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90화 (91/158)
  • 3. 살아가는 이유 …… (19)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 세실은 이어 말했다.

    "이봐요,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요. 우리 대화 좀 하죠?"

    이렇게 말한 세실은 순간 아차 했다. 이건 마치 깡패가 시비거는 어조 아닌가. 지

    나가는 사람 턱 붙잡고 '이봐, 우리 대화나 좀 하지?'…라고 하는 듯한. 하지만 세

    이어는 개의치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세실은 그가 항시 무표정을 유지하

    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세실은 내심 안도하며 말했다.

    "우리 언니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 있어요."

    "린 씨… 말씀이십니까?"

    세이어가 물었고, 세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 언니 말예요. 그 때문에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요."

    자못 도발적인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세실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세이어를 바라보

    았다. 그러나 세이어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세실은 그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 틀리자 조금 당황했다. 뭐야, 이건? 반응이 왜 이래? 세이어

    는 빤히 세실을 쳐다보았고, 결국 세실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뭐, 뭐예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듣고 싶은 것이라던 것은 그것이었습니까?"

    세이어가 물었고, 세실은 그만 멍해져버렸다. ―아, 그래, 내가 '듣고 싶은 게 있

    다'고 했었지. …그러니까,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군. 음, 그래. 이해했어.

    …아으, 짜증나네.

    왠지 바보가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을 맛보며 세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아뇨. 그건 아니예요. 음. 그러니까."

    세실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

    "우리 언닐 어떻게 생각해요?"

    "무슨 뜻입니까?"

    세이어가 반문했다. 세실은 이마에 손을 얹고서 말했다.

    "…둔한 남자네."

    "……?"

    "쉽게 말하죠. 좋아요. 이성으로 우리 언닐 어떻게 생각하고 있냔 말이예요. 좋아

    하긴 해요?"

    "연애 감정…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세이어가 피식 웃었다. 세실은 왜 그러느냐는 듯이 세이어를 바라보았고, 세이어

    는 나직히 조소 띤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린 씨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어째서죠?"

    세실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게 그런 감정은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세이어는 그렇게 답했고, 세실은 그 순간 세이어의 눈동자에 지나간 자조를 놓치

    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질문했다.

    "어째서 사치인데요?"

    "…그런 것까지 대답해 드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세이어는 가볍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고, 세실은 이해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연인을 지켜주지 못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세실은 나름대로 세이

    어의 말을 해석하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좋아요.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우리 언니와 함께 다니

    는 거죠?"

    "지켜드리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옆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잖아요? 언니 말로는 같이 있다가도 금방 떨어져

    가고는 했다는데. 그러고 보니 당신, 레이아다에서도 우리 언니 옆에 있지 않았

    잖아요? 그런데 뭘 지킨다는 거예요?"

    "지키기 위해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지키기 위해서라고요?"

    말도 안 된다고 말하려던 세실이었지만, 세이어의 눈동자를 보고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좋아요,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무엇보다도 그러면… 왜 우리 언니를 지켜주겠다

    고 한 거였죠?"

    세실이 물었다.

    "난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당신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언니를 지켜주겠다고 한 거

    죠? 소중한 사람이라서 지켜주겠다고 한 거라면 이해가 돼요. 한데, 당신은 우리

    언니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했잖아요. 말해 봐요. 당신에게 우리 언니는 대

    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글쎄요."

    세이어는 천천히 말했다.

    "린 씨는, 현재의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엣?"

    순간 세실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 대단해. 저렇게 노골적인 고백이라니. 부끄러운 것도 모르나봐…. ……응?'

    그러나 다음 순간 세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세이어는 린에

    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했었는데? 그럼 저 말은 대체 무슨 뜻이지?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말 그대로입니다."

    세이어가 답했다. 세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세이어를 바라보았고,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어는 슬슬 세실의 질문들에 귀찮음을 느끼

    고 있었고, 때문에 그는 이제 얼굴에 약간의 피로감을 드러내며 세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도, 그 순간을 살아가게 해 주는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요?"

    세실은 세이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짐작을 말하는 대신 세이어에게 물었다. 왠지 그가 직접 말하는 것이 듣고 싶었다.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린 씨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흐음."

    알듯 말듯 꽤나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세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세실이 말했다.

    "아, 이제 됐어요. 질문 다 끝났으니깐. 대답해 줘서 고마워요."

    "그럼."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실을 지나쳐 정원 밖으로 걸어나갔고, 세실

    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외쳤다.

    "세이어 씨!"

    "……?"

    세이어는 세실을 돌아보았다. 세실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 붙잡아 둬서 미안하다고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답한 세이어는 다시 몸을 돌려 정원을 빠져나갔고, 세실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실은 자신이 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붙잡아

    둬서 미안하다고?

    "…뭣하러 그런 말을 했지?"

    약 20분 뒤, 방으로 돌아온 세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린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 린은 의외로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때문에 세실은 당황했다.

    "세실."

    린이 말했다.

    "정원에서, 세이어 님과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봤어?"

    "그래."

    린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시 가다듬는 모양이었다. 그

    녀가 말했다.

    "너, 즐거워 보였어."

    "오해야."

    세실은 조용히 말했다. 사실 세실은 지금 조금 황당한 기분이었다. 나름대로는 언

    니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세이어에게 린에 대해 물어 봤는데, 린은 그걸 가지고 오

    해하다니. 솔직히 이 답답한 언니에게 소리라도 좀 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

    칫 정말로 오해를 받아버릴 수도 있었게 때문에 세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도록 주

    의하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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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 데스트의 패러디 쓰시고 싶은 생각 있으신 분 없으신가요? 테스트로이아라

    던가, 페스트로이아라던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바보 아냐?)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613 / 21149 등록일 : 2000년 07월 24일 22:17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9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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