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52화 (153/158)
  • 6. 예정된 우연 …… (13)

    # 149

    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제국군의 열띤 공세에도 불구하고 왕국

    군은 잘 막아내고 있었으며, 끊임없는 공방 속에서 성을 잘 지켜 내고 있

    었다. 이것은 던드 성 자체의 방어에서의 유리함 덕이기도 했으며, 또한

    병사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 덕분이기도 했다. 물론, 니리아의 마법 원호

    또한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현재로서는

    제국군과 왕국군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먼저 밑바닥을 내보일 쪽은 아무래도 던드

    일 수밖에 없었다. 지켜 내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오로지 방어에 주력하

    는 덕분일 뿐, 그 이상의 것은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숨돌릴 새 없는 공

    격 속에서, 비록 막아낸다고 해도 피해는 계속해 생기는 법. 작다고는 해

    도 쌓인다면 나중에는 무시못할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던드 시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초입이었다.

    이 상황에서 뭔가 타개책을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던드는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땅한 타개책이 없다는 거지.'

    그런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길이 없다는 사

    실에 워든 영주는 한숨 섞인 쓴웃음을 지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니리아가

    말했다.

    "제국군으로서도 이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을 거예요."

    "……."

    워든은 니리아를 돌아보았다. 치열한 전투 중이라 주변이 시끄러웠고, 때

    문에 그는 조금 소리를 높여 물었다.

    "변화가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까?"

    "제국군이라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니리아는 성벽 바깥을 바라보았다. 성 안으로부터 쏟아져 나가는 화살에

    제국군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고 있었다. 이미 성 주위에는 제국군의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고, 강은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간단히 들어온 저들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식의 공격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그렇게 말하며 니리아는 성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한 무리의 적에게 마법

    을 방사했다. 적병들은 숯더미가 되어 쓰러졌고, 이윽고 다시 워든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가 말했다.

    "아까 영주님께선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영주님이라도 마족을 투입했을

    거라고. 맞아요. 분명 전쟁에서 가장 쉽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적의 수

    뇌부를 무너뜨리는 것이죠.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적들은 이전에도 이

    미 마족이라는 수단을 사용했었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당연히 알

    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마족을 투입한들 그저 무의미한 일

    이 될 뿐이라는 것 또한 당연히 알고 있을 거예요."

    니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오늘에 올 적들은 이전까지의 적들과는 다를

    것이다, 라고요. 하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았더군요. 그저 숫자만 늘었

    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병사들도 마찬가지고."

    가라앉은 시선을 적들에게로 던지며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지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전까지와 같은 방법만을 쓰고 있어

    요.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은 방법만을 쓰고 있어요. 그들의 유리한 점을

    전혀 살리지 않고, 오로지 숫적 우위만을 사용해 덤벼오고 있어요."

    "……."

    워든은 순간 스쳐나간 어떤 생각이 몸에 오싹해짐을 느꼈다. 낮게 가라앉

    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공격들은……."

    "이것이 탐색전, 아니면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한 계획…… 이겠지요."

    니리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 상황은 날이 저물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국군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의 전술이었는가? 니리아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비단 니리아 뿐이 아니었다. 세이어, 네이시 등 다른 이들

    도 제국의 태도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이잖아요?"

    늦은 저녁, 일단의 전투가 종식된 후의 식사 시간. 세이어의 방에 찾아온

    세실은 의자에 앉은 채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세이어가 쓴웃음을 지었

    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저도 좋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죠."

    빵을 우물거리며 세실이 말했다. 빵을 씹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세

    이어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전쟁 중인데?"

    "지금은요."

    빵을 꿀꺽 넘겨 삼키고 나서 세실은 말을 이었다.

    "세이어 씨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평생?"

    한마디 덧붙인 세실은 스스로도 쑥쓰러운지 뺨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세이어는 의외일 정도로 진지하게 반응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

    "예, 제가 지킬 겁니다. 세실 씨와 린 씨를."

    "……으흠."

    "다치게 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과오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과오?"

    린의 일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세이어의 분위기로 보아 단순히 린의 일

    을 말하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세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세이어를 바라보

    았으나, 세이어는 쓰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옛날 일입니다."

    "흠."

    세실은 이마를 긁적였다.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다만 그 지킨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적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사실

    저로선 그렇게 신경쓰일 일이 아니고, 또한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일

    련의 사건들로 미루어 볼 때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러나 신경쓰이는 것은 세실 씨와 린 씨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이

    무엇이든, 세실 씨와 린 씨에게 그 여파가 미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니까요."

    "걱정, 하시는 거군요?"

    세실이 헤죽 웃었다. 그러나 세이어는 진지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결정지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 마족과?"

    "그렇습니다."

    세이어는 이니아를 만지작거렸다.

    "이것으로, 어떻게 상대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도 그 정도는 알

    고 있겠지요. 분명 어떤 수단을 사용해올 겁니다."

    "질 것 같아요?"

    "……그런 것과는 다르지요."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세실이 빙긋 미소지었다.

