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23화 (124/158)
  • 5. 어긋남 …… (2)

    칼리스타 제국이 선전포고를 해온 지 사흘째.

    제국군이 커스 시에 집결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커스 시는 칼리스타

    제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 프리네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있었다. 리

    단 시―제국의 수도이다―에서 커스 시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4

    일. 선전포고를 해온 지 3일 만에 집결했다면, 상당히 빠른 진군인 셈이었

    다.

    "역시… 이미 준비는 되어 있었다는 것일까."

    에이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제국군 약 16만, 용병단 약 3만, 마법사단 2천. 이

    것이 현재 밝혀진 제국의 병력이었다. 합산해보면 약 20만…. 굉장한 대군

    인 셈이다. 그에 비해 프리네리아 왕국의 병력은 고작 해봐야 11만 가량.

    거의 2배 가량 되는 수의 적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것은, 바로 제국에는 마족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들까지 계산한다면 실질적 힘의 차이는 3배, 혹은 4배 이상 될 것이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 쪽은 공격해오는 입장이고, 이 쪽은 수비하

    는 입장이라는 사실이었다. 자고로 잘 세워진 성은 3배의 병력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한다. 전쟁은 원래 공격해오는 쪽이 좀더 불리하기 마련…

    .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힘들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패배하지 않게

    하는 것은 가능할 것도 같았다.

    한참 에이드가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조용히 서재의 문이 열렸다. 인기

    척을 느낀 에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 로빈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 예." 에이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이십니까…,

    로빈 님?"

    "웬일이냐…고? 글쎄, 왜일까."

    로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날 텐데, 준비는 되었나?"

    "예……? 전쟁 준비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 말고."

    로빈은 에이드의 대답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다 되었냐, 그 말이지. 어때, 마음은 굳게 먹었겠지?"

    "아아, 예. 마음의 준비라면 다 되어 있습니다."

    "잘됐군." 로빈은 빙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에이드….

    실은 할 말이 있어."

    "예? 무슨?"

    "세이어 씨의 처리에 관해서야."

    에이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로빈은 슬며시 머리

    를 긁적이며 품 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적의 예상 진격 경로야."

    로빈이 펼친 지도에는 빨간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빨간 선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로빈이 말했다. "일단 적의 선봉은 커스 시

    에서 집결한다, 이건 지금 당장 닥친 일이지." 그의 손가락이 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하비아스 시로 진군, 첫 격전지는 그곳이 된

    다."

    "나하비아스 시에는 군사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에이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로빈은 슬며시 고개를 저으며 어깨

    를 으쓱했다. "제국과 가장 가까운 도시를 소홀히 한 탓이지.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겠지만…, 역시, 좀더 많이 주둔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나. 너무 많이 주둔시

    키면 오히려 적을 자극시키는 결과를 부르니까."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 어쨌든…," 로빈의 손가락이 좀더 아래를 짚었다. "나하비아스 시

    를 점령한 적들은 던드 시를 치러 내려온다. 하지만, 던드는 그리 만만한

    도시가 아니지."

    "지금 던드 시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수는 이만 육천…, 나하비아스 시

    와 비슷하군요."

    "나하비아스를 점령한 적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테니, 그 때는 던드가

    유리한 쪽에 속하게 되는 거지." 로빈은 손가락을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

    럼 이제 센드 시가 문제야." 로빈의 손가락이 다시 커스 시를 짚었다. "이

    시점에서, 커스 시에서 1차 지원군이 진군해 온다. 경로는……," 로빈은

    천천히 빨간 선을 따라 손가락을 내렸다. "육로,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커스 시에서 센드 시로 이어지는 파란 선을 따라가며 그가

    말을 이었다. "해로."

    "해로… 하긴 당연하군요."

    에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스 시에서 센드 시까지 배로는 고작해야 3일 거리니까요."

    "그래. 그건 그런데…,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다시 로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1차 지원군에게 뒤를 맡긴 선발군이 던드 시를 우회

    해서 센드 시로 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센드 시는 양쪽에

    서 두들겨맞는 꼴이 되어 버리는 거지. 현재 센드 시에 주둔하고 있는 병

    력은 삼만 이천. 그렇게 적은 수는 아니긴 한데…."

    "워낙에 제국군의 수가 많은 것이로군요."

