피하는 주코프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바실렙스키도 주코프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주코프의 입장

    이었어도 아마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테니까.

    ‘후···.’

    그렇게 바실렙스키가 체념하며 돌아서려고 할 때, 주코프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부대는 지금 어디에 투입되어 있소?”

    *****

    “···버텨라! 지금 아군 기갑부대가 놈들의 배후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니까

    버텨라! 현재 위치를 사수하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예!”

    뱌지마 남쪽, 브리얀스크 전선군의 돌출부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어느 한 참호.

    이곳에 배치된 소총수, 오토 일병은 소대장의 외침을 한 귀로 흘리며 가늠쇠

    위에 놓인 소련군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

    저 이름 모를 병사는 손에 든 기관단총을 사방으로 헤프게 쏴 재끼며 오토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토가 가진 Kar98k는 볼트액션 방식의 단발 소총이기 때문에 한발 한

    발을 신중하게 쏴야만 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총이 아깝군.’

    어차피 이 정도 거리에서, 그것도 달리면서 연발로 쏘는 총알이 맞을 리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오토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방아쇠를 서서히 잡아당겼다.

    ‘지금이다.’

    탕!

    어깨의 묵직한 충격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리고 그와 동

    시에 가늠쇠 위의 병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후···.”

    오토는 뜨거운 입김을 내쉬며 다시 한번 소총의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거리는 묵직한 금속음과 함께 탄피가 튀어나가고, 다음 총알이 격실에 장

    전된다.

    ‘이게 두 번째 탄인가. 그러니까··· 이제 네 발 남았군.’

    오토는 다시 소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전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소련군들이 드넓은 설원을 달려서 오고 있었다.

    “제기랄, 끝이 없군.”

    오토의 총은 정확하긴 했지만 너무 느렸고, 그에 반해 적들은 너무 많았다.

    아마 저 옆에서 쉬지 않고 불을 뿜어주는 기관총이 없었다면 아군의 방어선은

    진즉에 뚫렸으리라.

    “오토! 뭐하고 있나!”

    “예! 죄송합니다!”

    하지만 불평해봤자 소용없었다. 지금은 눈앞의 적을 하나라도 더 쓰러트리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오토는 이제 차갑다 못해 이미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

    가락으로 다시 방아쇠를 잡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전방의 적들을 주시하던 오토의 시야 한구석, 저 멀리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처음에는 점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점점 더 많아지더니,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다. 이건 커지는 것이 아니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오토는 그것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소련군 전투기

    였다.

    “스테판 소위님! 공습입니다! 적의 비행기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공습?”

    오토의 외침에 스테판 소위는 쏴 갈기던 기관단총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

    았다.

    그곳에는 정말로 다수의 항공기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젠장, 공습이다! 전원 엄폐하고 폭격에 대비하라!!”

    “엄폐해! 공습이다!”

    “공습이다!”

    소대장의 지시에 공습 경고가 참호를 따라 옆으로 퍼져나간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오토는 참호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렸다.

    “제기랄··· 공습이라니. 우리 공군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소대장이 노성을 터트리는 가운데, 그들의 머리 위로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강풍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참호 위에 쌓여있던 눈 덩어리들이 오토의 머리 위로 쏟

    아졌다.

    “···뭐, 뭐야.”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소련군의 항공기들은 어떠한 폭탄도 투하하지 않고 그

    대로 오토의 참호를 지나쳐 날아가 버렸다.

    “후, 아무래도 우리는 공격 대상이 아닌 모양이군. 전원 자리로 복귀해라! 소

    련놈들의 공격이 재개될 거다!”

    “예!”

    소대장의 지시에 오토는 기분 좋게 다시 자신의 자리로 복귀했다.

    설마 폭격기가 우리를 그냥 지나칠 줄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토의 소대에 상급 제대로부터 한 통의 무전이 내려왔다.

    “···현재 우리의 후방 지대에 소련군의 공수부대가 낙하해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다들 후방을 철저히 경계하고 개인행동을 삼가도록. 알겠나?”

    그것은 바로 뱌지마 일대에 대규모 소련군 공수부대가 낙하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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