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67화 (68/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27)

    "……."

    아룬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정말로 엘프…?"

    "정말이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미심쩍다는 듯이 아룬이 물었고, 네이시는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정령이 저를 거부한다… 라고만 해두죠."

    "예?"

    "그런 게 있어요. …그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나네. 이봐요, 사과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녜요!?"

    "아…! 죄… 죄송합니다."

    아룬이 고개를 숙였고, 네이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지금 도플갱어 때문에 난리도 아니니까. 아룬 씨가 한 행동 이해는 해

    요."

    "호오. 왠일이냐, 네이시. 네가 그런 태도를 취할 때가 다 있고?"

    마침 이때다 생각한 시린이 히죽 웃으며 네이시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네이

    시는 생긋 웃으며 시린을 바라보았다. …문득 불안해지는 시린. 네이시가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헤에, 질투하는 거야, 시린?"

    "…누, 누가 질투 따위를 하냐!!"

    "흐음. 그런데 말은 왜 더듬을까. 부끄러워하는 거지, 시린? 귀여워∼."

    "집어쳐!!…"

    이어지는 네이시와 시린의 말다툼(?)을 들으며, 아룬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

    숲 속….

    화광이 충천한 가운데, 한 남자가 불타고 있는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흑발

    을 길게 기른 그 남자는 어딘가 다치기라도 한 듯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비틀,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후훗."

    문득 그가 조소를 터뜨렸다.

    "한 방… 먹었군요."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불타오르고 있는 숲 속. 지금 이 곳에 그 이외의 다른

    존재는 없었다. 그는 가볍게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다음에는…."

    "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네이시가 입을 열었다. 시린이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세이어 씨가 죽었을 리는 없고."

    "물론, 그거야 당연하지! 세이어 씨, 나보다 강하다고. 쉽게 죽을 세이어 씨가 아

    니야."

    "흐음…, 그런가."

    "그렇지."

    "아… 저기, 잠깐만요."

    아룬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네이시와 시린이 아룬을 돌아보았

    고, 아룬이 물었다.

    "세이어 씨…라면, 아까 낮의 그…?"

    "네. 우리와 같이 있던."

    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세이어 씨가 왜…?"

    "아아."

    아룬의 물음에, 네이시가 슬쩍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 일의 주모자들을 잡으러 간 모양인데, 어째 소식이 없네요."

    "흠…. 그런가요."

    아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아, 그러세요."

    네이시가 그렇게 말했고, 아룬은 고개를 한차례 끄덕인 후 몸을 돌려 뛰어가 수풀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윽고 아룬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 시린이 중얼거렸다.

    "…싱거운 사람이군."

    "그런 것 같네. 뭐, 그건 그렇고…, 정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응? 뭘?"

    시린이 반문했고, 네이시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세이어 씨 말야, 세이어 씨. 어떻게 할까? 찾으러 돌아다녀볼까, 아니면 그냥 여

    기서 기다려볼까."

    "글쎄…."

    시린이 턱에 손을 고이고 생각에 잠겼다. 네이시가 이어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어쨌든, 세

    이어 씨가 그리 쉽게 당할 위인은 아니니까 말야. 보통 인간은 아니라고."

    "그런…가?"

    "응. 세이어 씨를 따라다니기로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데. 아, 이 사람은 보

    통 사람과는 틀리구나. 마족과도 같은 느낌의 마나 파장이라… 신기한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네이시가 열띤 음성으로 말했다. 시린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좋아. 그럼 네 생각은 어때? 그냥 여기서 기다려?"

    네이시의 물음에 시린이 가볍게 한번 웃었다.

    "뭐, 어차피 별로 할 일도 없잖아."

    "그런가?"

    "그렇지."

    "흐음…."

    깊게 고개를 끄덕인 네이시가 이어 말했다.

    "해치우고 오겠지, 그 작자들을?"

    "놓쳤습니다."

    "에?"

    네이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 어쩌다가 놓쳤어요?"

    "도중에 한 마족분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헤에…, 그거 의외네요. 그럼, 그 마족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네이시의 물음에, 세이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마족분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흐음…, 그럼…?"

    "결국,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내지 못한 셈이지요."

    한차례 자조하며 세이어가 말했다.

    "그럼…, 일단 도시로 돌아갑시다."

    "에? 레이아다 시로 말인가요?"

    네이시가 물었고,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도플갱어 말입니까?"

    시린이 물었다. 세이어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

    시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의 침묵 후에, 네이시가 오른주먹으로 왼손 손바닥

    을 한차례 치며 외쳤다.

    "아!… 그 여자분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시가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흐음∼. 과연, 과연. 하긴 그러고보니 도플갱어들을 처리한 것도 다 그 여자분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어때요? 제 생각이 맞죠?"

    "…그렇습니다."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고, 네이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인가요?"

    "……사랑은… 아닙니다."

    세이어가 가볍게,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네이시는 이상하다는 얼굴

    을 했다.

    "에? …그럼?"

    "단지… 약속일 뿐입니다."

    약간 느릿하게, 끊어지듯 말하며 세이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약간 차가운 듯한

    어조로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은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알겠어요, 알겠어."

    네이시가 머리를 긁적이며 세이어의 뒤를 따랐다.

    "…거 참, 대화하기 힘든 타입의 사람이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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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올립니다.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799 / 21096 등록일 : 2000년 06월 24일 23:21

    등록자 : NEISSY 조 회 : 23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6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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