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55화 (156/158)
  • 6. 예정된 우연 …… (16)

    # 152

    "이…… 이…… 이 바보자식아! 대체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세실이 소리질렀다.

    "난…… 나는……,"

    린은 넋나간 얼굴로 말했다.

    "아하하하! 정말 고맙다, 린!"

    세다라가 외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세이어는 이를 악물었다.

    "죽어라, 곱게!"

    세다라가 광소하고 있었다. 세이어는 찢긴 어깨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뒤

    로 물러났다. 절대절명. 그러나 세이어의 눈빛만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세이어는 떨어져 나간 갑옷을 슬쩍 바라보았다. 세다라가 웃었다.

    "그 같잖은 갑옷이 한순간이나마 네 목숨을 연장시켜줄 수 있을까?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결코!"

    세이어는 풀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세다라의 입가에 패인 골이 말려올라

    갔다. 그가 조소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게 도망질이냐?"

    세다라가 거리를 좁혔다. 세이어는 물러났다.

    "……."

    알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마나도 쓸 수 없는 몸에, 이니

    아마저 잃었다. 지금으로선 세다라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세이어는 입가를 끌어당겨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차라리 처절한 것이

    었다.

    "포기하면…… 끝나는 것이니까요."

    "포기하지 않아도, 끝나."

    세다라는 여유있게 웃었다.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오며 그가 말했다.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 아마 그 때는 네이시란 엘프가 너를 도왔을 거야

    . 그런 걸 기대하고 있나? 아직도 남의 도움을 바라고 있어?"

    "……."

    세이어는 주위를 살폈다. 아직 거리는 충분했다. 피할 여력이 있었다. …

    …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쩌면 세다라는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세이어가 궁지에 몰린 상황을. 갑

    자기 근접전으로 전투 방식을 바꾼 것이 그 증거다. 그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무리야. 지금 널 도와주러 올 녀석은 아무도 없어. 모두들 자기 위치 지

    키기에도 바쁜 거야…… 여긴 너와 나만의 무대야. 넌 이제 더 이상 도망

    치지 못해. 도움도 기대할 수 없으니, 네 자신의 힘만으로 싸워야 하겠지.

    "

    키득, 그가 다시 웃었다.

    "그러나, 네 버러지같은 힘으로 날 상대할 순 없지. 그래, 넌 여기서 죽

    는 거야!"

    그가 달려들었다― 순간 세이어는 몸을 굽혀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세다라가 손을 뻗었다.

    "매직 미사일!"

    동시에 출현한 18개의 구체. 지금의 세이어에게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큭!"

    세이어는 급히 갑옷을 벗어던졌다. 조각조각 분리된 갑옷을 날아오는 매

    직 미사일을 향해 집어던지고, 그 자신은 재빨리 뒤로 굴러 물러섰다.

    캉! 카카캉! 카캉! 카카캉!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허공에서 브레스트 메일이 우그러졌다. 세이어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이미 그의 몰골은 성기사라기

    엔 상당히 추레해져 있었다. 상반신을 가린 것은 오직 찢어진 셔츠 뿐. 하

    반신부터는 갑옷이 있었지만 되려 그 덕에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날아든 것은 세다라의 박수소리였다.

    "하하하! 멋진데? 다음에는 속옷이라도 벗어던질 거냐?"

    그렇게 말한 그가 다시 손을 내뻗었다.

    "이것도 한 번 막아봐!"

    동시에 세이어를 중심점으로 하여 바닥에 직경 10예즈 가량의 연녹색 원

    이 그려졌다. 움찔한 세이어가 고개를 쳐들었고, 그는 어느새 허공에도 바

    닥의 것과 같은 원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

    안에 그려지는 것은…… 뒤집혀진 오각 별!

    "연녹색의 입체 오망성…… 라이트닝 필드 Lightning field!"

    "빙고."

    세다라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순간 바닥의 오망성과 허공의 오망성

    이 서로 연결되었다― 빛나는 연녹색의 선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도형

    을 이루었고, 그 모양은 하나의 거대한 원통과도 같았다. 그리고, 세이어

    는 바로 그 원통의 정점에 있었다!

    빠직. 빠직. 빠자자자자자작!

    "크헉!"

