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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6화 (16/157)
  • 16화. 레닌그라드 전투 (2)

    “돌격! 부두를 탈환해라! 놈들이 상륙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우라아!!”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병사들이 부둣가로 달려나간다. 그들 중 대

    다수는 푸른색 갑판병 복장을 한 수병들이었다.

    “드미트리, 빨리 와라!”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전함 마라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던 드미트리도 끼어있었다.

    드미트리는 며칠 전에 받은 소총을 어색하게 쥐고서 선임들의 뒤를 쫓아갔다.

    부둣가 지역은 이미 나치 놈들의 함포 사격으로 초토화된 지 오래였다. 대부

    분의 건물들은 지붕이 날아간 채 주저앉았고, 거리에는 건물의 잔해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 너머, 바다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마치 항구를 포위하는 강철의 벽처럼, 단종진으로 길게 늘어선 크릭스마리네

    의 전함들이 모든 주포를 일제히 이쪽으로 향한 채 떠 있었다.

    티르피츠의 38cm부터, 라이프치히급과 엠덴급의 15cm, 부포인 10.5cm까지.

    지난 며칠동안 마라를 쉬지 않고 때리던 거포들을 다시 보자, 드미트리는 순

    간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대가리 숙여!”

    쾅!

    누군가 드미트리를 끌어내리기 무섭게, 지근탄의 폭발음과 동시에 무수히 많

    은 벽돌 파편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젠장, 멍청한 수병새끼들 같으니라고.”

    드미트리를 잡아당긴 이는 육군 복장을 한 소위였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드미트리와 함께 달려왔던 수병들도 모두 그에게 붙잡혀 있었다.

    “이봐, 거기 해군 놈들! 뒤지기 싫으면 잘 들어라. 부둣가로 나가거나 창문에

    대가리 내미는 건 절대 금지다! 괜히 부두 탈환할 생각 하지 말고 길목이나

    똑바로 지키라고. 알겠나?”

    “소위 동무, 하지만 저희가 받은 명령은 부두를 탈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가보시던가. 함포에 맞아 죽어도 난 모르는 일이야.”

    그 말에 수병들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부둣가를 바라보았다.

    그들과 같은 명령을 받고 부두로 달려나가던 수병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함포

    사격에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엄호 속에서, 나치 놈들의 바지선이 하나씩 부두에 정박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입을 허용하지 않던 레닌그라드 방어선에 구멍이 생기

    는 순간이었다.

    *****

    “사령관 동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북서전선군 사령관, 페도르 쿠즈네초프 상장의 질문에 레닌그라드 방위군 사

    령관, 고보로프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침음을 삼켰다.

    현재, 레닌그라드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네바강 전선이 무너지면서 동쪽의 라도가 호수

    연안을 모두 상실해버렸고, 북쪽으로는 핀란드 군이, 남쪽은 독일군이, 서쪽

    은 크릭스마리네와 상륙부대가 시가지를 압박하고 있었다.

    레닌그라드 점령.png

    ‘빌어먹을, 고작 2개 연대 때문에···.’

    문제는 레닌그라드 시가지로 독일군이 상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에 레닌그라드 시내에 상륙한 독일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보고에 따라 제각각이긴 하지만, 최대로 추산해봤자 고작 3~5000명 정도에 불

    과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래서 고보로프는 이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재편을 기다리며 대기

    하고 있던 수병들을 투입하면 충분히 몰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오판이었다.

    이제 막 배에서 내린 수병들은 육상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고, 거기에 크

    릭스마리네의 압도적인 화력 지원까지 더해져서 초기의 진압시도가 대패로 끝

    나버린 것이다.

    “제기랄, 그럼 북서전선군에서 병력을 차출하게!”

    결국 고보로프는 네바강 일대의 요새 지대를 지키던 병력을 시가지 방어로 돌

    렸고, 약 1개 군단이 투입되고 나서야 겨우 항만을 점거한 독일군을 멈춰 세

    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에는 병력이 빠져나간 네바강 전선에 문제가 터졌다.

    이곳의 요새 지대를 압박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56기갑군단은 소련군의 저

    항이 약해졌음을 눈치채고 곧바로 네바강을 도하 해버린 것이다.

    이에 쿠즈네초프는 예비대를 투입해서 어떻게든 독일군을 다시 몰아내려 했지

    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레프 원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북서

    전선군은 라도가 호수 연안에서 완전히 쫒겨나 버렸다.

