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68화 (69/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28)

    "세이어 님이?"

    린이 외쳤다. 그러한 그녀의 반응에, 아룬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을 잘 아는 모양이네?"

    "네…, 조금…."

    린은 세이어와 함께 다녔었다는 이야기를 아룬에게 했다. 물론, 디간과 관계된 자

    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단지 세실에게 해 주었던 정도로 적당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럼 린, 그 사람을…."

    "예에…."

    린이 살며시 미소지었다. 수줍어하는 듯한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아룬은 가볍

    게 미소지어 보였다.

    "…열심히 해 봐."

    "네…."

    "…저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말이죠."

    세실이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린과 아룬을 바라보며 세실은 이

    어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이 골목에 마냥 계속 있을 순 없잖아요."

    "아…, 그렇지."

    아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지금 뭘 어떻게 하기가 힘든 상황이야. 말했던

    것 같은데…. 아까,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도플갱어에게 당해 있다고 했지

    …?"

    "네. 그랬어요."

    세실이 대답했고, 아룬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다시 말해서… 우리 도시는 이제…. ……!"

    갑자기 아룬이 말을 멈췄다. 아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가 뿌득 이를 갈았다

    . 무언가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불안해진 세실이 물었다.

    "왜 그래요…, 오빠?"

    "…제길!"

    아룬이 욕설을 내뱉었다. 무언가 분한 얼굴로 그가 외쳤다.

    "젠장…, 우리 도시는…. 우리 도시는 이제 유령 도시가 된 거야…!! 제길. 어째

    서…."

    "…오빠?"

    "어째서 잊고 있었지? 젠장!!… 우리 도시가 망해가는 걸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

    었잖아!"

    아룬이 울분을 터뜨렸다.

    "멍청하게… '나는 안전하니까 됐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큭!"

    "…꺄악!"

    돌연 세실이 비명을 질렀다. 아룬은 놀라서 세실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어느새 나

    타난 도플갱어 하나―물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세실에게 달려들고 있었

    다. 아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샐러맨더, 해치워!"

    쿠오오.

    불로 만들어진 거대한 도마뱀의 형상. 샐러맨더―가 불을 뿜었고, 도플갱어는 맥

    없이 불타올랐다. 아룬이 외쳤다.

    "큭… 어쨌든,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아, 알겠어요…!"

    세실과 린이 골목길의 출구를 향해 뛰었고, 아룬이 그 뒤를 따랐다. 여차하면 정

    령들로 도플갱어들을 상대할 준비를 하면서. …그러나, 골목길을 빠져나간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세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맙소사…."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도플갱어들. 마치 유령과도 같은 형상으로 그들은 서 있

    었다. 아룬 등이 골목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 얼핏 보아도 100마리를 훨씬 상회하는 수다. …그러나.

    "큭."

    아룬이 신음했다. 지금 이 도시 안에 있는 도플갱어가 100마리 정도라고 생각하기

    는 힘들다. 이 도시의 인구는 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 대다수가 도플

    갱어에게 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상대하게 될 도플갱어의 수는 아마도 만

    마리에 육박한다. 게다가, 도플갱어의 수가 만을 훨씬 넘을 경우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일을 꾸민 자들―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로서는 도플갱어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을 테니까.

    '…하지만,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수의 도플갱어를…?'

    "하아아아∼!!"

    도플갱어들이 달려왔다. 마치 인간과도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아룬은 이를 앙다

    물며 자신이 소환해낼 수 있는 모든 정령들을 소환해냈다. 샐러맨더 둘, 언딘 하나

    , 노움 하나, 실프 둘.

    '큭,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냐!'

    도플갱어들을 공격하며 아룬은 흘깃 린과 세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하얗게 질

    린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 …힘들겠군. 아룬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달려오고 있는 100여 마리의 도플갱어들. 아룬은 앞으로 손을 내뻗으며 외쳤다.

    "노움, 저들을 속박해!"

    크콱.

    순간, 갑자기 도플갱어들이 있는 땅이 진흙질로 변하더니 도플갱어들의 발을 붙잡

    았다. 도플갱어들을 노움이 붙잡자, 아룬이 이어 외쳤다.

    "실프, 바람을! 샐러맨더, 화염을!"

    쿠오오오오―!!

    거센 바람이 몰아쳤고, 그 바람에 화염이 실렸다. 마치 1서클의 마법 파이어 스톰

    과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화르륵….

    도플갱어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룬은 슬며시 오른팔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내 힘이 떨어진다면, 그때는…'

    "와아! 오빠 대단해요!!"

    세실이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룬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아아…, 응…."

    "…오빠?"

    린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룬이 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저기… 또 오는데요…?"

    "…으응."

    아룬은 거리 바깥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플갱어들이 이쪽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