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50화 (151/158)
  • 6. 예정된 우연 …… (11)

    # 147

    전쟁이 일어난 지 이제 약 한 달, 프리네리아로 밀고 들어온 제국군은 두

    곳에서 왕국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처음의 기세와 비교해 보면 무엇인가

    멈칫거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전력상으로 제국군이 압도적으로 우

    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군에게서 처음의 적극성은 많이 사라

    져 있었다.

    특히 그 경향은 센드 시에서의 것이 특별히 심했다. 크라켄의 출현으로

    프리네리아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 전력면으로 칼리스타의 상대도 되지

    못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제국군은 치고 들어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프리네리아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기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면 사이아스 시의 그것도 마찬가지라

    고 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출현한 3만의 몬스터 군단은 분명 현재의 사이

    아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전투 후 물러간 몬

    스터들은 그대로 프로얀 숲에 머물렀고, 충돌이라고는 고작 한두 번의 소

    규모전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타이밍은 너무 나빴다. 물론 몬스터들

    의 대대적인 출현이야 예전 레이아다 시 사건 때부터 예정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필이면 전쟁이 일어난 바로 이 시기에 출현했다는 것을 단순

    한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설령 제국이 꾸민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둘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던 것이

    었다.

    마족, 혹은 몬스터와의 결탁― 제국군이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왕국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나하비아스 시

    도, 센드 시도, 사이아스 시도, ……그리고 던드 시도.

    던드 시는 말하자면 마족들에 의한 게릴라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집요

    함은 여타의 다른 도시들이 당한 것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었다. 하지만 다

    행인 것은 이 도시를 지키는 사람들의 수준 또한 다른 도시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틀리다는 사실이었다. 세이어, 네이시, 니리아, 시린. 최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국군이 슬슬 심상찮은 움

    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프리네리아에서의 세 대치상황. 그 중

    하나가 깨진다면 첫번째는 바로 이 던드 시가 될 확률이 높았다. 바야흐로

    던드 시에도 결전의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 설명을 끝낸 워든―던드 시의 영주―가 회의실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방어 작전은 이미 수립되어 있습니다만, 일단 특별히 다

    른 의견이 없는지 알고 싶군요."

    워든, 그에게는 역시 영주다운 품격이 있었다. 그는 하관에게 자기 생각

    을 강요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할 때는 확실히 하는 스

    타일이었다.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그는 즉각 사람

    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고, 포용력있고 차분한 영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태도였다. 물론 언뜻 보기에는 다른 영

    주와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질 수 있었다. 평소에는 무얼 하는지 존재감없이

    지내다가 일이 생기니까 급히 회의를 소집하는. 하지만 그는 그런 국록이

    나 까먹는 영주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훌륭한 지도자는 그 자

    신이 뛰어나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

    는 것이라던가. 그에게는 그게 있었다. 즉, 독단적이지 않고 생각이 열려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회의의 분위기는 매우 좋은 편이었고, 그 좋은 분위기 속

    에서 네이시가 입을 열어 말했다.

    "질문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그 방어 작전의 기본적인 구도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아, 예, 물론입니다."

    워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어 작전'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어오르기 어렵도록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성벽과 그 바로 밑에 깊게 파

    진 해자. 특별히 고안된 특이한 성의 구조. 강이 가까이 있는 주위 환경.

    던드 시는 성곽의 구조상 농성에 적합한 곳이다. 특히나 적의 병력이 압도

    적으로 많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성곽의 유리함을 살리는 것이 좋다. 따

    라서 기본적으로는 성을 굳게 지킨다. 다만, 여기에는 변수가 있다. 바로

    마족들이다. 이들의 경우는 실질상 일반 병사들로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하

    다. 따라서, ―여태까지 해 왔던 것과 일반으로― 마족들은 세이어 등이

    맡는다. 병사는 병사들이, 마족은 세이어들이 막는다는 구조인 것이다.

    "에, 그렇다면,"

    네이시가 물었다.

    "저희는 병사들과의 전투에는 나가지 않는 건가요?"

    "저로서는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워든이 대답했다.

    "시내의 지역지역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나하비아스 시가 그렇게 간단

    히 점령당하고 만 것이 마족이 성내로 침입했기 때문이라는 정보도 있었고

    , 이 성은, 하긴 어느 성이고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분명 외

    부로부터의 공격에는 문제가 없지만 내부로부터의 공격에는 취약하니까요.

    "

    "흐음."

    네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결국, 마족들은 저희에게 맡기시겠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워든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주위의 사람들을 한차례 둘러보며 ―이들 중

    반은 세이어 일행, 즉 '마족 격퇴단'이었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가 말

    했다.

