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60화 (61/158)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20)

"―그럼, 그대에게 다시 한 번 묻도록 하겠소."

영주가 입을 열었다.

"…세이어, 그렇다면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그대가 '살해'한 것이 확실한가?"

"…실종된 '존재'들을 제가 '처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이어가 대답했다.

"사람들을 죽인 것은 아닙니다."

"―좋아. 충분하네."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광장에 둘러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시민 대표들과의 의논을 통한 결정을 지금 말하겠소. ―지금까지 일어

난 실종 사건은 여기 이 세이어라는 광인 狂人의 짓으로 밝혀졌소. 이 자는 멀쩡

한 사람들을 몬스터라 주장하며 여태껏 살해해 왔던 것이 분명하오. 이것은 단순

히 정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라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이 자에게 당한 우리 시민들의 수는 이백 명이 넘소. 이런 위험한 자

를 그냥 놓아 둘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 …그러므로 이 자들에게,"

영주는 여기서 잠깐 침을 삼키고는 이어 말했다.

"사형을 선고하겠소."

―와아아아아아!

순간 군중들이 엄청난 환성을 질러댔다. 그동안 이 이유도 모른 '실종 사건'―이

제는 살인극이라 밝혀졌지만― 때문에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가. 드디어 이제 범

인을 알아내고, 그를 구속하고, 그에게 사형을 내린 것이었다.

영주가 이어 말했다.

"세이어, 네이시, 시린. 이 세 명은 내일 화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오. 이것으로

그 동안 이 사건으로 인해 희생당했던 사람들의 분노가……"

"…화형이라는데?"

시린이 중얼거렸다. 네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과연. 멋진 전개야. …이봐요,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세이어가 물었다. 여전히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의 말투에 네이시가 기가 차다

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핫, 하하…. 왜 그러냐니, 정말 몰라서 물어요? 이 상황, 어떻게 처리할 생각

이예요? 설마하니 '내가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고 몬스터였다'라는 말을 저 사람

들이 곧이곧대로 들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

"특별히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세이어가 대답했다. 자신들에게 분노의 눈길로 이런저런 욕설들을 쏟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단상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는 말했다.

"하지만, 역시…."

"……?"

"…정상적인 판단력을 이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을까요."

그렇게 말한 세이어가 냉소했다. 그리고, 그 때였다.

"―어 님!! 세이어 님!…"

익숙한 목소리가 단상 바로 아래쪽에서 들려왔고, 그 소리에 세이어는 고개를 숙

여 아래를 내려보았다.

"……."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세이어가 가볍게 표정을 굳혔다. 차가운 목소리로 세이

어가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린 씨…?"

"에에?"

세이어의 옆에 있던 네이시와 시린도 덩달아 아래를 내려보았다. 단상 아래쪽에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네이시가 중얼거렸다.

"…그때 그 여자분이네."

"흐음. 헤어진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지?"

"그런 모양이네. …일단은 가만히 있자, 시린. 우리가 참견할 일은 아니니까."

"당연하지."

"왜… 잡히신 거예요…?"

린이 물었다.

"세이어 님은… 병사들에게 잡히실 분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는 못했습

니다만…."

세이어가 대답했다.

"일단 확인은 끝냈습니다."

"확인…이라뇨, 세이어 님…. 세이어 님은 지금….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

는지 보이지 않으세요? 지금 사람들 모두 이상하단 말이예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아무도 세이어 님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어요…. 이대로라면, 세이어 님은

…."

"죽게 된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십니까?"

세이어가 피식 웃었다.

"그런 것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세이어 님을 죽여야 한다고 난리들이예요!…"

"당연합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들은,"

"이들은…?"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세이어는 그렇게 말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그의 어조에 린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

꼈다. 낮게 조소한 후, 세이어는 이어 말했다.

"추하군요……."

"세이어… 님?…"

"이들의 어리석음… 거짓됨… 모든 것들이…"

세이어는 차갑게 웃었다.

"약간은 이해가 가는군요, 세라린 씨… 그의 생각이."

"……?"

"가십시오, 린 씨."

세이어가 말했다.

"저희는 곧 이곳에서 빠져나갈 것입니다…. 린 씨께서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빠져나가다니, 어떻게…?"

린이 걱정스레 물었다. 세이어는 냉소하며 말했다.

"제가 이대로 당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시고, 가십시오."

"다시… 오실 거죠?"

