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45화 (46/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5)

    "큭."

    게이즌이 낮게 신음을 토했다. 세이어는 가볍게 냉소하더니, 그대로 게이즌을 밀

    쳐냈다. 게이즌이 소리쳤다.

    "큭…!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이 따위로 무례하게…!!"

    "……."

    세이어는 게이즌을 무시한 채 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린은 어쩔 줄 모르고 머뭇

    거리며 서 있었다.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세이어는 몸을 돌렸다. 뒤쪽에서 뭐라고 게이즌이 시끄럽게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스다 만월 대축제―.

    일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달인 케스다(7월). 7월 15일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밝

    은 보름달이 떴는데, 그것을 즐기는 축제였다. 사실, '만월 대축제'라면 원래는 달

    구경이 주가 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실상은 달구경보다는 '축제'에 의미를 두

    는 듯 했다.

    도시는 상당히 떠들썩했다. 축제…이니만큼, 온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쏟

    아져나와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 상당히 어두운 얼굴을 한 청년이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런 즐

    거운 분위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걷고 있는 청년― 세이어였다.

    세이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걸었다. 특별히 할 일 같은 것이 없었기에, 세

    이어는 그냥 레이아다 시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린의 집에

    서 그렇게 나온 이후, 그렇지 않아도 썩 좋지 않던 기분이 아예 가라앉아 버렸다.

    축제 따위를 즐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세이어는 광장 구석의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 세이어는 가만히 벤치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만월…입니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왠지 착잡한 기분에 세이어

    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참지 그랬어?>

    이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세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이니아는 아쉽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까 말야… 너, 그렇게 행동할 것 까진 없었잖아?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렸잖아.>

    "…글쎄요."

    세이어는 가만히 왼손을 들어올려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이렇게 된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네게는 상관없을 지 몰라도, 린 그녀에게는 상관 있어.>

    이니아는 약간은 질책하는 듯이 말했다.

    <게이즌 그 사람… 너와는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린 그녀와는 큰 관

    계가 있잖아. 그녀의 아버지고, 그녀의 가족이니까.>

    "…제가 그런 것까지도 배려해야 합니까?"

    <그녀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

    세이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러나'가 아니야.>

    이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세이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자조하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된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어쩌면 말이지요…,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더 좋은지도 모르겠군요."

    <…뭐?>

    "린 씨에게 있어서는, 저와 있는 것보다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쪽이 더욱 행

    복할 겁니다. 굳이 저를 따라오게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이니아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린이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세이어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이니아가 말했다.

    <린 그녀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야 하는 것 아냐? 설마 모르고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

    "…린 씨가 절 좋아한다고 하셨습니까?"

    세이어가 피식 조소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니?>

    의아하다는 듯한 어조로 이니아가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린 씨의 착각일 뿐이겠지요. 그

    때 린 씨에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감정의 착각일 것입니다."

    세이어는 한차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굳이 제가 함께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결국은.>

    이니아는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넌 도망치고 있는 거잖아.>

    "…예?…"

    <그걸로 네가 말한 '속죄'가 된다고 생각해? 가족들에게 데려다 주고선, 너만 쏙

    빠져나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느냔 말야.>

    세이어는 미간을 좁혔다.

    "빠져나간다… 라고요?…"

    <그렇잖아.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해?>

    "……."

    세이어는 입을 다물었다. 그 행동이 자신의 말에 대한 긍정이라고 판단한 이니아

    는 이어 말했다.

    <뭐, 어쨌든 네 일이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지만. 네가 이대로 그냥 간다

    면 그건 도망치는 거라고밖에 볼 수 없다… 라는 것 정도는 말해두고 싶어.>

    "……."

    <…내가 무슨 카운셀러도 아니고, 뭐하러 이런 걸 말해 주는 건지 모르겠네.>

    이니아가 투덜거렸고, 세이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확실히…. 분명 도망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

    이니아가 맞장구쳤고, 세이어는 다시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에서 몸을 일으

    켰다. 그리고, 그 때였다.

    콰당!

    세이어가 방금까지 앉아 있던 벤치로 무언가가 날아들었고, 벤치는 요란한 소리와

    함꼐 뒤로 넘어갔다. 동시에 '그것'도 땅바닥에 널부러졌다.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

    를 돌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그 엘프였다.

    네이시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야야야… 시린 녀석. 그런다고 집어 던지다니. …아."

    네이시의 눈과 세이어의 눈이 마주쳤다. 네이시가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오른손

    을 들어 세이어를 가리키며 외쳤다.

    "어제 그… 쿨― 한 포커페이스 남자!"

    네이시는 생긋 웃었다.

    "야아…. 이거 대단한 우연이네요. 이틀 연달아 두번씩이나 만나다니."

    "…그렇습니까."

    세이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어는 잠시 네이시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아, 잠깐만요."

    네이시가 세이어를 불러세웠다. 세이어가 뒤를 돌아보자, 네이시는 생긋 미소지으

    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축제라도 함께 즐기죠?"

    "…생각 없습니다."

    세이어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말투로 그렇게 말하자, 네이시는 씨익 웃었다.

    "흐음…. 어차피 당신도 혼자인 것 같은데, 그렇게 거절한 필요는 없지 않아요?

    뭐, 음식값 정도는 저희가 부담할 테니까요."

    "…'저희가'가 아니고 '제가' 겠지.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이시는 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것 참. 그렇게 째째하게 굴 건 없잖아, 시린?"

    "시끄러. 돈계산은 확실하게 해 둬야 한다고."

    씹어뱉듯이 시린이 말했고, 네이시는 싱긋 웃었다.

    "헤에. 하긴 뭐 너야 돈을 위해 살아가는 녀석이니까."

    "……."

    세이어는 입을 다문 채 그 둘을 바라보았다. 네이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세이어를

    바라보더니,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부담갖지 말고 그냥 함께 저녁이라도 하자고요."

    "그다지…."

    세이어가 거절을 표하려 했으나, 그의 말을 끊으며 네이시가 말했다.

    "할 말도 좀 있고 말이예요. 당신,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

    세이어의 얼굴이 가볍게 굳어졌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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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연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라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Neissy입

    니다. 야아… 이거 힘드네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 테니, 기대해 주

    세요!! (…뭘 기대해?)

    잡담란에 데스트로이아 일러스트를 올립니다. 한번쯤 봐 주세요^^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146 / 21076 등록일 : 2000년 05월 23일 23:38

    등록자 : NEISSY 조 회 : 264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45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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