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93화 (94/158)
  • 3. 살아가는 이유 …… (22)

    "그래서 특별히 부탁해 두었습니다. 린 씨와 세실 씨, 그리고 아룬 씨는 한동안

    계속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린과 세실, 그리고 아룬. 세이어의 이름은 빠져 있다? 린은 묻고 싶었다. 세이어

    님은요?… 라고. 그러나 그녀가 그 말을 하려는 순간, 세실이 먼저 물었다.

    "세이어 씨는요?"

    "저는 성기사로서 전쟁에 참가합니다."

    "에엣!?"

    그 말에 린과 세실은 상당히 놀랐다. 성기사라니? 성기사라면 분명 고도의 훈련을

    받아 양성되는 왕국 최고의 기사. 세이어가 성기사로 전쟁에 참가한다니?

    세실이 토끼눈을 하고서 물었다.

    "세이어 씨, 성기사였어요?"

    "어제부로 성기사가 되었습니다."

    세이어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얌마! 네이시! 빨리 나오지 못해!!"

    욕실 바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린이 외쳤다. 괄약근에 전신의 힘을 집중하며

    시린은 으득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놈… 30분이 넘도록 뭘 하길래… 으윽!"

    시린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욕실의 문을 두들겨댔다.

    "나 급하단 말이다 자식아!"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시린은 필사적으로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시린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시린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이윽고 다시 하얗게 되었을 즈음이 되어서야 드디

    어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네이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린이 외쳤다.

    "비켜!!"

    네이시는 순순히 비켜 주었고, 시린은 번개같이 욕실 안으로 튀어들어갔다. 그 모

    습을 보며 네이시가 슬쩍 볼을 긁적였다.

    "냄새가 좀 날 텐데… 괜찮을까나."

    시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음식물 최종 배출구의 봉인을 풀었다. 아아, 이 해

    방감이여.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린의 후각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시린은 코를 킁킁거렸다.

    "…뭐야, 이건? 피 냄새?"

    희미하지만, 욕실 안에서는 피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시린은 그것이 피 냄새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큰 소리로 외쳤다.

    "네이시!"

    "아… 응?"

    옷을 갈아입고 있던 네이시가 당황하며 답했다. 저 녀석, 눈치챈 건가? 시린이 외

    쳐왔다.

    "너, 혈변이었냐?"

    "……아아, 그래."

    무언가 황당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네이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이시는 고

    개를 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보."

    네이시는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 말했다.

    "시린. 나 좀 나갔다 올게. 약속이 있거든."

    "…흐으으으읍!!"

    그러나 욕실에서 들려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힘찬 기합소리였고, 네이시는 피식

    웃어버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방을 나섰다.

    "늦었어. 네이시."

    니리아가 뾰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네이시는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니리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1분밖에 안 늦었는걸, 뭐."

    "1분 씩이나야."

    니리아가 반박했다. 짐짓 화가 난 표정을 지어보려 애쓰던 그녀였지만, 네이시가

    생긋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이자 결국은 웃어버리고 말았다. 네이시는 씨익 웃

    었다.

    "귀여운 우리 니리아."

    "칫. 귀엽단 말 듣고 싶지 않아."

    니리아는 고개를 저었고, 네이시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럼?" 니리아가 대답했

    다.

    "아름답다고 해줘."

    "아하하."

    네이시는 웃음을 터뜨렸고, 니리아도 따라서 웃었다. 한참 유쾌하게 웃고 난 후

    네이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아름답다."

    "물론이지. 왕실의 정원을 우습게 보지 말라구."

    확실히 왕실의 정원이라 그런 것일까, 이곳은 상당히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잘 가

    꾸어진 정원수. 푸르른 정원수들은 싱그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더불어 화단에

    피어 있는 각양각색의 꽃들은 화사함을 선사해 주었다. 붉은 색, 흰 색, 분홍 색,

    보라 색, 노란 색….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꽃들은 그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온 꽃잎 하나를 낚아채며 네이시는 말했다.

    "하지만 네가 더 아름다워."

    "……!"

    순간 니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이시는 그 모습을 보며 니리아가 귀엽다는 생

    각을 했다. 네이시가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아름답다고 해 달라고 한 건 너였잖아?"

    "짓궂어졌어, 너."

    니리아가 볼멘 어투로 말했고, 네이시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그에 니리아는 뚱한

    표정으로 네이시를 바라보았고, 네이시는 미소를 지으며 니리아의 머리칼을 어루만

    졌다.

    "그런데, 니리아."

    "응?"

    "왜 날 불러냈어?"

    "응? 그거야 물론 데이트라고…."

    "흐흠."

    네이시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나한테 궁금한 게 있지 않아, 니리아?"

    "…으, 응. 하지만…."

    니리아는 약간 당황했다. 물론 네이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때의 그 일에서 네이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스로 숲을 떠나버렸으니까. 니리아는 나중에 적당한 기회가 있다

    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니리아."

    네이시가 조용히 말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진 않아."

    "하지만… 네이시."

    "걱정 마. 어차피 나도 다 말할 것은 아니거든."

    네이시는 짐짓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속에는 무언가 깊은 슬

    픔이 가득차 있었고, 그래서 니리아는 안타까운 눈길로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네이시는 싱긋 웃었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 니리아."

    하지만 니리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네이시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며 니

    리아의 손을 잡았다. 니리아의 손은 따뜻했다. 네이시는 그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

    했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너였잖아, 니리아. 난 너와 짐

    을 나누고 싶은 것 뿐이야. 어차피 말할 거라면 빨리 말해주고 싶어서. 게다가

    지금 내가 말하려는 건 별로 비밀도 아니거든."

    네이시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니리아."

    하지만….

    니리아는 속으로 대답했다.

    네 눈이 너무 슬퍼 보여, 네이시. 내가 모르리라고 생각해? 네 상처는 아직 다 낫

    지 않았잖아….

    "도망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아. 아파도 부딪혀야 해결되는 법이지.

    이번에 너와 만나고 그걸 깨달았어."

    네이시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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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오늘은 이연참입니다. 즐겁게 보아 주시길.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746 / 21100 등록일 : 2000년 07월 27일 22:04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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