린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세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해요."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22일…. 그 때로부터 7일 후입니다."

"아…,"

"가십시오. 전 이분들에게 약간의 선물을 드릴 테니…. 린 씨께서 여기 계시면 곤

란합니다."

"아, 알겠어요."

린은 몸을 돌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광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네이시가 세이어에게 말했다.

"세이어 씨가 하라는 대로 그냥 가는군요? 어지간히도 세이어 씨를 신용하는 모양

이네요."

"신용…이라."

세이어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단상에서 내려가 '시민 대표'들과 또 무언가 의

논하고 있는 영주를 바라보며 시린이 말했다.

"…그보다, 저 영주 대체 뭘 생각하는 건지 궁금한데요. …혹시 뭔지 좀 알겠어요

, 세이어 씨는?"

"아아."

시린이 가리킨 쪽을 바라본 세이어가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의논하는 모양입니다. 저희들의 처리 방식에 대해서."

"에? 처리 방식에 대해서라니? 아까 끝난 거 아니었던가요, 그건?"

네이시가 물었다.

"불만이 있는 모양이겠지요…. 내일이라는 시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혹은

화형이라는 방식이 너무 약하다던가…."

"…살벌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시린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난 무죄란 말이야!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물론 이제 슬슬 빠져나가야 할 때입니다."

세이어가 말했다. 그런 세이어를 돌아보며, 시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빠져나가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우선 이 수갑에 족쇄부터가, 어떻게 제대로

뭘 할 수가 없게 했잖습니까. 게다가 저 뒤쪽에선 여전히 병사들이 석궁을 겨누

고 있단 말입니다. 행동이 수상하다 싶으면 당장 쏠 걸요."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 정도로… 저를 구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에에?"

세이어가 차갑게 웃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빠져나가는 것은 간단하다고."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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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인 세이어. 모든 것을 비웃는 저 말투. …아아, 쓰는 저 자신마저도 가끔

저 녀석에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입니다.

(어차피 데스트로이아에 나오는 녀석 중에 정상적인 녀석이 얼마 없긴 하지만…

그래도 세이어라는 녀석은 정말… --;;)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519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11일 23:14

등록자 : NEISSY 조 회 : 23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외전 Ⅰ # 1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외전 Ⅰ. 이미지 …… (1)

"사라져―!!"

콰앙.

한 청년의 외침과 함께 백염 白炎이 타올랐다. 강렬한 불꽃. 그 불꽃이 지나간 자

리에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후우… 후우…."

청년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타버린 신전. 이미 그 신전 안

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청년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긴 흑발을 쓸어넘겼다.

"끝났나…?"

그는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윤기 있는 한쌍의 순백색 날개. 온통 흑색 일변도인

그의 차림과 묘하게 어울리는 순백색의 날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럼, 가 볼까!"

상쾌한 미소를 남기고 그는 날아올랐다. 백염에 휩싸인 신전을 뒤로 한 채.

어느 한 광장 안.

"세라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청년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그가 밝게 미소지었다.

"이런, 퓨어린이잖아?"

"'이런'이라니? 내가 온 게 불만이야?"

"물론 아니지."

싱긋 웃으며 세라린은 오른손을 내밀어 퓨어린의 머리를 토닥였다. 손을 올려 세

라린의 손을 잡아 내리며 퓨어린이 웃었다.

"다행이네. 오래간만이야, 세라린. 3일 만이네."

"아아. 그동안 좀 할 일이 있었거든."

"알고 있어."

퓨어린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마왕들을 상대했다며? 힘들었겠어."

"힘들긴."

세라린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퓨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 우리 세라린이 겨우 마왕들 따위에 힘들어할 이유는 없겠지."

"물론이지. 빛의 신이신 사라딘께서 직접 내려주신 힘이야. 다하난의 조잡한 마족

나부랭이들을 상대하는데 힘들 이유가 없잖겠어?"

"그래."

퓨어린이 생긋 미소지었다. 세라린이 말했다.

"뭐, …이렇게 계속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어디 앉아서 이야기하자."

"그래."

세라린은 주위를 돌아보다가 버드나무 아래 놓인 벤치를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

다. 퓨어린과 함께 벤치에 앉으며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이 전쟁은."

"글쎄…. 그 어둠의 신들이 포기할 때까지 아닐까?"

"뭘 생각하는 걸까, 그 신들은. 인간들을 없애겠다니."

