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50화 (51/158)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10)

"―아, 여기 있었군요!"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세이어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했다. 네이

시와 시린이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네이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한참 찾았어요. 어째 도중에 잃어 버려서….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예요?"

"…아아. 약간의 볼일이 있어서."

세이어는 조용히 입을 열어 그렇게 대답했고, 네이시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군요. 뭐, 마침 잘 됐네요. 아직 자정도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이

그리 늦은 것도 아니고. 이제부터라도 즐겁게 축제를 즐기죠?

'축제는 자정부터' 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게 말한 네이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시린이 끼어들었다.

"…그거 '인생은 육십부터' 아냐?"

"…토달지 마. …암튼,"

네이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 갈까요, 세이어 씨?"

"……."

세이어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네이시의 말을 전연 듣지 못한 듯이 세이

어는 가볍게 미간을 오므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네이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세이어 씨?!"

"…왜 그러십니까?"

그제서야 천천히 세이어가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네이시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말

했다.

"…축제잖아요, 축제.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가서 즐기자니까요?"

"아아."

알겠다는 듯이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전, 잠시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에에?"

네이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볼일이란 거… 끝나지 않았어요?"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세이어가 말했고, 네이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딴은 그렇기도 하네요."

"그럼, 이만…,"

세이어가 네이시 옆을 지나쳐갔고, 움찔하며 네이시가 세이어를 불러세웠다.

"아, 잠깐만요!…"

"…?"

왜 그러냐는 듯 세이어가 쳐다보자 네이시는 훗 하고 웃으며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입술에 갖다댔다. 약간은 이상한 네이시의 이런 행동에 세이어는 가볍게 미

간을 오므렸고, 곧이어 네이시가 이렇게 말했다.

"우린 '모닝 스크림' 301호실에 묵고 있어요. 나중에 그곳으로 오세요."

"……."

"뭐, 세이어 씨가 꼭 우리랑 같은 곳에 있어야 할 필욘 없다지만. 그래도 일단은

명색이 '동료'인데, 어디 묵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우습잖아요?"

네이시가 그렇게 말하자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겠다고 말한

후 세이어는 도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네이시와 시린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들어온 세이어가 가만히 냉소했다.

"'동료'… 라…. 후훗…."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동료라는 것은… 서로를 믿는 신뢰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과 세이어가 '동료'라고 강조한 네이시의 말은 조금은 우스운 것이었다. 그

들과 세이어가 대화를 나눈 것이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이런 시점에서… 신뢰란

것이 생겼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세이어와 그들이 '동료'가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동료'의 의의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네이시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라는

것을 강조한 네이시의 말… 무언가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다지… 상관은 없겠지요."

세이어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한차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세실은 그렇게 말했었다. '언니라면 저 쪽에, 분수 근처에 있을 거예요'

…라고. 세이어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수는 광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린, 그녀가

계속 그곳에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단 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

각하고 세이어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화톳불,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이 땅을 밝히고 있었다. 한밤중

이라지만… 아직도 광장은 밝았다. 축제의 열기가 한창이었다. 이제 자정이 다 된

시각. 원래 이 만월 축제란 것이, 자정을 기점으로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자정을

기해 정확히 일곱 개의 불꽃이 터지고, 축제는 절정에 오르는 것이다.

뭐… 하긴 세이어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광장에 모여 있는 상당한 인파에 밀리며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특별

히 무슨 의미가 있다거나 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

한 한숨이었다.

복잡했다―. 전번 시도아 시에서부터 줄곧 느껴왔던 일이지만, 무언가가 머리 속

을 헝클어놓은 듯한 느낌에 머리가 복잡했다.

천천히, 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3예즈, 너비 2예즈 정도의 꽤 큰 분

수였다. 분수 주위에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축제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 가만

히 벤치에 앉아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노부부의 모습, 마냥 즐거운 듯한 아이들

의 모습. 그러나, 그 중에서 세이어가 찾는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툭.

순간 누군가가 세이어의 몸에 부딪혔다. 무슨 일인가 하고 세이어가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세이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문득, 무언가 이

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세이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 속이 복잡해서 아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청년의 모습은 무언가 이상했다.

앞머리를 턱까지 길게 기르고 있는 그 청년은, 눈을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두건이나 헤어 밴드 같은 것이 아니라,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저래서야 앞이 보일 지 의문이다.

"… 특이한 사람이군요."

세이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동안 광장을 둘러본 세이어는, 곧 이곳에는 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집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어디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굳이 찾으려면 못 찾

을 것 까지는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세이어는 광장 외곽의 한 벤치에 앉았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일 같은 것도 없었기

에, 이번 기회에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울러 앞으로의 행

로도.

――파앙!…

순간,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문득 세이어는 생각은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

았다.

불꽃이었다. 공기를 가르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꽃이,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을 퍼뜨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한창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세이어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바보같군요… 저란 녀석은…."

연이어 불꽃이 터졌다. 화려한 그 모습에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세이어는 그

런 사람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즐거워하는군요, 다들. 하지만…."

세이어는 몸을 일으켰다. 팟. 그 때 다시 한차례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주위

가 순간적으로 환해졌다. 세이어는 몸을 돌렸다.

파앙―.

다섯번째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세이어에게는 역광일 뿐이어서, 그

의 얼굴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광장을 뒤로 한 채 세이어가 천천히

바깥쪽으로 빠져나갔다.

"애초에 어울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으니…."

세이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암울한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 밖에는 되지 않았겠지요."

여섯번째, 그리고 일곱번째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불

꽃은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았고, 주변은 다시 원래의 어두움으로 돌아갔다. …물

론, 방금 불꽃이 피어오를 때보다 어두운 것은 사실이지만, 말했듯 밝은 달빛과 화

톳불 덕분에 주위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아마 새벽까지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열기가 사그

라들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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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사건이 시작됩니다. 싱긋. (…그럼 여태까지의 일들은 사건이 아니란 말

이냐?)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243 / 21076 등록일 : 2000년 05월 29일 23:30

등록자 : NEISSY 조 회 : 259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50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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