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3)
시린과 지오가 한참 판을 벌이고 있던 시각, 그 즈음에 세이어는 숲속을 돌아다니
고 있었다. 말마따나 미친 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세이어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하긴, 세이어가 비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긴 하다. 어쨌건, 세이어의 근본
은 정신체니까.
세이어는 세다라의 기척―정확히 말하자면 세다라의 마나 파장을 찾고 있었다. 마
나 파장이라는 것은 원래 그 존재가 내뿜는 고유의 존재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존재마다 각기 다르다. 말하자면 지문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세다라의 경우는 사실 추적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정신체. 즉 일백 퍼센트 마나로
만 구성되어 있는 존재가 마족이기에, 마족이 내뿜는 마나 파장은 인간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강한 편이다. 게다가 세다라는 스스로도 밝혔듯이 1급 마족. 그런만큼
내뿜는 마나 파장도 상당히 강렬한 편이어서, 그동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한데….
"이상하군요…."
세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흐트러져 있다는 것은…."
세이어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제국에 들어왔을 즈음, 정확히 말해 이곳 던
드 산맥에 들어섰을 즈음부터 세다라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던 것이었다. 마치 안개
속에 들어서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마나 파장을 숨긴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정 이상의 마족들은,
자신의 힘을 숨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가는
마족을 적대시하는 존재들에게 공격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
은 다르다. 그것은 힘을 거의 완전히 숨기는 것으로, 지금 같이 존재감이 희미해지
는 것과는 틀린 것이다.
여태껏 이런 경우는 없었기에 세이어는 내심 답답해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세다
라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세이어는 오른손을 들어 물에 젖어 착 내려앉은 머리칼
을 쓸어넘겼다.
"어딜 갔다 오신 거예요?"
산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세이어를 향해 네이시가 물어왔다. 세이어는
특유의 무표정과 함께 조용히 말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흐음."
네이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아, 세이어 씨? 카드 놀이 하실 생각 없으세요?"
한창 신나게 판을 벌이고 있던 지오가 외쳤다. 세이어는 살짝 고개를 저었고, 지
오는 씨익 웃었다.
"뭐, 하기 싫으시면 마시고요. 자자. 시린 씨, 그럼 계속하죠?"
"좋습니다. 그럼 패를 보이시죠."
"한번 받아 보시죠. 자! 스트레이트 원샤트!"
"큭… 그런 패를. 하지만, 제 것은… 풀하우스 사권입니다! 하하하!"
"헉! 그런!?"
"……."
신나게 카드 놀이를 하는 지오와 시린. 그 둘을 바라보던 세이어가 가만히 한차례
고개를 젓더니 네이시에게 물었다.
"…제시아 씨는?"
"제시아 씨라면 저쪽에서 자고 있어요."
네이시는 구석 쪽의 침대에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자고 있는 제시아를 눈
짓했다.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기,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괜찮아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세이어가 반문했다. 뜬금없이 '괜찮냐'니. 세이어는 가만
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이시는 살짝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걱정 안 돼요? 린 씨라던가, 그 여자분 말예요."
"그건 무엇 때문에 물으십니까?"
"……뭐, 그냥 궁금해서요."
네이시가 생긋 웃어 보였다. 세이어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필요 이상으로 제게 간섭하지 말아 주십시오."
"……말이 조금 심한 거 아녜요? …이봐요!"
세이어의 말에 발끈한 네이시가 외쳤으나, 세이어는 그런 네이시를 무시한 채 구
석의 나무 침대로 가서 누웠다. 네이시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세이
어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여전히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어조. 이건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과 대화하는 느낌이
다. 네이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동료잖아요. 그렇죠?"
"글쎄요."
"…글쎄요 라뇨? 이봐요, 이봐. 세이어 씨."
"……."
세이어는 네이시를 피해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필요 이상 제게 상관하지 말아 주십시오."
"……."
네이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알고는 있었다. 이 세
이어란 남자가 이런 성격이란 건. 네이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에이, 잠이나 자자."
네이시는 침대에 벌렁 몸을 눕혔다. 솔직히 이젠 자신도 잘 모르겠다. 왜 이 세이
어란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 건지.
"으악!! 로얄 마운틴 플래쉬!?"
"하하하! 어서 50실 주십시오!"
"지오 씨, 그리고 시린! 좀 조용히 못해요!"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지오와 시린. 순간 짜증이 치밀어올라 네이시는 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지오와 시린은 왜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야… 라는 얼굴로 네이시
를 바라보더니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자, 50실 어서 주십시오, 지오 씨!"
"윽…. 이대로 끝나진 않아요!"
"하하, 물론입니다. 더 뜯어낼 거라고요!"
"…아아, 짜증나…."
네이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귀를 틀어막았다.
…솨아아아아.
여전한 모양이다, 이 폭우.
"우욱…."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네이시는 눈을 떴
다. 산막 안은 어두웠다. 한밤중인 모양이다. 다들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드드렁….
시린이 코를 고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네이시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쿨럭, 쿨럭…."
기침이 튀어나온다. 네이시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비틀비틀 문으로 걸어나간다.
문고리를 잡는다. 차가운 쇠의 느낌이 전해져온다.
덜컹.
문을 연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폭우다. 세차게 내려대는 비는 네이시의 몸을 적신다. 아직 산막을 나선 것도 아
닌데도 불구하고 네이시의 정면은 완전히 젖어 버린다.
비틀… 비틀. 네이시는 밖으로 걸어나가고 나서 다시 문을 닫는다. 두두두두둑….
비가 네이시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따갑다. 네이시는 몇 발짝 더 걸어가다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큭, 끄윽…."
고통. 전신을 칼로 헤집는 듯한 고통이 전해져온다. 네이시는 상체를 앞으로 숙인
다. 뜨겁다. 온몸을 불로 달구는 듯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네이시는 나지막
히 중얼거린다.
"또… 발작… 인가…? 하… 하하하…."
크윽. 순간 네이시의 눈이 부릅떠진다. 무릅을 꿇고서 양팔을 땅에 댄 채, 네이시
는 고통에 몸을 떤다.
"카… 카학…!"
움푹. 네이시의 입을 통해 피가 쏟아져 내린다. 각혈이다. 땅에 떨어진 피는 빗물
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간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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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습니다.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의 전달자. 이것은 또 하나의 세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만, 이 소설 재미있기는 해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100 / 21137 등록일 : 2000년 07월 08일 23:25
등록자 : NEISSY 조 회 : 233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74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