이 세계, '어스'가 창조된 지 1773년. 현재 어스는 '성전 聖戰'이라는 전쟁에 휘

말려 있었다. 신들끼리의 전쟁. 빛의 신, 어둠의 신이니 하며 나뉘어져 있긴 해도

서로간에 싸우는 일은 없었던 신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난 이유는… 바로 '인간' 때

문이었다.

태초.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 세상에는 13신이 있었다. 빛 계열을 관장하는 신 일

곱과 어둠 계열을 관장하는 신 여섯이었다. 빛 계열의 신―빛의 사라딘, 사랑의 헤

트리아, 희망의 드리, 믿음의 히어, 인내의 퓨리게, 창조의 데스트로이아, 용기의

브리디어. 그리고 어둠 계열의 신―어둠의 다하난, 증오의 아드리네스, 절망의 샤

이, 고통의 트러리즈, 분노의 제드, 파괴의 크리에티였다.

이들은 자신뿐만인 세상에 쓸쓸함을 느꼈고, 때문에 그들은 '어스'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갈 생물들을 창조했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빛 계열의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던 것이었다.

그들, 인간은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선'을 알았지만 '악'도 알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 그 당시 창조된 생물 중에는 유일하게 자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 이외의 존재를 꺾으려 하는 성격도, 호전성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

다. 그들은 신마저도 꺾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우려한 것이 어둠 계열의 신들이었다. 그들 인간은 너무 위험한 존재다.

'어스'를 파괴할 뿐 아니라 그들 신에게까지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래서, 다하난 등의 신들은 인간을 말살시키고자 했다. 위협을 예기할 존재라면,

폐기해버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사라딘 등의 신들은 인간을 없애

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본능에 따라 살아갈 뿐인

다른 생물과 달리, 신에게 거역할 수도 있을 정도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빛 계열 신들은 인간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어둠 계열 신들은 냉혹한 일면을 보였다. 그들은 만약 빛 계열 신들 스스로

가 인간을 없애지 않겠다면, 그들이 직접 나서서 인간을 없애겠다고 했다. 물론…

빛 계열 신들이 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긴 토론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전쟁이 시

작되기에 이르렀다. 길고 격렬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성전.

빛 계열 신들의 인간을 지키기 위한 전쟁…. 그렇게 빛 계열의 신과 어둠 계열의

신은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빛 계열 신들은 자신들을 위해 싸울 존재로 천사

를, 그리고 자신들의 '힘'을 불어 넣어 천사장을 만들어냈고, 어둠 계열 신들은 마

족을, 그리고 마족들을 통솔하는 마왕을 만들어냈다.

천사장, 세라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어, 힘들어…. 인간들을 지킨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하여간."

"너 그래도 썩 잘하잖아?"

퓨어린이 말했고, 세라린이 슬며시 웃었다.

"그래…. 이번에도 인간들을 한명도 죽지 않게 했다고."

"정말 대단해. 나도 그렇게까지는 못하는데."

퓨어린은 생긋 웃으며 세라린을 치켜세웠고, 세라린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 그래? 난 말야… 인간들이 좋아. 자신들의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

는 존재들. 사라딘께서 왜 이들을 만들어내셨는지 알 것 같아."

"그래? 흐음…."

"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세라린이 눈을 반짝였다. 퓨어린이 입술을 삐죽였다.

"인간들만을 위해서?…"

"그래. …아하, 아니아니…."

삐친 듯한 퓨어린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 눈치챈 듯 빙그레 미소지으며 세라린은

퓨어린의 긴 흑발을 매만졌다.

"퓨어린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푸훗. 옆구리 찔러 절 받기잖아."

"하하, 그런가?"

"뭐, 하지만 기분은 좋네."

퓨어린이 헤헤 웃었다. 세라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더 기분 좋게 해줄까?"

"응?"

퓨어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세라린을 바라보았고, 세라린은 씩 웃으며 퓨어린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퓨어린의 얼굴이 잘 익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세… 세라린?"

"하하하. 선물이라고 생각해 둬."

세라린은 가볍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슬슬 날아 볼까?"

"응? 어딜?"

퓨어린이 물었고, 세라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인간들의 도시지. 인간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걸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헤에… 그래?"

퓨어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한차례 날아 보자. 내가 함께해도 좋겠지?"

"물론이지. 너도 함께 가는 거야."

세라린이 싱긋 웃었다.