    원통 내부에 눈부신 연녹색 스파크가 일었다. 강렬한 전류의 충격. 내부

    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전기였다. 지금의 세이어라면

    쇼크로 단번에 죽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이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크웃…… 우우우…… 우아아앗!"

    이를 악문 그가 온 힘을 다해 원통의 벽에 부딪혔고, 마나로 이루어진 벽

    에 약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빠작. 빠자자작. 계속되는 스파크 속에서도

    그는 계속해 벽에 몸을 날리다시피 부딪혀댔고, 이윽고는 라이트닝 필드

    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다라가 비웃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마나를 잃었다고는 해도 역시 일반인과는 수준이

    틀리다는 건가? 하지만 그러면 뭐 하지? 봐,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잖아?"

    "……."

    세이어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것만도 힘에 부쳤다

    . 그 모습을 확인한 세다라가 히죽 웃었다.

    "뭐냐…… 벌써 한계냐? 그 이름도 유명한 세이어 님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무하잖아?"

    "……."

    "쿡……, 뭐, 좋겠지."

    어느새 세다라의 손에 마나로 형상화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최후 정도는 화려하게 장식해 주마!"

    세다라가 달려들었다. "큭." 세이어는 이를 악물었다.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피해야 한다. 피해야 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세다라의 단검이 세이어를 베고 지나갔다…… 세이어는 반응할 수 없었다

    . 그리고 그가 지나쳐갔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되돌아와 다시 세이어를 베

    고 스쳐지나갔다.

    "크윽."

    치명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얕은 상처도 아니었다. 베이고, 베이고, 또

    베이고…… 어느 순간 세이어의 다리가 휘청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아래

    로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턱.

    "어어. 벌써 쓰러지면 쓰나?"

    무너져내리는 세이어의 멱살을 세다라가 붙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에 일

    그러진 미소가 맺혀 있었다. "최후는 화려하게…… 좋잖아?"

    퍽.

    세이어의 가슴에 단검이 꽂혔다. "크훅!" 세이어의 입에서 피 섞인 기침

    이 터져나왔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세다라는 비

    릿한 미소를 지었다. "죽어라…… 얼간아." 동시에 세이어는 눈앞을 뒤덮

    는 황적색의 빛을 보았다.

    콰앙!

    "파이어 볼……."

    가슴 부분에서부터 폭발해 나가며 공중으로 튕겨오르는 세이어의 모습을

    보며 세다라가 미소지었다. 그는 마나 단검을 세이어의 몸 안에 꽂아넣은

    채 그 안으로 파이어 볼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털썩. 영원인 것 같은 순간이 지나고 세이어가 지면 위에 널부러졌다. 그

    리고 그 뿐.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세다라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

    다.

    "멋진 최후구만."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는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한 존재를 감지했다. 세

    다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뭐냐?" 그것은 울부짖으며 달

    려오는 한 명의 소녀였다.

    "세이어 씨…… 세이어 씨!"

    세실이었다. 그녀는 세다라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세이어에게로 곧장 달

    려갔고, 그에 세다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그거냐?"

    "세이어…… 님!"

    그리고 약간 뒤늦게 린도 달려왔다. 세이어를 붙들고 흔드는 두 소녀. 하

    지만 세이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아무리 세이어를 흔들어도, 그

    앞에서 소리쳐도, 일그러진 얼굴로 울부짖어도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

    세다라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이봐, 이봐. 그 놈은 죽었어. 그래봐야 소용 없다구."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두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세실의 눈동자는

    증오와 분노로, 그리고 린의 눈동자는 죄책과 슬픔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세실이 외쳤다.

    "닥쳐…… 이 개자식아!"

    "흠. 개자식이라?"

    세다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볼을 긁적

    거리더니, 이윽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너희들도 모두 죽일 테니까."

    "죽인다고?"

    세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죽일 테면 죽여봐! 누가 겁나할 줄 알아!?"

    "흐흥."

    세다라가 코웃음을 쳤다. 세실과 린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부탁하지 않아도 죽일 거야. 그건 그렇고…… 어느 쪽을 먼저 죽여 줄까

    ? 응, 어느 쪽이 좋겠어? 하긴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그다지 상관은 없겠

    지만 말이야……."

    거리낌없이 벌레를 죽이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말투였다. 그 태도에 분노

    한 세실이 다시 한 번 소리치려고 했을 때, 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도망가…… 세실."

    "뭐?"

