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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7화 (17/157)
  • 17화. 태풍 작전 (3)

    “총통 각하, 이제 레닌그라드도 점령되었으니 제4기갑집단을 모스크바 공세에

    투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역시 그것 때문이었나.’

    하긴, 생각해보면 보크 원수가 직접 찾아올 용무는 그것뿐이었다.

    1941년 10월 25일 현재 중부집단군은 클린부터 모자이스크, 툴라에 이르는 2

    차 방어선에 가로막혀 진흙탕 속에 좌초되어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만 보면 중부집단군의 전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각하, 현재 모자이스크에서는 70km, 클린에서는 고작 50km만 더 나아가면 모

    스크바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승리까지 한걸음밖에 남지 않은 곳에서 아깝게 진격이 멈춰버렸으니,

    보크 원수로서는 병력을 더 투입하기만 하면 충분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할더와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보크 원수의 말이 맞습니다. 북부집단군은 이미 그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제

    중부집단군에 힘을 실어줘서 승기를 굳혀야 합니다!”

    “확실히, 지금의 이 기세를 몰아서 모스크바까지 함락시킬 수만 있다면···.”

    그러나 이는 심각한 오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중부집단군의 진격은 결코 ‘아깝게’ 멈춘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가지고 있는 공세 역량을 총동원한 끝에 ‘겨우’ 저기에 도

    달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1개 기갑집단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2차, 3차 방어선을 무너뜨리

    고 모스크바를 포위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이은 승리와 코앞에 놓인 모스크바에 고무된 히틀러를

    과연 내가 설득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런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겨울입니다. 겨울이 되면 혹독한 추위와 늘어난 보급 소

    요 때문에 지금과 같은 진격 속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럴 바에 차라리 이번 겨울엔 현재 위치를 사수하며 부대를 정비하고, 내년

    봄에 다시 공세에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할더와 보크가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보게, 파울루스 장군. 이번에 레닌그라드가 함락되면서 보급선이 크게 개

    선되지 않았나? 추위에 의한 피해는 소련놈들도 마찬가지고, 월동 장비도 레

    닌그라드를 통해서 보급하면 될 일이네.”

    “게다가 이제 겨우 11월이지 않나. 12월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올

    해 겨울은 모스크바에서 보낼 수 있을 텐데 무슨 문제인가?”

    ‘빌어먹을···.’

    내 착오였다.

    나는 레닌그라드를 빠르게 점령하고 보급선을 개선하면 올해 겨울에 독일군이

    입을 손실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저들은 내가 만들어낸 보급선을 발판삼아서 더 많은 병력을 모스크바

    공방전이라는 도박에 집어 던지려고 하고 있었다.

    “파울루스 장군, 이번에는 자네의 걱정이 좀 심한 것 같군. 이렇게까지 유리

    한 상황에서조차 공격을 주저해서야 어떻게 전쟁에서 이기겠나?”

    “하하, 이게 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탓 아니겠습니까. 참모차장은 좀 더 대국

    적인 판세를 보는 법을 배우는 게 좋겠군.”

    이제 회의는 제4기갑집단을 모스크바에 투입하는 방향으로 거의 결정되었다.

    여기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회의 결과를 바꿀 수도 없고,

    중부집단군의 삽질을 막을 수도 없다.

    이대로라면 무려 40만 명의 병사들과 수많은 중장비들을 잃어버렸던 모스크바

    전투의 참극이 다시 재현될 터였다.

    ‘···결국 이대로 역사가 반복되는 건가?’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빌어먹을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던가. 무

    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패배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총통 각하, 그렇다면 레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까지 새로운 보급로를 개설하

    는 작업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

    1941년 10월 26일, 스몰렌스크의 중부집단군 사령부.

    어젯밤, 왕복 1400km를 날아서 볼크스산체에 다녀온 보크는 피곤한 몸을 이끌

    고 회의실로 향했다.

    “···여전하군.”

    회의실 한가운데에 놓인 지도는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좌익의 9군은 트베리 인근에서, 그 밑의 제3기갑집단은 클린 앞에서 멈춰 섰

    고, 4군과 2군은 모자이스크부터 칼루가까지 이어진 2차 방어선 앞에 머무르

    고 있었다.

    그리고 구데리안 장군의 제2기갑집단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30km 떨어진

    툴라에서 정체된 상태였다.

    ‘최악이군.’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인근에서 꾸물거리는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를

    양쪽으로 크게 포위한 뒤 집어삼켰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럴만한 돌파력도, 공세 지속능력도 모두 고갈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제4기갑집단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정말 이 상황을 타개하고 모스크바

    를 점령할 수 있을까?