- (2)에서 계속 -

번 호 : 7520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11일 23:15

등록자 : NEISSY 조 회 : 212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외전 Ⅰ # 2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외전 Ⅰ. 이미지 …… (2)

어스 창조 원년 2731년. 성전 발발 1093년째.

'이상하다.'

세라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딘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예전과 같이 순수히 반겨주는 시선이 아니라, 어딘가 경계하는 듯한

시선.

'…착각이겠지.'

세라린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이 날 경계할 이유가 없지 않나?'

성전은 빛 계열 신들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이제 어둠 계열 신들은

정신계―혼 魂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밀려날 처지가 된 것이었다. 무언가를 지키

기 위해 싸우는 자와 파괴하기 위한 자의 차이 때문이랄까? 빛 계열 신들은 압도적

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또한 세라린 등의 천사장의 존재가 압도적인 승리를 가

져오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

간들에게 더 이상의 위협은 없으리라. 세라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뭐야?"

세라린은 당혹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마족들, 마왕들. 그들 어둠 계열의 신들의

수하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검은 색의 날개 대신 흰

색의 날개. 그로테스크한 외모 대신 자신들과 같은 미형의 외모.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외모가 바뀐다고 내면이 바뀌지는 않는다.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서 저들이 자신들

과 같은 강함을 소유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저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저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쳇."

순간 달려든 마왕의 공격에 그는 생각을 멈추고 위로 솟아올랐다. 그의 흰 날개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세라린은 재차 이어져온 마왕의 공격을 피해내고는 오른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잡아 쳐올렸다.

마왕의 얼굴에 마나를 주입하며 세라린은 외쳤다.

"익스프로전 블레이즈 Explosion blaze!!…"

콰쾅!

작열하는 백색의 불꽃. 산산조각난 마왕의 머리를 집어던지며 세라린은 이어져오

는 마족들의 공격을 상대했다.

"흥, 어설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에너지 구체를 피해 세라린이 공중에서 크게 선회했다. 수

없이 날아드는 에너지 구체. 얼굴을 찡그리며 세라린이 중얼거렸다.

"징그럽게도 많군. 마족들… 다섯, 열, 열다섯, 스물, …예순 일곱이라. 마릿수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거냐? 그러나, 수준이 낮아!"

파팡!

몸 속에 응축되었던 마나를 단번에 터뜨리며 세라린은 큰 소리로 외쳤다.

"방해하지마!"

섬광이 한차례 공중을 덮었다. 그리고 그 섬광이 사라지고 나자, 마족들의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자신의 흑발을 쓸어넘기며 세라린은 중얼거렸다.

"기분나쁘게, 흰색 날개라니…."

"후우…."

세라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원을 가득 메운 마족들. 흰색의 날개를 지니

고 있는 그들. 왠지 기분이 나빴다.

"흉내라도 내 보겠다는 거냐…?"

세라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부하들, 천사들에게 손짓했다.

"전투 준비…."

그러나, 그 때였다. 세라린의 예리한 시각은, 저 마족들의 앞쪽에 인간들의 군대

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 세라린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뭐지? 왜 인간들의 군대가? …아니, 그보다, 저대로라면 위험해!!"

인간들과 마족들의 능력 차는 상당하다. 저대로라면 저들은 그대로 몰살당할 위험

이 크다. 세라린은 급히 그쪽으로 날아갔다. 워프 Warp 마법을 사용해서 인간들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세라린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인간들의 군대는 질

서정연했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창끝은 자신들, 천사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세라린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때, 인간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왕 세라린! 각오하라!"

인간들의 군대… 그 선두에 선 기사의 외침. 그렇게 큰 외침은 아니었으나, 그 외

침의 내용은 세라린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뭐?"

세라린은 당황해서 외쳤다.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는 자신의 군대를 돌아보며 외

쳤다.

"가자! 악의 세력을 무찌르러! 우리에게는 빛의 다하난께서 함께 하신다!"

"…'빛'의 다하난!?…"

세라린은 어안이 벙벙해서 기사를 바라보았다. 지금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자신

이 마왕이라고? 그리고… 빛의 다하난이라고? 세라린은 당혹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인간의 군대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마왕과, 마족들과―이제는 '천사장'과 '천사'

들로 변해버린― 함께. 세라린은 충격에 머리가 아찔했다.

…어디서부터 엇갈린 것인가?

…우리들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것이 아니었나? 어째서 인간들이 지금 우

리를 공격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지금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는 거지?

