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92화 (93/158)
  • 3. 살아가는 이유 …… (21)

    "우음…."

    오전 10시 경. 세실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그

    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없네, 언니."

    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걸까…? 세실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으하아암. 세실은 눈을 비비며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푸아. 푸아."

    세수 하고, 머리를 감고, 그녀는 욕실을 나왔다.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며 세실은

    중얼거렸다.

    "음. 오늘은 뭘 할까나…."

    오늘은 무얼 할까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세실은 결국 아룬의 방에라도 놀러 가

    기로 결정했다. 하긴, 린이 어디로 간 지금 세실이 갈 만한 곳은 그곳 정도였다.

    ―물론 린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당장 그리로 가겠지만.

    "좋아. 결정이다."

    세실은 쾌활하게 표정으로 자신의 방을 나와서 아룬의 방으로 갔다. 아룬의 방은

    세실의 방 바로 옆 방이기 때문에 금방이었다. 세실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

    똑.

    "오빠, 있어요?"

    잠시 기다리자, 아룬이 방문을 열었다. 아룬이 물었다.

    "웬 일이야?"

    "아, 그냥요. 놀러 오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하나요?"

    그렇게 말하며 세실은 아룬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생긋 웃으며 그녀가 덧붙였다.

    "사실은 언니가 나 자는 사이에 말도 안하고 어딜 가서 말이죠. 할 일도 없는데

    심심하길래 놀러 왔죠."

    "아, 린? 린이라면 아까 세이어 씨와 어딜 가던데…."

    "에엣!?"

    세실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아룬은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말에 세실이 이런

    반응을 보이자 약간 의외였고,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 그래?"

    "그… 그런. 데이트란 말이야!?"

    세실이 외쳤다. 눈을 반짝이며 세실이 아룬에게 물었다.

    "그거, 확실한 거죠? 확실한 거 맞아요?"

    "아… 응. 그런데 그게 왜…?"

    "어딜 갔어요? 어딜 간 건지 알아요?"

    "글쎄, 아마 정원 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긴 한데…."

    "그렇단 말이죠?"

    세실은 아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당장 뒤로 돌아 아룬의 방에서 튀어나왔다.

    세실은 눈을 반짝이며 한차례 목운동을 했다. 그녀의 입가에 장난기어린 미소가 어

    려 있었다.

    "후훗. 가 봐야지∼."

    정원.

    세이어와 린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언뜻 보면 연인이 데이트를 하는 것 같은 모

    양이었지만, 실은 조금 틀렸다.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둘의 표

    정이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린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그녀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채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다가 가끔 고개를 돌려 세이어를 바라보았는데, 그때의 그 눈길은 마

    치 연인의 그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반면에, 세이어는 말 그대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귀찮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철저한 무표정이었던 것이었다.

    보통 남자의 표정이 이러하다면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나 린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제 세실이 린에게 해 주었던 말 때문인데, 바로 세이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자신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때문이었다. 린은 이것 때문에 착각을

    하게 된 셈이었다.

    린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이어가 무표정하게 있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마

    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린의 착각일 뿐이었지

    만.

    어쨌거나 약간 이상한 분위기기는 해도 이것은 데이트였고, ―적어도 린의 생각으

    로는― 그래서 린은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 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와아, 여기 있었네!"

    목소리가 들려왔고, 린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린이 시선을 돌린 그곳에

    서는 세실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미소짓고 있었다. 세실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데이트 중이야?"

    "…왜 왔어?"

    약간은 퉁명스런 린의 말에 세실은 히죽 웃었다. …방해된다 그거지? 어서 가라고

    하는 듯한 표정이네. 하지만 난, 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왜, 내가 오면 안 돼?"

    "…아니, 안 될 것까지는 없지만…."

    린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으로는 '어서 가라'고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실은 짐짓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빠르게 말했다.

    "그럼 됐네. 아, 세이어 씨. 제가 여기 있는다고 불편하거나 하진 않죠?"

    세이어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고, 세실은 씨익 웃었다.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세실은 린에게 말했다.

    "세이어 씨는 괜찮다는데?"

    "…나도 들었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언짢은 모양인지 린의 목소리는 약간 퉁

    명스러웠다. 세실은 살며시 린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걱정마. 방해는 안 할 테니."

    "… 지금 방해하고 있는 거야."

    "헤에. 그래서 삐진 거야? 걱정 말라니까. 언닐 도와 주러 온 거야."

    "어떻게?"

    "글쎄?"

    세실은 생긋 웃어 보였다.

    "그건 아직 생각 안 했는데?"

    "세실……."

    린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지. 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실은 세이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언제나와 같은 무감정한 목소리. 표정 없는 얼굴. 세이어는 조용히 답했다. 세실

    은 그 모습을 보며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세실은 어젯밤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세이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세이어라는 이 인간은 정말이지 감정의 기복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다. 세이어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모르는 것일

    게다. 이 인간과 언니를 맺어지게 하려면, 우선 이 인간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다

    시 말해, 이 세이어라는 인간에게 감정이란 것을 부어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웅대한 포부와 함께 세실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세이어가 되물었고, 세실이 답했다.

    "그냥. 앞으로의 일정 같은 거요."

    "…글쎄요."

    천천히 입을 여는 세이어를 바라보며 세실은 생각했다. 확실히 이 세이어란 사람,

    말이 없다. 다만 묻는 말에는 그런대로 잘 대답해주는 편이지만.

    린 언니가 어떻게 하고 있었을지는 뻔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있었겠지. 린, 이 바보 언니 같으니. 이 사람하고 친해질 생각이 있다면 계

    속 이것 저것 질문을 해 보란 말이다.

    "한동안은 이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세이어가 말했다.

    "아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칼리스타 제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마도―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린과 세실은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들이 있던 곳은 왕성. 제국의

    정세에 관해 이것저것 주워듣기도 한 터라, 그녀들도 그런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

    던 바였다.

    세이어는 이어 말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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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회를 향하여 돌진! 돌진이다아∼!!

    몽환, 완결했더군요. (다시 한번 축하해, 필 형) 아아, 나도 빨리 완결하고 싶

    다…. …완결하고 싶긴 하지만, 근시일 내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군요. 아시

    는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데스트 예상 회 수는 400 회 정도. (물론 전

    개에 따라 더 적어질 수도 있고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만) 크악…. 이렇게 긴

    소설을 쓰려 하다니, 내가 미쳤지…. (으극… 그렇다고 이제 와서 스토리 라인을

    고치기도 그렇고…)

    팬메일(이번엔 팬메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와하하!)이 왔더군요. 하

    하. 감사합니다, iruril_zzang 님. 물론 일러스트는 그리셔도 좋습니다. 저로서

    는 감사할 따름이죠. (가능하시다면, 그 일러스트 보내주셨으면 더 감사하겠습니

    다만. 하하^^) 혹 제대로 된 답장을 원하신다면 메모 주시길.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립니다만, 세이어는 계속 변해가는 캐릭터입니다. 린

    도 마찬가지고요. 세이어는 아마 좋은 쪽으로 변해갈 테고, 린은 나쁜 쪽으로 변

    해가게 될 겁니다. (사랑에 눈먼 린.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가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705 / 21100 등록일 : 2000년 07월 26일 22:37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7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2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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