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28)
칼리스타 제국 황성.
사면이 온통 책장으로 꾸며진 서재 안에서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
다. 강인해 보이는 얼굴선. 안경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눈매. 그 눈빛 속에서 언뜻
강인한 의지가 엿보이는 남자― 제국의 총리대신 로제레트 나하이벨이었다.
한창 독서에 열중하고 있던 로제레트는 문득 방 안에서 풍기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는 빙긋 웃으며 책을 덮었다. 정면, 다시 말해 문 쪽을 바라보며 로제레트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세다라 씨."
…지직.
공간이 이지러지더니, 세다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
었다. 로제레트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일이 잘 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빌어먹을."
세다라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 작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글쎄요, 제가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로제레트는 가볍게 양손을 들어올려 보였고, 세다라는 한층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
다.
"…젠장, 프리네리아 왕성이야. 그 자식 프리네리아 왕성으로 갔어."
"흐음?"
"쉽지 않아. 왕성 안에 잠입하기만도 보통 일이 아닌데 거기서 그 작자의 약점인
지 뭔지를 찾는 건 더더욱이…."
"후훗. 그렇습니까."
로제레트가 낮게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세다라가 기분나쁘다는 듯이 로제레트를 바라보았다. 로제레트는 천천히 몸을 일
으켜 책상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었다. 와인을 잔에 따르며 그가 물었다.
"리갈입니다. 하시겠습니까?"
"난 술 안 마셔."
"그렇군요."
로제레트는 빙긋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그
가 말했다.
"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뭐야, 예상하고 있었다는 거야?"
"글쎄요."
로제레트는 잔을 눈 높이로 들어올렸다. 찰랑거리는 붉은 액체를 바라보며 로제레
트는 가만히 미소지었다.
"왕성이라…,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제가 세다라 씨를 과대평가한 모양이군요."
"뭐라?"
세다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힐끔, 잔 너머로 세다라를 바라보며 로제레트는 말했
다.
"작전이란 것을 아십니까?"
"…너 날 바보로 아는 거냐?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다행이군요."
로제레트는 와인을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상당히 여유있는 모습이었고, 그와 대
조적으로 세다라는 무척 초조해 보였다. 여유가 넘치는 모습으로 로제레트는 말을
이었다.
"작전을 추진할 때 선결되어야 할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그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어떤 작전을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적군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적군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아군을 믿고 보내는 것입니다
.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선 아군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
"믿을 수 있는 아군이 있을 때 지휘관은 마음 놓고 작전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로제레트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말씀드리자면… 제가 세다라 씨를 보낸 것은 세다라 씨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
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든, 세다라 씨라면 간단히 해결하실 수 있으리라 믿
었던 것이었습니다만…,"
여기서 로제레트는 잠시 말을 끊고 세다라의 얼굴을 살폈다. 세다라의 얼굴이 치
욕이란 감정으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로제레트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끝마쳤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세다라 씨의 능력이 거기까지라면야."
…으득.
세다라가 이를 갈았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가 외쳤다.
"그래서 뭐야? 날 믿을 수가 없다 그거냐?"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요…."
로제레트는 다시 한 모금 와인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세다라 씨는 믿습니다. 다만… 세다라 씨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하는 생각
이 드는 것 뿐이지요."
"결국 날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잖아!"
"후훗."
로제레트가 낮게 웃었다.
"그것은 세다라 씨께서 자초하신 일이 아닙니까? 프리네리아 왕성 정도에 발이 묶
이시다니. 그래서야 제 1급 마족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습니까."
"…발이 묶였다고 한 적은 없어!"
"아하. 그렇습니까."
빈정거리는 듯한 어투로 로제레트가 말했다.
"그러면 대체 왜 돌아오신 것입니까? 흐흠. 설마하니 지레 겁먹으시고 이 일을 포
기하시려는…,"
"그냥 중간 보고를 하려 온 것 뿐이야!"
세다라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정말이지, 중간 보고 하려 온 것 뿐인데 그렇게 몰아붙이다니, 기분 나쁘다는 거
알아?!"
"하하. 그렇군요."
로제레트는 빙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잔뜩 찌푸린 눈으로 로제레트의
사과를 바라보고 있던 세다라가 말했다.
"좋아. 어쨌든 중간 보고는 끝났으니까 난 간다."
"그러십시오."
"……다음부턴 조심해."
…지직.
잠시 후, 세다라의 모습이 방 안에서 사라졌다. 로제레트는 잔에 남아 있던 와인
을 입 안에 털어넣으며 피식 웃었다.
"어리광이군."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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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참… 입니다. 하하.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952 / 21100 등록일 : 2000년 08월 01일 21:22
등록자 : NEISSY 조 회 : 18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9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