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48화 (149/158)
  • 6. 예정된 우연 …… (9)

    # 145

    그렇게 말하고 로빈은 다시 돌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전투를

    시작하는 듯 전혀 지치지 않은 기색이었다. 한마리 야수와도 같은 기세에

    에이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이지……."

    하지만 에이드가 그렇게 여유를 부리게끔 적이 그를 놓아 두고 있을 리는

    없었다. "Kiek!" 에이드가 중얼거리는 그 틈을 타서 코볼드 하나가 그의

    뒤를 노리고 달려든 것이었다.

    "……무모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 순간 에이드가 앞으로 돌진해 나갔고, 뒤를 노리던 코볼드는 허무하게

    목표를 잃고 땅바닥에 고꾸라져 버리고 말았다. "Kirrak!" 뒤에서 코볼드

    의 분노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에이드는 상관하지 않았다. 사실, 그 편이

    코볼드에게는 더 좋은 것이었다. 상관했다면 그는 이미 두 동강이 나 있을

    테였으니까.

    어느새 저만치 앞을 달려가고 있는 로빈을 보며 에이드는 고개를 내저었

    다. "하여간 조금도 기다려주질 않으시는 분이라니까……." 하지만 동시에

    에이드의 발이 박차를 찼다. "하긴,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질

    풍같은 속도로 백마가 돌진해 나갔다.

    "하아아아!"

    로빈은 랜스를 휘둘렀다. 그에 맞고 튕겨나가는 적들의 모습.

    "자, 비켜! 죽고 싶지 않다면 비키란 말이야!"

    돌진. 돌진. 돌진. 로빈은 태풍과도 같았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으며,

    또한 그가 지나간 곳은 말 그대로 '휩쓸려' 남아 나는 것이 없었다. "이야

    아아아아아!" 그가 랜스를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하는 바

    람 소리와 함께 랜스는 끔찍할 정도의 회전을 시작했고, 그것이 어느 시점

    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자 로빈은 그대로 그것을 내리쳤다.

    퍼억! 츄악!

    그 앞에서 몬스터들의 육체는 한낱 종이쪼가리조차도 되지 못했다. 하늘

    높이 튀어오르는 오크의 육편, 뒤따라 쏟아져나오는 고블린의 피, 그리고

    튕겨오르는 코볼드의 뼈. 그 사이에서 로빈이 살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어

    느 쪽이 몬스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아,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오는군요. 그들이."

    프렌테이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삐

    움직이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이런 것들로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하긴 전력을 쏟아붓는다면 그

    들도 지치겠지만."

    "그렇게 대단한가? 그들이."

    그의 옆에 있던 한 장신의 여자가 물었다. 프렌테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슬슬 상대하려다가는 오히려 당할 겁니다. 적어도 이들은 프리네리아의

    최정예이니까요."

    "큭큭. 썩어빠진 프리네리아의?"

    여자가 조소를 흘렸다. 이를 드러내며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내게서 뭘 바라나? 당장 전 몬스터들을 몰아서 그 둘을 몰아치라

    고?"

    "아니오."

    프렌테이즈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께서 직접 나가십시오. 그 편이 피해가 적을 테지요."

    "흥. 그렇게 말해놓고 뒤를 칠 셈 아닌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프렌테이즈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런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하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

    언뜻 여자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자는 이

    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좋아. 재미있군. 다하난의 이름에 걸고 다하난의 기사들을 쓰러뜨

    리라?"

    "상대만 해도 될 겁니다. 그 정도로 전황이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요. ―

    단, 당신이 지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만."

    "그런 말로 내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해도 소용없어. ……뭐, 어쨌든 좋아

    , 해주지."

    "……."

    "네놈들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씀이야……. 하긴, 너나 나

    나 어차피 명령대로 움직이는 존재일 따름이겠지만."

    프렌테이즈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자는 클클 웃으며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

    "좋아……. 그럼 일단 길을 열어 줄까."

    그리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로빈은 적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

    다. 뚫고 나온 것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여태까지 만난 적들

    의 수가 너무 적었다. ―어디까지나, 삼만이라는 수에 비해서―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상황은 다음 둘 중 하나였다.

