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화 (3/157)
  • 3화. 프란츠 할더 (2)

    “자네가 제기한 문제점들은 타당하네.

    하지만 작전을 변경할 수는 없어. 우리는 무조건 내년 안에 소련을 무너뜨려

    야 하네.

    그러니, 정해진 일정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한번 고민해보게.”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답도 없이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할더는 다시 한번 엄포를 놓았다.

    “이건 참모총장으로서 내리는 지시사항이야. 알겠나?”

    “···알겠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곤 굳은 표정으로 경례한 뒤, 힘없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후···.”

    자리로 돌아온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전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무조건 내년 안에 소련을 무너뜨려야 한

    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지시였다.

    만약 할더가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서 저런 지시를 내린 거라면, 차라리 이

    해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할더는 내가 제시한 문제점들이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작전은 결코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작전을 수정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이유가 도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참모차장님,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내가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한 탓일까.

    정보담당 작전차장 쿠르트 폰 티펠스키르히 소장이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좋지. 잘 마시겠네.”

    내가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자, 그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참모총장님과 대화가 잘 안 되셨습니까?”

    “아니, 별일 아닐세. 약간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이야.”

    “혹시 바르바로사 작전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까?”

    그 말에 깜짝 놀란 나는 티펠스키르히 소장 쪽을 돌아보았다.

    내 표정을 본 그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모총장님께서는 아마 총통 각

    하 때문에 그러시는 것일 겁니다.”

    “총통 각하 때문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말해보게.”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총통 각하와 참모총장님 사이에 의견 충돌

    이 조금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후로 참모총장님께서 바르바로사 작전에 대

    해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는 반려하시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나.”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참모총장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설마 러시아 놈들에게 질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티펠스키르히 소장은 그렇게 태평하게 말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러나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총통과 참모총장의 의견 충돌이라···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나.’

    그렇게 생각하니 할더가 작전을 변경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도, 무조건 내년

    안에 소련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던 것도 모두 이해가 됐다.

    이 무렵, 히틀러와 육군의 관계는 복잡미묘하기 그지없었다.

    히틀러는 국방군 총사령관으로서 표면상으로는 모든 것에 대해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작전의 입안과 실행에 대한 권한은 아직 육군 참모총장이 가지

    고 있었다.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에 개입하려고 할더의 작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

    했겠지.

    그리고 할더는 작전권을 사수하기 위해서 작전 계획에 문제가 발생해도 은폐

    하려고 한 것이고.’

    할더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군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히틀러가 사사건건 작전에 관여하려고

    하니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소련은 어차피 어렵지 않은 적이니 작전에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결국은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문제는 할더의 생각과는 다르게 소련은 결코 쉬운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마지막 남은 지휘권마

    저 총통에게 모두 빼앗겨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총통으로부터 작전권을 사수하려는 할더를 도울 것인가?

    아니면, 바르바로사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할더의 반대편에 설 것인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

    며칠 뒤, 나는 총통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할더와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파울루스 장군, 내가 말했던 자료들은 모두 다 챙겼겠지?”

    “물론입니다, 각하.”

    “그래, 자네만 믿고 가겠네.”

    그날의 면담 이후로도 할더는 나에게 작전을 일임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은 그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

    니까.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육군 총사령관 브라우히치 원수, 북부 집단군 사령관 레프 원수, 중부 집단군

    사령관 보크 원수 그리고 남부 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

    거기에 나와 할더까지 회의에 참석할 인원들이 전부 도착한 다음에야 이 회의

    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총통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남자가 방으로 들어오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례했다.

    아돌프 히틀러.

    제3제국의 최고 지도자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작전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브리핑을 맡은 할더는 준비한 자료를 토바탕으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설명해 나갔고, 히틀러는 이따금씩 질문을 하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본 결과, 러시아 전역을 점령하는데 최소 9주에서

    늦어도 17주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내년

    안에는 소련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가능하겠나? 우리의 등 뒤에서는 영국과 미국 놈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네. 이 전쟁이 장기화되면 곤란해.”

    “물론입니다, 각하. 소련은 전쟁이 시작된 뒤 최소 2달 안에 붕괴될 것입니다.”

    “으음···.”

