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45화 (146/158)
  • 6. 예정된 우연 …… (6)

    # 142

    "……."

    에이드는 잠시 침묵했다. 탁탁타닥. 복도에는 두 명의 남자가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로빈 님은," 그러나 에이드는 곧

    입을 열었다.

    "그 때의 일과 지금 이 상황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상하지 않나? ……후우,"

    로빈은 그렇게 대답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가 말했다.

    "보자고, 그러니까 나도 자네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세이어, 나이트

    세이어의 말에 의하면 ―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레이아다 시의 시민들을 공격했던, 도플갱어들은 분명 조직적으로 행동하

    고 있었다고 했어, 그렇지 않아?"

    "그랬습니다."

    "자네도 알겠지만, 몬스터들은 원래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놈들은

    말이야, 누군가의 통제 하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움직인다는 건,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

    "……그렇군요."

    "그것과 이것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어. 다수의 갑작스런 등장, 조

    직적인 움직임, 그리고……."

    "레이아다 시로부터 출현, 입니까?"

    "그래."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뛰는 속도를 조금 늦추며 그가 말을 이었다.

    "안팎으로 골치아프게 되어버렸어. 밖으로는 제국, 안으로는 몬스터…….

    "

    "역시, 마왕 세라린의?"

    "그렇다고 보는 게 옳겠지."

    로빈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필 이럴 때에 움직이다니 우리도 어지간히 운이 없군

    그래."

    "운이 없다…… 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하니까."

    로빈은 그렇게 대답했다. 공허하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것조차 '전쟁'의 일부라고 한다면. 몬스터들의 이 행동조차 이미 예정

    된 것이었다면……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저 우연이기를 빌고

    싶어. 만약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는…… 너무 거대한 적을 상대하고

    있는 게 될 테니까."

    "……그렇군요."

    에이드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로빈 님?"

    "아아, 제 0 회의실에."

    "제 0 회의실?"

    제 0 회의실은 다른 곳과는 의미하는 바가 조금 틀렸다. 그곳은 긴급사태

    가 있을 때 사용하는 곳으로, 특히 국가의 존망이 걸린, 화급을 요하는 일

    이 생겼을 때 사용된다. 다른 회의실과는 달리 기사들만의 회의가 이루어

    지는 곳으로, 전쟁시 지휘관의 권한에 따라 다른 궁내의 대신들을 배제하

    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었다. ―즉, 현재 상황은 에이드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급하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지금 상황설명을 대강 해두지. 어쨌든 당장

    출전해야 할 판이니까."

    다시 뛰는 속도를 빨리하며 로빈이 말했다.

    "말했듯이 지금 수도로 오고 있는 몬스터들의 수는 어림잡아 3만. 물론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3만을 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최소한 3만."

    에이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로빈의 입가에 긴장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리고 그에 반해 이곳의 병력은 만 칠천. 숫자상으로는 저들의

    반 정도. 이쪽에는 성이 있고, 지켜내는 입장이란 것을 감안하면 무리만은

    아니지만. 문제는 바로 저들이 몬스터라는 거지. 알테지만 몬스터 개개의

    능력은 보통 인간보다 뛰어나니까."

    "거기에다 그 몬스터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돌아버릴 일이지. 우릴 못잡아먹어 안달이 났어."

    로빈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안팎으로 이 모양이니……. 기껏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도 지금 수도를

    지켜내지 못하면 말짱 헛거다. 이대로라면 위험해."

    "방법은 있습니까?"

    "방법?" 로빈은 쓰게 웃었다. "있다고 생각하나?"

    "……."

    "별 방법이 없어― 솔직히 말하면. 그저 맞서는 것 뿐이랄까……. 적 몬

    스터들 중에는 분명히 날 수 있는 몬스터가 있을 터, 그런 이상에야 인간

    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전술이 제대로 먹혀들어갈 리 만무하지

    않겠나."

    "……."

    "그래도,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나. 설령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힘은 다해야지. 우리에겐 지켜야만 할 것이

    있으니까."

    "……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그래."

    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시간이 없다, 에이드. ―아, 다 왔군."

    문득 달리는 것을 멈춘 로빈이 복도에 난 문을 가리켰다. 아무런 명패도

    붙어있지 않은 문이었다. 긴장된 표정의 에이드를 보고 로빈이 슬쩍 웃어

    보였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어차피 지금은 우리가 최고 명령권자나 다름없

    으니까."

    "……."

    그래서 긴장되는 겁니다, 라고 에이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냐."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로제레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희미

    한 미소가 떠올랐다. "―세다라 씨입니까." "그럼 나지, 누구겠어?" 퉁명

    스럽게 대답하며 세다라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며 그가 말했다.

    "잘도 이런 좁아터진 곳에서 지내고 있네. 이런 퀴퀴한 곳에서 말이야."

    "나름대로는 괜찮은 방입니다. 조용히 생각하기에는."

    로제레트의 말마따나 이 방은 조용히 사색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이었다

    . 적당히 햇빛이 들어왔고, 창 밖으로는 나하비아스 시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안온한 느낌을 주는 방이었다.