    "요사이의 사건으로 여러분들의 실력은 이미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저

    로서도 마음 놓고 여러분들께 맡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긴 솔직히 말

    한다면 여러분 외에 맡길 사람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저희

    들만의 능력으로서는 벅찬 상대이니까요. 여러분께서 와 주셔서 다행이라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 저런 이야기를 여유 있게 하는 영주에

    게 조금 놀란 네이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의외로 던드 시의 기사

    들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마족을 상대할 능력이 없

    다고 선언한 셈인데, 별 느낌이 안 드는 건가? 네이시가 의아해하는 사이

    영주의 말이 이어졌다.

    "각자에겐 역할이란 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검사에게서 궁사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고 궁사에게서 검사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지

    요. 제 역할은 여러분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고, 그에 따라 여

    러분께는 마족 격퇴의 역할을, 그리고 저희에겐 적군 격퇴의 역할을 맡겼

    습니다. 저로서는 적절하게 맡겼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이의가 있으시다

    면 말씀해 주십시오."

    세이어가 미소지었다.

    "이의 없습니다."

    "다행이로군요.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워든이 그렇게 말했고, 회의장 내의 다른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동의의 뜻

    을 표했다. 영주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 건은 결정된 것으로 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의논하기

    로 하겠습니다.

    "……휴우, 지쳤다."

    방으로 돌아온 시린이 엎어지듯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뒤따라들어온 네

    이시가 피식 웃으며 방문을 닫았다.

    "네가 지칠 게 뭐가 있어? 회의 내내 한 마디도 안 했으면서."

    "그래. 고개만 끄덕여댔지."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시린이 웅얼거렸다.

    "맙소사. 기사단 1진이 어쩌구 2진이 어쩌구, 궁사단 배열은 어떻고 저떻

    고 마법사들은 전진배치에 기병은 돌격 준비 제 3대형에 보병은 분산대형

    제 12번이 기본에 변형이 운진이니 분산이 저쩌구…… 내 머리 깨져."

    "헤에. 그래도 들을 건 다 들었네."

    "고개는 폼으로 끄덕인 줄 아냐."

    "어? 폼으로 끄덕인 거 아니었어?"

    "칵!"

    소리치며 시린이 몸을 일으켰고, 네이시는 킥킥 웃으며 욕실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난 먼저 샤워 좀 할게. 엿보면 안 돼?"

    "누가 남자 몸을 엿보냐!?"

    "혹시 누가 알아, 내가 여자일지?"

    "……그럼 니리아 씨가 남자냐?"

    "오. 잘 아는군."

    네이시가 키득거렸다. 시린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젠장. 관두자. 빨리 샤워나 해, 헛소리 그만 하고."

    "헤에. 헛소리라고?"

    욕실 문을 반쯤 연 채 고개만 빼꼼이 내밀고 빙글거리는 네이시. 시린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아니냐?"

    "흠. 너 확인해 본 적 있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걸 확인해 봐야 아냐!? 척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도는……!"

    소리치던 시린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그러고보니 저놈

    은 척 봐서 구분한다는 게 불가능한 놈이잖아!? "훗." 외모로는 완전히 여

    자인 네이시가 빙글거리며 말했다.

    "거봐. 모르지?"

    "……."

    "확인해 볼래?"

    여전히 빙글거리는 네이시. 시린이 순간 멈칫했다.

    "……뭘 확인한다는 거냐, 뭘!"

    "우훗. 그건 비·밀·이·야."

    의미불명의 대사였다.

    "젠장. 관둬. 관두고 어서 씻기나 해 이 자식아!"

    결국 시린은 소리치고야 말았다. 그러나 네이시는 아직도 빙글거리고 있

    었으니.

    "그런데 얼굴은 왜 붉어진 거야, 시린?"

    "……."

    "혹시 이상한 생각 한 거 아냐? 꺄악, 난 남자라구! 남자를 상대로 이상

    한 생각을? 꺄아, 설마 시린은 변태!?"

    사람 하나 변태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젠장, 역시 네놈 남자였잖아!"

    그러나 시린은 억울했다. 대체 저 이상한 말발에 휘둘려 당한 것이 몇 번

    이냐? 아무래도 저 녀석은 날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게 분명하단 생각을 굳

    혀보는 시린이었다. 아아, 오욕으로 가득찬 인고의 나날들이여.

    하지만 그런 건 어쨌든간에 시린의 그런 어설픈 항변이 먹혀들만큼 네이

    시가 순순한 상대일 리 없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누가 내가 여자래?"

    "……."

    젠장 저 놈 한동안 조용하더니 왜 또 저래…… 라며 이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을 해보는 시린. 그 때 네이시가 말했다.

    "어때? 지나간 일은 잊고 이제부턴 생산적인 생각을 하자구. 과거에 얽매

    이지 말고 말이야."

    "……뭐가 생산적이야, 뭐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의 말이랑 그거 전혀

    연관이 없잖아!"

    "흠. 너치고는 예리한 말인데?"

    "……그거 칭찬이냐?"

