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23)
"네이시…."
"자아, 자아. 묻고 싶은 게 있는 거잖아? 물어 봐."
네이시는 니리아의 머리를 토닥였다. 니리아는 네이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녀가 말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져?"
"으응?"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아냐.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네이시. 정말 괜찮은 거야?"
"아아."
네이시는 샐쭉 웃었다.
"실은, 나도 정리를 좀 하고 싶거든."
"정리?"
"아아…."
네이시는 주위에 있던 벤치에 다리를 쭉 펴고 기대어 앉았다. 길게 한 번 숨을 내
쉬고 나서 네이시는 니리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요 사십 년 동안, 정말 정신 없이 살아왔어."
"그래…?"
"그동안 마음 고생 시켜서 미안해."
네이시가 말했고, 니리아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서 이러는 걸까?
"가끔 생각하곤 했어. 그 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
"그랬다면… 아마 난 지금쯤 너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겠지? 하하."
네이시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프리네리아 왕국력 151년 1월 7일, 프로얀 숲.
한때는 숲이라고 불렸던 공간. 그러나 지금 할파스가 서 있는 이곳은 이제 숲이라
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검게 타버린 대지. 그 위에는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다.
타올랐다. 타오르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땅에서는 거센 불
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할파스는 이 불길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건?"
무언가 마나의 느낌이 심상찮아 온 것이긴 했지만, 할파스는 이런 광경을 예상하
지는 못했다.
약 10제곱킬로예즈 정도나 되는 대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할파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엘프들의 관할지. 누구인지
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엘프들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할파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나와!"
˝……크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할파스의 외침에 섞여 어디선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거슬리는 느낌의
음산한 웃음 소리였다. 할파스는 그 웃음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그 웃음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웃음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참다 못한 할파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그'
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파스는 약 15예즈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검은 색의 로브
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후드를 내려쓰고 있어서 얼굴 모습을 알아보기는 힘들었
다. 다만, 언뜻 보이기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어딘지 인간 같지 않은 기괴한 음색이었다.
˝과 연 엘 프 들 을 찾 는 데 는 이 방 법 이 좋 군.˝
"누구냐, 넌?"
할파스는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할파스의 질문에 대답하
진 않았다.
˝대 답 해 라 엘 프 너 희 의 마 을 은 어 디 에 있 나?˝
"네 정체부터 밝혀!"
˝손 님 을 맞 는 태 도 가 공 손 하 지 못 하 군 엘 프.˝
그는 오른팔을 쳐들었다. 소매가 드러내며 그의 팔이 드러났다. …뼈다귀, 말 그
대로 뼈만 남아 있는 팔이었다.
그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동시에 마나가 약동하기 시작했다. 할파스
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이 마나의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카오스 Chaos!?"
카오스, 7서클. 대상자의 정신을 일시적으로 파괴하는 마법. 순간 할파스를 향해
마나가 밀어닥쳤다.
"컥!…"
할파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겨내야 해. 이겨내야만 한다. 전신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할파스의 얼굴빛은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머리 속에 타오르는 듯한 고
통에 할파스는 신음을 내뱉었다.
"크윽… 크으으극…!!
˝어 떤 가 선 물 이 마 음 에 드 나?˝
어느새 할파스의 옆에 다가온 그가 말했다. 할파스는 고통에 신음하면서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로브를 입은 남자는 슬쩍 고개를
흔들었다.
˝과 연 엘 프 내 성 은 강 한 편 이 군.˝
"네놈 따위… 에게… 칭찬 따위… 받고 싶지 않은데?…"
할파스는 낮게 웃었다. 로브를 입은 남자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호 오 떨 쳐 버 렸 나 하 지 만 그 정 도 로 는 어 림 없 다 는 것 을 잘 알 고
있 겠 지.˝
"…예가의 후계자로서 명령한다!"
돌연 할파스가 소리쳤다. 카오스의 잔류 마나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런 것에
주저앉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할파스는 빠르게 외쳤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바람의 혼 디지니여! 나의 힘이 되어 지금 이곳에 그
존재를 펼쳐라!"
고오오오오오….
일어난 거센 폭풍이 할파스를 감쌌고, 그 서슬에 로브를 입은 자는 뒤로 물러났다
. 강렬한 바람이었다.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더욱 격렬해졌고, 눈발이 미친 듯이 휘
몰아쳤다.
바람의 고위 정령, 디지니가 소환되고 있었다. 할파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죽어라, 침입자!!"
˝재 미 있 군.˝
바람의 고위 정령인 디지니가 소환되고 있는데도 로브를 입은 남자는 전혀 당황하
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렵지 않은 건가? 그 태도에 할파스는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
을 받았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펄럭. 순간 휘몰아치는 바람에 로브
를 입은 남자의 후드가 벗겨졌다.
"맙소사."
드러난 그의 모습에 할파스는 놀라고 말았다. 해골― 그것은 해골이었다. 새하얀
빛의 백골. 아까 이 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리치!?"
불사마법사, 리치. 자신의 생명력을 응집시켜 구상 공간 안에 저장시킴으로 불사
체가 된 존재. 물론 완전한 불사는 아니므로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리치란 존재는 9서클까지 익힌 마법사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다시 말해 저 존재는 마법을 9서클까지 익힌 존재라는 뜻이다.
˝컨 져 러 엘 리 멘 탈 Conjure elemental.˝
리치가 말했다.
드드드드득….
땅이 갈라졌다. 흙이 튀어올랐고, 땅이 흔들렸다. 대지의 고위 정령― 다오가 소
환되고 있었다. 정령에는 정령― 이 리치는 다오로 디지니를 상대할 생각인 모양이
었다.
할파스는 공포감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할파스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이 리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적
어도 그 혼자서는. 할파스는 생각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로 돌아가
서 다른 엘프들과 힘을 합쳐 이 엘프들을 상대해야 한다.
할파스가 주문을 외웠다.
"워프!"
흰 빛이 할파스를 감쌌고,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리치는 그것
을 바라보며 예의 그 기분 나쁜 웃음 소리를 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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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시의 과거 회상. 아주 잠깐입니다. (다 밝힐 수야 없죠. 하하.)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807 / 21100 등록일 : 2000년 07월 28일 22:29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4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