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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4화 (14/157)

14화. 태풍 작전 (2)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 위치한 소련 최고 지휘 사령부, 스타브카(Stavka).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모든 군사력을 좌지우지하는 이곳은 현재, 무거운

절망과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

“샤코슈니코프 동지, 방금 뭐라고 말했소?”

“···현재 독일군 기갑부대가 티흐빈 동쪽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지금, 라도가 호수를 통한 보급로마저도

끊겼다는 말이오?”

“죄송합니다, 서기장 동지. 일시적으로 보급이 중단···될 수밖에 것이라 사료

됩니다.”

“일시적··· 일시적이라···.”

스탈린은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깊숙이 빨고는 연기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샤포슈니코프 원수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하, 하지만 현재 블라소프 중장이 이끄는 제2충격군이 티흐빈을 탈환하기 위

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늦어도 올해 안으로는 보급선을 재건할 수 있을 겁

니다!”

“···반드시 그래야 할거요.”

스탈린은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사포슈니코프를 차갑게 노려본 뒤, 이번에는

주코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주코프 동지.”

“예! 서기장 동지.”

“모스크바 방어 계획은 어떻게 되었소? 정말 저 빌어먹을 나치 놈들을 막을

수 있는 거요?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얼마 전, 모스크바 방위사령관으로 영전되어 스타브카로 돌아온 게오르기 주

코프 대장은 스탈린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하게 말해서, 현재 모스크바 방어선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군의 병력은 대다수가 급하게 징집된 미 숙련병으로 채워져 있었고 이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 장교와 지휘관도 대숙청에 의해 걸러진 찌꺼기들뿐.

그나마 유리한 점이라곤 아군이 방어자의 입장이라는 것인데, 모스크바 인근

에는 방어에 이용할만한 지형적 장애물이 거의 없었고 인민들을 동원해서 만

든 3중 방어선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코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가능합니다.”

“그게 정말이오?”

“예, 만약 예비대만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아군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예비대라··· 그렇다는 것은, 더 많은 병력을 징집해야 한단 말이오?”

“아닙니다, 서기장 동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배치되어 있는 극동 부대입니다. 다년간 관동군을 상대해본 저들을 투입한다

면, 모스크바를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독일군은 자신들에게는 마치 공세 종말점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놀라

운 진격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도 싸우기 위해서는 먹고

자야 하고, 총에 맞으면 죽는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저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공세 종말점에 도달한다는 거지.’

만약 저들이 공세 종말점에 도달할 때까지 모스크바가 버틸 수만 있다면, 그

리고 바로 그 순간 정예병들을 투입해서 반격할 수만 있다면 모스크바를 지켜

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주코프의 말에 흥미가 동한 듯, 잠시 고민하던 스탈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극동을 포기할 수는 없소. 최악의 경우에

는 우랄 산맥 너머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는데, 극동이 무너진다면 어디로

갈 것이오?”

사실 스탈린은 모스크바가 함락당할 경우까지 고려해서, 수도를 첼랴빈스크로

이전하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소련에게 있어서 극동은 더 이상 변방지대가 아닌 핵심

적인 이익 지대가 될 터였다.

하지만 주코프의 생각은 달랐다.

“서기장 동지, 제 말은 극동을 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극동의 정예병들을

데려오는 대신,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 사단들을 극동으로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신병 부대와 극동 부대를 맞바꾸자는 거요? 흐음···.”

그때 스탈린의 머릿속에 얼마 전, 도쿄에서 날아온 첩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 이제 곧 남방작전에 나설 거라고 했던가···.’

만약 그렇다면 놈들에게는 극동을 칠 여력이 없을 터. 한번 도박에 나서봐도

괜찮다는 계산이 서기 시작했다.

“좋소, 주코프 동지. 그럼 극동부대가 도착할 때까지는 모스크바를 사수할 수

있겠소?”

“그건 쉬운 일입니다, 동지.”

그런 스탈린의 물음에 주코프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제 곧 라스푸티차가 시작될 테니까 말입니다.”

*****

“각하, 제2기갑집단으로부터 보고입니다. 현재 2군과 협조해서 브리얀스크 일

대의 소련군을 포위 중이라고 합니다. 포위망 안에는 약 30만가량이 포위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하, 역시 구데리안 장군이군. 그럼 좌익은 어떻게 되었나?”

“제3기갑집단과 4군도 브야즈마 일대에서 포위망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그 규

모는 제2기갑집단과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좋군. 아주 좋아.”

그 무렵, 보크 원수의 중부집단군은 마치 개전 초기처럼 영광스러운 승리의

순간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있었다.

비록 모스크바 방어선의 소련군들은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 싸웠지만

용맹함만으로는 기갑부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도, 견고한 포위망을 뚫을 수

도 없었다.

“만약 제4기갑집단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 이렇게 간단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을.”

솔직히 보크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원래라면 총통도 분명 모스크바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을 터였다.

하지만 파울루스, 그놈 때문에 당연히 중부집단군에게 배속되었어야 할 제4기

갑집단을 북부집단군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바르바로사 작전의 전개를 예측해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

이지만··· 안타깝군. 승리는 안전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데서 만들어지는

법이건만.’

