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화 (4/157)

4화. 프란츠 할더 (3)

“그건 바로 겨울입니다.”

“아니, 그럴 일은 없네. 그리고 만약 겨울이 되더라도 우리는 계속 싸울 수

있어!”

내 말에 할더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이제 분노를 넘어서 거의 증오에 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겨울이 온다고 싸울 수 없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겁니다.

비와 눈이 만들어낸 진흙탕 때문에 아군의 기동능력은 제한될 것이고, 일선에

서는 부동액이나 방한복과 같은 수많은 동계 물자들을 요청할 겁니다.

그로 인해 아군의 보급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추위로 인한 비전투 손

실까지···.”

“그만.”

그때, 중부 집단군 사령관 페도어 폰 보크 원수가 내 말을 잘랐다.

“그만하면 됐네. 바르바로사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설명된 것 같

군.”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자네에게 묻고 싶네. 그렇다면 자네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

가? 바르바로사 작전을 포기하자는 건가? 아니면 다른 방책이 있다는 것인가?”

보크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국과의 전쟁을 먼저 끝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얼마 전 바다사자 작전이 실패로 끝난 마당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면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을 수정하자는 쪽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꾸자고 주장해야 할까.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에는 아군이 예상 이상의 대승을 거뒀었지. 그러니 적

어도 처음에는 원래의 역사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역시 중간 이후부

터가 문제인데···.’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독일군의 실책이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은 많았다.

가령 예를 들어서,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구데리안의 2기갑군을 키에프로 돌린

것이나, 레닌그라드로 향하던 북부집단군의 진격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지연

된 것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아직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하지도 않은 지금 그런 문제들을 지적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바르바로사 작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할더 상급대

장이 말했던 ‘개전 초기에 소련군의 주력을 포위 섬멸한다’는 발상에 대해서

는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럼 문제는 그 이후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설령 초기의 섬멸이 성공한다고 해도 소련과의 전쟁을 단기 결

전으로 끝낼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전쟁은 결국 장기전, 소모전의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미

리 대비해야 합니다.”

“음···.”

장기전, 소모전이라는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지난 대전에서 겪었던 납득할 수 없는 패배 이후, 독일군에게 있어서 소모전

은 일종의 트라우마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기갑부대와 전격전을 개발한 것이 아닌가. 그런

데 이번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남부 집단군 사령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가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중장. 귀관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지난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군을

상대해본 나로서는 그다지 동의할 수가 없군.

러시아 놈들은 머릿수만 많지,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을뿐더러 조

금만 불리해지면 항복하기 일쑤인 오합지졸들이네.

우리가 초반에 강하게 몰아붙이면 저절로 무너져 내려서 백기를 들고 항복할

걸세.”

그의 말에 다른 장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룬트슈테트 장군의 말에 동의하네. 결국 러시아는 땅덩어리만 넓은 동

토의 후진국에 불과하지 않나.

나폴레옹 시대에는 러시아 놈들의 청야 전술이 통했을지 몰라도, 우리의 기갑

부대를 막지는 못할걸세.”

‘젠장··· 다들 소련이라는 나라를 너무 얕보고 있군.’

원수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냉담했다.

그러나 사실 저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난 대전에서 독일을 패배시킨 것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었지

러시아 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독일군은 그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박살내버리고, 영국도 보불

해협 너머로 쫓아낸 무적의 군대다.

그렇다면 1차대전 때 졸전을 치르다가 굴욕적인 강화 협정을 맺고 퇴장했던

러시아 따위는 훨씬 쉽게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아는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지

난 대전 당시의 러시아에 대한 기억과 프랑스를 이겼다는 자신감에 취한 저들

에게는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리라.

나는 그들의 말에 애써 반박하는 대신, 회의실에 앉은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

았다.

앞에 선 할더부터 룬트슈테트, 보크, 레프 원수까지. 자신만만한 그들의 표정

을 보자, 여기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저들을 설득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직

감했다.

‘빌어먹을···.’

좋다.

정 그렇다면,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고, 소련이라는 국가와 직접 부딪히게 된다면 저들

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도 부서지리라.

나는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며 선언했다.

