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109화 (110/158)

4. 선택 …… (6)

"…전쟁이라."

지오는 대수롭잖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썹을 위로 치켜올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지오가 말했다.

"당연한 거잖아. 전쟁이 일어나려 하니까 용병이 필요한 거고, 그러니까 우리가

고용된 거겠지. 새삼스럽게 뭘?"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만." 제시아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지오를 바라보았

다. 지오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하며 제시아를 마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어딘가 분위기가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글쎄, 뭐랄까…." 제시아는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제시아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

"흐음∼. 그거, 여자의 육감이란 거야?"

"그럴지도."

"하지만 그렇게 애매해서야 별 의미가 없잖아."

"응, 그렇긴 하지만."

제시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왠지 불안해. 왜, 그렇잖아. 전에는 전쟁이라도 해 봐야 정말 소규모의

전투―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그런 것들이었는데. 이번엔 정말 큰 전쟁인

것 같아."

제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릴 정도의… 그런 거."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지오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짜증난다는 듯한 기색이었지만, 제시아는 그의

말 속에 내재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무리하게 강한 척 하기는… 그렇게 생각

하며 제시아가 말했다.

"괜찮겠어, 프리네리아가 망해도?"

"쳇." 지오가 혀를 찼다. "왜 이야기가 거기까지 비약하는 거야? 물론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보통 승전국이라고 해도 패전국을 집어삼키거나 하

지는 않는다구. 어지간한 원한이 있지 않은 이상은 멸망시키지 않아. …그리고 무

엇보다도,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왜 미리부터 그런 걱정을 하는 건데?"

"틀려, 지오."

제시아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지오, 너 여기 총리대신의 얼굴 본 적 있어?"

"어, 로세레트… 나아이엘이라던가 하는 사람?"

"로제레트 나하이벨. 그래, 그 사람."

"당연히 본 적 있지. 그 사람 군 내를 자주 관찰하잖아."

지오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제시아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

다.

"나, 그 사람의 눈을 본 적이 있어."

"그래?"

지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느껴지긴 뭐가 느껴져?"

제시아의 물음에 지오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시아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좀 쓰고 살아. 도박에만 정신 팔고 살지 좀 말고."

"신경 꺼."

지오가 울컥해서 답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지오를 향해 제시아가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뭐 그걸 가지고 삐지는 거야?" "안 삐졌어." "그럼?

" 지오는 입을 다물었고, 제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계속 이야기할게."

지오는 말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며 제시아를 바라보았다.

"뭐랄까, 그 사람 왠지 무서운 분위기였어."

제시아는 예전에 잠깐 스쳐지나가듯 보았던 로제레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 번,

그것도 말 그대로 스쳐지나가듯 본 것일 뿐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마치 제시아의

뇌리에 각인되기라도 한 듯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

로 강렬한 느낌이었다.

"특히 그 사람의 눈빛은 말이지." 제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지오를 쳐다보았다. 지

오는 멀뚱히 제시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어쨌다고?" "…으응." 제

시아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그게 뭐야?"

지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시아가 답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무언가 일어날 것 같아. 기분 나쁜 예감이 들어."

"…글쎄," 지오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내가 뭘 하길 바라는데?"

"제국에서 싸우기로 한 것,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아?"

지오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꽤나 감상적이네. 어차피 이미 계약까지 다

해놨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는데."

"그래. 그랬지." 제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천천히 팔을 뒤로 돌려 목 뒤

에서 깍지를 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예감이 든단 말이야."

"흠∼. 하지만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이미 카드는 펼쳐졌고, 앞으로의 전

개가 우리가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수밖엔 없으니까."

지오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가볍게 치켜세운 검지손가락을

슬슬 흔드는 그를 보며 제시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한데?"

눈을 깜빡이며 지오가 물었다. 제시아는 픽 웃으며 말했다. "넌 왜 꼭 비유를 해

도 도박 이야기를 하는 거야?" "……." 지오는 물끄러미 제시아를 쳐다보았다. 제

시아가 빙긋 미소지었다.

"왜 그래?"

"…왜 그런 걸 잡고 늘어지는 거야? 젠장."

지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제시아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지오에게로 얼

굴을 가까이하며 제시아가 말했다.

"평소에 잘 하면 내가 이러지도 않지. 너 아까도…."

"안 들려, 안 들려."

귀를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지오. 제시아는 쿡쿡 웃었다.

"그래. 알았어. 이야기도 끝났고, 이제 좀 놀자."

"좋지." 지오가 재빨리 답했고, 제시아는 다시 한 번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안

들린다더니, 잘 들리는 모양이네?" "……." 지오는 으득 이를 갈며 말했다.