"―라린!"

멍멍한 정신 속에, 익숙한 파장의 음파가 들려왔다.

"―세라린! 정신 차려! 뭐하는 거야!"

퓨어린이 자신을 흔들고 있었다. 세라린은 멍한 눈으로 퓨어린을 돌아보았다. 퓨

어린이 외쳤다.

"정신 차려, 세라린!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인간들과 싸울 수는 없잖아!"

"그, 그래…."

세라린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후퇴를 지시했다. 높이 날아올라, 전

장을 벗어나며 그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 (3)에서 계속 -

번 호 : 7521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11일 23:15

등록자 : NEISSY 조 회 : 213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외전 Ⅰ # 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외전 Ⅰ. 이미지 …… (3)

어스 창조 원년 2852년. '사신 전쟁 死神 戰爭' 발발 1214년째.

신계.

"…결국, 우리들은 그들에게 진 거란 말입니까?"

세라린이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라딘이 대답했다.

<그래…. 그들은 철저했다. 어느새 브리디어가 그들에게 회유되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용기의 브리디어. 빛의 7신 중 하나. 그러나 어느새 그는 어둠의 신들에게 붙었고

, 그들이 빛의 신들을 속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긴, 이젠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뀌어 있었지만.

<인간들의 신화가… 어느새 그렇게 바뀌어 있었을 줄이야.>

최근 5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인간들의 신화와 역사를 철저히 왜곡해

놓았다. 인간은, 애초 자신들을 창조한 존재인 빛 계열의 신들을 '악신'이라 부르

게 되었고, 자신들을 말살시켜려 했던 어둠 계열의 신들을 '주신'이라 부르며 숭배

하게 되었다. 어느새 빛 계열 신들과 어둠 계열 신들이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악신'들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에서 이기자면 인간들과 싸워야만 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제길…."

세라린이 욕설을 내뱉었다.

"우리들을 그렇게 잘도 물먹이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세라린.>

사라딘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이젠 다 끝난 일이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 버린 '악신'들은, 결국 스스로를 정신계에 봉인하

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왕과 마족들은 조용히 숨어 지내기로.

"숨어 지내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세라린이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

"우리들이 여태까지 왜 싸워 왔는데! 얼마나 힘들게 싸워 왔는데! 인간들을 위해

서, 인간들을 위해서 소멸의 위기까지 감수하며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리고, 이

제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인데! 이제 와서, 다 끝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

<세라린… 애초 이 전쟁은 인간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건 너도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그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알고 있겠지, 세

라린?>

"그러나… 그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세라린?>

"그건……."

세라린은 머뭇거렸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고…요?"

<그래.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이대로 당할 수만

은 없습니다!!"

세라린은 그렇게 외쳤다.

"사신 전쟁… 사신 전쟁이라…… 후…훗후후후…."

세라린은 허무하게 웃었다. 애초 이 전쟁은 '성전'이라 이름붙여졌었다. 그러나,

저 비열한 '주신' 자식들이 어느새 '사신 전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 나는… 마왕, 세라린…이라는 거냐…?"

세라린은 낮게 조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비겁한… 자식들!!…"

'주신'들은 인간들을 앞세워 치고 들어왔다. 애초 목적이 인간들을 지키는 것이었

던 '악신'들은 차마 인간들을 칠 수 없었고, 때문에 '악신'들은 이만큼이나 밀려난

것이었다.

지금, 세라린은 평원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군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순순히 물러가리라고 생각하나…!?"

세라린은 천천히 지면에 내려앉았다.

"마왕, 세라린이다!"

"조심해! 조심해라!"

"천사님들은? 천사님들은 지금 어디 계시지?"

인간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라린은 그런 그들의 소리를 뒤로 흘리며

천천히 인간들을 향해 걸어갔다. 세라린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인간들이 그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방어막을 펼쳐 그것을 무효화시키며 세라린

은 계속 인간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대로는 납득할 수 없어……."

크큭. 낮게 한차례 웃고 나서 세라린은 버럭 소리쳤다.

"인간들이여!!!……"

순간 조용해진 평원. 세라린은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수천의 인간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너희는… 진정 나를 적대시하겠다는 거냐? 진정… 우리를 대적하겠다는 거냐?"

인간들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저자는 마왕, 극악한 마왕이라 일컬어지는 세

라린이다. 그런데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잠시, 곧 그들은 세라린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방심을 보이고 있는 상대만큼 치기 쉬운 것도 없다.

