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화 (1/157)
  • 1화. 『Paulus und Stalingrad』

    타각- 타각- 타각-

    깊은 밤, 어두운 방 안에 타자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타각- 타각- 타각-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는 투박한 글씨들이 새겨져 갔다.

    “후우··· 빌어먹을.”

    쏟아지는 글자들을 노려보면서 나는 쉴새 없이 손을 놀렸다.

    타각- 타각- 타각- 띠링.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페이지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에 잠시 손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니, 바늘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

    었다.

    ‘쉬고 싶다···.’

    사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미 출판 당국에서도 내 책은 출간하기 어려울 것이라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가.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젠장.”

    타각- 타각- 타각-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원고는 나의 무고함을 증명할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름은『Paulus und Stalingrad』.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내가 6군을 지휘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회고록

    이었다.

    *****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오판 때문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 때문에 우리 독일이 2차대전에

    서 패배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날의 패배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만약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충실히 복종한 것뿐

    이리라.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시가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적에게 포위당해 고립되었을 때도,

    보급이 끊겨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 때도.

    온갖 불합리한 명령과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은 모든 것을 견뎠고, 맞

    서 싸웠다.

    그리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분투와 노력은 끝내 보답받지 못했다.

    괴링이 호언장담한 공중 보급은 대부분 격추당해 도착하지 못했고, 총통이 약

    속했던 구원 작전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 대신, 포위망 속에 갇힌 채 패배를 눈앞에 둔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화려

    하게 빛나는 원수 계급장이었다.

    ‘프로이센의 원수는 패배하지도 항복하지도 않는다.’

    이 진급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건 바로 불명예스러운 항복 대신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형선고였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싸워왔단 말인가.

    고작 이렇게 허무하게 버림받기 위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믿고 따라온 내 부하들을 이런 곳에서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패전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씌워졌다.

    무능력한 패배자, 비겁하게 항복한 장군!

    파울루스는 소련에 협조한 변절자다!

    함께 싸웠던 동료 지휘관들도, 살아 돌아온 병사들도 모두 나를 비난하고 원

    망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참전 용사들을 만나 증언을 모으고 군사 자료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 책,

    『Paulus und Stalingrad』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그날의 패배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우리들의 분투와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노라고.

    나에게 있어서 이 원고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내 마지막 변론이었다.

    *****

    타각- 타각- 타각-

    어두운 방 안, 타자기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진다.

    ‘조금만 더···.’

    머리가 지끈거린다.

    너무 피곤하고 괴로워서 더 이상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허무하게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반드시 완성해야만 했다.

    타각- 타각.

    그러다 어느 순간, 타자기 소리가 멈췄다.

    내 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원고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앞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견딜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와

    의식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쉬고 다시 시작하자.

    잠깐만, 아주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장님, ···차장님?”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그만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지?

    나를 깨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참모차장님? 잠깐 일어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참모차장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일어나셨습니까?”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정중한 자세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자의 복장이 이상했다.

    청회색의 튜닉 자켓에 승마바지, 그리고 목과 어깨의 화려한 견장까지. 그것

    은 국방군(Wehrmacht) 시절의 M40 군복이었다.

    ‘요즘 시대에 저런 복장이라니, 슈타지가 두렵지도 않은 건가? 아니, 그보다

    저 사람은 누구길래 우리 집에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동부전선 작전 계획의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한번 검토해주십시오.”

    “동부전선 작전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제서야 겨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타자기와 집필 자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벽

    에는 하켄크로이츠와 총통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리고 저쪽에서는 참모장교

    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여기는 내 방이 아니었다.

    이곳은 과거, 내가 총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시절의 작전과 사무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총참모본부는 지난 전쟁 때 불타서 사라졌을 텐데.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온통 혼란스러운 와중에, 머릿속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과거로 와버린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시간여행이라니, 그런 건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자네.”

    “마르크스입니다, 차장님.”

    “그래, 마르크스 대령. 오늘이 며칠인가?”

    “금일은 1940년 12월 7일입니다.”

    ‘···scheißen(젠장).’

    나는 1940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 독소전쟁이 일어나기 전, 바로 그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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