    난데없는 소리에 세실은 찡그린 눈으로 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흠칫했

    다. 린의 눈동자는― 투명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바보같았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거야, 난."

    "뭐야? 왜 그래, 갑자기?"

    세실이 소리쳤다. 린은 허무하게 미소지었다.

    "이렇게 끝날 것을…… 왜 그렇게 얽매였을까. ……미안해, 세실. 모두

    나 때문이야.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넌 가. 너만은 살아야 해."

    "대체 무슨……."

    "이 아가씨들이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네?"

    지루한 표정의 세다라가 말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길바닥에 신발 굽을

    딱딱거리고 있었다.

    "가긴 어딜 가? 누가 먼저 죽느냐 순서 정하라니깐. 되게 답답하네. 아,

    그래. 좋은 방법이 있구나."

    명안을 생각해낸 어린 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둘 다 한꺼번에 죽여 줄게. 그럼 되겠지?"

    "가!"

    린이 버럭 소리질렀다.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실을 향해 그녀

    는 다시 한 번 외쳤다.

    "바보야, 가라고! 뛰어, 당장!"

    "어……."

    "그렇겐 못하지."

    세다라가 양팔을 내뻗었다. 그의 손에서 일렁임이 생겨났다. 마족의 특기

    ― 마나 에너지의 직접공격이었다. 그가 희열 섞인 외침을 토했다.

    "죽어!"

    "안 돼!"

    "꺄악!?"

    거대 에너지가 내쏘아진 것과 린이 세실을 밀쳐낸 것은 동시였다.

    콰앙.

    섬광이 그치고, 튕겨나간 세실은 고개를 들었다. 저 편에 피를 흘리고 쓰

    러져 있는 린의 모습이 보였다. 세실은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가

    며 외쳤다.

    "언니……? 언니!"

    "……것 참. 꽤나 멋대로인 녀석들이네."

    세다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사이좋게 함께 죽으라니깐 이게 무슨 짓거리야……. 어차피 다 죽을 것

    들이."

    "언니? 언니! 대답해! 언니! 이 바보가!"

    거칠게 린을 흔들며 세실이 외쳤다. 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온몸

    이 피투성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나…… 정말, 바보 같지……?"

    "그래, 바보 같아! 정말! 바보라구. 바보야! 이 바보야!"

    세실이 울부짖었다. 린은 웃었다…… 눈물 고인 눈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전혀 아니었어……. 난…… 난 말야, 정말 바보였어……."

    컥, 쿨럭, 컥, 그녀가 격렬히 기침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묻어 나왔다

    . 하지만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사랑…… 이라고 생각했어. 그냥 보면 즐겁고…… 쿡, 쿨럭, 컥……."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어느새 세실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린은 떨리는 손으로 세

    실의 뺨을 어루만졌다. 세실의 뺨에 린의 피가 묻었다. "바보 같은…… 정

    말 바보 같은……." 세실은 울먹이며 린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대었다.

    린이 미소지었다.

    "나…… 나쁜 언니였어. 그렇지?"

    "아냐! 아니라고! 아냐!"

    "못되게만 굴었어……. 하나뿐인 내 동생한테……. 그렇지?"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라고. 아니라고!"

    세실은 일그러진 얼굴로 마구 고개를 도리질쳤다. 린이 조용히 웃었다.

    "넌 착해…… 세실. ……그렇죠, 세이어 님……?"

    "……세이어 씨?"

    그녀의 말에 세실은 흠칫 놀라며 린을 바라보았다. 환상. 환상을 보는 건

    가? 그러나 흔들리는 시선이었긴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세실 너머의 그

    어떤 것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실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

    고 그 시선의 끝에는…….

    비틀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세이어의 모습이 있었다.

    "세, 세이어 씨……. 죽지…… 않았던?"

    놀란 세실이 외쳤다. 세이어는 쓰게 웃었다. 비척비척. 당장이라도 쓰러

    질 것 같은 걸음걸이였다. 린을 향한 그의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키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지키겠다고……."

    한 여성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길게 기른 흑발을

    뒤로 넘겨 한차례 묶어 내린, 푸른색 눈동자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리고, 죽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 이상 움

    직이지 않게 된, 입에서 한 줄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유우……."

    그가 신음했다. 그의 눈은 린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린을 바라보고 있

    지 않았다.

