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8)
<…저기 저 사람, 왜… 그… 누구냐, 린의 동생 아냐?…>
"세스레이나 양… 말씀이십니까?"
세이어가 그렇게 물었고, 이니아는 가벼운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저기… 저 골목길 안쪽에 말이야.>
"골목길?…"
세이어는 이니아가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잡한 거리. 늘어선 상
점들. 그리고 그 외곽 쪽의 골목길―.
그곳에 한 소녀와 소년, 그리고 한 성인 남성이 있었다. 무언가 담소라도 나누는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별 것 없다고 생각한 세이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씀이십니까?…"
<…너, 눈치 못 챈 거야?>
"예?…"
이니아가 답답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 애들 옆에 있는 녀석, 인간이 아니란 말야. 너 아무래도 감각이 좀 둔해진 것
같다. 시각에만 의존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군요."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이니아의 말을 인정한 후 세이어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세실과 또 한 소년,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약간 빠른 발걸음으로 세이어는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뭐예요, 당신은?… 아?"
세실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까 그… 이름이… 세이어?"
"아는 사람이야?"
세실 옆에 있던 소년이 물어왔다. 세실은 그 소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약간."
"……."
세이어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짧게 친 청발의 머리카락. 연한 눈썹 때문인지 유약
해 보이는 얼굴. 회색의 반팔 티셔츠와 청색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은 활
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
그리고 세이어는 자연스럽게 그 소년 옆에 선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색
의 웃도리와 푸른색의 멜빵바지를 입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인상의 남자였다. 실
눈에, 약간 큰 코에, 이중턱. 어디서건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입의 남자로, 외모만
으로는 그에게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없었으나― 세이어는 그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
았다.
"뭐예요? 우리 언니 보러 온 건가요?"
톡 쏘는 듯한 말투로 세실이 말했다.
"언니라면 저 쪽에, 분수 근처에 있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우리 언니 당신 때
문에 무지 혼났다고요. 미안하다는 기색 정도는 보이는 게 예의 아닐까요?"
"……아니요…."
천천히 세이어가 입을 열었다.
"전 린 씨를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에? 그럼?"
세이어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였다.
"이 분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으응? 나에게?"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세실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따지듯이 말했다.
"…우리 바인 아저씨에게 무슨 볼일이죠? 당신 같은 사람이 볼일이 있다고 한다면
…"
"이 분의 이름이 바인… 입니까?…"
세이어가 물었고, 세실은 기가 차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온 거예요?"
"글쎄요…."
세이어는 피식 웃었다.
"그런 것이야 어쨌든…, 잠시 저와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바인' 씨?"
"…무슨 일로?"
약간의 경계심을 드러내며 바인이 말했다. 세이어는 조소 띤 얼굴을 하고 말했다.
"글쎄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말하기 힘들군요."
"흐…음?…"
바인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세이어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잠깐이면 됩니다."
세이어와 바인은 한참을 걸어서 인적 없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되었다
고 생각한 세이어가 걸음을 멈추었고, 바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할 말이란 무엇이지?"
"글쎄요…."
스릉.
피식 웃더니, 세이어가 이니아를 꺼내들었다. 바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너?"
"꽤 인간 같은 행동이군요… '바인' 씨."
세이어가 중얼거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인간들이었다면 속았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인간이 아니라서요."
"너는!?…"
"이제 그만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고, 그 말에 바인이 으득 이를 악물었다.
"넌 대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이어는 이니아를 치켜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당신의 존재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혹 린 씨가 위험해질
지도 모르니까요. 위험요소는 제거해 두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세이어는 바인을 향해 조소를 보였다.
"…그 모습으로 계속 있으실 생각이신 것입니까?"
"크윽… 네놈은…?"
"아까부터 계속 그 말씀뿐이시로군요."
세이어가 냉소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이어는 천천히 바인을 향해 걸었다. 검을 든 모습이 어디로 보나 단호한 공격의
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으나, 바인은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뿜어
져나오기 시작한 세이어의 살기에 압도되어버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이제 죽어 주셔야겠다는 사실입니다."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바인은 자신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세이어가 조소
를 보냈다.
"공포심… 입니까? 당신 같은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로군요.
…자…, 죽어 주십시오."
"…크아아아악!!…"
순간, 정지되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기라도 한 듯 바인이 몸이 움직였다.
세이어에게 달려드는 바인. 그러나 그 동작은 세이어를 죽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 차라리 최후의 발악에 가까워 보였다. 세이어는 차갑게 웃으며 이니아를 휘둘렀
다.
"무의미합니다."
"…안 오네."
세실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흐음∼ 흐응∼."
"뭐라고 하는 거야, 프레인?"
세실이 말했고, 프레인은 싱긋 웃으며 세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응, …우리끼리 그냥 놀러 가자."
"바인 아저씨는 어떻게 하고?"
"아저씨?… 흠…."
프레인은 왼손가락을 이마에 짚고 잠시 생각하는 포즈를 취하더니, 이윽고 의미심
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아저씨는 아마 안 올 거야."
"…왜?"
"생각해봐! 아저씨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주려고 하신 것이 분명해. 마침 이런 기
회가 주어졌잖아. 이럴 때 노는 거라구. 그러니까 우리끼리 즐겁게 놀자구."
"음… 어딘지 이상한 말이지만 맞는 말 같아."
세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끼리 놀러 가자!"
"그래그래!"
의기투합한 세실과 프레인은 즐겁게 노래를 불러대며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To be continued... -
===========================================================================
無念, 無想.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209 / 21076 등록일 : 2000년 05월 27일 23:27
등록자 : NEISSY 조 회 : 266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48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