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긋남 …… (11)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다― 세이어는 조금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세이어는 세실이나 네이시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싶었다.
자신은 사실 마왕의 복제이며, 근본적으로 다하난을 적대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들의 반응이 어떠할지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말한다고 그들이 세이어에게서 싹 돌아서
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낙관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으로 고민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세실과 네이시는 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었고, 세이어도 그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던 만큼 그로서도 그에 부응해 그
만큼의 신뢰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요, 무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지금 세실은 세이어를 처음 보았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세이어
의 마나가 봉인되어버린 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미 사흘이 지났고, 여태
껏 숨쉬는 것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던 마나의 사용이 불가
능해진 것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익숙해졌다는
것이 곧 받아들였다는 것은 아닌만큼 어쩐지 세이어가 침울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1월 15일, 하루의 일과도 마무리지어진 저녁, 세이어의 방에서 세실은
평소보다도 더 밝은 얼굴로 세이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세이어도 그렇게 둔하지는 않은 터라 세실이 왜 이러는지 눈치챌 수 있었
고,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처음엔 상당히 경계했었죠."
헤헤 웃으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뭐, 그때 이야기는 별로 하고싶지 않네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아무래
도 좀 바보같았다고 생각돼서요."
"그렇군요."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의 세실은 그에게
상당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적대적이었는
데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꽤나 재미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요, 전 그때 세이어 씨가 언니를 빼앗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요. 말하자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떠돌이가 언니를 홀려서 빼앗아가려
한다… 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신나서 말하던 세실이 순간 멈칫했다. "…아." 세이어의 표정이 그리 좋
지 않았던 것이었다. 인상을 찌푸린다던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낸
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그에게 있어서 린의 일은 분명 상당
한 고민거리였던 것이었다.
사흘 전의 그 일 이후로 린은 ―세실의 표현에 따르자면― '완전히 맛이
가' 버렸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울적한 얼굴로 계속 무
언가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의 태반이 뜻모를 말들 뿐
이었지만 간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섞여나오기도 했는데, 거의다가
그녀 자신에 대한 자책의 말이었다. 세이어가 그녀 때문에 다쳤다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선 크나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세이어의 마음이 밝을 리가 없었다. ―세이어는 그 날
이후 린의 방에 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아픈 일이 쌓였을텐데
되는 일마다 이런 식이니…… 세실은 아차하며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아, 그리고 네이시 씨는 말예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문득 세이어가 그렇게 물었다. 의외의 질문에 세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뭐가요?"
"린 씨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 글쎄요."
세실은 당황해서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세이어란 이 남자……
상당히 직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는 배려도 꽤 해주는 듯 싶
지만…, 은근히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남자다.
"역시…… 이대로는 곤란할 것 같군요. 현실을 외면한 채 꿈속에만 눈을
두고 있는 행동 같은 것은 그다지 바라는 것이 아니니까요."
세이어는 천천히 미소지었다.
"세실 씨도 물론 걱정되시겠지요, 린 씨가?"
"……누, 누가 그런 언니 따윌…!"
세실은 시선을 창밖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녀의 눈썹이 조금씩 움찔거리
고 있었다. "…후후." 세이어는 낮게 웃음지었다.
세이어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 가보겠습니다. 소용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무의미할 것이
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전 안 가요."
퉁명스러움을 가장한 어투로 세실이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창 밖으로 돌
린 채였다.
"어차피 제가 가봤자 언닌 히스테리나 부릴 게 뻔해요."
"……그렇습니까."
세이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막 문을 닫으려는 그의
등뒤로 세실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다녀 오세요."
세이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
달칵. 조용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제발 먹어. 벌써 사흘이나 굶었잖아."
간절하게 말하며 아룬이 린에게 빵을 내밀었다. 하지만 린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무릎을 한데 모아 그 위에 깍지 낀 손을 얹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는 그녀에게 한숨을 내쉬며 아룬은 천천히 빵을 그녀
앞에 놓았다.
"부탁이야, 린……."
보지 않았지만, 아룬은 지금 린의 상태가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
령들에게 물어볼 것까지도 없었다. 그녀는 약하다. 너무 여리다. 아름답지
만 약한…… 마치 유리처럼, 부숴져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유리에는 이미 조금씩 금이 가 있다는 것을 아룬은 알 수 있었
다.
"죽으려는 거니, 린……."
아룬이 두번 세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
지 멍하니 풀린 눈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버린 채 무엇인가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안된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정말로 죽어 버릴 것이다. 아룬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단 하나…… 세이어 뿐이다.
……똑똑.
"세이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린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고, 이어 들린 목소리에 아룬은
반색을 했다. 세이어―!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가 왔으니, 어
떻게든 될 수 있을 것이다.
"아, 예, 들어오십시오."
아룬은 조금 허둥대며 문을 열어 주었다. 아룬을 본 세이어가 가볍게 고
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룬 씨가 계셨군요."
"예……."
아룬은 혀를 조금 내밀어 말라붙은 입술을 핥았다.
"린을 보시려고 오신 것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린의 상태가 상당히 나쁩니다. 충격이 컸던 모양인
지… 깨어나려 하질 않아요."
"그렇군요."
세이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멍하니 앉아있는 린의 모습을
힐끗 바라본 그가 중얼거렸다.
"감정에 파묻혀 버리다…… 기억에 있는 모습이로군요."
세이어는 린 가까이로 다가갔다.
린은 그 자세 그대로 미동하지 않고 있었다. "린 씨." 세이어는 린의 어
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러나 역시 린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고,
세이어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움찔.
