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17)
"…글쎄요."
에이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
나는 표정이었다.
"분명히 좋은 제의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된 거군."
"아니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에이드는 날카로운―마치 탐색하는 듯한 눈길로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 씨, 당신은… 다하난을 부정합니까?"
"아니오. 부정하지 않습니다."
세이어는 망설임 없이 답했고, 그 말에 에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안도하는
듯한 얼굴로 에이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방금 에이드는 이렇게 물었다. '다하난을 부정합니까'…라고. 에이드가 이렇게 물
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에이드는 다하난의 성기사. 다하난을 대적하는 존재와는 결코 타협할 수가 없다.
물론, 이전에 세이어가 자신들에게 다하난을 대적한다는 식의 말을 할 적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지 확실하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아
니었다. 때문에 에이드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에
이드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었다.
세이어는 다하난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는
에이드가 받아들인 것과는 자못 틀렸다. 세이어의 말의 의미는 '다하난이 존재한다
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드의 질문이 애매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던 것이다. 하긴 에이드가 일부
러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에이드가 말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세이어 씨."
"좋아. 그럼 전하께 말씀을…,"
"아아, 잠깐. 이 일은 에이드 씨와 로빈 씨만 아는 것으로 해 주십시오."
세이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로빈과 에이드는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
다. 로빈이 물었다.
"아니, 어째서입니까? 이 일은 국가적인…,"
"제가 이번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은 철저히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비밀로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철저히, 말입니다."
세이어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국 쪽 뿐 아니라, 이쪽에서도 제 존재는 숨겨져야만 합니다."
"그림자 속에서 일하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로빈의 물음에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세이어 씨.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어떤 식으로 그들을 처리하겠다는 것입
니까? 왕실 내에서조차 당신의 정체를 비밀에 붙이시겠다면, 당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예?"
순간 세이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에이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어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에이드 씨와 로빈 씨… 분명 성기사단장이었지요."
"…그 말은,"
로빈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성기사가 되겠다는 것입니까, 세이어 씨?"
"일단은 그렇습니다. 성기사라는 가면이라면… 문제 없겠지요."
세이어가 답했다.
"성기사단장은 어느 정도 자의에 따라 단원의 임명을 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로빈이 머뭇거렸다. 세이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부담스러우십니까?"
"…뭐, 솔직히 말해 그렇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부하로 둔다니."
"전 상관없습니다."
"아니, 세이어 씨가 상관 없다 해도, 제가 문제입니다."
로빈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단원보다 약한 단장이라니, 우습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부담을 느끼신다는 것입니까."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 조소가 어려 있었다.
"평상시에는 제 힘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 그것으로 인해 로빈 씨께서 부담을 느
끼실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소심하시군요."
세이어는 냉소와 함께 말했다.
"확실하게 답해 주십시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받아들이시지 않으시겠습
니까."
"언니 바보지."
세실이 물어왔다. 물론, 그 말을 하면서 세실이 린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
다. 일단 어투부터가 단정짓는 투였으니. ―그러나, 세실의 기대와는 다르게 린은
반문을 해왔다.
"어째서 바보라는 건데?"
"그렇잖아. '난 세이어 님을 믿어'…라고? 푸핫."
세실은 가볍게 코웃음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론 말야, 세이어 그 사람 언니한텐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아. 언니 혼
자 좋아서 난리치는 거지."
세실은 힐끔 린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린은 화를 낸다던가 얼굴을 붉힌다던가
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고, 때문에 세실은 마음 놓고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었
다.
"좋아하는 사람은 커녕, 동료 취급도 안 해주는 것 같던데? 뻔한 거 아냐?"
"…세실."
린이 입을 열었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도 알아. 그런 건. 하지만…."
"안다는 사람이 그러고 있어?"
세실이 말했다. 린은 무언가 반론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실은
린의 말 같은 것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실은 얼굴에 약간의 조소마저 띠
며 말했다.
"말야, 내가 보기론, 그 사람에게 있어서 언니는 그냥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라구.
하긴 솔직히 말해서 난 그것도 이해가 안 가. 그 사람, 대체 왜 언니와 함께 다
녔던 거야?"
"…글쎄."
린은 씁쓰레한 기분을 느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녀도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시도아 시에서 세이어는 말했었다.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그 때는 잘 모르
고 있었지만… 확실히 세이어는 자신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속죄'라고 그가 말하기도 했었지만, 그의 행동을 보아서는 왠지 그것은 아
닌 듯 싶다. 하지만, 대체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것인가? …알
수가 없다.
결국 린은 세실에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세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풀쩍 뛰어서 침대로 몸을 던지며 그녀
가 말했다.
"바보짓 그만 하고 포기해."
"…세이어 씨를?"
"바보. 지금까지 그럼 누구 이야기를 한 건데?"
세실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린이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실. 난 세이어 씨를 포기한다거나 할 수가…,"
"언닌 변했어."
세실이 말했다. 아까까지의 장난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대신 그녀에게서 숙
연할 정도의 진지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린은 약간 당황하며 물었다.
"변했다니?"
세실이 대답했다.
"내가 아는 언니는 이렇지 않았어. 무엇이 언니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마지막 말을 덧붙일까 말까로 잠시 고민하던 세실은, 결국 덧붙이기로 했다.
"정말로 멍청이가 되어 버렸어."
"대체 무슨 소리야, 세실?"
"언닌 그 사람의 어디가 좋아? 말해 봐."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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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하루 연재를 쉬었을 뿐인데, 참으로 오래간만에 올리는 기분이 드는군요.
아아, 아무래도 전 이미 소설 쓰기에 빠져버린 모양입니다.
"나… 난 매일 연재의 쾌감을 알아 버렸어…." 퍼퍼퍽!
자아, 자아. 잡담란에 또 그림을 올립니다. 이름하여 네이시와 니리아의 러브러
브 신. (뭐, 단지 분위기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다지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나름
대로 열심히 그린 그림이니 한번쯤 봐 주시는 것도…^^
아, 그리고 '연'은 잠시 연재를 접습니다. 기다리실 분들께는 죄송. (…기다려
주실 분이 있을까 심히 의문이지만) 데스트 100편이 올라가는 그날까지! 데스트
에 불붙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하하.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563 / 21149 등록일 : 2000년 07월 23일 22:52
등록자 : NEISSY 조 회 : 202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88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