    "그게 문제지. 에이드 자네도 알다시피…. 센드 시가 함락당하면 그 다음

    은 사이아스 시야. 게이다린 산만 넘으면 바로니까… 하루도 걸리지 않

    겠지."

    로빈의 눈이 빛났다.

    "알겠지, 에이드? 결국 중요한 곳은 사이아스 시가 아니야. 오히려 던드

    시, 그리고 센드 시, 이 두 성이 중요한 거지."

    "예.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야, 에이드,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예?"

    에이드는 약간 어리둥절해져서 로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로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여기까지야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짐작할 수 있

    겠지. 하지만, 저들의 전력은 단지 이뿐만이 아니지. 설마 잊은 건 아닐

    테지, 에이드?"

    "예… 설마……?"

    "그 설마가 이 설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마족."

    "마족…."

    "이들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일이란 말이지. 그 마족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물론 우리에게 '세이어'

    라는 히든 카드가 있긴 하지만…, 이 카드의 처리가 말이지……."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로빈을 에이드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무

    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으음, 그게. 세이어 씨는 일단 '성기사'잖나. 단독 행동을 취하게 해 주

    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그게 좀 힘들어. 기사단, 그러니까, 내가 통솔

    하고 있는 비르테른 성기사단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게 아무래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말이야."

    "세이어 씨가 무슨 말을 하신 거로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로빈은 난처하다는 듯이 눈썹을 조금 오므리며 미소지었다.

    "던드 시로 보내 달라고 하더군. 최초의 마족 등장이 그곳에서일 거라던

    가……."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문제인 거지." 로빈은 쓴웃음을 지었

    다. "차라리 세이어 씨가 성기사가 아니었다면 일이 간단해졌을 지도 모르

    겠는데 말이야. 세이어 씨가 원하는 건 '성기사로서' 마족들을 없애는 거

    란 게 문제지."

    "예?"

    "모르겠나? 다시 말해, 세이어 씨는 '공식적으로는' 성기사들이 마족들이

    해치운 것이라고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란 말이야. 제국 측에게 자신의

    정체를 노출당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로빈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에이드는 눈썹을 약간 찌푸리고는 왼손을 들

    어 이마를 짚었다. 가볍게 이마를 긁적이며 그가 말했다.

    "결국 던드 시로 비르테른 성기사단의 일부가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로군

    요."

    "으음. 세이어 씨에게 성기사단의 통솔권도 주어야 한다는 뜻인데…, 실

    은 내가 갔으면 좋겠는데, 우리들은 전시에 수도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

    잖나. 수도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보내긴 해야 할 텐데 보내기가 힘들다……. 난감한 상황이로군요."

    "그래서 말인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에이드?"

    "글쎄요……."

    한참 동안 둘은 머리를 맞대고 세이어의 처리로 고심했다.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문득 에이드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빛냈다. "이건 어떨까

    요?" 로빈은 말해 보라는 듯이 에이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호위역으로 세이어 씨, 그리고 성기사 10명 정도를 보내는 겁니다."

    "호위?… 누구의?"

    "니리아 님이 어떻겠습니까?"

    "니리아 님?"

    "그러니까 말입니다……."

    에이드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격전지라 예상되는 던드 시. 분명 그곳에는 적 마법사단이 맹공격을 감행

    해 올 것이다. 그에 대항하기 위해 제 1 궁정마법사―'프로나드'인 니리아

    메디시스를 보내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성기사단을 붙인다.

    "…그럴 듯 하긴 하군. 납득이 가는 일이긴 하지만…, 니리아 님께서 받

    아들여 주실까? 위험한 곳으로 가는 일인데 말이야."

    로빈은 아무래도 조금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이드는 가만히 고개

    를 저었다.

    "세이어 씨께서 호위를 한다는 것이 명분뿐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

    제로도 세이어 씨는 니리아 님의 보호를 훌륭하게 해 내실 수 있을 겁니

    다. 그의 실력은 로빈 님도 잘 아실 텐데요."

    물론 잘 알고 있다. 매직 미사일 한 번으로 아디즈를 눕힐 수 있는 마법

    실력에, 프리네리아 왕국 최강의 검사인 에이드를 가지고 놀 정도로 뛰어

    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 그의 실력은 당시 로빈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바 있었다.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군. …그럼 남은 건 왕자님의 허락인가?"

