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17)
"그렇군요… 가 아니잖습니까."
시린이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게 되어서야…."
"… 아니요."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빠져나가는 것은 간단합니다. 다만, 아직 그럴 필요가 없을 뿐."
"…간단하다구요?…"
네이시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꼬여도 당당히 꼬였잖아요, 지금. 예상했다고 해도…, 지금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무언가 더 말하려는 네이시에게 세이어가 한마디 했다.
"그것은 당신들에게 해당되는 일일 뿐입니다."
"……."
네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런 건가요?"
"좋을 대로 생각하십시오."
세이어는 그렇게 말했고, 시린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감옥 벽에 기댔다. 수
갑의 사슬이 벽과 부딪히며 철그렁 소리를 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젠장."
달칵.
철창 사이로 빵이 담긴 접시와 물컵이 들이밀어졌다. 접시를 내밀며 병사가 무뚝
뚝하게 말했다.
"식사다."
"…형편없잖아, 이거."
거무튀튀한 색의 흑색빵을 지어들며 시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병사가 비웃음을 얼
굴에 띄우며 말했다.
"너희 같은 자들에겐 이런 것도 아깝지. 이 정도라도 나오는 것을 감사해라."
"…제기랄."
시린은 투덜대며 빵을 쪼개어 입에 넣었다. 접시에서 또 하나 빵을 집어들며 네이
시가 말했다.
"세이어 씨는, 식사 안 해요?"
"…전 상관없습니다."
세이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이시는 가만히 세이어를 바라보더니, 이내 슬쩍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특이한 사람이네. …이봐요, 정말 안 먹을 거예요? 나중에 후회해도 전 모
른다구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세이어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신경쓰지 말라니… 우린 동료잖아요?"
네이시가 히죽 웃었다. 세이어는 귀찮다는 듯이 한차례 고개를 저었다. 낮게 깔린
음성으로 세이어가 말했다.
"…집착하지 마십시오."
"…집착?"
네이시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세이어는 감았던 눈을 살짝 떠서 네이시를 바
라보았다. ―무언가가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에 네이시가 가볍게 몸을 떨
었다.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만…, 할파스라는 이름이… 기억에 있군요."
"―!"
네이시는 상당히 놀란 듯, 가볍게 입을 벌렸다. 세이어가 이어 중얼거리듯이 말했
다.
"…정령이 거부하는 엘프, …라고 하던가요."
"!!… 세이어 씨, 당신…,"
네이시가 말했다.
"절… 알고 있었던 건가요…!?"
"―저는,"
세이어가 조소를 흘렸다.
"생면부지인 자를 간단히 동료로 받아들인다던가 하는 식의 경솔한 짓은 하지 않
습니다."
"……."
"…그러기 위해 이니아 씨를 보낸 것이기도 하고."
"……?"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군요. 여하간… 지금은 일단 식사부터 끝내십시오.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세이어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머지는 후에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한 '동료'니까요."
"……."
네이시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며 돌아앉았다. 시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
어왔다.
"…지금 무슨 이야기 한 거냐, 세이어 씨가?"
"아무것도 아냐."
네이시는 슬며시 웃어 보였다. 그러나 시린은 미심쩍다는 듯한 눈초리로 네이시를
바라보았고, 네이시는 생긋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입술에 갖다댔다.
"자자. 식사나 하자."
"어이, 그래도… ……이힉?!"
시린의 얼굴이 급속도로 상기되었다. 네이시가 자신의 입술에 대고 있었던 손가락
을 쭉 내밀어 시린의 입술에 갖다댄 것이었다. 시린이 튕기듯 일어서며 외쳤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아레? 간접키스 몰라? 간·접·키·스."
"이… 이 변태 엘프 자식…!!"
"헤에, 부끄러워 하는 거야? 귀여워 시린∼."
"…집어쳐 이 자식아!!!"
시린이 이를 갈며 외쳤다. 시린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마구 주먹을 휘둘러댔고
―수갑이 행동을 제한하고 있어 그다지 위력적이진 못했지만― 네이시는 가벼운 몸
놀림으로 그것들을 간단히 피해냈다.
"…네이시 씨 다운 방식이군요."
그 모양을 바라보며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밤.
네이시는 침대로 쓰라고 주어진 짚단 위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감방 안은
어두웠다. 다만, 창살 너머 벽에 걸려 있는 횃불 때문에 사람의 윤곽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행여나 마법이라도 사용해서 탈출하면 곤란
하니까, 확실하게 감시하고 있겠다는 뜻일 것이다.
"후우…."
네이시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아래 깔린 짚단이 부스럭거렸다.
"그렇게 감시할 거면 이 수갑이나 족쇄 같은 건 조금쯤 풀어줘도 좋잖아."
여전히 석궁을 들고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병사를 힐끗 곁눈질하며 네이시가 중
얼거렸다. 옆에서 시린이 코를 고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
애써 잠을 청하는 네이시였지만, 불행히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뭐, 하긴 졸리
지 않은데 굳이 억지로 자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네이시는 가볍
게 고개를 저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는 벽에 등을 기
대고 앉은 자세 그대로 미동하지 않고 있었다.
'거의 열 시간이 넘도록 저 자세네…. 힘들지 않을까?…'
"세이어 씨?"
네이시가 슬며시 세이어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세이어가 대답했다. 전혀 졸리지 않은 듯 명확한 발음이었다. 네이시는 속으로 세
이어에게 감탄하며 말했다.
"그 뭐냐… '회의'인가. 내일이라고 했던가요…?"
"7월 21일…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이겠지요. 이미 자정이 넘었으니."
"…그렇군요."
네이시가 슬쩍 상체를 일으켰다.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주무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뇨. 별로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아서 말이죠. 이야기나 좀 할까요?"
"…이야기라."
세이어가 차갑게 웃었다.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뻔하잖아요."
네이시가 말했다.
"내일 어떻게 할 건지 말예요…. 설마 그냥 당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글쎄요…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단지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을 뿐입니다."
"…확인?"
네이시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 좀 해달라는 눈으로 네이시는
세이어를 바라보았지만, 세이어는 입을 다물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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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미숙한 전개는…. 쯧…. 오로지 노력일 뿐!!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463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10일 01:02
등록자 : NEISSY 조 회 : 255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57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