지난날, 저 대단한 프랑스를 쓰러트렸던 것도 결국은 기갑부대를 아르덴 숲으

로 통과시키는 도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소련을 쓰러트리는 것은 고작 보급로 따위를 확보하기 위

한 레닌그라드 전투 따위가 아니라 모스크바를 향한 우리의 공세가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보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안일하게 명령을 내렸다.

“양쪽 모두 진격을 멈추고 포위망에 갇힌 소련군을 먼저 섬멸하도록 하게. 아

직 겨울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으니까 말일세.”

그리고 중부집단군이 포위망을 섬멸하는 동안,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여기는 로트2, 도움이 필요하다! 전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프란츠의 눈앞에 있는 302호 차량의 전차장이었다.

안타깝게도 302호 차량은 한 번의 잘못된 실수 때문에 진흙탕에 처박힌 채 집

중 사격을 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여기는 로트3. 로트2, 궤도가 헛돌고 있다. 기동을 중단하라. 구원하러 가겠

다.”

“제기랄, 그러니까 빨리 오라고!”

외부 무전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 프란츠는 하버 상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상사님, 저희가 구원하러 가는 겁니까?”

“그래, 여기는 302호랑 우리밖에 없지 않냐. 한스! 조심해서 접근해라. 우리

까지 진흙탕에 빠지면 진짜 끝장이다.”

“알겠습니다.”

한스는 좁은 바이저 너머를 노려보면서 조심스럽게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사방이 진흙밭인 데다가 어디가 무르고 어디가 단단한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감과 경험에 의존해서 나아갈 뿐.

바로 그때였다.

“전차 정지! 전방에 적 전차! 프란츠!”

“예!”

하버 상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프란츠는 이미 T-34를 조준하고 있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놈들···.’

이름이 T-34라고 했던가. 저놈들의 신형 전차는 아군의 3호 전차가 빠져서 허

우적대는 진흙탕을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서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기동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놈들은 움직일 수 있었다.

“전방의 기관총 마운트를 노려라. 아니면 포탑링이나. 차체를 쏘면 튕겨 나갈

거다.”

“해보겠습니다.”

프란츠는 천천히 조준점을 맞췄다.

제법 근거리라 대충 쏴도 맞을만한 거리였지만, 약점사격을 하려면 정확히 조

준해야 했다.

“쏴!”

쾅!

굉음과 함께 차체가 흔들거린다.

포연이 가시고 보니, T-34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잘 했다, 프란츠.”

“놈들을 추격합니까?”

“아니, 놈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빨리 구난작업이나 끝내자고.”

“예.”

프란츠의 303호 차량은 다시 꾸물거리며 진흙탕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 멀

리서 302호 승무원들은 벌써 견인 와이어까지 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흙탕 같으니라고···.”

2주 전, 다시 진격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말 좋았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T-34와 KV-1이 까다롭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래왔

던 것처럼 모든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적들을 포위망에 가둔 뒤로는 오

히려 여유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흙먼지를 씻어내리는 기분 좋은 비라고 생각했건만, 비가 그치자 믿

을 수 없는 엄청난 진흙탕이 나타나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결국 모든 작전이 진창 속에 빠져서 좌초되어 버렸다.

“좋아, 천천히! 앞으로!”

프란츠의 303호 전차는 302호를 견인한 채 아주 천천히 진흙탕을 헤치고 나아

가기 시작했다.

*****

1941년 10월 15일.

중부집단군의 진격이 진흙탕에 빠져 멈춰버렸을 바로 그때, 레닌그라드는 절

망 속에 빠져있었다.

탕! 탕!

광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두 사람의 시민이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 이 두 사람은 어제 밤, 인육을 먹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먹는 것

이든, 아니면 시체를 먹는 것이든. 현 시간부로 어떠한 종류의 식인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

푸른 군모를 쓴 NKVD 요원이 권총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굶주림에 지친 시민들은 그의 눈을 피해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젠장···.’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미트리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욕지거리를 삼켰다.

물론 식인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되겠지만, 병사인 자신조차도 하루에 한 끼

를 간신히 배급받는 마당에 일반 시민들의 사정은 오죽하겠는가?

레닌그라드의 방어선은 아직 굳건했지만, 레닌그라드는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

져 내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배다! 배가 들어오고 있어!”

“구호선이다! 구호선이 온다!”

누군가의 외침에 드미트리는 고개를 들었다. 배라고? 설마 독일놈들을 피해서

온 보급선인가?

달려가는 시민들을 쫓아서 부둣가로 향해보니 분명 바다 저 건너편에서 하얀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배다! 보급선이다!”

그런데 한두 척이 아니었다. 드미트리가 눈을 작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니, 무

려 다섯 척도 훌쩍 넘는 거대한 대선단이었다.

그제서야 드미트리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배의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저 붉은 깃발은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국기가

아니었다.

저 깃발은 바로···.

“···크릭스 마리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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