    보크의 머릿속에 어제 파울루스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겨울이 되면 혹독한 추위와 늘어난 보급 소요 때문에 지금과 같은 진격 속도

    를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보크도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겨울이 오면 공세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크는 자신이 있었다.

    애당초에 겨울의 문제는 결국 추위와 눈보라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은 지금과 같은 초겨울이 아니라 12월이 넘어서 한겨울이 되어야 닥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다.

    이제 곧 라스푸티차는 끝날 것이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력도 보강되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를 통해서 보급선까지 개선된다면?

    그렇다면 원래의 계획대로 모스크바를 포위하진 못하더라도, 고작 50km를 돌

    파해서 모스크바에 입성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래.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우리 중부집단군이 모스크바를 정복하는 것이

    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크는 다시 한번 공세 명령을 내렸다.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해군함에 올랐다.

    “참모차장님, 이제 곧 배가 레닌그라드에 도착합니다.”

    “알겠네. 알려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함장은 정중하게 경례한 뒤 다시 선교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뒤 갑판 위로 나가 보니, 저 멀리 반쯤 좌초된 배와 완벽하게 파

    괴된 항구가 보였다. 저것이 아마 보고서로 읽었던 함포 사격의 흔적이겠지.

    배에서 내리자, 북부집단군의 표식이 달린 검은색 군용 차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즉시 북부집단군 사령부로 모시겠습니

    다.”

    곧 차량이 출발하고 레닌그라드 시내로 들어서자, 오랫동안 러시아의 수도였

    던 도시의 화려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레프 원수가 배급을 잘한 것인지, 아니면 난민들을 모두 치운 것인지는 몰라

    도 도시의 시민들도 활기찬 모습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군. 얼마 전까지 포위전을 겪었던

    도시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야.”

    “하하, 사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잔당들을 소탕한다고 총격이 벌어지고 난리

    도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거리의 곳곳에 흉한 피탄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잠시 뒤 차량은 반쯤 무너진 성 이사악 대성당을 지나, 건너편 블록에 위치한

    겨울 궁전 앞에 섰다.

    건물 위에 나부끼는 하켄크로이츠를 보아하니 이곳이 북부집단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프 원수께서 기다리십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알겠네.”

    레프 원수의 집무실은 네바강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3층에 위치해 있었다.

    창가에 서서 강을 바라보던 레프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자네 왔는가. 우선 자리에 앉게.”

    “예.”

    한 달 만에 다시 보는 레프 원수는 레닌그라드를 점령한 덕분인지 아주 신수

    가 훤해 보였다.

    “하하. 결국은 보크, 그놈에게 제4기갑집단을 빼앗겨 버렸구만.”

    “그래도 이렇게 레닌그라드의 정복자가 되겼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 자네 덕분이지. 그놈의 욕심대로 처음부터 제4기갑집단을 중부집

    단군에 넘겼으면 우리는 아직도 지리멸렬한 포위전이나 하고 있었을걸세.”

    한동안 커피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잡담을 주고받던 우리는 곧 본론으로 들

    어갔다.

    “···그래서, 전에 말했던 대로 해로를 통한 보급선을 새롭게 확충하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레닌그라드 부둣가에 보급창을 확보하고, 스몰렌스크로 이

    어지는 철로와 기관차도 확보해야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자네가 직접 둘러보고 필요한 것들을 보고하게.

    웬만한 것들은 다 자네에게 우선적으로 할당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것뿐인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프 원수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자네가 직접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뭔가 다른 말이 있을 것 같아서 말

    이네.”

    ‘후··· 역시 눈치채고 있었나.’

    나는 레프 원수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다음 작전에 대해 한 가지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습

    니다.”

    “우리의 작전에 대해서? 뭐, 좋네. 자네의 제안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 북부집단군의 다음 공세는 북쪽의 무르만스크를 함

    락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 남쪽의 일멘 호수부터 동쪽의 오네가 호수까지

    길게 뻗은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 오네가 호수에서 핀란드 군 점령지를 지나서 올라가면 북극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무르만스크가 나오는데 이곳이 북부집단군의 다음 공세 지점이었다.

    “맞네. 자네도 알겠지만, 저 무르만스크를 통해서 연합군 놈들의 랜드리스가

    소련에 전달되고 있지. 저곳을 공격해 랜드리스를 끊는 것이 우리의 다음 작

    전 목표라네.”

    나는 레프 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 작전, 취소할 수는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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