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30)
마나의 흐름이 아룬 등이 서 있는 거리를 휩싸고 있었다. 거대한 마나의 흐름….
아룬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룬이 중얼거렸다.
"…뭐지…?"
"이건……."
세실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엄청난 속도로, 도플갱어들이 위로 솟
아오르고 있었다. 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수백 수천의 도플갱어들이, 일제
히.
그리고…, 얼마나 솟아올랐을까. 희미하게 보이던 도플갱어들이 다시 떨어져 내리
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퍼퍽!!…
잘 익은 토마토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도플갱어들이 박살났다. 박살난 도
플갱어들은 본연의 형체인 유체로 돌아갔다.
…주르륵.
순식간에 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였다. ―물론 도플갱어들의 시체이지만…, 약간 꺼
림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세실이 외쳤다.
…펄럭.
무언가 펄럭이는 소리에 린과 세실, 그리고 아룬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인영이 그곳에 있었다. 검은 색 일변도의 복장, 길게 기른 흑색의 머리칼. 그리고
흑색의 망토. 방금의 펄럭이는 소리는 그 망토가 낸 소리인 모양이었다.
"…설마…?"
린이 중얼거렸다.
천천히, 그가 린 등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린 등도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고
, 그의 얼굴을 확인한 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세이어 님!!"
"다녀왔습니다."
세이어가 말했다.
세이어와 도플갱어들 사이의 능력 격차는 상당했다. 도플갱어들은 미처 세이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죽어갔다.
"파이어 스톰."
쿠오오오오―.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순식간에 도플갱어들이 불타 사라져갔다. 세이어는 무
표정한 얼굴로 이어 몇 차례 마법을 사용했고, 그 때마다 도플갱어들은 간단히 죽
어갔다.
"……허무해질 정도군."
바닥에 누운 아룬이 중얼거렸다. 세실이 헤죽 웃었다.
"헤…. 확실히 저 사람 대단한 것 같네요. 언니가 저 사람을 그렇게 믿고 있던 이
유를 알 것 같아요."
"그래…? …욱."
느껴지는 복부의 통증에 아룬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실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조심해야 해요. 오빠 상처, 가벼운 게 아니라구요."
"아… 괜찮아. 견딜 만은 해…."
아룬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까 도플갱어에게 찢긴 배의 상처가 아려
왔다.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투에 참가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뭐, 하긴 세이어가 있으니 참가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세이어가 와 준 덕분에 아룬이나 린, 세실은 편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아룬은 편히 누워서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마나를 채워 두고
있었다. 마나가 회복되자 아룬은 즉시 정령을 불러냈는데, 정령들이 말해 주는 주
위의 정황에 아룬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세이어라는 저 '사람'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위력의 마법으로 도플갱어들을 학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도
간단히 도플갱어들을 해치우고 있기 때문에 아룬은 허무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대강… 이 근처의 도플갱어들은 처치했습니다."
천천히 아룬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세이어가 말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린이 말했다.
"고마워요…, 세이어 님. 돌아와 주셔서."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이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고, 린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예…. 정말로…."
"……?"
"…아니예요, 아무것도."
의아해하는 세이어에게 린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룬이 입을 열었다. 세이어는 아룬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냉소를 입가에 띄우
며 말했다.
"린 씨를 지키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가요."
"……."
세이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이 세이어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저기…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에… 그러니까."
세실은 가볍게 볼을 긁적였다. 뭐가 쑥스러운지 그녀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어… 아까 낮에… 제가 세이어 씨를…. …음…, 그러니까…."
"…아아."
세이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으며 세이어가 말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예?"
"그 일로 세실 씨를 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세이어가 다시 아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아룬을 바라보며 세이어가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그 상처."
"뭐…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세이어는 무표정한 눈으로 가만히 아룬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걸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아…."
아룬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적지 않은 듯, 그가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
다. 몸을 일으킨 아룬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제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세이어가 말했다.
"린 씨."
"…예?"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소개할 사람이 있다… 고 말한 세이어는 광장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가는 동안 도
플갱어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이어는 '네이시 씨가… 잘 처리해 주신 모
양이군요'라고 중얼거렸고, 그 말에 아룬 등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광장에 도착했고, 기다리고 있던 네이시와 시린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어이― 세이어 씨, 과연 무사하네요?"
"…아아."
네이시의 말에 세이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시가 생긋 웃으며 린 등을
바라보았다.
"오, 거기 여자분은 구면이네요? 자, 정식으로 소개하죠. 전 세이어 씨의 동료,
네이시 레이어드입니다!"
"시린 미메이어입니다."
네이시에 이어 시린도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린과 세실, 아룬도 자기 소개를
했다. 서로 소개가 끝나자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그럼… 현재 이 도시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
아룬이 물었고, 세이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먼저 이 도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난 후에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린 씨?"
"예? 아… 예."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어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이 도시의 사람들은 이미 다 도플갱어들에게 당했다… 라는 것 정도는 다
들 알고 계시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침울한 기색으로 아룬이 대답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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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7월 4일에 올라올 겁니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990 / 21096 등록일 : 2000년 07월 04일 23:31
등록자 : NEISSY 조 회 : 25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7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