    "받아들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우리에게 도움

    이 되는 일이니까요."

    "도움이라…, 그렇군."

    로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며시 눈짓하며 그는 말을 이었다.

    "제국은 전쟁을 상당히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아. 아마도 전격전을 펼칠 생

    각인 것 같던데… 확실히 준비해 두도록 해, 에이드."

    "……준비…라고요."

    "이젠 전쟁인 거니까. 그걸 잊지 말도록 해."

    그렇게 말한 로빈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서재를 빠져나갔고, 남은 에이

    드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전쟁……."

    "…나도 같이 가겠어."

    니리아의 방. 니리아의 설명을 듣던 네이시가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니리아는 네이시의 이 말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네이시. 난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란 말이야. 너까지 그런 곳에

    가게 하고 싶진 않아."

    "아니, 난 꼭 가야겠어."

    네이시는 단호한 어투로 또박또박 끊어내듯이 말했다.

    니리아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프로나드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다하기

    위해 던드 시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적군 마법사단에 대항할 만한 마법사로

    그녀가 적격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세이어 씨가 네 호위를 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난 더더욱 가야

    만 해."

    "어째서?"

    "난 세이어 씨를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

    니리아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네이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미간을 오므리며 그녀가 말했다.

    "뭐야…, 그럼 날 따라오는 게 아니라, 세이어 씨를 따라가려는 거였단

    말이야? 어차피 난 상관 없다는 거네?"

    "아니, 그렇다고 말하진……."

    "변명은 필요없어. 좋아, 말해 봐. 만약에 세이어 씨가 그냥 여기 계속

    있을 거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날 따라올 거야, 아님 세이어 씨

    를 따라 여기 남을 거야?"

    "무슨……."

    네이시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머뭇거리자 니리아는

    심통이 났는지 미간을 한층 더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왜 말 못해? 흥…, 결국 말 뿐이었다는 거구나."

    "그, 그런 게 아니잖아. 니리아, 그러니까 난……,"

    "변명은 필요 없댔지!"

    니리아가 소리를 높였고, 네이시는 얼굴이 빨개진 채 우물쭈물했다. 시린

    을 가지고 놀던(?) 네이시였지만, 그도 자신의 연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니리아는 눈꼬리를 치켜세우고서 네이시를 노려보았고, 네이

    시는 말 한번 잘못한 죄로 고양이 앞의 쥐 꼴로 떨어야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니리아의 눈치를 보던 네이시가 슬그머니 입을 열

    려는 순간, 니리아가 쿡쿡거리고 웃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쿡. …푸훗. 아하하하하하하∼!"

    "……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네이시가 눈을 멀뚱하니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니리아는 한층 더 소리 높여 웃었다. "뭐, 뭐야?" 네이시는 약

    간 당황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러지…? 화를 내는 것 같더

    니, 뭐가 재미있다고 이러는 거야?

    "아하하, 네이시, 장난이야 장난."

    "……뭐?"

    "장난 좀 쳐봤어. 설마 내가 네 말뜻을 못 알아들었을 것 같아? …푸훗.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꼴이라

    니. 누가 네 이런 모습을 좀 봤어야 하는 건데."

    "너…, 너무하잖아……."

    네이시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고, 니리아는 한차례 미소지었다.

    "장난인지 아닌지도 파악 못한 네 잘못이지 뭐. 그나저나, 너도 던드 시

    로 가겠다고?"

    "…말 돌리지 마."

    "흐흥, 뭐 어때. 어쨌든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이거였잖아."

    "체……. 마음에 안 들어."

    네이시가 툴툴거렸다.

    ====================

    야아……. 정말이지 본편은 오래간만에 올리는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 (감회는 무슨 얼어죽을 감회) 이제부터 또다시 꾸준하게 올릴 지도….

    (장담은 못해요.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리 소설이 잘 안써지거든요;)

    이번 편은 조금 이해하시기 어려웠을 지도…. 지도를 봐 가시면서―지

    도는 잡담란에 올린 바 있습니다. 'lt 데스트로이아' 하시면 아마 나올

    겁니다― 보시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셨길 빌며.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1333 / 21165 등록일 : 2000년 10월 24일 00:43

    등록자 : NEISSY 조 회 : 14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21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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