    "조용한 거 좋아하네."

    세다라가 빈정거렸다.

    "프리네리아 대륙을 발칵 뒤집어놓은 장본인이 조용히 사색을 즐긴다? 그

    게 말이나 되냐?"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조금 비웃는 듯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로제레

    트가 물었다. 세다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몰라서 묻냐. 내가 너랑 노닥거리려고 여기 왔겠어?"

    "역시 그것입니까."

    로제레트가 안경 속에서 눈을 빛냈다. 세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야."

    "보람이 있군요."

    로제레트는 서늘하게 미소지었다.

    "레이아다 시에서는 뒷처리가 깔끔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습니다만, 이번

    에는 그런 일이 없겠지요?"

    "날 뭘로 보는 거냐? 똑같은 실수를 두번이나 저지를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세다라가 울컥 소리질렀고, 로제레트는 피식 웃으며 양손

    을 들어 보였다.

    "물론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세다라 씨에게 같은 임무를 맡길 이

    유도 없었겠지요."

    "……흥."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지금 프리네리아에서 몬스터들이 움

    직이는 것만은 틀림없을 테니까요."

    "당연하지! 내가 그 녀석들을 움직이게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

    대체 3만이나 되는……."

    "거기까지."

    순간 싸늘한 눈빛으로 로제레트가 세다라의 말을 막았고, 세다라는 로제

    레트의 기에 질려 얼떨결에 말을 멈췄다. 로제레트가 나직하게 말했다.

    "유념해 주십시오, ……세다라 씨. 제국의 공격과 몬스터의 공격의 시기

    가 겹치는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인 겁니다. 그것을 착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제국과 몬스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알겠어."

    세다라는 떫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로제레트의 말이 옳은 말이

    긴 했지만, '인간'에게 일일이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어쨌거나 세다라 또한 하나의 마족으로서 인간들을 그다지 높게 쳐주지 않

    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로제레트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

    "계획은 절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해하실 테지요."

    "……음."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지오 세이버스와 제시아 이오리카가 기사 직위를

    반납했다고 하더군요."

    로제레트는 여상스런 어조로 말했다.

    "계획이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

    세다라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로제레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평온

    한 표정으로 세다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세다라가 물었

    다.

    "……처리하란 거냐, 내가?"

    "글쎄요."

    로제레트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 그건 그렇고, 세이어 그 자에 관한 처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거야 잘 되고 있지."

    비로소 세다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녀석은 크세이데레이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그리고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할 테고. 다른 계획이 다 실패해도 이것만은 성공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분명히 말하지, 놈은 내가 죽인다."

    그렇게 말하는 세다라의 목소리에는 확실한 자신이 담겨 있었다. 쓰윽 웃

    으며 그가 덧붙였다.

    "녀석한테 좋은 무기가 하나 생긴 것 같긴 하지만, 그런 정도로 이 나를

    상대할 순 없지. 철저하게 파멸시켜 버리겠어."

    "마음에 드는군요."

    로제레트가 웃었다.

    "기대하겠습니다, 세다라 씨."

    "맡겨 둬."

    우쭐해진 세다라가 손을 휘휘 저었고, 로제레트는 슬쩍 미소지으며 자리

    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이제부터 슬슬 움직여야겠군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세다라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던드로 향할 생각이 든 거냐?"

    "글쎄요……. 말씀드렸듯이 때를 기다린 것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적

    시라는 판단이 든 것 뿐이고요."

    "그저 우연이라 그거지? 그건 알아들었어."

    세다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걱정 마. 발설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겠지요."

    로제레트의 입가가 조금 말려올라갔다. 왼손 검지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그가 말했다.

    "그럼, 지오 세이버스와 제시아 이오리카의 건, 맡겨두겠습니다."

    "……."

    세다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레트는 다시 한 번 확실

    하게 확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 당시 로제레트는 지오와 제시아에

    게 이 일로 인한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사실 이러한

    세계에서 그런 약속이란 무가치한 것이었고, 세다라도 그것을 모를 만치

    순진하지는 않았다.

    "가차없군, 너란 녀석도."

    "피차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만."

    로제레트는 조용히 대답했다. 세다라가 낮게 킥 하고 웃었다.

    "좋아. 그럼 난 네 녀석이 맡긴 일들을 처리하러 가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아아."

    세다라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로제레트가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

    겼다. 이제부터 던드 시를 향해 군대를 출정시켜야 했던 것이었다. 로제레

    트는 차가운 조소를 입가에 띤 채 중얼거렸다.

    "그것을 아는 자는 모두 사라져야겠지……."

    고요한 복도 내에 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렀다.

    "……당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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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올립니다. 본업인 데스트를 잊은 것은 아니니 걱정 말아 주세요

    ! (……걱정 안 하게 생겼냐? 게다가 이번엔 양도 적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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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6440 / 21066 등록일 : 2001년 04월 19일 23:53

    등록자 : NEISSY 조 회 : 11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4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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