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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8화 (18/157)
  • 18화. 태풍 작전 (4)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르만스크 공세를 취소하라고?”

    “그렇습니다.”

    역시나 레프 원수는 내 말에 납득 할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소련군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자네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게.”

    “그 전에 각하께 한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각하께서는 현재 중부집단군의

    전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글쎄. 모스크바까지 고작 50km밖에 남지 않았다면 올해 안에 충분히 입성

    할 수 있지 않겠나?”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모스크바 공세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겁니다.”

    “···어째서인가?”

    레프는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타 부대의 일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썩 내키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중부집단군은 이미 공세종말점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4기

    갑집단이 증원되었으니 각하의 말씀대로 고작 50km 정도는 더 나아갈 수도 있

    겠지요.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원래의 목표였던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것은커

    녕, 3차 방어선을 넘는 것조차도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집무실 안에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레프 원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나 또한 그런 레

    프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레프 원수였다.

    “좋네. 자네의 말대로 중부집단군이 공세에 실패한다고 가정해보세. 하지만

    그것과 우리 북부집단군이 무슨 상관인가?”

    “···저는 그때를 대비해서 북부집단군이 전략적 예비대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지금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이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북부집단군의 무르만스크 공격 작전은 어쨌든 육군 총사령부와의 논의를 통해

    서 결정된 군사 임무다.

    그런데 이렇게 중간에 끼어들어서 이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명백한 지휘권 침

    해 및 군령권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게다가 만약 레프 원수가 내 말대로 무르만스크 공격을 포기한다면 이는 항명

    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프 원수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

    었다.

    “각하, 대국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무르만스크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지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부집단군의 이번 공세가 만약 실패한다

    면, 저희 국방군은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겁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각하의 북부집단군밖에 없습니다.”

    연이은 나의 설득에, 레프 원수는 고뇌 끝에 입을 열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중부집단군의 공세가 실패할 거라고?

    그러니 이에 대비해서 북부집단군의 병력을 온존해야 한다고?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프는 내심 파울루스의 말을 곱씹어보기 시작

    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확실히 현재 아군의 전력 배치는 조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의 북부집단군은 제4기갑집단을 차출당해 고작 2개 야전군밖에 남지 않았

    고, 남부집단군은 총 3개 야전군과 기갑군단이 크림반도부터 하리코프까지 넓

    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전력 전부가 중부집단군에 속해 있지.’

    그에 반해 중부집단군에 속한 부대는 무려 3개 야전군과 3개 기갑집단까지,

    총 6개 야전군에 달하는 규모였다.

    여기에 제1기갑집단으로부터 차출된 기갑군단을 더해보면 현재 독일군의 절반

    가량이 모스크바 전투에 투입된 셈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버린 모양새로군.’

    게다가 이들이 마냥 유리한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11월. 이제 곧 겨울이 온다. 즉, 모스크바를 함락시킬 기회는 앞으로

    고작 한 달뿐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전투로 대부분의 부대가 공세 능력을

    상실한 상태.

    ‘···어쩌면 정말로 중부집단군이 실패할 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파울루스의 예상대로 모스크바 공방전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래서, 모스크바 외곽의 광활한 평야에서 고립된 채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리 북부집단군이 증원군을 보내서 위기에 처한 중부

    집단군을 구원해낸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레프 원수는 고개를 들어 파울루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지금까지 저 녀석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놀라운 예측들을 해내지 않

    았던가.

    그렇다면 이번 한 번쯤은 저 녀석의 말에 베팅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프는 입을 열었다.

    “좋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자네의 말을 한번 믿어보겠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르만스크 공격 작전을 아예 취소할 수는 없네. 대신, 공세의 규모

    를 조금 줄이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레프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육군사령부의 명령에 정면으로 항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공세 규모를 줄이는 정도라면 그의 판단하에 충분히 조정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각하의 선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울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경례를 올린 뒤 자리를 떠났다. 레프는

    그런 파울루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미친놈인지, 아니면 대단한 녀석인지 잘 모르겠군.”

    그리고 얼마 뒤, 일부 북부집단군 소속 부대가 핀란드 군 점령지를 통과해 무

    르만스크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규모는 2개 보병사단으로, 작전 목표는 무르만스크로 이어지는

    철도망을 끊는 것으로 하향 조정되어 있었다.

    *****

    1941년 11월 7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우라!”

    “조국을 위하여!”

    “와아아아!”

    이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시민들 앞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어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도착한 극동 부대였다.

    “이반, 발 똑바로 맞춰라!”

    “예, 옛!”

    이들의 퍼레이드는 솔직하게 말해서 훌륭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지도 얼마 안 된 데다가 따로 행렬을 연습한

    적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와아아!”

    “군인 아저씨! 힘내세요!”

    “이기고 돌아와라!”

    하지만 이곳에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도,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온 당 간부들도 모두

    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크렘린 궁의 스타브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습니까, 사령관 동지. 극동 부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독일 놈들을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바실렙스키 동지. 애당초에 독일놈들의 공세는 이미 추진력을 잃

    은 지 오래였소. 다만 우리에게도 반격을 가할 여력이 없었을 뿐이지. 이제

    기다리던 극동 부대까지 도착했으니 모스크바를 사수해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

    오.”

    “하지만 동지, 얼마 전 새로운 독일군 기갑부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습니

    다. 저놈들도 증원을 투입한 게 아니겠습니까?”

    바실렙스키의 걱정 어린 말에 주코프는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참모차장 동지. 동지는 독일군의 강점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글쎄요. 무엇보다 기갑부대의 강력한 돌파력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으로는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정예병들도 대단하지요.”

    “아니, 틀렸소. 물론 동지의 말대로 놈들의 전력은 뛰어난 게 맞소. 기갑부대

    도, 보병들도. 심지어 공군과 해군도 아군보다 강력하지. 하지만 놈들의 강력

    함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여기 이것을 보시오.”

    주코프는 바실렙스키에게 한 장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독일놈들의 공세와 진격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 빌어먹을 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소. 도대체 우리는 왜

    지는 걸까. 어째서 나치 놈들은 저리도 강력한가.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

    것, 포위전이오.”

    주코프의 말에 바실렙스키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의 말대로, 독일군이

    대승을 거둔 것은 언제나 기갑부대를 이용해서 포위망을 만들었을 때뿐이었다.

    “그럼 지금의 전황을 다시 한번 보시오. 북쪽의 클린부터 모자이스크, 툴라까

    지. 가까운 곳은 여기서 고작 50km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위태로운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저놈들이 과연 모스크바를 포위할 수 있을까? 아무리 기갑부

    대가 증원됐다고 해도 그건 아마 어려울 거요.”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면으로 부딫히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승산

    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3차 방어선과 55만의 예비대가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들

    을 언제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였다.

    “그렇다면 극동 부대는 언제 투입하실 겁니까?”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바실렙스키에게 주코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당연히, 저놈들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때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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