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87화 (88/158)

3. 살아가는 이유 …… (16)

네이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경직된 얼굴. 네이시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

"난 잊지 않았어. 그때의 그 약속."

"…당치 않아."

네이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말했잖아. 무엇보다도 지금의 난…,"

"네이시라고 불리길 원해? 그렇다면 그렇게 불러줄게."

"니리아, 지금의 난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야. 이해하지 못하겠어?"

"이해했어."

"그런데도 왜 그러는…, …!"

네이시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입술

을 가린 니리아의 입술 때문이었다. 네이시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부드러운 키스…. 니리아의 입술은 촉촉했고, 또

한 부드러웠다. 한참 동안이나 키스는 계속되었고, 이윽고 천천히 니리아가 네이시

에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이시 역시 얼굴이 붉게 달

아올라 있었고, 입을 가볍게 벌린 채 그가 말했다.

"……니리아?"

"네가 사라지고 난 뒤, 누구와도 사귀어 본 적 없어."

니리아가 말했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허락한 대상은 너 뿐이야, '네이시'.

다른 이는 없어. 오직 너 뿐이야."

"…니리아."

"아직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예가의 후계자'가 아니야. '너'라는 존재

그 자체란 말이야."

니리아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결심

을 반증하듯이 빛나고 있었다.

"난 두번 다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혼자만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마!"

돌연 니리아가 큰 소리를 내었다. 네이시는 순간 약간 당황해서 니리아를 쳐다보

았고, 니리아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왜… 왜 혼자서만 해결하려 하는 거야? 왜 혼자서만 괴로워하는 거야? 네가 그런

다고 다른 이가 기뻐해줄 것 같아?"

"니리아…."

"왜 우릴 피해? 왜 날 피해? 내가 싫어졌어?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

니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네이시는 복잡한 얼굴로 니리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니리아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니리아는 흐느끼고 있었다. 혼자서만 모든 고통

을 짊어지려 드는 네이시가 안쓰러웠기에,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는 네이시가 답답

했기에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네이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울지 마, 니리아…."

네이시는 아련한 눈동자로 니리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이젠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울지 말아, 니리아…."

"바보 같은… 네이시…."

"후훗. 그래, 바보 같지…."

네이시는 웃음을 터뜨렸다.

"널 피하지 않을게. 이제… 함께 하자."

"…넌 바보야."

니리아는 일부러 틱틱거렸고, 니리아의 마음을 짐작한 네이시는 피식 웃으며 니리

아의 머리를 매만졌다. 네이시가 말했다.

"그래… 널 지켜 줄게, 니리아."

"후훗. 네 몸이나 제대로 지켜라, 바보 네이시야."

니리아는 이제 마음이 완전히 풀린 듯 농담을 던졌고, 네이시는 생긋 웃었다. 오

래간만에 느끼는 유쾌한 기분이었다.

왕성 제 3 회의실.

예전에도 한 번 설명한 적이 있지만, 이곳은 비공식적인 안건을 처리할 때 이용되

는 곳이다. 특히, 마왕과 관계된 안건들은 이곳에서 처리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무언가 심각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현재 여기에서 이야기

를 나누는 사람은 세 명― 에이드, 로빈, 세이어였다. ―물론 세이어를 '사람'이라

고 표현하는 것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긴 하지만―

로빈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들을 돕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이어가 답했다. 에이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에이

드는 말했다.

"어째서입니까? 당신은 마왕 세라린의 부활을 도운 자가 아닙니까? 마족이라면 당

신과 가까운 존재일 텐데 어째서 그들을 막겠다는 것입니까?"

세이어는 작게 웃었다.

"제게도 사정이 있다고 해 두겠습니다."

"보십시오, 세이어 씨."

에이드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전에 저희들이 하려던 일을 방해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당신을 저희가 마음 놓고 믿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

요?"

"마음 놓고 믿으시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세이어가 차갑게 웃었다. ―순간 느껴진 한기에 에이드는 움찔하며 세이어를 바라

보았고, 동시에 그는 약간 놀랐다. 세이어의 눈동자에서 왠지 모를 마기가 느껴졌

던 것이었다.

세이어는 냉소를 얼굴에 띤 채 말했다.

"일차적으로 서로의 목적은 같다는 그 점이 중요할 뿐입니다. 당신들은 제국의 침

략을 막아야 하고, 저는 그 마족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둘은 서로 관련되

어 있지요. 그러니,"

세이어는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서 에이드를 바라보았다. 흑색의 눈동자―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기분 나쁜 기운에 에이드는 왠지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동맹'을 하는 것 뿐입니다."

"일단 서로의 적을 없앨 때까지 손을 잡자는 겁니까?"

로빈이 물었고,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로빈은 세이어의 말을 납득했다. 서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단지 서로 필요한 만큼

만 주고받자는 것인데…. 이런 것을 뭐라고 할까…,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로빈은 이 세이어라는 남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운 사람이라는 느

낌이 들었다.

세이어가 말했다.

"제국은 일 년 안으로 전쟁을 걸어올 것입니다. 그 때 전면에서 그들의 눈을 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얻는 이득은?"

로빈이 물었다. 세이어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리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것으로는…,"

"무언가 착각하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세이어는 로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가벼운 조소가 어려 있었다.

"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제가 있든지 없든지에 상관없

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제국은 마족들의 힘을 빌리겠지요. 전 다만

그 때 그 마족들을 상대하겠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납득하기 힘들군요."

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이어 씨, 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이 굳이 저희와 힘을 합칠 이유는 없지 않습

니까? 당신은 다만 마족들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그러나,"

세이어가 답했다.

"저쪽에 제 존재가 알려져서는 곤란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저는 일단 프리네리아

왕국에 '소속'된 채 저들을 처리하려는 것입니다."

"… 흐음."

"이 정도면 설명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아. 이해했습니다."

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에게로 슬쩍 고개를 돌리며 그가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에이드?"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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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드디어 방학입니다. 하하하.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533 / 21149 등록일 : 2000년 07월 22일 22:51

등록자 : NEISSY 조 회 : 20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8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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