    전쟁터를 이탈했거나.

    "놈에게로 온 건가."

    로빈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며 그는 히죽 미소를 지

    었다. 기묘한 부조화였다.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지."

    어느새 랜스가 백열되다 못해 푸르게 달궈져 있었다. 랜스를 천천히 치켜

    들며, 조용히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내 주의 이름이여," 그의 입이 조용

    히 열렸다. "거짓과 악행, 죄악을 벌하시는 나의 주여. 바라옵기는 내 주

    의 적, 악마의 자식들을 진멸시키기를 원하나니, 지금 그 힘을 펼치사 주

    의 권능을 발하소서!"

    우우우웅.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랜스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로

    빈은 그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랜스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놀랍게도

    랜스는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부정한 것을 멸하사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이룩하소서! 홀리 디텍션 Holy

    detection!"

    순간 랜스가 솟구쳐 오르더니, 공중에서 빙글빙글 풍차처럼 회전하기 시

    작했다. 로빈이 조용히 말했다. "진멸을." 쇄애애액! 동시에 바람을 가르

    는 소리와 함께 랜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 지점을 향해 쏘아져 내려갔

    다. 그리고, 그 지점에 있는 것은.

    "얼굴도 보기 전에 공격이라니 예의가 없군!"

    연갈색의 머리를 짧게 커트한 한 장신의 여자였다. 그녀가 웃었다.

    "쿠쿡, 좋아, 오늘 한 번 걸판지게 놀아 보자!"

    그녀는 날아오는 랜스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짧게

    기합을 질렀다. "흡!" 그녀의 손바닥으로부터 검은 파장이 퍼져나왔고, 그

    기세에 눌려 랜스는 속력이 현저하게 줄어 버리더니 이윽고 맥없이 땅바닥

    에 떨어져 버렸다.

    "마기…… 마족인가!"

    로빈이 외쳤고, 마족은 천천히 로빈을 돌아보더니 비웃는 듯한 미소를 입

    가에 띄웠다. 오른손을 가볍게 가슴에 대어 보이며 그녀가 말했다.

    "소개하지. 오늘의 게스트 몬스터 군단의 통솔자 류드니다."

    "통솔자……! 역시, 네가 이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류드니는 가볍게 양 팔을 벌려 보였다.

    "어떻게 할 텐가? 나와 싸울 텐가? 아까부터 날 찾고 있던 것 같던데 말

    이야."

    "당연한 것 아닌가?"

    집어던진 랜스 대신에 꺼내든 브로드 소드에 홀리 버스트를 걸며 로빈이

    대답했다.

    "나는 싸우기 위해 온 거다. 그럴 생각이 없었으면 오지도 않았어."

    "쿡쿡, 좋아. 와라."

    류드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1대 1을 위해 일부러 몬스터들도 치워 줬다. 조금쯤은 감사해하는 게 어

    떨까?"

    "그 자만, 후회하게 해 주지."

    말에서 뛰어내린 로빈이―마족과의 싸움에서 말을 탄다는 것은 오히려 불

    리했다― 류드니에게로 짓쳐들어갔다. 류드니가 픽 웃으며 그런 로빈에게

    로 맞서 달려들었다. "이건 말이지,"

    투캉!

    둘이 스쳤다고 생각된 순간, 어느새 로빈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커헉!"

    그리고 땅에 떨어진 로빈은 그 충격으로 기침을 토했다. 비틀거리며 일어

    서는 로빈에게로 류드니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자만이 아니고, 자신이

    라는 거다."

    "큭……."

    로빈은 다리가 휘청임을 느꼈다. 아무래도 적을 너무 쉽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가하며 그가 말했다.

    "역시 마족이라는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마족― 류드니는 가볍게 오른손을 펼쳐 그 손가락을 까닥거려 보였다.

    "그렇지만 네 실력도 그리 나쁘지는 않군. 내 일격을 피해냈으니."

    "그런 칭찬 받아봐야 하나도 기쁘지 않아."