    “이제 라도가 호수마저도 잃어버렸으니, 아군이 보급을 받을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 거나 다름없소이다.”

    “···그렇군.”

    현재, 레닌그라드의 식량 사정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레닌그라드 일대를 방어하는 레닌그라드 전선군과 북서전선군의 수는 약

    70만.

    거기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거의 1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포위망 안에 갇혀 있었다.

    이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물자만 해도 거의 수백 톤에 달하는데, 이미 보급이

    끊어진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곧 보급선이 부활할 것이라 믿고 필사적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쿠즈네초프의 질문에 고보로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명예로운 항전과 굴욕적인 항복.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군인으로서 올바른 길은 당연히 항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가?

    굶주림을 버티다 못해 인육을 먹는 시민들과 총알조차 부족해서 육탄전을 벌

    이는 병사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

    인가.

    고보로프는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다.

    “···독일 놈들에게 사절을 보내게. 현 시간부로 레닌그라드는 항복하겠다고

    말이야.”

    *****

    레닌그라드가 항복하던 바로 그때.

    나는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총통 본부, 볼프스산체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참모차장님, 북부집단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고맙네.”

    나는 장교가 가져다준 전보를 받아들었다.

    - 1941년 10월 25일 상황보고

    1. 레닌그라드의 소련군 지휘부는 항복했다.

    현재 레닌그라드 시가지에서 소수의 적들만이 항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2. 18군은 레닌그라드 시가지를 소탕한다.

    3. 16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남동부로 돌리고 티흐빈 일대를 방어한다.

    4. 제4기갑집단은 오네가호를 향해 전선을 확장한다.

    5. ······

    너무나도 엄청난 소식에 나는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겼군.”

    승리.

    그것도 엄청난 대승리였다.

    러시아의 옛 수도이자, 소련 최대의 항구도시인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무려

    70만에 달하는 포로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승리는 그런 군사적, 정치적 가치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내가 역사를 바꿨다.’

    이것은 내가 회귀한 이래로 처음으로 역사를 바꾼 순간이었다.

    ‘그것도 레닌그라드 함락이라는, 엄청나게 큰 변화를 말이지.’

    이제부터 역사는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굴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

    결과가 독일의 승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패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 독일군이 승기를 쥐고 있다.’

    현재 동부전선의 상황은 북부집단군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집단군도 그리 나

    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를 향해서, 남부집단군은 도네츠강을 향해서 천천히 나

    아가는 중이었다.

    이제 두 집단군의 진격을 적당한 곳에서 멈추게 하고 레닌그라드를 통해 개선

    된 보급으로 동계장비를 갖추게 하면, 올해 겨울에 있을 소련군의 반격을 버

    텨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진격을 멈추도록 총통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지만, 레닌그

    라드 함락이라는 대승을 거두었으니 이제 총통도 내 말을 쉽게 흘려듣지 않으

    리라.

    나는 기쁜 마음으로 승전보를 들고서 총통의 집무실로 향했다.

    *****

    그러나 총통의 집무실에서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닌그라드를, 레닌그라드를 벌써 점령했다고?”

    “그렇습니다, 각하. 현재 시가지에 남아있는 마지막 잔당들을 소탕하고 있으

    며, 약 70만 명의 포로를 잡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하하하!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역시 제4기갑집단을 레닌그라드 공세에

    투입한 내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

    “역시, 총통 각하의 전략적 안목은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하하!”

    내가 총통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그곳에서는 이미 한바탕 축하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카이텔이나 괴링 같은 자들이 아니라

    할더와 보크 원수였다.

    뒤늦게 도착한 나를 본 보크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파울루스 대장! 자네도 정말 수고했네. 자네가 작전을 입안하고, 북부집

    단군과 협의하지 않았더라면 레닌그라드를 이렇게 빨리 점령할 수 없었을 걸세.”

    “···아닙니다, 각하. 결국은 모두 레프 원수께서 하신 일 아니겠습니까.”

    보크 원수의 치하에, 나는 겸양을 하면서도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닌그라드 점령이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보크 원수가 동프로이센까지 날아

    올 만한 일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스몰렌스크에서 중부집단군을 지휘하고 있어야 할 보크가 이곳까지 왔다는 것

    은 그럴만한 용무가 있는 것일 터였다.

    내가 그들의 의중을 살피고 있을 때, 보크 원수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총통 각하, 이제 레닌그라드도 점령되었으니 제4기갑집단을 모스크바 공세에

    투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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