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86화 (87/158)
  • 3. 살아가는 이유 …… (15)

    "하아…."

    아침 식사를 하며 네이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맛이 없는 듯 깨작거리고 있는 네

    이시를 향해 시린이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네이시? 음식이 맛이 없냐?"

    "아니… 그냥."

    아침에 하인들이 가져온 식사는 역시 아무래도 왕성의 것이니만큼 상당히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네이시는 그 맛을 잘 느낄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그의 미각에 특

    별히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랬다. 네이시는 아직 니리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음식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어제 같이 또 도망이라도 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책은 되지 못한다. 일단 당장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뭔가 좀더 확실한 방법이….

    "안 먹을 거면 나 줘, 네이시."

    "…너 다 먹어."

    그에 비해서, 시린은 식욕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새벽같이 일

    어나서 난리를 피워서는 네이시마저 잠을 설치게 한 시린이었다. ―하긴, 시린이

    아니더라도 네이시는 이미 잠을 설쳤지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운명의 순간인가."

    "뭐?"

    네이시가 중얼거렸고, 시린은 눈을 멀뚱히 뜨고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네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저, 계세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리아의 목소리다. 네이시는 순간 가볍게 얼굴이 굳어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침착, 침착. 침착하자. 어차

    피 이참에 확실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계속 피해 다니는 것보다

    는… 그 쪽이 나을 지도 모른다….

    후우…. 하지만, 그동안 잘 피해 왔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아, 들어오십시오."

    시린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끼이익…. 약간은 날카로운 소

    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그 소리에 네이시는 상념을 접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니리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는 밝게 웃으

    며 인사했다.

    "니리아예요!…"

    "예, 니리아 씨. 또 뵙습니다."

    시린은 쾌활하게 말했다.

    "자, 그리고 이 쪽이 어제 말했던 네이시 레이어드입니다."

    "네, 엘프, 네이시라고 하셨…,"

    그렇게 말하며 네이시에게로 고개를 돌리던 니리아는 네이시의 얼굴을 보고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니리아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놀라움으로 인해 가볍게 떨리고 있

    었다. 그다…. 분명 그다. 이 녹발의 엘프는 분명….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너무나… 너무나도 뜻밖의 재회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왜 그러…,"

    "…할파스."

    영문을 알 리 없는 시린이 기다리다 못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니리아가 자그마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젖은 눈동자로 그녀가 말했다.

    "할파스… 하스, 하스 맞지…?"

    "…그래."

    씁쓰레하게 미소지으며 네이시가 답했다. 그래. 드디어 찾았다…. 그동안 찾아 헤

    매왔던 그를… 이제서야 찾았다. 와락. 순간 니리아는 네이시에게로 달려들며 그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하스."

    네이시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네이시가 조용히

    말했다.

    "오래간만이구나… 니리아."

    "응…."

    한참 동안의 포옹이 끝난 후, 둘은 천천히 떨어졌다. 니리아는 마치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그것을 본 네이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어 니리아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바보 같구나… 니리아."

    "으응…."

    니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근거리듯이 말했다.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

    "다행…이라. 난…, 그다지…."

    네이시가 말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특히 니리아 너는…. 모두를 죽인 내가 무슨 면목으

    로…."

    "그게 무슨 소리야, 하스…! 물론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

    잖아…. 난… 네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는걸."

    니리아는 조용조용히 말했고, 그런 그녀의 말에 네이시는 한차례 고개를 가로저었

    다.

    "날 살리기 위해 그들이 죽었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어. 그 때 내가 죽었

    어야 했어. 그러면 다른 엘프들이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하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군…….'

    계속 이어지는 네이시와 니리아의 대화를 보며 시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시린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

    다. 네이시와 니리아, 이 둘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셈일

    테다. 그렇다면…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좋겠지.

    시린은 약간 둔한 면이 있기는 해도―네이시의 말마따나―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

    니었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터뜨리고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네이

    시는 그것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니리아가 말했다.

    "네 마음이 어떻든… 난 이렇게 널 다시 만나서 기뻐. 그 날, 네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을 때 내가 얼마나 울었는 줄 알아?"

    "그래…. 그랬겠지…."

    "그 후로 난… 너를 찾아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 그러다 여기 사이아스 시까

    지 오게 됐지…."

    "너 궁정마법사가 된 것 같던데."

    네이시의 물음에 니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프로나드―제 1 궁정마법사야. 널 찾는데 여기의 마법사들이 힘을 빌려준

    다는 조건으로…."

    "그랬구나…."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 너를…."

    "그래, 당연하겠지…."

    네이시는 슬픈 듯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볍게 니리아의 손을 잡

    아 자신의 가슴으로 이끌었다. 네이시는 니리아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게 했고,

    잠시 후 니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스, 이건…?"

    "정령이 느껴지지 않지?…"

    네이시는 처연하게 미소지었다.

    "그 날 이후… 정령들은 나를 거부해. 엘프 자격 상실이지."

    "하스."

    "그만둬, 이제.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말아 줘. 난… 지금의 난 더 이상 예가의

    후계자 할파스 아이빈하르가 아니야. 단지 떠돌이 엘프 네이시 레이어드일 뿐이

    야."

    "포기한 거야, 모두…?"

    니리아가 물었다. 그녀의 귀가 살짝 숙여져 있었다. 눈물이 맺힌 채 일렁이는 눈

    동자로 그녀가 물었다.

    "단념한 거야?…"

    "니리아,"

    네이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 주길 바래?…"

    "돌아와… 줘."

    니리아가 대답했다.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이어 말했다.

    "시린 씨에게 들었어…. 너에 대해서.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을 땐 그게 너의 이

    야기인 줄은 몰랐지만. 많이 변했더라, 너…. 예전의 너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행동들인데…."

    "…그래."

    "돌아와 줘."

    니리아는 말했다.

    "예전의 너로 돌아와 줘. 모두에게로 돌아와 줘. 그리고…,"

    니리아는 여기서 말을 잠깐 끊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나에게로… 돌아와 줘…."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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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엘프는 엘프끼리 사귀어야 어울립니다. 인간 남자와 엘프 여자의 로맨스는

    이젠 너무도 흔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Neissy입니다)

    자, 그보다, 이것으로 네이시에 관해 조금 설명이 되었는지?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445 / 21149 등록일 : 2000년 07월 20일 22:20

    등록자 : NEISSY 조 회 : 20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86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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