"하아아아아아!!!"

말을 타고 달려온 기사가 장창을 내질렀다. 세라린은 무심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

보고 있었다. 퍽. 장창이 세라린의 가슴에 꽂혔다.

"……."

"지금이다――!!"

퍽. 퍼퍽. 제 2, 제 3의 기사가 돌진해왔고, 세라린은 너댓 개의 장창에 관통당했

다. 키긱…. 세라린의 몸을 관통한 장창끼리 서로 얽혀서 기괴한 소리를 냈다. 세

라린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

세라린은 '마왕'. 정신체다. 단순한 물리적 공격만으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

다. 이 정도의 공격은 그에겐 의미가 없다. 다만…….

"결국… 이런 결과로… 치닫고야 만다는 거냐?"

세라린이 중얼거렸다. 순간, 세라린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뜩였다.

"너희가 날 대적하겠다는 거냐…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콰쾅.

섬광이 번쩍였고, 다음 순간 세라린의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 인간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세라린은 살기로 눈을 빛내며 인간들을 바

라보았다.

"죽어 버려… 모두 죽어 버려!"

휘익.

한쌍의 흰색 날개가 펼쳐졌다. 세라린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인간들을

향해 돌진했다.

"너희들은……"

퍽.

세라린은 팔을 내뻗어 자신에게 창을 찔러오는 병사의 배를 관통했다. 푸슉. 피가

터져나와 세라린의 얼굴에 튀었다. 세라린은 히죽 웃었다.

"자유 의지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지……?"

세라린은 증오의 눈으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쿡… 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세라린은 광소를 터뜨리며 오른손에서 백염을 일으켰다. 한차례 오른팔을 휘둘러

불꽃의 벽을 펼친다. 그 사정 거리 내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순식간에 타올라 소멸

한다. 세라린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유 의지… 멋진 말이야… 큭, 쿠쿠쿠쿠… 크하하하하!"

인간들은 필사적으로 세라린을 상대했다. 그러나, 그들과 '마왕' 세라린과의 능력

차는 너무도 컸다. 그들의 반항은 무의미했고, 이제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

었다.

보름달이 떠올랐다. 세라린은 자신이 죽인 인간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왠지 허무했다. 세라린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바라보았다. 피. 인간들

의 피. 한때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의 피.

세라린은 손에서 백염을 일으켰다.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힘… 인가?… 쿠쿡…."

파악.

불꽃의 색이 변했다. 빛을 상징하는 백색의 불꽃이 아닌, 어둠을 상징하는 흑색의

불꽃으로. 세라린은 흑염 黑炎을 바라보며 조소를 터뜨렸다.

"이것이… 너희가 원하던 나의 모습인가?"

세라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향해 증오의 시선을 보내던 눈길들. 이젠 모

두 시체로 변해 버렸지만. 세라린은 냉소하며 자신의 백색 날개를 펼쳤다.

"마왕, 세라린이라……?"

이제 더 이상 이 날개의 의미는 없다. 세라린은 자신의 백색 날개를 흑색의 악마

날개로 바꾸었다.

"……멋지군."

세라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젠 확실한 마왕이 되어 버렸다. 마왕. 인간들의 보

호자 천사장 세라린이 아닌…, 인간의 학살자 마왕 세라린이 된 것이다. 세라린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훗… 후후후후… 핫하하하하하!!……"

극도의 슬픔…, 분노…, 그리고 절망.

만월이 뜬 어느 가을 밤.

시체들로 뒤덮인 평원 한가운데에서 한 존재가 광소하고 있었다.

-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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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린의 외전이었습니다. 순서상으로는 1장 바로 앞에 들어갑니다. 지금(프리

네리아력 193년)으로부터 1321년 전의 이야기죠. …아, 정확히 말하자면 세라린

의 봉인이 일어난 시기가 1321년 전입니다. 이야기 시작 때의 연도는 조금 더 오

래 되었죠.

그나저나 세라린… 원래 5판까지는 주인공이었거늘… 어쩌다가 세이어에게 밀려

버려 조연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쯧… 불쌍한 녀석.)

Neissy였습니다.

P.S. 이번 외전의 제목이 왜 이미지인가는…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뭐… 별로 생각할 것까지도 없나?)

번 호 : 7540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12일 23:46

등록자 : NEISSY 조 회 : 250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6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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