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8)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세이어, 네이시 그리고 시린은 리단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캄힐트가 그치지 않은 때문일까, 리단의 거리는 한산했다. 정말이지 지긋지
긋하게 쏟아지는 폭우. 캄힐트라고는 해도 그나마 간헐적으로, 오다가 오지 않다가
했기에 망정이지 계속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면 제국은 개국 이래 최악의 홍수를 맞
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건, 일단 도착은 했군요."
어느 상점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시린이 말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글쎄요."
세이어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우선 도적 길드에 가 볼까 합니다."
"도적 길드?"
시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별로 현명치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의혹이 담긴 목소리로 시린은 그렇게 물었고,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여 시린의 말
을 긍정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보통은?"
"같이 가시겠습니까?"
오는 길에 들린 도시에서 구입한 롱 소드를 가볍게 두어 번 쳐 보이며 세이어가
말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 시린과 네이시는 아연실색했다.
'…이 사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도적 길드. 말 그대로 도적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이다. 도적들의 연합체인 셈이
다. 개개로서는 그다지 강력한 힘을 소유하지 못한 도적들이지만, 연합체로서의 힘
은 상당히 강력한 편이었다.
'길드'라는 이름에서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도적들의 권익 보호(?)를 위
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길드에 소속된 도적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다거나 하면
길드 차원에서의 보복이 행해진다. 도적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이들은 실
로 두려운 방법으로 보복을 가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암살.
사실 이 도적 길드에 의해 암살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음식에 독을 넣는다
든지, 밤에 몰래 와서 목을 딴다든지. 도적 길드에 원한을 산 사람은 한시 한때도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세이어가 보인 행동은 어쩌면 상당히 어리석은 것이었다. 롱
소드를 툭툭 쳐 보였다― 즉, 여차하면 검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인데, 길드를 상대
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어떤 보복을 받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대체 그런 것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세이어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세이어가 다시 한 번 물어왔고, 네이시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왜 하필 도적 길드에?"
"도적 길드의 정보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네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 길드의 정보력―. 이것이 사실 도적 길드의 무서운 점이었다.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도적들이니만큼, 그들은 별별 종류의 정보를 얻게 되기 마련이다. 그
리고 도적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돈을 받고 길드에
판다. 그런 식으로 해서, 길드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입되게 된다. 어느 정도
냐 하면, 심지어는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마저도 가끔 들어오고는 하니 말은
다 한 셈이다.
세이어는 도적 길드에서 정보를 얻어오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다만, 네이시로서
는 걱정되는 것이….
"괜찮겠어요, 그런 곳에 가서?"
괜히 어중이떠중이가 그런 곳에 갔다가 정보는 커녕 본전도 못 찾고 오는 일이 비
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목숨부터가 위험하다.
"글쎄요."
세이어가 대답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보다는, 일단 도적 길드를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아아, 신이시여. 네이시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도적 길드가 어디인
줄도 모르고 있으면서 도적 길드에서 정보를 얻겠다니, 이런 대책 없는 사람을 보
겠나.
"같이 가시겠습니까?"
세 번째, 세이어가 물어왔다. 시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양하겠습니다. 도적 길드라니…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군요."
"그렇습니까. …네이시 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이어가 그렇게 물어왔고, 네이시는 한차례 침을 꿀꺽 삼킨 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갈게요."
세이어 이 사람을 혼자 보냈다가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아무래도 내
가 같이 가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겠어… 라고 네이시는 생각했다. 세이어가 고
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세이어는 주저없이 빗속으로 걸어나갔고, 잠시 멍하니 있던 네이시는 곧 약간 당
황하며 세이어를 쫓았다.
"어? 잠깐만요, 세이어 씨, 같이 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시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세이어는,
그렇게 허술한 남자가 아니었다.
"…뭐예요, 방금 그거?"
구두가게를 빠져나오며 네이시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세이어는 간략하게
답했다.
"도적들의 암호입니다."
"그런 것도 알아요?"
네이시의 질문에 세이어는 낮게 웃었다.
"제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도적 길드에 가려 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아… 에에."
할 말이 없어진 네이시는 입을 다물었다. 세이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먹구름. 캄힐트가 그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갈까요."
그리고 약 20분을 걸었을까, 세이어는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온갖 술집, 그리고
유곽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네이시는 호기심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
러보았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비에 씻겨져서일까… 고약한 냄새는 나
지 않았지만, 대신 비에 젖어 늘어진 것이 상당히 지저분해 보였다. 하긴, 이런 뒷
골목이 깨끗하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유곽 안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중요한 부분만 가리는 옷을 걸친 여성들이 마치 유혹
하는 듯한 몸짓을 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이시는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세이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세이어는 무심한 표정으로 골목길을 걸
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세이어가 들어선 곳은, '고상함의 극치'라는 이름의 한 술집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자,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남자 너댓 명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
나 마치 개가 닭 보는 듯한 무심한 눈동자였고, 이내 그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술
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집 내부는 상당히 지저분한 편이었다. 청소를 한지 꽤 오래 되었는지 술집 벽
여기저기에 때가 끼어 있었으며, 더불어 어딘가에선지 누군가의 구토물 냄새도 은
은하게 풍겨왔다. 세이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카운터로 다가갔다. 카운터에서는
결코 선해 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인상을 한 바텐더가 무심한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텐더가 물었다.
"무슨 일이쇼?"
"술이나 한 잔 주십시오."
세이어는 가볍게 웃었다. 바텐더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뭘로 할 거요?"
"세이번 에이시크."
"그러쇼."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찬장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냈다. 네이시는 힐끗 병
에 붙은 라벨을 쳐다보았다. 뮤러트 와이아, 191년산. 네이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세이번 에이시크라더니?'
조르르….
바텐더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위스키를 잔에 따라서 건넸다. 세이어는 잔을 받고서
천천히 들이켰다.
달칵.
세이어가 가볍게 잔을 내려놓았고, 바텐더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
더는 손을 들어 카운터 옆의 쪽문을 가리켰다.
"가 보쇼."
"그럼."
세이어는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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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그냥 놔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올립니다.
고친 부분―.
세이너는 간략하게 답했다. <- 세이너는 대체 누구야?;;;
바텐더는 끄덕였다. <- 끄덕이긴 대체 뭘 끄덕였다는 거야?;;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220 / 21137 등록일 : 2000년 07월 14일 01:17
등록자 : NEISSY 조 회 : 215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79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