    "그럼 된 거네요. 무슨 걱정이에요? 다 잘 될 거예요."

    "낙관적이시군요."

    "세이어 씨니까요."

    세실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세이어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

    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세이어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떠올라 있었다.

    "……." 이윽고 세이어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속에서부터 자연스럽

    게 우러나오는 편안한 웃음이었다. 세실도 따라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자, 저 오늘 여기서 자도 되겠죠?"

    "……예?"

    세이어의 눈이 커졌다. 세실은 세이어를 마주보며 씩 미소지었다.

    "왜요, 안 되나요?"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건."

    "곤란할 것 없어요. 어차피 언니도 아룬 오빠랑 함께 있는걸요."

    "……그것과 이것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면 어때요."

    세실은 검지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세이어 씨도 말했잖아요. 전쟁중이라서 위험하다고. 세이어 씨와 같은

    방에서 자면 밤새도록 세이어 씨가 확실히 지켜 줄 것 아녜요? 가장 확실

    하게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봐요."

    "오히려 위험할지도 모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세이어 씨니까요."

    이번에도 역시 세실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세이어는 그 대답에 잠

    시 멍한 표정을 하더니,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핫하하하하. 그렇군요. 확실히 안전한 방법이겠습니다."

    "그쵸?"

    득의양양하게 미소짓는 세실. 세이어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좋아요."

    세실은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세실은 자고 있었다. 그리고 세이어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잠든 세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였다. 평안해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 세이어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세이어의 의식도 고요한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모호해지

    는 현실. 희미해지는 자아. 이윽고 그는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그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면서 또한 자신

    이 아닌 그.

    '그'는 씁쓰레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찾아냈니. 네 삶의 이유를. 네 자신을."

    "……."

    '세이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

    그'가 물었다.

    "아직, 나를 거부하고 있니."

    "……."

    '세이어'는 잠시 생각했다. 인정. 용납. 자기 자신. 주어진 힘. 자신의

    것. 여태껏 겪어왔던 모든 일들을. 그리고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구나."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쓸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하지만…… 알고 있겠지?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어."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는 피로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넌 잃게 될 거야."

    "……무엇을?"

    "네게 소중한 것을."

    "……."

    "넌 깨닫지 못했어."

    단정짓는 것이 아니었다. 고압적인 어조도 아니었다. 그저 피로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여 조용히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를 하는 듯한 가라앉은 어조. 그래서 '세이어'는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

    했다.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깨달을 수 있을까, 네가."

    "……."

    "깨달을 수 있다면 그들은 네 상대가 되지 못할텐데."

    "……당신은 왜 제게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세이어'의 질문에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로군. 정말로 넌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어."

    "……."

    "너와 나는 같으니까."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더 이상 '세이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듯 했다. 그저 지친 기색으로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을 뿐

    이었다.

    그런 그에게 세이어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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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CD를 사 모으고 있습니다. 원래 MP3를 모으는데 주력했던 저였

    지만, 불의의 사태로 30기가 하드가 '물리적으로' 아작이 나고 나자 인

    생 허무함을 느끼게 되어버리더군요. 덕분에 예전에 쓰던 2기가 하드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CD라는 물건의 매력

    에 빠져 버렸습니다. 나름대로 상당히 느낌이 좋더군요.

    가장 최근에 구한 앨범은 DeliSpice 2집과 Rhapsody 2집입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Rhapsody는 좋더군요.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들어

    보시면 좋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Rhapsody 덕분에 창작의욕이 마구마구 솟아난 겁니다. 그

    게 어느 정도냐 하면, 어제―아니, 오늘― Rhapsody를 들으며 새벽 4시

    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을 정도였다니까요. (웃음) 한동안 안 하던

    일이었는데 말이죠. 뭐, 덕분에 다시 즐겁게 데스트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데스트를 다시 즐겁게 쓰게 된 데엔 또다른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 그것은 바로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1부 완결이 가까워졌다는 겁니

    다. 글의 분위기부터가 벌써 끝장을 보자는 분위기 아닙니까? (웃음)

    그동안 데스트에 너무 얽매여 있었습니다. 피곤해졌던 셈이지요. 아무

    리 조회수에 연연치 않는다고 해도, 역시 인기가 많으면 힘이 나지 않습

    니까? 그런 면에서 정신적으로 피로가 지대했지요. (뭔가 이상한 말)

    어서 1부를 끝내고 쉬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글을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데스트를 설렁설렁 써내 버리겠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분명히 말해 데스트를 이미 2년 가까이 쓰

    고 있었고 ―초판부터 계속된 리메이크로― 좀 신선한 것이 필요한 겁니

    다. 하지만 2년이나 잡고 있었던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제가 만

    든 그 어떤 다른 작품에 대한 것보다도 큽니다. 결코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완결로 치닫아 나갈 데스트를 기대해 주세요. (웃음)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7790 / 21066 등록일 : 2001년 06월 07일 22:31

    등록자 : NEISSY 조 회 : 9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5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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