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97화 (98/158)
  • 3. 살아가는 이유 …… (26)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면, 만들면 되잖아.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왜, 많잖아."

    니리아는 살며시 웃었다.

    "기억나? 내가 널 찾아다녔다고 한 거."

    "…으응."

    "그동안, 내 목표는 널 찾는 거였어."

    니리아는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네이시의 볼을 잡아당겼다.

    "이런 바보가 되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아야야. 아퍼!"

    "암튼, 그래. 목표란 게 꼭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단 말이야. 내 말 이해할 수 있

    겠어, 네이시?"

    네이시의 볼에서 손을 떼며 니리아가 말했다. 네이시는 잠시 볼을 어루만지다가,

    슬쩍 볼을 긁적였다. 네이시가 물었다.

    "날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바보잖아."

    "…이익!"

    "하여간에. 이제부터 찾아봐. 이를테면 '니리아와 함께 즐겁게 산다'는 것도 괜찮

    아. 내가 약간 손해인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봐줄게."

    니리아가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했고, 네이시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다가 네이

    시는 다시 멍한 눈을 했다. 무언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니리아는 네이시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조용히 있어 주기로 했다.

    니리아는 네이시를 바라보는 대신 하늘로 눈을 돌렸다. 편하게 생각하라는 의도였

    다. 뭐, 하긴 니리아가 어떻게 하든 네이시는 생각에 깊이 빠져서 주위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하늘은 푸르렀다. 구름 하나 끼어 있지 않은 하늘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네이시

    의 마음 속에는 분명 구름이 잔뜩 끼어 있겠지. 생각하며 니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장로님은…."

    문득 네이시가 입을 열었다. 니리아는 고개를 돌려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이시는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고, 그래서 니리아도 네이시를 따라 시선을 다

    시 하늘로 돌렸다.

    "그렇게 되었지…, 그래, 응…."

    네이시가 중얼거렸다.

    "바보 같이… 혼자서…."

    "네이시."

    니리아가 말했다.

    "너 아직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내가… 그 때 그런 행동을 하지만 않았

    어도…."

    "아니… 넌 네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것 때문에 장로님께서 돌아가셨지."

    네이시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니리아는 시선을 돌려 네이시를 쳐다보았다.

    "그건 그분의 선택이었잖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래,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 다치질… 다치지 않고 말야!"

    갑자기 네이시가 큰 소리를 냈고, 니리아는 약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이시

    는 킥킥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다쳤었으면 좋았겠어. 그럼 내 마음이 좀 편해질 지도 모르지. 그런데,

    대체 뭐야? …장로님 일은 차라리 나은 건지도 몰라. 장로님께선 '모두'를 위해

    희생하신 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네이시가 울분을 터뜨렸다. 니리아는 조용히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왜 나 같은 걸 위해 모두가 죽은 거냔 말이야!"

    네이시는 바락 악을 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니리아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네이시." 그녀가 말했다.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나, 약속 지키지 못했어."

    네이시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모두가 죽었지. 난 다시 돌아갈 수 없었어."

    "네이시."

    "이런 나를….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수 있겠어? 나는…."

    "네이시. 내가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무언 줄 알아?"

    니리아가 물어왔다. 네이시는 가만히 니리아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니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

    "…니리아."

    "난 널 좋아했고… 너도 날 좋아했지.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어. 한데…

    한데 말야, 넌 끝끝내 돌아오질 않았지. 난 네게 그 정도 존재밖에는 안 되었던

    거야."

    "니리아, 그건…."

    니리아가 검지손가락을 세워 네이시의 입술에 대었다. 네이시는 순순히 입을 다물

    었고, 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게 분했어. 너무도 안타까웠어. 확인하고 싶었지. 그래서 널 찾아 나섰어."

    "……."

    "그리고 결국은… 다시 만났지."

    니리아는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네이시는 니리아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세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는 린에게서 예전 세이어와 린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린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날 구해주셨지."

    "……."

    특별히 린 씨를 구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세이어는 다음 순간

    생각을 바꾸고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가 뭐라고 말해 봐야 린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할 것이 뻔했다. 별로 소용 없는 일이었다.

    "아하하하."

    세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고, 세이어는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생기가 있다

    ―. 그녀는 확실히 자신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곧이어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자신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 목표, 살아가는 이

    유가.

    세이어가 린은 처음 만났을 당시, 그의 살아가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스

    스로도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세이어는 세라린

    에게 말했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나 지금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린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

    다고. 물론… 억지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이어에게는 억지로

    라도 목표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정말로, 자신은 왜 살아가는 것일까? 세이어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

    금었다.

    문제는 주위의 환경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자신의 마음이다. 스스로 확실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상, 그는 안에서부터 부서져 내릴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 그러나, 세이어에게는 의미를 둘 것이

    없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때문에 세이어는 억지로 린에게 '의미'를 두었다.

    "…어리석군요, 저도."

    세이어는 린과 세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이어

    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결코 강하지 않음을. 그는 그 스스로 자신에게 의미를 부

    여할 수는 없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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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

    만 하군요. 하하하.

    오늘은 한 편만 올립니다. 물론 이연참이나 삼연참도 충분히 가능하긴 합니다만

    … 노느라고요. 냐하하. 매일연재 정도로 괜찮겠지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929 / 21100 등록일 : 2000년 07월 31일 22:23

    등록자 : NEISSY 조 회 : 21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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