순간, 약간이지만 린의 몸이 움찔했다. 세이어는 소근거리는듯한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듣고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린의 몸이 다시 한 번 움찔했지만 그뿐,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세이어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듯 빙그레 미소지었다.
"겉치레 따위는 필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론을 말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하며 세이어는 가만히 린을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세이어는 감정이 배제된, 그러나 차갑지만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린 씨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흘 전의 부상은 그로 인해 생
긴 것, 그것 때문에 린 씨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린의 몸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녀가 더듬거
리며 말했다.
"제가 그때…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그러지만 않았어도 세이어 님이
… 다치지는 않았을… 그랬을… 텐데…."
"그건 사실입니다."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래도!"
린의 목소리에 물기가 섞여나왔다. 린이 고개를 숙인 아래로 방바닥에 물
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세이어는 린의 어깨를 붙든 손
에 조금 힘을 넣었다.
"린 씨."
"전……."
"절 보십시오."
세이어가 말했다.
"절 보십시오, 린 씨."
세이어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부드러
워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린은 순간 멈칫했다. "
고개를 드십시오. 그리고 절 보십시오." 린은 머뭇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슬
퍼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기뻐 보이는 그런 표정이었다.
세이어는 그런 린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어 주었다.
"물론 린 씨께서 제게 사용한 그 주문… 때문에 현재의 제가 곤란을 겪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꼭 해결해야 할 일이겠지
요. 그러나 제가 여기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세이어는 잠시 말을 끊고 린을 응시했다. 불안감과 기대 두가지를
함께 담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어쩔 수 없나. 생각하며
세이어가 말을 이었다.
"전 린 씨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부상까지 입으며 린 씨를 내보
낸 것은 린 씨더러 이렇게 자책감에 시달리라고 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
까?"
"……그럼…."
"제가 한 약속은 린 씨를 지켜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때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린 씨께서
이렇게 행동하신다면 그때의 제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전
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린 씨께서 그
때의 일로 계속 괴로워하시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제 행동은 잘못된 것이
되어버릴 겁니다. 제 행동이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지 의미가 없는 것이
었는지, 그것은 앞으로의 린 씨의 행동에 의해 결정될 겁니다. 그것은
린 씨의 몫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린은 안타까운 눈으로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어쨌거나 그녀가 사용했던
그 주문 때문에 세이어가 다치게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일인 것이
었다.
하지만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버틸 힘은 지금의 제게도 남아 있습니
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 동료들이 주는 힘이라고 해야겠습니다만."
"아직은……."
"제가 지킬 수 있는 것은 린 씨의 몸일 뿐, 정신만큼은 어쩔 수 없습니다
. 만약 제게 도움을 주시려는 생각이 있으시다면, 스스로 일어서 주십시
오."
그렇게 말하고 세이어는 몸을 일으켰다. 린의 시선이 세이어를 쫓았다.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세, 세이어 님!"
"예?"
"지금… 가실 건가요?"
"아아."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 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찬물을 들이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린의 풀이 탁 죽어 버렸다.
물론 세이어도 린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
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이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
문 앞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있는 아룬에게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나머지는 부탁드립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아룬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어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방을 나섰다. 달칵―. 조용히 방문이 닫혔다.
'내게… 관심을 가져 주셨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이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린은 생각했다.
'세실…….'
그녀의 손가락이 품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스크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에-르테'. 다르가 말해준대로라면 이 스크롤은 세이어에게 건 주문을 풀
수 있는 열쇠다. 지금이라도 사용한다면…….
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돼. 아직은…….'
린의 방을 나선 세이어는 이윽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시간은
이미 밤… 주위는 상당히 어두웠다. 벽에 드문드문 걸려 있는 촛불이 있어
어느 정도는 보였지만… 워낙 희미한 불빛인 터라 그리 잘 보이지는 않았
다.
……하지만 세이어에게는 아주 잘 보였다.
"악취미로군요……."
복도 저편의 한 지점을 응시하며 그가 말했다.
"듣고 있었던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숨어 있지 말고 슬슬 나오시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크으."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많이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인지는 충분
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음성이었다. "너란 녀석, 정말 재미없는
녀석이야. 좀 놀래켜 줄래도 도무지 그게 안 되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이
천천히 세이어를 향해 걸어왔다.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장난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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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하하하하하핫∼∼!! 이틀에 한 번은 뭐가 이틀에 한 번이냐!! 에잇
죽어, 죽어버려랏 이 허접작가야아아아아∼∼∼!! (……ㅠ_ㅠ)
다음 편은…… 아마 이번 주 내로 올라올 지도? (……하지만 이미 신용
은 잃을대로 잃었을 터. 기다리시지 않는 것이 좋을듯. ……쿨럭)
아아…… 이런 작가에게도 기쁨은 있었으니, 놀라지 마십시오!! 제게도
팬멜이 왔습니다아아아아∼∼∼!! 정말로 이것은 천지개벽하고 해가 남
쪽에서 뜰 일인 것입니다!!
팬멜 달라고 주절거리긴 했지만 설마하니 정말로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
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와 버리다니…… ㅠ_ㅠ
하여 꼬리말을 빌어 또다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아프린 님, 그리고
카인 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아아아아!!
Neissy였습니다.
추신. 감상이나 비평, 언제나 환영입니다.
(물론 추천도 환영…… 쿨럭-_-;;)
번 호 : 12782 / 21165 등록일 : 2000년 12월 25일 23:31
등록자 : NEISSY 조 회 : 13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3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