    우그러진 흉판을 힐끗 내려다본 로빈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 일격 하

    나만으로 갑옷은 처참하게 '찢겨'나가 있었다. 만약 그 일격을 직접 맞았

    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류드니는 클클거리고 웃었다.

    "너무 그럴 것은 없는데. 너같은 실력을 지닌 인간은 나로서도 오래간만

    이야. 1대 1의 대결을 할만한 가치가 있어."

    "1대 1…… 이라고?"

    "아하. 혹시, 너 말고 또 다른 기사가 있던데, 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가? 그렇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그는 이 대결에 끼어들지 못

    할 테니까."

    로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에이드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흐음, 그 인간의 이름이 에이드였나. 하긴 아무래도 상관은 없겠지

    만."

    류드니는 이를 드러내고 미소지었다.

    "그에게는 몬스터들을 잔뜩 선물해 줬지. 여태까지 버텨 온 걸 보면 죽지

    는 않을 테지만, ―하긴 죽어도 나로서는 별로 관계없는 일이지― 적어도

    이 대결이 끝날 때까지는 빠져나오지 못할 거다."

    "잔뜩……이냐."

    로빈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그를 걱정할 계제는 아니겠지만…… 하지만 동료의 위기를 알고

    도 가만 있는 것은 기사의 도리가 아니지. 좋겠지, 그렇다면,"

    로빈은 브로드 소드를 치켜들고 자세를 갖췄다.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

    고 있었다.

    "네 녀석을 빨리 쓰러뜨리고 에이드에게로 가겠다!"

    "흥. 이제야 겨우 결정내린 건가. 정말이지 인간이란 너무 느리단……"

    "하아아아!"

    순간 로빈이 뛰어들었다― 류드니의 얼굴을 노리고! "큭!" 그녀는 당항해

    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검은 눈속임, 진짜는 바로 그 숙여진

    머리를 노리는 강렬한 킥이었다!

    퍼억!

    얼굴을 맞은 류드니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사악하게도, 로빈은 어느새

    갑옷에조차 홀리 버스트를 걸어 놓고 있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일격을 맞아버린 것이었다.

    이어 로빈의 검이 류드니에게로 날아들었다!

    "흡."

    그러나 한차례 기합과 함께 류드니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덕분에

    로빈은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위험했군." 얼굴을 문지르며 류드니가 말

    했다. "하지만 기습이라니. 기사답지 않군 그래."

    "싸우는 도중에 이래저래 말이 많군."

    "크큭. 그런가?"

    류드니는 공중에 날아오른 채로 로빈을 내려다보았다.

    "후훗, 그러고보니 너는 처음부터 기습이었군."

    "네녀석이 숨어 있었으니까. 피차일반 아닌가?'

    브로드 소드를 고쳐잡으며 로빈이 말했다. 워든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그렇군.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로 성기사같지 않아. 다하난의

    기사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데…… 아니, 그게 어쩌면 다하난의 기사다운

    것인지도 모르겠군."

    "그만 지껄이고 슬슬 내려오는 게 어때?"

    "쿡. 그렇게 쉽게 끝낼 수는 없지."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류드니는 로빈에게로 솟구쳐 내려오고 있었다.

    "난 네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이 말씀이야!"

    "시끄러."

    로빈은 상체를 뒤로 젖혀 류드니의 공격을 피해냈고, 동시에 몸을 한바퀴

    휙 돌려 그 반동으로 류드니를 강하게 밀어쳐 튕겨내버렸다. "난 마족에게

    는 취미 없다, 이 수다쟁이 녀석아!" 튕겨져나간 그녀를 향해 짓쳐들어가

    며 그가 외쳤다.

    "입닥치고, 죽어 버리기나 해!"

    홀리 버스트의 은백색 섬광― 아름다운 호선과 함께 검이 류드니에게로

    날아들었다.

    ====================

    예에, 오래간만입니다. 열심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無念)

    에, 그리고 인기 투표 아직 하오니…… 귀찮다 여기시지 마시고 가끔은

    참여해 주시길. 꾸벅. (150회 올라오는 동시에 결과 발표입니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6930 / 21066 등록일 : 2001년 05월 09일 21:30

    등록자 : NEISSY 조 회 : 107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46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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