    "저,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린은 미소지었다. 희미하게나마 미소지었다. 눈에서는 멈추지 않

    는 눈물을 흘리며.

    "사랑은…… 아니었어요. 그저, 그저……."

    그녀의 말은 띄엄띄엄 이어졌다. 발음은 불분명했고, 꺼져갈 듯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세실과 세이어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안해…… 세실. 내가……, 쿡, 컥, 쿨럭……, 내가 나빴어. 왜…… 어

    째서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했던 걸까……. 이렇게,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것을……."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세실도 울고 있었다. 린은 계속해서 말했다.

    "부탁해요……, 세이어 님, 부탁해요……. 제발…… 세실만은 지켜 주세

    요……."

    세이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겠습니다……." 그가 말했고, 린은 눈물 어린 얼굴로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그러나 그 때, 한 소년의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끊었다.

    "잊고 있던 게 있었어."

    세다라였다. 유쾌하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약속 지켜야지. 그래, 태아 지워 준다고 했잖아? 마법으로 깨끗하게 지

    워 준다고 말야."

    "언니는……!"

    세실은 복잡한 눈으로 린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이었나? 그랬었던 건가?

    린은 이제 숨을 몰아쉬는 것조차도 힘든 모양이었다. 컥컥거리며 린은 자

    신에게로 다가오는 세다라를 바라보았다.

    "당신…… 더 이상은……."

    세이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다라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더 이상 뭐?"

    퍼억. 세다라는 귀찮다는 듯이 팔을 한차례 휘둘렀고, 그것만으로 세이어

    는 맥없이 튕겨나가 쓰러졌다. "커헉……." "난 해야 할 게 있다구. 방해

    하지 마." 세이어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며 그가 말했다.

    "너 같은 놈에게…… 언니를……!"

    세실이 그를 막아섰다. 그러나 세다라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을 뿐이

    었다. "!?" 순간 사라진 그의 모습에 세실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어느새 자신을 지나쳐간 세다라가 유유히 린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세실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의 몸은 굳어져 버린 듯이 전

    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외쳤다.

    "멈춰! 뭘 하려는 거야!?"

    "어떻게 하기는……."

    쓰러진 채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려 자신을 바라보는 린을 내려다보며 세

    다라는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이렇게 하려는 거지."

    퍼억.

    그가 오른손을 들어 린의 배를 향해 펼쳤다. 그리고 순수한 마나 에너지

    를 발했다.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마나 에너지…… 그것은 린의 복부를 꿰

    뚫었다.

    "크하악!"

    린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세다라는 여전 미소 띤 얼굴

    로 마나 에너지를 몇 방 더 내쏘았다.

    퍽. 퍼억. 푸학.

    피가 튀었다. 살점이 튕겨올랐다. 뼈가 드러나고 내장이 튀어나왔다. 난

    자한 피……. 린의 하복부는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가슴

    윗부분과 끊어진 살점으로 연결된 하체 뿐. 퍼억 퍽 하고 터져나오는 피분

    수 사이로 세다라가 히죽 웃었다.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될 거라고…… 내가 그랬지?"

    "아…… 아……."

    너무도 엄청난 광경에 세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

    고 있었다. 세다라가 빙글거렸다.

    "마족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지…… 단, 마족의 방식대로지만."

    세실은 넋나간 눈으로 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단순한 고깃덩이…… 그랬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차라

    리 고깃덩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아아아," 세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아아아," 그녀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아아악, 으흑,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바닥으로 엎드러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녀

    가 비명을 질러댔다. 세다라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뭘 그렇게 소리지르냐…… 너도 이제 저 꼴이 될 텐데."

    "그렇게 하게……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앞을 세이어가 막아서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모습

    으로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세다라는 피식 웃었다.

    "네 걱정이나 해라…… 얼간아!"

    콰앙!

    세이어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올랐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의 몸이 제

    멋대로 휘둘렸다. 콰직. 그리고 그는 담벼락에 처박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의 몸은 맥없이 늘어져내렸다.

    '안…… 돼…….'

    그는 이를 악물며 일어서려 했다. 세다라가 세실에게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세다라가 세실에게

    손을 뻗었다. 세이어는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흐려지고,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세이어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

    린이 이렇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7909 / 21069 등록일 : 2001년 06월 12일 18:14

    등록자 : NEISSY 조 회 : 8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5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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