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13)
"변종이라…."
네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확실히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세이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가 왜 이런 것들을 보냈느냐입니다."
"'왜'…?"
시린이 중얼거렸다.
"자연발생이 아닌 이상,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
겠지요."
세이어가 말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것들은 처치해야겠지만, 그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
습니다. 뒷처리에 급급하는 것 보다는, 원천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해
결책이겠지요."
"뭐, 맞는 말이지만. 누가 보내는 줄 알고 그를 제거한다는 거죠?"
네이시가 물었다.
"지금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이어는 냉소하며 말했다.
"우선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일은 대단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개인이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린이 반론을 펼쳤고, 그의 말에 세이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본다
면 이 일은 어떤 조직체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련의 사건들?…"
네이시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고,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
았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느 한 가지 목적 하에 협력하고 있다고."
"그랬었던 것 같군요."
시린이 말했다. 슬쩍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는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한데, 한 가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세이어 씨, 어째서 그렇게
단정짓듯이 말하는 겁니까?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군요
."
"그렇게 보였습니까?…"
세이어가 슬쩍 미소지었다.
"특별히 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짐작가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짐작?"
시린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세이어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게이즌은 집을 나와서 여관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로 향했다. 세이어, 그 자가 여
관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찾아는 볼 생각이었다.
"으음…."
게이즌은 문득 세이어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저께 저녁에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눈빛은 게이즌의 뇌리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언뜻 보면 그저 무
감정해 보이는 눈동자일 뿐이지만…. 차갑게, 아주 차갑게 빛나고 있는 그의 눈 속
에서는 언뜻 광기가 엿보였다.
"잘 했던 거야. 아무렴. 잘 했고말고."
게이즌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눈빛만으로도 게이즌은 이미 세이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눈빛, 그 태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는 힘든 사람이다. 게다가… 린의 말에 따르면, 그는 모
든 사람을 눈 아래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영주조차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라니까
…. 린이 확실하게 말을 해주지 않아서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그가 영주
사망의 원흉일지도 모르는 일이다.―린은 영주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만 이야기
했다―
사실 그 때 세이어가 스스로 나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그를 쫓아낼 생각이었던
게이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스스로 나가 버렸지만.
"그것에 앙심을 품은 거냐?…"
게이즌이 중얼거렸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여관들
이 잔뜩 늘어서 있는 골목. 이곳이다. 세이어 그를 찾는다고 한다면 우선 이곳부터
찾아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일 것이다.
게이즌은 가만히 간판들을 둘러보았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게이즌은 천천히 걸
어가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인상착의 정도로도 찾을 수는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한 여관 안으로 들어가려던 게이즌은, 문득 인기척을 느
끼고 그대로 멈춰섰다.
"……?"
게이즌은 고개를 들어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안쪽으로 한참 저 쪽, 약 20예즈
정도 너머의 한 여관에서 세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게이즌이 아
는 사람이었다.
"…세이어!…"
놀란 듯 게이즌이 작게 소리쳤다. 사실 세이어를 찾겠다며 이곳으로 오긴 했었지
만, 이렇게까지 빨리 찾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게이즌이었다. 게이즌은 큰
소리로 그를 부르려다가, 생각을 바꾸고는 행동을 멈췄다.
'…이 밤중에 어딜 가려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이즌은 조용히 그들을 따라가기로 생각을 바꿨다. 문득, 그
들이 게이즌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게이즌은 얼른 가까운 골목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저벅, 저벅.
발소리와 함께 그들이 게이즌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게이즌은 숨을 죽
였다. 게이즌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들은 별 변동없는 발걸음으로 게이즌이 있는
골목을 지나쳐갔다. 게이즌은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맨 앞의 남자는
세이어―. 일전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게이즌은 표정을 굳혔
다.
'분명해….'
그리고 세이어 뒤를, 왠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따르고 있었다. 분명 그저께
만 해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었는데…. 세이어와 한 패인 것일까? 게이즌은 그렇
게 생각하며 그들이 자신이 숨은 골목길을 완전히 지나쳐가길 기다렸다.
"……."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희미해져서 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이 되어서야
게이즌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저만치 대로를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이즌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하며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욱."
오른팔에 통증을 느끼며, 게이즌은 작게 신음을 내질렀다. 게이즌은 얼굴을 찌푸
리며 고개를 숙여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 찢겨 옷에 피가 배어나오고 있
었다. 게이즌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고개를 들어 세이어들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가 보였다가 했지만, 어떻게든 아직 놓치지는 않고
있었다.
"한밤중에 이런 숲속에라니, 무슨 꿍꿍이지?…"
게이즌은 투덜거리며 계속해서 세이어들을 쫓았다. 이미 도시를 벗어나 숲 속에
들어선 지도 오래.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듯 했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의 발걸음은 상당히 빨랐다. 나이
가 꽤 든 게이즌으로서는―더더구나, '미행'하는 입장이다보니― 따라가기가 힘들
었다.
"큭!…"
어딘가의 나무뿌리에 걸린 것일까. 멋들어지게 넘어지며 게이즌은 신음을 토했다.
게이즌은 땅에 손을 짚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쓰러지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모양인지 머리가 욱신거렸다. 게이즌은 오른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게이즌은 고개를 쳐들었다. 아까부터 놓칠막 말락 한 세이어들이긴 했지만, 이젠
아예 놓쳐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게이즌은 끙 하고 한번 신음을 토하고는 자리에
서 일어섰다.
"놓쳐버렸나… 제길."
혹시나 싶어 몇차례 더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이즌은 할
수 없다는 듯 크게 한차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게이
즌은 방금까지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은 한밤중의 숲 속이다.
"이런."
이런 시간에 숲 속에 홀로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 세이어들을 쫓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게이즌에게 공
포심이 밀려왔다.
"……!"
어디선가 무언가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게이즌은 당황해서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 To be continued... -
===========================================================================
…….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357 / 21064 등록일 : 2000년 06월 05일 23:21
등록자 : NEISSY 조 회 : 25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53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