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19화 (12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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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말이, 뭐? 내 말이 틀렸어?"

    얼굴이 발갛게 부어 올랐지만 세실은 전혀 아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

    려 미소까지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라고. 게다가 세이어 씬 이미 나한테 마음을 열

    었어. 이건 어떻게 생각해? 그래, 언닌 아룬 오빠하고나 잘 놀아 보라고

    ! 쓸데없이 같잖은 짓거린 하지도 말고!"

    "세실!"

    짝!…

    린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았다. 린의 얼굴도 발갛게 부어 오르는 것을 보

    며 세실이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굴 때려야 하는데? 가증스러운 건 언니야. 알아들어? 아주, 정말

    이지 아∼주 가증스러워."

    그렇게 말하고 세실은 방을 나가버렸다. 쾅! 방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

    린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린의 다리가 후들거

    렸다. 털썩. 그녀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

    렸다.

    "끅, 끄흑…!"

    어딘가에서 막혀버린 듯, 울음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눈물

    만 가득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꺽꺽거리고 울었다.

    "소식 들었어, 에이드?"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에이드를 찾아온 로빈의 첫마

    디였다. 에이드는 의아한 얼굴로 로빈을 바라보다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

    했다.

    "무슨 소식 말씀이십니까? 아,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어, 괜찮아.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아닌데."

    로빈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빙그레 웃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제국의 황태자가 찾아온다는군."

    "예? 무슨 일로?"

    "평화의 제스처라나. 이번의 군비 확장이 전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직접 온다는 것 같아."

    "희한한 일이군요."

    "그래. 희한한 일이지."

    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대로라면 아마 한 오 일 정도 후면 여기 도착하는 모양이야. 이미

    환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흐음…."

    "이봐, 에이드. 이걸 어떻게 생각해?"

    "예? 뭐가 말입니까?"

    에이드는 눈을 깜빡이며 멀뚱한 얼굴로 로빈을 쳐다보았다. 로빈은 한차

    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말이 틀리잖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어, 그러니까… 세이어 씨의 말과 틀리잖나? 그 때 세이어 씨가 분명히

    전쟁은 일어날 것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제국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고 있지 않아?"

    "아… 그렇군요."

    "어느 쪽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세이어 씨가 거짓말을 할 사람 같

    아 보이지는 않지만, 제국에서는 황태자가 직접 와서 해명을 한다니, 이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잖아?"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는 겁니까?"

    "거짓말이라기보다… 어쨌든 한쪽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거지."

    로빈은 문득 미소를 지었다. 한껏 긴장된 표정의 에이드를 향해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는 말을 이었다. "뭐, 사실은 어느 쪽이든 큰

    문제는 없어. 일단은 지금 같이 계속 대비하고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리

    고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전쟁은 일어날 것 같아."

    "으음…."

    "자, 이제 내가 할 말은 끝냈고,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예?"

    "아, 뭐 겸사겸사 내가 할 말도 좀 한 거지. 아무튼, 크레슨트 님의 전언

    이다. 신탁이 있었다는군. 이번 전쟁에서 '회색의 프렌테이즈'를 다시

    보게 될 거라나. 그 때 잘 생각해서 움직이라고 전해 주라더군."

    "신디라이클 씨가… 살아 계신 모양이군요?"

    "아아," 로빈은 싱긋 웃어 보였다. "살아 있는 모양이야. 마왕 세라린이

    봐 준 건지, 뒤처리를 허술하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로서

    는 잘 된 일이지."

    "그렇군요…."

    "자,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잘 있어."

    "아, 같이 나가지요. 저도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음? 무슨 일로?"

    로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엘피 왕녀님…."

    "…아하,"

    로빈은 빙그레 미소짓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앗하하하. 그렇군. 그러고 보니 에이드는 엘피 왕녀님과 한창 열애중이

    었지? 핫하하. 그래, 식은 언제인가?"

    "놀리지 마십시오."

    "뭐, 그렇게 정색을 하고 대답할 건 없잖나? 어쨌든, 잘 되길 빌어."

    "예…."

    "그럼, 나갈까."

    로빈은 의미가 담긴 미소를 에이드에게 보냈고, 에이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임으로써 그에 화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닷새 후, 10월 28일.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 황혼이 빛나는 아래, 프리네리아 왕국의 수도 사

    이아스 시, 프리네리아 왕성으로 한 대의 마차와 다섯 명의 기사들이 들어

    왔다. 이미 이들을 맞아 들일 준비는 다 끝난 상태였기에, 이들은 일사천

    리로 왕성 안까지 들어 올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종들이 공손한 태도로 이들을 맞이했다. 왕성에서는 우선 이들을 욕실

    로 안내했고, 덕분에 황태자 일행은 목욕을 하며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저하께서는 만찬을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시종들은 황태자 일행을 지든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만찬실

    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서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그 빛을 발하

    고 있었고, 아래에서는 흰색의 식탁보가 덮여진 길다란 직사각형의 식탁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길게 놓여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고급스러운 진

    미들이 놓여져 있었고, 더불어 안개꽃, 장미꽃 같은 꽃들도 꽃병에 꽂혀

    놓여져 있어 식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식탁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윤기 흐르는 금발, 푸른

    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지적인 모습의 남자― 바로 지든 레이디카 프리네리

    아, 프리네리아 왕국의 왕자였다. ―최근, 프리네리아의 현 왕인 슈나로드

    12세는 지든에게 모든 정사를 일임하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디스튼훼이아 님. 먼 길에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잔잔한 축복으로 인한 다하난의 배려로 평안한 여로였으니, 그 축복에

    감사할 일이지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프리네리아 님."

