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76화 (77/158)
  • 3. 살아가는 이유 …… (4)

    어느 어두컴컴한 종유석 동굴―이라기보다는 땅 속의 공동이란 표현이 보다 정확

    하겠지만― 안. 지금 이 곳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정말! 이런 곳에 계시면 어떻게 해요?"

    "……."

    빽 소리를 지르는 이니아를 향해 세라린은 가만히 미소지어 보였다. 이니아는 가

    볍게 입술을 삐죽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왠일이지, 이니아? 지금은 세이어, 그 녀석하고 함께 있어야 할 텐데?"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불쾌하다는 듯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린 퓨어린이 물

    어왔다.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이니아가 말했다.

    "그 녀석이 저한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게 있어서요. …그런데, 정말 이런 곳에

    계시면 어떻게 해요? 게다가 힘도 숨겨놓은 채로. 찾는데 거진 한 달이나 걸렸잖

    아요."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세라린이 간단히 대답했고, 이니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알겠어."

    "그보다, 알아봐 달라고 한 게 뭔데? 빨리빨리 말하고 돌아가."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퓨어린이 말했다. 이니아가 볼을 부풀렸다.

    "너무하세요."

    "어쨌든, 말해 봐라. 세이어가 알아봐 달라고 한 게 무언지."

    세라린이 말했고, 이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말할게요. 지금 세이어랑 함께 있는 엘프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엘

    프가 좀 이상해요."

    "어떤 식으로."

    세라린이 물었다.

    "뭐랄까… 엘프 같지가 않달까? 그리고 그 엘프한테서 말이죠, 마의 기운이 느껴

    져요."

    "마의 기운… 이라면, 우리들의 기운을 이야기하는 건가?"

    세라린이 물음에 이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족들의 기운은 아니고… 최소 마왕 이상의 마나 파장 같은 것이 그에게서

    잔류하고 있었어요."

    "흐음…."

    "무슨 저주 같은 거에라도 걸린 것 같던데요."

    "저주라… 아는 바 있어, 퓨어린?"

    "아니."

    퓨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데어드레인, 헤이라스, 디드라, 디스트리아… 이 넷 중 하나는 알겠지. 그런데…

    저주라니? 그거 금지된 거 아니었어?"

    "금지…됐었지."

    세라린은 가볍게 얼굴을 굳혔다. 그의 눈동자에는 미미한 긴장의 빛이 떠올라 있

    었다. 세라린은 가볍게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계획이 있는 것 같군."

    "응? 뭐라고, 세라린?"

    "그분들… 뭔가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어."

    세라린은 나직하게 말했다.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군."

    "으아하아∼하아아암."

    아침. 잠에서 깨어난 시린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잠시 멍한 눈

    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시린은, 문득 무언가가 어제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비가 그쳤군."

    그렇게 말하며 시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린은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오와 제시아는 자고 있었고, 세이어와 네이시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

    았다. 시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어딜 간 거지."

    시린은 잠시 산책도 할 겸, 겸사겸사 세이어와 네이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시린은 곧 희한한 것을 발견했다.

    네이시가 땅에 엎드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하는 거야, 이 녀석?"

    시린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네이시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네이시를 흔들어 보

    았지만, 네이시는 미동하지 않았다. 시린은 혀를 차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곳에서 자면 어쩌자는 거냐. …그런데 몸도 안 좋은 녀석이 왜 밖에 나와서

    자고 있는 거지? 어이! 일어나! 임마!"

    시린은 거칠게 네이시를 흔들었고, 네이시는 그제야 부스스 눈을 떴다. 잠시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던 네이시는 천천히 시선을 시린에게 고정했다.

    "…어, 시린이구나?"

    네이시가 생긋 웃었다. 시린은 한숨을 내쉬며 네이시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나원참. 비 오는데 왜 밖에서 그러고 자고 있었던 거냐? 이것 봐, 다 젖었잖아,

    너."

    "그런가?"

    네이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뭐, 지금은 비 안오잖아?"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냐."

    "흐음…. 날 걱정해 준 거야, 시린? 역시 이것은 사랑의 힘이겠지?"

    "…말 같은 소릴 해라!"

    시린은 이를 갈며 네이시의 머리를 한대 후려쳤다. 얼굴을 찌푸리며 네이시가 말

    했다.

    "환자를 때리다니."

    "네가 환자냐! …하여간, 이런 녀석에게 신경을 쓴 내가 바보지."

    "헤에. 뭐, 걱정하지 말라구. 난 엘프잖아."

    "단지 변태일 뿐이지."

    "어랏. 너무한데 시린?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그 한 마디로 묵살…."

    퍽.

    네이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린이 네이시의 뒷통수를 향해 강하게

    일격을 날린 때문이었다. 눈을 찡그리며 네이시가 말했다.

    "아야야야…. 시린은 너무 과격해."

    "헛소리 해대는 거 보니 멀쩡하네. 난 산책 좀 하러 갔다 올 거다. 아침 준비나

    해둬."

    "에? 아침 준비? 이건 마치 부부간의 대화 같은데? 남편은 사냥감을 잡고∼ 아내

    는 아침을 준비하고∼."

    "…집어쳐. 이 변태 엘프 같으니."

    시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숲으로 걸어갔다. 네이시와 계속 이야기를 해 봐

    야 자신만 열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변태 엘프라."

    시린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나서, 혼자 남은 네이시가 중얼거렸다.

    "그래… 뭐, 난 엘프였지. 껍데기만이긴 하지만."

    네이시는 왼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스윽 닦았다. 손등에 묻어나온 피를 보며 네이

    시는 피식 웃었다.

    "여전히 둔하다니까, 시린 녀석."

    시린은 투덜거리면서 숲 속을 걷고 있었다. 투덜거리는 이유는… 뻔한 것이었다.

    네이시의 변태짓 때문이다.

    "하여간 진지하지 못하다니까, 그 녀석은."

    뭣 좀 진지하게 물어볼라치면 자꾸 변태 짓을 해대니…. 시린은 은근히 짜증이 치

    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땅에 퉤 침을 뱉었다.

    부스럭.

    순간, 돌연 시린의 앞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고, 시린은 긴장하며 움찔 자신의

    검 손잡이에 손을 갖다대었다.

    "뭐지…?"

    시린이 중얼거렸다. 부스럭. 다시 한 번 소리가 났고, 눈 앞의 풀숲이 흔들렸다.

    차박 발소리가 났다. 그리고….

    세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뭐 하시는 겁니까, 시린 씨?"

    검 손잡이에 손을 댄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시린을 보고 세이어는 이상하다는 듯

    이 물어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왠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시린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검 손잡이에서 손

    을 뗐다.

    "그보다, 여기서 뭘 하시고 계신 겁니까, 세이어 씨?"

    "시린 씨와 비슷한 이유겠지요."

    그렇게 말한 세이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시린을 지나쳐갔다. …문득, 네이시

    의 생각이 난 시린은 고개를 돌려 세이어에게 물었다.

    "아, 저기. 언제 산막에서 나오신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세이어가 반문해왔다. 시린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네이시가 언제쯤 산막을 나선 건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네이시 씨라면 어젯밤 12시경에 산막을 나서셨습니다만."

    별 거 아니란 듯한 어조로 세이어가 말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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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천천히… 이야기의 본 전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주

    천천히 입니다만) 기대해 주세요. 냐하하.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148 / 21137 등록일 : 2000년 07월 10일 22:07

    등록자 : NEISSY 조 회 : 22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75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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