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가는 이유 …… (2)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시는 것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허리를 굽히더니 침대 아래쪽에서 무언가 뒤적거렸다. 자신의
짐 중에서 무언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곧 한 벌의 옷을 꺼내들었다.
"자. 일단 이분이 옷을 갈아입게 남자분들은 잠시 나가 주세요. 지오 너도."
"…에?"
순간, 네이시와 시린, 그리고 세이어의 얼굴이 묘해졌다. 네이시가 생긋 웃었다.
"아… 저기, 전 남자인데요?"
"예?"
여성은 놀란 얼굴이었다.
"…남자…라고요?"
"네."
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아도 착각을 할 때가 다 있네."
씨익 웃으며 지오는 그렇게 말했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제시아가 말했다.
"뭐야, 그러는 넌 알고 있었어?"
"응? 물론 아니지."
자랑스럽다는 듯이 지오가 답했다. 제시아는 왼손을 들어 가볍게 이마에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어, 저기… 저 때문에 싸우지는 마세요."
모포를 두른 채 코를 훌쩍이며 네이시가 말했다.
"참, 그건 그렇고 이 모포 빌려 주셔서 고마워요."
"아뇨, 별로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어요."
지오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네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네이시의 옆에 앉아 있던 시린이 물었다.
"그런데 네이시."
"응?"
"왠일이냐? 너 그 정도로 허약하진 않았잖아."
"헤에…."
검지손가락을 들어 코를 훔치며 네이시가 생긋 웃었다.
"걱정해주는 거야, 시린?"
"…난 진지하게 묻는 거다."
"글쎄…."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네이시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역시, 후유증일까나…."
"뭐라고 했어, 네이시?"
"아냐. 아무것도."
네이시가 고개를 저었고, 시린은 멀뚱한 얼굴로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네이시와 시린을 바라보던 지오가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프리네리아 분들이신가 보죠?"
순간, 네이시와 시린의 얼굴이 가볍게 굳어졌다. 여기 이 지오라는 사람은 분명
칼리스타 제국민일 터. 앞서도 설명한 적이 있지만, 프리네리아와 칼리스타의 사이
는 결코 좋지 않다. 별로 좋은 의미에서 묻는 건 아닐 텐데… 라고 생각하던 네이
시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아무래도 지오의 표정이 자신들을 적대시한다거나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에? 아뇨, 그냥."
지오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억양이 우리 나라 사람 같진 않았거든요? 뭐, 그래서요."
"……?"
"신경쓰지 마세요."
의아해하는 시린과 네이시를 향해 제시아가 말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가 한차례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외국인이든 우리 나라 사람이든 저흰 어차피 신경쓰지 않아요. 이미 눈
치채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지오랑 저는 용병이거든요."
"그렇군요."
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받고 고용되는 병사― 용병. 어딘가에 소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전장을
찾는다고 하여,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멋지다는 평판을 받기도 하지만…, 조금 아
는 사람들에게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가 바로 이 용병이었다. 어디든간에 돈
을 더 많이 주는 쪽으로 붙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고아였다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인간들이 택하는 마지막
길 중 하나가 용병이었다. 어쨌건, 일단 싸움만 잘하면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사
실 그러니만큼 이 용병들에게서 애국심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근본이
떠돌이인 만큼 소속감이라든가 하는 것이 극히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들끼
리의 유대감만큼은 강했는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해주는 것
이랄까?
용병들에게는 적국이라든지, 적국의 사람이라 증오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애
초 적국이란 개념 자체가 별로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네이시는 그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기에 네이시는 입을 열어 지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희가 프리네리아 사람인 것이… 왜?"
"예? 뭘요?"
지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히려 그렇게 반문해왔다. 순간 왠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네이시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제시아가 끼어들었다.
"신경쓰지 마시라니까요? 지오 얘가 하는 말의 구십 퍼센트 이상이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예요. 워낙에 생각 없이 사는 애거든요."
"뭐야, 뭐야? 내가 생각 없이 산다고?"
지오가 미간을 찌푸렸고, 제시아는 생긋 웃었다.
"사실이 그렇잖아."
"우…."
지오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볼을 부풀렸다. 그 모양이 자못 귀여웠기에 네이시와
시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오는 이상하다는 듯이 네이시와 시린을 바라보다
가, 딱 하고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씩 웃으며 지오가 말했다.
"아 그렇지, 이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저기 카드 놀이 하실 생각 없으세요? 프리
네리아에도 카드 놀이는 있겠죠?"
"카드 놀이?"
시린이 눈을 반짝였다. 네이시가 가볍게 불을 긁적이며 물었다.
"카드 놀이… 그거 도박 아닌가요?"
"물론 도박이죠. …도박!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아요?"
지오가 열띤 음성으로 말했다.
"도박이란 건 말이죠, 인생이예요! 돈을 걸 때의 그 긴장감, 딸 때의 쾌감, 잃을
때의 실망감, 그 스릴! 서스펜스! 가히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
뭐니뭐니해도 도박은 인류중흥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요! 자, 그러니까…!"
"…그만해, 지오."
제시아가 지오의 말을 가로막았다. 창피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그녀가 네이시
와 시린을 돌아보고 말했다.
"지오 얘가 원래 좀 생각이 없어요."
"…도박이라면, 역시 돈을 걸고 하는 것이겠지?"
'돈'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시린이 네이시에게 물어왔다. 네이시는 왠지모를 불안
감을 느끼며 답했다.
"보통은 그렇겠지…만. 왜?"
"'돈'…이라, 그거지?"
순간, 시린의 눈동자가 광채를 띠었다. 네이시는 불안하게 시린을 바라보았고, 그
의 불안은 적중했다. 시린이 지오를 향해 이렇게 외쳤던 것이었다.
"좋습니다. 하죠!"
"야아. 역시 인생을 아시는 분이로군요!"
지오가 탄성을 내질렀고, 곧 둘은 한 나무 침대를 점거하고서 카드를 펼치기 시작
했다. 지오가 말했다.
"10실부터 시작하죠?"
"물론입니다."
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죽이 척척 맞는 둘이다. 네이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돈에 환장한 녀석 같으니."
"뭐… 어쩔 수 없겠네요."
허무하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제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그런데 그… 세이어 씨는 어딜 가신 거죠?"
"예?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딜 가신 건지."
제시아는 그렇게 말했고, 네이시는 가볍게 볼을 긁적였다.
"글쎄요.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다고 한 것, 듣지 않으셨어요?"
"물론 그 말이야 들었지만. 이런 때 어딜 가시겠다고."
"그런 거야 저도 모르죠."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네이시는 그냥 그렇게 얼버무렸다. 잘 알지
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해 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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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인 겁니다. (의미불명)
Neissy였습니다.
번 호 : 8075 / 21137 등록일 : 2000년 07월 07일 23:50
등록자 : NEISSY 조 회 : 22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7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