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61화 (62/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21)

    "…에, 그럼?…"

    시린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세이어는 한차례 차갑게 웃고 나서 말했다.

    "워프…."

    세이어들의 수갑과 족쇄를 흰 빛이 감쌌다. 강렬한 흰 빛. 흰 빛은 점점 강렬해졌

    고, 일정 밝기에 도달하자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느새 세이

    어들의 팔과 다리를 구속하던 수갑과 족쇄는 사라져 있었다. 네이시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워프. 공간의 왜곡으로 인한 오브젝트의 이동. 약간의 응용일 뿐입니다."

    ―쇄액!

    순간 세이어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단상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이제야 세이어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채고 석궁을 쏜 것이었다. 그러나, 세이어들

    을 노린 그 화살들은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갔다.

    터턱.

    한동작으로 세이어가 그 화살들을 잡아 버린 것이었다. 오른손에 잡힌 그 화살들

    을 가볍게 내던지며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무의미합니다…, 이런 것."

    병사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어 그들은 두번째의 석

    궁을 쏘아댔다. 그러나 그것들도 세이어가 잡아 버렸고, 그들의 공격은 무위로 돌

    아갔다.

    "…뭐 하는 거냐!!"

    상황을 알아차린 헤인샤이가 검을 뽑아들고 단상으로 달려올라왔다. …쿡. 세이어

    가 조소를 흘렸다.

    "당신에게는 빚이 있었지요… 헤인샤이 씨."

    "…즉결, 사형이닷!!…"

    그렇게 말하며 헤인샤이가 검을 날렸다. 그러나 세이어는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

    았다. 단지,

    "라이트 Light…."

    라는 한마디와 함께 오른손을 펼쳤을 뿐이었다.

    파앗!

    백색의 빛이 번쩍였다. 헤인샤이는 순간 세상이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 그는 당황

    해서 외쳤다.

    "뭐, 뭐지?"

    "일시적인 실명 현상입니다…."

    퍽!

    세이어는 헤인샤이에게 차기를 날렸고, 헤인샤이는 복부에 가해진 강한 충격을 느

    끼며 뒤로 튕겨나갔다. 그는 그대로 밀려나가 단상 아래에 처박혔다. 2예즈 높이의

    단상. 지면에 떨어지는 충격만 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쿠앙…!

    갑옷이 지면과 부딪혀 강렬한 금속성의 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놀

    라 사람들은 단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단상. 그 아래에 헤인샤이가 꼴사나운 모

    습으로 쓰러져 있었고, 단상 위에는 이미 족쇄가 풀린 세 명의 '용의자들'이 있었

    다.

    자신들에게로 향한 시선을 마주하며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약간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세이어는 왼손을 위로 치켜올리더니, 주먹을 쥐었다가 확 펼쳤다. 우웅… 하는 소

    리와 함께 세이어에게로 주위의 공기가 모여들었다. 충분히 공기가 압축되었다고

    느낀 세이어는 강하게 한차례 왼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거스트 오브 윈드."

    휘이이이이잉―!!!

    돌풍, 아니 폭풍이 펼쳐져나갔다. 강렬한 바람에, 사람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광장에 한가득 모여 있던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제

    히 튕겨져 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라 할 만했다.

    "……말도 안 돼."

    그 위력에 경악한 네이시가 입을 쩍 벌렸다.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12레벨의 거스트 오브 윈드입니다. 저들은 제 목숨을 노린 자들… 원래는 대가로

    죽음을 받아내야 하겠지만…."

    세이어가 조소했다.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해 두겠습니다. 그보다, 이만 슬슬 가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말한 세이어가 고개를 돌려 네이시와 시린을 바라보았다. 준비는 다 되었

    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네이시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린이 약간의 아쉬움이 남은

    말투로 말했다.

    "저 작자들에게 한 방쯤은 먹여주고 싶었는데…, 뭐, 이젠 상관없겠죠. 그런데,

    그냥 이대로 간다면 제 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린 씨의 검은… 근일 내로 되찾을 것입니다."

    세이어가 대답했고, 그제서야 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갑시다!"

    "그럼. ……워프."

    세이어가 주문을 외웠고, 그들의 몸은 이내 흰 빛에 싸여 사라져갔다.

    "아이구… 아야야."

    나동그라진 사람들 사이에서 세실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세이어가 무슨 짓

    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불어온 돌풍에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올

    라 날아가 버렸다는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다. 세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쥐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광장에 모여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다들 그 돌풍

    에 꽤나 호되게 당한 모양인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끙끙거리고 있었다. 하

    긴, 엄밀히 말하자면 그 돌풍 자체의 공격보다는 그 돌풍에 밀려 어딘가에―벽이라

    든지 하는― 부딪힌 충격이 큰 것이지만. 세실은 고개를 돌려 단상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세이어들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도망친 건가…?"

    세실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으득. 세실은 이를 악물었다.

    "…확실해. 그 자, 범인이 틀림없어. 몬스터니 어쩌니 하는 말도 다 거짓말이 분

    명해."

    한차례 몸을 펴며 욱신거리는 허리를 다독인 세실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쓰러져 있으리라 생각되는 그녀의 언니를 찾기 위함이

    었다.

    "…곤란하네."

    그러나,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녀의 언니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실은 한동안 린을 찾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포기한 세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 광장에 계속 있어봐야 별

    볼일도 없는데다가, 또 혹시 린이 이미 집에 돌아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밤.

    세실은 자기 방의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있어서 방 안이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세실은 누운 채 양손을 깍지껴 위로

    쭉 올리며 중얼거렸다.

    "우웅…. 정말, 어딜 간 거야, 언니는…?"

    린, 그녀의 언니는 아직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사실 세실은 지금 당

    장이라도 밖에 나가 린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야심한 시각이어서―여자

    혼자, 그것도 이런 때에 밖에 나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그

    냥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말이지, 대체 이런 때 어딜 간 거냔 말야."

    세실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밀려오는 불안감을 떨쳐냈다. 게이즌, 그녀의 아버지가

    세이어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지금 린 그녀마저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세

    이어가 린에게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가 대체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세실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창가로 돌렸다. 밤하늘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하현

    달이 보였다. …이미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

    려던 세실은, 문득 이상한 것을 보았다.

    창문의 틈새 사이로 무언가 이상한 것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액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젤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세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완전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반투명한 점액질의 생물이

    었다. 무언가 기분 나쁜 느낌에 세실은 상체를 일으켰다. ―순간, 세실은 섬짓함을

    느꼈다. 이 정체모를 생명체에게 탐색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슥….

    그것의 형체가 바뀌었다.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부정형의 그 생물은 천천히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상이 완성되자, 세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그것은 바로 세실, 그녀 자신의 형상이었던 것이었다. 순간 온몸을 엄습해오는 공

    포감에 세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세실'이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세실과 '세실'의 눈이 마주쳤다.

    …히죽.

    '세실'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히… 히아아아악!!…"

    세실은 튕기듯 일어서서 방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 To be continued... -

    ===========================================================================

    뭐,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세이어란 녀석에게 저 정도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

    니죠. (…하지만 이래서야 전개가 뻔하잖아!…;;)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562 / 21096 등록일 : 2000년 06월 14일 00:03

    등록자 : NEISSY 조 회 : 245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61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