    "응, 칭찬이야."

    네이시가 생글거렸다.

    "……."

    "기분 좋지?"

    "크아아아악! 닥치고 빨리 들어가지 못해!"

    "그러지 뭐."

    의외로 순순히 ―꽤나 갑작스럽게도― 시린의 말을 듣는 네이시. "자, 그

    럼∼." 달칵. 욕실의 문이 닫혔고, 시린은 의외의 상황에 눈을 두어 번 깜

    빡거렸다. "……." 좌우간 역시 네이시는 시린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시린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한차례 한숨을 내쉰 네이시가 욕실 문에 몸을 기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다가오는 거구나, 끝이." 그가 중얼거렸다. 씁스레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

    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직은 쓰러질 때가 아니야."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결말을 지어야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러기 위해서 살아온 것이었다. "그래, 아직이야." 네이시는 스스로에게 다

    짐하듯 중얼거렸다.

    "견뎌내야 해…… 절대로."

    가슴이 뜨거웠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짓눌리는

    느낌. 견딜 수 없었다. 기침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쿨럭."

    네이시는 눈을 떴다. 고통, 전신을 불로 달구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

    었다. 올 게 왔군. 네이시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시린, 자니?" 드드렁…….

    시린은 콧소리로 대답했다. 네이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희미한 미

    소를 떠올렸다. "깨어 있지 않다면 사랑해 버릴 거야." ―대답은 없었다.

    확실히 자고 있군.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네이시는 다행이

    다 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네이시는 일그러진 얼굴로 조소했다.

    "나도 참 웃기는 놈이란 말이……큭!"

    쿨럭 쿨럭.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격렬한 기침을 터뜨렸다. 페부가 터

    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네이시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부들부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점점 그 주기가 좁혀지고 있었다. 그 리치와

    의 싸움 이래 지겹도록 찾아온 고통,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련만 이 고통

    만큼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다……. 네이시는 후들거리

    는 다리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욕실 문이 눈에 들어왔다. 네이시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크큭…… 쿠…… 크훅."

    끼……기익.

    문을 밀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반쯤 열린 문 사

    이로 네이시는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발이 엇갈렸고, 그는 그대

    로 욕실 바닥에 엎어졌다. ……쿠당.

    "끄…… 끅……."

    네이시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등으로 밀어 욕실 문을 닫았다. 그

    리고 동시에, 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왔다. 머릿속이 하얘졌

    다. 그의 상체가 급격히 앞으로 숙여졌다.

    "ㅋ……!"

    울컥.

    뜨겁다. 뜨겁다. 검붉은 액체가 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끔

    찍한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부릅떴다.

    "ㄲ…… ㅎ……."

    새하얗다. 머리가 새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다. 네이시는 자신이 불타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너무나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 픽. 다리가 휘익 꺾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기절하고 싶었다.

    차라리 기절해 버린다면…….

    기절할 수가 없었다.

    네이시는 욕실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꿈틀거렸다. 짓밟힌 벌레처럼, 그

    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기절조차 허용하지 않는 고통, 그는 그에게

    전해지는 고통을 모두 다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전신에 땀이 비오

    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후욱……, 하아……, 하아……."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 네이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욕

    실 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허무한 미소가 감돌

    았다. "이제…… 끝난……건가."

    지긋지긋한 고통.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기껏해야 1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도 마치 몇십 년은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 네이시가 한숨을 내쉬었

    다.

    "정말로……."

    ―그 때였다.

    "욱."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에 그는 화들짝 놀라며 오른손을 털었다. 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러나 다음 순간, 네이시는 이것이 화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지금 이 안에는 불은 커녕 램프조차 켜지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

    엇보다도, 통증이 점점 강해져갔다. 착각?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ㄲ………."

    통증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 그리고 손목으로, 그리

    고 팔꿈치로. 잉크가 퍼지듯 천천히. 그리고 또한 발가락 끝에서부터, 발

    목으로, 무릎으로, 그리고 또.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이― 잠식해오고 있

    었다. "ㅇ…… ㄱ……." 온통 붉은 심연. 불탄다. 타오른다. 찢긴다. 조각

    조각. 찢긴다. 비명을 지른다. 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의식이 존재한

    다는 것조차 '찢긴다'.

    아까의 고통은 차라리 편안한 것이었다.

    ====================

    드디어 던드 시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여기서부터 1부 끝까지는 계속해

    서 이쪽 시점으로만 진행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인기투표 아직 하고 있습니다. 이제 금방 마감입니다. 150편이

    올라옴과 동시에 결과 발표라구요! 자자, 어서 참여하시는 겁니다!

    Neissy였습니다! (아, 감상 or 비평 환영입니다!)

    번 호 : 17687 / 21066 등록일 : 2001년 06월 04일 21:43

    등록자 : NEISSY 조 회 : 9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48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