“각하! 만약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후 12주 안에 우리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하리코프 중 단 하나라도 점령한다면, 제가 사임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때까지도 중간 목표를 점령하지조차 못한 상태라면, 그때는

제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끝났다.

더 이상의 반대 의견은 없었고, 바르바로사 작전은 원래의 계획대로 결정되었다.

*****

“후···.”

회의가 끝난 뒤, 밖으로 나온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남아서 회의 자료들을 정리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조차 아니

었다.

‘만약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후 12주 안에 우리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모스크

바, 하리코프 중 단 하나라도 점령한다면, 제가 사임하겠습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말해버렸을까.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그런 말을 던져버리긴 했지만, 머리가 식은 뒤 다시 돌

이켜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도를 지나친 말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불명예 전역이라도 당하는 건가?

내 조국을, 내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건만, 하극상에 의한 불명

예 전역이라니. 허탈함과 절망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보게, 파울루스 중장.”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할더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할더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며칠 전, 바르바로사 작전에 대해서 얘기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건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고작 이것이었다.

“저는 그저 독일의 승리를 위해서 솔직하게 직언한 것뿐입니다.”

“···그런가.”

할더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뭔가 화난 표정 같기도 하고, 답답한 표정 같기도 했다.

“어쩌면, 자네 눈에는 내가 무능하고 무모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네. 하지

만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

“알고 있습니다. 총통 때문이지 않습니까?”

내 대답에 할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자네는 다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던 것인가?”

“그렇습니다.”

“···어째서인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저는 그것이 독일의 승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입니다.

죄송하지만, 각하의 바르바로사 작전은 결국 실패할 겁니다.”

할더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마주 보았다.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내, 할더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총통 각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네. 적어도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후 12주까

지는 자네를 해임하지 말라고 하시더군.”

“···그렇습니까.”

“그때까지는 열심히 일해주게나.”

그렇게 말하며, 할더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이제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와의 관계를 두 번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리라.

나는 할더에게 경례한 뒤, 조용히 그의 방을 나섰다.

*****

“이보게 카이텔, 파울루스 장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참모차장 파울루스 중장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친구 말이야.”

폭풍 같았던 회의가 끝나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히틀러는 할더와 육군

수뇌부에 맞서던 파울루스에 대해 떠올렸다.

정말 그 친구의 말대로 될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걸면

서까지 호언장담하던 그의 모습은 히틀러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참모로서는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라고 들었습

니다. 그리고 아마 예전에 라이헤나우 장군의 밑에서 참모장으로 복무했을 겁

니다.”

“그래? 라이헤나우 원수의 밑에서 같이 일했단 말이지···.”

육군의 대표적인 친 나치 인사인 라이헤나우 원수와도 친분이 있고, 오늘 보

아하니 할더를 비롯한 육군 수뇌부와도 완전히 척을 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참모차장이라는 요직에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능력도 갖추고 있을

터.

“혹시 그 친구도 우리의 이념에 동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래, 한번 조사해보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정말로 파울루스가 나치에 호감을 갖고 있는 거라면, 육군을 장악할 중요한

키 맨(Key man)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 빌어먹을 융커 놈들을 대신할 인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이야.”

*****

한편, 그 시각 발칸 반도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1940년 10월 28일, 무솔리니의 충동으로 갑작스레 시작된 이탈리아의 그리스

침공은 준비 부족과 이탈리아군의 졸전으로 인해 곳곳에서 격퇴당했고, 11월

14일에는 그리스군의 반격에 의해 밀려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이탈리아의 삽질은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리 별일도 아니었다.

비록 동맹국이긴 했지만, 상호협의도 없이 무솔리니가 멋대로 벌인 일이기에

딱히 도와줘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이 상상 이상으로 무능했던데다가 41년 3월부터 영국이 남

몰래 그리스를 돕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41년 5월에 시작될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서라도, 발칸 반도에서 영국의 영

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후방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할더에 의해 한동안 업무에서 배제되어 있던 파울루스에게

도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발칸 반도 작전 계획은 파울루스 중장에게 맡겨 보는 것이 어떤가?”

히틀러가 발칸 반도 작전의 입안자로 파울루스 중장을 지목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