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18)
세실은 린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런 질문을 던져왔고, 그 질문에 린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세이어 님 말야?"
"그럼 다른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세실은 한심하다는 눈초리와 함께 툭 한마디 쏘았고, 린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
거렸다.
"…글쎄, 세이어 님의 어디가 좋으냐고?…"
린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세이어를 왜 좋아하는 것인가? 어째서? 그가 산적들
에게서 자신을 구해 주었기 때문에? 아니,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사실 린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대체 그녀가 세이어에게 연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
가 무엇인지. 잠시 고민하던 린은 결국 고개를 한차례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
"…대체 아는 게 뭐야?"
"내가 세이어 님을 좋아한다는 것."
"나 원."
세실은 린의 대답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린은 물끄러미
세실을 바라보았고, 세실은 안쓰러운 눈으로 린을 마주보며 말했다.
"보기 딱하다. 바보짓 좀 그만 할 수 없어?"
"……."
"하긴, 언닌 예전부터 그랬지. 한번 마음을 주면, 그 상대한테만 매달리는 거. 어
차피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언니 태도가 바뀌진 않을 거라는 거, 나도 알아."
세실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치만, 이번엔 상대가 잘못 되었어. 알아? 그 사람은 언니가 어떻게 하든 신경
써주질 않고 있잖아."
"아니…. 신경써주셔."
"언닐 위해주는 게 아니잖아!"
"상관없어."
린은 전에 없이 단호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고, 그래서 세실은 약간 놀랐다.
"중요한 건 그분이 내게 신경을 써 주신다는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난…,"
"그러니까 언니가 바보라는 거야."
세실은 속으로 린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아아, 대체 왜 우리 언니는 이렇게 막무
가내에다 고집불통일까.
"제발 부탁이니까, 더 늦기 전에 포기해."
"세실."
린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세실의 생각으로는 상당히 의외의 반응이었다― 말했
다.
"그게 무리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
세실은 인상을 찌푸렸다. 한참을 그러고서 린을 바라보던 세실은 이윽고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말했다.
"아으. 맘대로 해. 나중에 울고불고 해도 난 몰라!"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이해 따위가 아냐!"
세실이 소리질렀다. 그러나 곧,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 말했다.
"언니 바보짓 상대하기 지쳤을 뿐이야. 그래, 그래. 언니 맘대로 해.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 다만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난 계속 언닐 따라다닐 거야. 대체 그
사람의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볼 거야."
"훼방만 놓지 않는다면…,"
"방금 그런 건 안 한다고 했잖아!"
결국 세실은 다시 소리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세실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
었다. ―제길. 이래서 언니는 변했다는 거야. 그것도 보통 변한 게 아냐.
"아… 그래, 그랬지."
"으휴."
린의 말에 세실은 다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미안, 세실."
"…뭐가 미안한데?"
"응?"
"됐어, 됐어. 말을 말지."
세실은 고개를 저으며 튕기듯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 산책이라도 좀 하고 올게."
"응."
세실은 밖으로 나와 정원으로 들어섰다. 곳곳에 서 있는 정원수들과 여기저기 만
발해 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향기로운 꽃내음이 느껴졌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좀 낫네."
세실은 답답했던 마음이 그래도 약간은 풀리는 것을 느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벤치가 보였고, 곧 세실은 그리로 가서 앉았다.
"후우."
세실은 깍지 낀 손을 뒤로 넘겨 머리를 받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푸르렀
다. 구름 한 점 끼어있지 않은 하늘. 세실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제 8월도 끝이구나. 그럼 캄힐트 말고 좀 정상적인 비를 볼 수 있겠지."
생각해보면, 요 두 달 내 희한한 일이 참 많이도 있었다. 린이 레이아다 시로 다
시 돌아오게 된 후부터. 아니, 린이 세이어와 함께 다니게 된 뒤부터. 시도아 시의
영주는 의문의 살해를 당했고, 레이아다 시에서는 도플갱어 이상 발생 사건이 일어
났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지금의 세실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린이 좀 이상하
게 변해버렸다.
'이상한 일이야….' 세실은 생각했다. 대체 요즘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들의 연속
일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조금 억지지만,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결론
을 얻어낼 수 있었다.
"모두 그 사람 때문이야."
그래, 모두 세이어 그 사람 때문이야. 생각해보면, 그 모든 사건에 그가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었어. 분명해, 장담할 수 있어!
"세이어 그 사람 때문이야."
세실은 주위에 아무도―특히 세이어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실은 다음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라고 등 뒤에서 세이어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었다.
세실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이어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세실은
당황한 얼굴로 세이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엑. 아, 아니.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로빈 씨와의 이야기가 끝나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만."
세이어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했고, 세실은 약간 소리 높여 말했다. ―
물론, 이 소리 높임에는 아까 자신이 했던 '세이어 그 사람 때문이야' 라는 말을
어떻게 대충 얼버무리려는 의도도 적지않아 들어가 있었다.
"아, 아무래도 좋지만, 그렇게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놀라셨습니까."
"당연하죠!"
"그렇다면, 사과해 드려야 하겠군요."
세이어가 그렇게 말했고, 세실은 순간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과해
드려야 하겠군요, 라니. 그게 대체 어디 어법이야? 자신에게 사과를 하겠다는 거야
, 아니면 말겠다는 거야? …아니아니, 일단 그 전에, 일단 자신에게 미안할 게 없
다는 뜻 같은데? 은근히 부아가 치민 세실은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그게 사과를 하겠다는 소리예요!?"
"그렇습니다."
마치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과 어조로 세이어가 말했고, 덕분에 이
어 몇 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세실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세실은 잠시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날 비웃고 있는 듯한 얼굴은 아닌데? 그럼 저게
정말 진심이란 말야?
세실은 감탄하다 못해 경탄한 눈길로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세이어라는 사람, 조금 특이하다.
세이어가 물어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아무것도."
손을 내저으며 이제 됐으니 어서 가라고 말하려던 세실은 다음 순간 생각을 바꿨
다. 아무래도 이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물론 그녀의 언
니 린에 관한 것들이다. 마침 좋은 기회 아닌가?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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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세이어라는 캐릭터는 조금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작가인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612 / 21149 등록일 : 2000년 07월 24일 22:17
등록자 : NEISSY 조 회 : 197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89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