"독순술이야, 독순술!"

"후훗."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 건가, 헤이라스." 세라린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위

압감을 주는 어조였다.

자그마한 동굴 속. 어둡고 컴컴한 이 동굴 속에 두 존재가 서로를 마주보고 벽에

기대서 있었다. 마왕, 세라린과 헤이라스였다. 계속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헤이라

스를 세라린은 추궁하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똑.

동굴 안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때를 맞춰,

천천히 헤이라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연녹색 눈동자가 순간 가볍게 흔들렸다. "…

내게서 무얼 원하는 거지?"

"진실." 세라린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세라린은 스윽 눈을 들어 헤이라스를 쳐다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어둠보다도 더 짙은 칠흑의 눈동자.

헤이라스는 약간 움찔하며 물었다. "진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세라린은 입술을 조소의 모양으로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에 헤이라스는 조금 기분

이 나빠졌지만, 특별히 무어라 할 말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일단 어떻게 세라린

을 돌려보내냐를 궁리해야 할 때다.

헤이라스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세라린은 나직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까…." 세라린은 헤이라스를 노려보았다.

"네놈, 무얼 획책하고 있는 거냐."

"획책이라니?"

헤이라스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흥." 세라린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나."

"뭘."

"칼리스타의 일. 무엇을 꾸미는 거지."

세라린은 천천히 팔짱을 꼈다. "우리는 인간들의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는 것을 잊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은 '사신 전쟁' 이후로 결정된 금기였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만 하는. 예외는 없었다. 내가 봉인당한 이유도 그것이

었으니."

헤이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금기가 풀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그것은 아직까지 유효한 사항일 텐데.

설마 네놈은 거기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말하는 게 어떤가.

네 힘을 칼리스타에 사용하는 이유를."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지?"

헤이라스가 입을 열었다. 탁한 목소리였다.

"나에게 말해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

"글쎄. 어떻다고 생각하지?"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 세라린은 찬찬히 헤이라스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표

정에서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적의를 느낀 세라린은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지. 이것은 네 의지인가?"

"…무슨 뜻이지?"

헤이라스는 약간 머뭇거렸다. 세라린은 진득하니 비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모르겠다는 건가?"

"―아니."

헤이라스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물었다. "하지만 내가 왜 네게 그런 것

을 알려야 하지?"

"훗…," 세라린이 피식 조소했다. "대답해줘서 고맙군."

"뭐?"

헤이라스는 눈썹을 찡그렸다. 다소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세라

린은 다시 한 번 조소를 보내며 말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내가 무어라 대답했는데?"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지."

"…큭."

한 방 먹은 표정으로 헤이라스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세라린은 천천히 표정을 굳

히며 말했다.

"말해두겠다. 헤이라스."

"……."

"잠깐 동안…, 잠깐 동안은 네가 하는 일을 지켜봐 주겠다. 잠깐 동안이다. 만약

네가 끝까지 그 태도를 고수하고 있겠다면 나도 행동을 취하겠다."

"…행동?"

헤이라스가 미간을 오므렸다.

"무슨 행동을 취하겠다는 거지, 세라린? 네가 이 일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을 텐데?"

"과연 그럴까."

세라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금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헤이라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헤이라스는 슬쩍 고개를 가로 저어 보였다. 세라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모른다라…."

세라린은 낮게 웃었다.

"그래… 아무래도 좋다. 넌 네 나름대로 행동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나도 내 나름

대로 행동하도록 하겠다."

"네가 그런 소리를 해 보았자 소용 없다고 했을 텐데?"

"네가 예외가 될 수 있다면 나도 예외가 될 수 있다."

세라린은 나직하게 말했다. 고개를 삐딱하게 세우며 세라린은 천천히 팔짱을 낀

손을 바꾸었다. 헤이라스가 말했다.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그렇다."

헤이라스의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

"너… 나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냐?"

"필요하다면."

세라린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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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방학이 끝나가는군요. …아, 이미 개학하신 분도 있네요. 전 금요일 개학

입니다. 내일까지는 잘∼ 놀 수 있죠. (…라고 해도 소설 쓰는데 시간 다 보내지

만) 음. 그러고보면 수능도 몇 달 안 남았군요. 방학 끝나면 공부 좀 해야지….

…예, 그렇습니다. 이제 데스트의 연재 주기가 상당히 느려질 겁니다. 내일까지

일단 잘 올리고…, 그 다음부턴 아마 빨라야 주간연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늦게 올라온다고 외면하지 마시고… 잘 봐주세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9862 / 21118 등록일 : 2000년 08월 26일 22:02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10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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