    히틀러는 끊임없이 작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룬트슈테트를 필두로 한

    군 수뇌부들이 할더를 지지하고 나서자 분위기는 점점 더 할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결국 원래의 역사대로 바르바로사 작전이 반복되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총통 각하, 제가 한마디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작전 담당 참모 과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중장입니다.”

    “좋아, 파울루스 중장. 한번 말해보게.”

    “발언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참모부와는 무관한 제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만, 바르바로사 작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파울루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그 중,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역시 할더였다.

    며칠 전 면담 이후로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던 내가 갑자기 이런 발언을

    하니 당혹스러울 테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서 히틀러에게 직접 말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디 한번 자세하게 설명해보게!”

    반대로 히틀러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원군의 등장에 잔뜩 흥분해서 나를 불러

    들였다.

    나는 원수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모두의 앞에 섰다.

    “우선, 제가 말씀드릴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수송과 보급,

    두 번째는 소련군의 병력 동원능력, 세 번째는 러시아의 기후와 일정입니다.”

    이번에는 할더에게 건의할 때와는 달랐다.

    이곳에 있는 이들을, 아니 히틀러를 설득하려면 논리적인 주장보다는 잠재적

    인 위험을 부풀리는 것이 더 유효했으니까.

    “우선, 수송과 보급의 문제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시작점에서 중간 목적지인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거의

    1000km에 달합니다. 게다가 아군은 주공을 세 방향으로 나눠서 동시에 공세를

    진행하기 때문에 보급로의 길이도 3배로 길어집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보급 부족을 초래하고 장기적으로는 아군의 진격을 멈추게

    만들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리터 폰 레프 원수가 물었다.

    “지난 대전 때처럼 철도를 이용하면 충분하지 않나?”

    “그건 조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독일과 소련은 철도의 규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경까지는 어떻게든 보급이 되겠지만, 아군이 한창 진격

    하고 있을 때는 철도를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히. 진격을 거듭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겠군.”

    “하지만 현지 수급과 노획을 병행하면···”

    처음에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원수들도 이제는 내 주장을 진지하게 따져보

    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한 할더가 곧장 내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핵심은 개전 초기에 소련군을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에 있네.

    만약 놈들이 동쪽으로 후퇴하기 전에 주력부대를 섬멸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의 큰 전투는 없을 것이고 보급 소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아닙니다, 각하. 만약 각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놈들에

    게는 병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동부전선 군사정보과가 수집한 자료들을 모두 뒤

    져봤지만 그런 병력에 대한 내용은 본 적이 없네만.”

    “바로 극동에 배치되어있는 55개 보병 사단과 9개 기갑 여단 말입니다.”

    내 말에 회의실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심지어 내가 할더와 논쟁을 벌이는 동안 흐뭇하게 웃고 있던 히틀러마저도 경

    악을 금치 못했다.

    “···자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각하. 죄송하지만 일본은 소련과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것입

    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네. 다 쓰러져가는 소련을 상대로

    참전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텐데?”

    이번 질문은 히틀러의 것이었다.

    그로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총통 각하, 일본은 현재 남방정책으로 동남아시아 일대를 정복하면서 연합국

    들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곧 일본을 상대로 석유를 포함한 전략물자 수출을 금지할 것이

    고, 미국으로부터 석유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소련과

    전쟁을 할 여력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르바로사 작전에 대해서 일본과 미리 협의되어 있는 것

    도 아니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독일은 기밀 유지라는 이유로 동맹국인 일본에게도 바르바로사 작전

    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고 전쟁을 개시해버렸다.

    게다가 이 무렵 일본은 독일을 따라서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소련과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만약 참모총장님의 계획대로 소련의 유럽 영토가 정복당하고 있는 상

    황이라면, 소련 입장에서는 극동 지방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극동 부대를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이제 회의실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모두가, 심지어 할더조차도 소련의 극동 부대 55개 사단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 쐐기를 박아야 할 때였다.

    “그럼 지금까지의 얘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바르바로사 작전을 검토해보겠

    습니다.

    만약 참모총장님의 주장대로 개전 초기에 소련군을 대부분 섬멸한다고 해도,

    적들은 아직 55개 사단을 더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추가로 징집될

    병력까지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지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보급로는 길어지고, 진격은 멈추게 된다면 처음에 말씀하셨던

    늦어도 17주 안에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

    희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그게 무엇인가?”

    “그건 바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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