    프리네리아 Frineriah 대륙의 프리네리아 Frineria 왕국, 거기의 프리네

    리아 Prineria 님인가? 생각하며 케일프로이 2세― 황태자는 실소를 지었

    다. 지든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직접 오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통이 크시군요."

    "제국의 평화에 대한 의지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자, 일단 앉으십시오.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계

    속할까 합니다."

    "아아… 예, 그러지요."

    식탁 위에는 앉을 사람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 위치대로

    앉는다면 식탁의 한 편에는 프리네리아 왕국 사람이, 그리고 반대편은 칼

    리스타 제국 사람이 앉게 되어 있었다.

    그 배열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프리네리아 왕국 쪽― 순서대로 지든 레

    이디카 프리네리아, 에이드 카알, 로빈 스피트, 그리고 '세이어'. 또 칼리

    스타 제국 쪽으로는― 순서대로 케일프로이 샴 디스튼훼이아 2세, 파르네

    제 폰타나, 페마른벨트 위베트, 빌헬름 린텐, 그리고 '지오 세이버스', '

    제시아 이오리카'.

    앉는 순간 사람들의 눈이 마주쳤고, 그들은 서로에게 호의적인 미소를 지

    어 보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히익!'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세이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지오와 제시아의 얼굴

    이 사색이 되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하얗게 질려가는

    모습이란 꽤 볼만한 것이었다. '저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언뜻 세이어가 미소짓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알 듯 말 듯 미소를 짓

    고 있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 했다… '당신들은 용병이 아니었습니

    까? 어째서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다… 지오와 제시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사실 세이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세이어는 지

    오들과는 달리 그리 당황하진 않았지만. 게다가 세이어는 당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저쪽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기에 여유 있게 미소지을 수 있

    었다. ―그리고 이 미소가 지오와 제시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위

    협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세이어에게는 이 상황이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지오와 제시

    아는 그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의 정체가 밝혀지

    지만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단 '성기

    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좋겠지요. 무슨 생각이 있는 듯 싶지만….'

    세이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

    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전쟁과 관계된 일일 것이다.

    이들의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지든이 입을 열었다.

    "피차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 그럼 천천히 식사를 시작해

    볼까요?"

    "좋습니다."

    케일프로이 2세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지든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고, 왕국의 왕위계승자와 제국의 황태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날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디스튼훼이아 님?"

    "아…. 그다지 좋다고는 하기 힘들더군요."

    "큰일입니다. 이런 좋지 못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은 결코 환영할 만한 일

    이 되지 못하지요. 다행히도 그저께부터는 좋은 날씨가 계속되니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

    "안심한다…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안심."

    둘의 대화는 띄엄띄엄 이어졌다. 서로 아직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빙빙 돌던 이야기는 천천히 그 줄기가 잡혀서, 이윽고 본격적으로 식사가

    진행되었을 즈음에는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저희들에게는 그것이 불안한 일이었던 것이지요."

    "하하…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군비 확장이 좀 크게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실은 사정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몬스터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탓이지요. 특히 변두리에서는 피해가 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군을 주둔시킬 계획입니다."

    "그렇군요…!"

    지든은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라린의 부

    활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케일프로이 2세의 말이 남의

    말 같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군비를 확장하신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니오, 사과씩이나 하실 것까지야…."

    지든은 유쾌하게 웃었다. 오해가 풀린 것이 기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담소가 이어졌고, 둘은 즐겁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하하. 곤란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해결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지든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방은 준비 되어 있습니다. 물론 쉬고 가시겠지요?"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라 안의 일로 바쁘기 때문에 내일쯤에는 가

    보아야 할 것 같군요."

    "아아,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케일프로이 2세는 유쾌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전개의 완급 조절이 힘드네요…. 실은 이 뒤로도 이어질 내용이 더 있

    었습니다만, 별로 적절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잘라버렸습니다.

    덕분에 오늘은 줄수가 좀 적군요. (…그래도 300줄은 넘는군요. 왓핫핫)

    …오늘 내용은…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으음;;

    오타 발견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여유 있게 미소지었다, 인데 어째서

    여우 있게... 가 된 거지...(-_-;;)

    Neissy였습니다.

    번 호 : 10612 / 21128 등록일 : 2000년 09월 21일 00:08

    등록자 : NEISSY 조 회 : 15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1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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