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스트로이어-42화 (43/158)
  • 2.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 (2)

    네이시는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우…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 건데, 당연하지."

    시린은 씨익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네이시는 생긋 웃었다.

    "후훗. 상관없어. 언젠가는 고통이 쾌감으로 변할 날이 있을 테니까."

    "……."

    시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네가 변태라는 거다, 이 변태 엘프야."

    "마이 하니 네이시라고 부르라니까."

    "남자와 그런 짓거리 하고 싶은 생각 없어, 이 변태녀석아!"

    시린은 이를 갈며 그렇게 외쳤고, 네이시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맞는 말이야."

    "…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은 거냐?"

    "그런 거 알 게 뭐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이시가 말했다. 시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절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 녀석과 정상적인 대화를 기대한 내가 천치지…."

    "아무렴. 맞는 말이야."

    "… 칵!"

    결국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시린. 하지만 네이시는 이번에는 맞아줄 생각이 없었

    던 듯, 슬쩍 고개를 꺾어 시린의 주먹을 피했다. 시린은 이를 갈며 다시 한 번 강

    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도 네이시는 간단히 피해냈고, 어느새 저만치

    달려가 버렸다. 시린이 빠드득 이를 갈며 외쳤다.

    "얌마! 거기 안 서?!!"

    "후후후. 나잡아봐∼라∼."

    "……."

    문득 살의를 느끼는 시린이었다.

    "오늘이… 14일… 이던가요?"

    린이 입을 열었다. 세이어는 스프를 마시다 말고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아… 그냥요…. 내일이 7월 15일…이죠?"

    "케스다 15일…이지요. …아아."

    세이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스다 만월 대축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어는 그런 린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윽

    고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린 씨?

    서두르면 내일까지 레이아다 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아는 사람들과

    축제를 같이 하고 싶으셔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세이어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스프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는 말을 이었

    다.

    "그럼… 일단 점심은 끝내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지요. 걸음을 약간만 빨리 하면

    내일 중으로 레이아다 시에 도착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예에…."

    린은 살짝 미소지었다. 세이어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어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사실, 세이어는 원하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레이아다 시에 도착할 수는

    있었다. 워프라는 마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이어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

    라면 그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근본이 정신체인 자신이야 상관 없지만, 육

    체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인 린에게는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이기 때

    문이다. 물론,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에 미약한 손상이 가게 된다.

    세이어는 린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이제 삼가하고 싶었다.

    "스프… 더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이제 되었어요."

    세이어가 물었고, 린은 살풋 미소지으며 세이어의 권유를 사양했다. 세이어는 입

    가에 가볍게 미소를 띄우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식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린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세이어 님께서 설거지하시려고요?…"

    "그렇습니다."

    세이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린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세

    이어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무슨 문제라도?…"

    "어쩐지… 세이어 님이…"

    "……린 씨께서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십시오."

    "…그럼, 같이 해도 좋겠죠?"

    린은 생긋 웃었다.

    세이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 둘은 몸을 옮겨 개울가로 걸어갔다.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잔잔한 물소리와 함께 시내가 나타난다.

    세이어와 린은 시냇가에 앉아서 식기를 씻기 시작했다. 린은 식기를 닦으며 문득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세이어는 이런 일이 꽤 익숙한 듯, 오히려 여자인 자신보다

    도 빠르게 식기를 닦고 있었다. 문득 린의 시선을 눈치챈 듯 세이어가 고개를 들었

    다. 일순 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린이 생긋 미소지었다. 하지만 세이어는 무덤덤한

    시선으로 린의 미소를 받아넘기고는 다시 설거지를 계속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린

    이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그 때였다.

    콰앙!!…

    이라는 폭음과 함께 나무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튕겨나오듯 뛰쳐나왔다. 그것을

    확인한 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

    그 사람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에 처박혔다. 린이 당황하며 달려가 그 사람을

    붙들었다. …뾰족하고 긴 귀. 엘프였다. 그 엘프는 연신 재채기를 하며 고개를 저

    었다. 린이 걱정스레 말했다.

    "…무슨 일이예요?"

    "캑… 캘록, 캘록…."

    엘프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녹색의 길다란 머리칼이 흩날리며 물방울이 튕겨

    나왔다. 그녀(…)는 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며 멍해져

    있는 린에게 엘프가 입을 열었다. 고운 미성의 목소리였다.

    "도… 도와주세요. 저 사람이 절 죽이려 들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이 튀쳐나온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녀'가 손가락을 들기가 무섭게 그곳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인

    상의 남자였는데, 얼굴이 온통 시뻘개진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는 엘프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거기 그대로 있어, 네이시! 이번엔 절대로 죽여버릴 테니까!"

    "거봐요. 제 말이 맞죠?"

    네이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쩐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 치고는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눈치채지 못한 린은 불안한 듯이 세이어에게 말했다.

    "저기… 이 분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예? 하… 하지만, 이분은 여자고…."

    "특별히 여자라고 해서 도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엘프분은 남성

    입니다."

    "…… 에엣!?"

    세이어의 말에 린은 깜짝 놀라며 네이시를 바라보았다. 네이시는 생글생글 웃으며

    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요. 전 남자예요."

    "그… 그런…."

    어디로 보나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네이시. 게다가, 여자 중에서도 엄청나게 예

    쁜 축에 드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런 네이시가 남자라니, 린은 잠시 할 말을 잊

    었다.

    "남자… 라구요?"

    "네."

    네이시는 생긋 웃어 보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린. 네이시는 뭐가 만족스러운지 고

    개를 까닥이더니, 손가락을 볼에 대고 히죽 웃었다.

    "후훗. 제 수려한 외모 때문에 항상 오해를 사곤 하지요. 뭐, 그것도 나름대로 즐

    겁지만요.

    …시린, 봐봐. 여기 이분도 내가 여자로 보인다잖아? 넌 왜 날 여자로 봐주지 않

    는 거지?"

    "분칠한다고 까마귀가 비둘기 되냐!"

    으득 이를 갈며 시린이 달려들었다. 네이시는 헤헹 하고 웃으며 위로 뛰쳐올라 나

    무 위로 몸을 피했고, 시린은 욕설을 내뱉었다.

    "…시간 낭비로군요."

    사태를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세이어는 발걸음을 옮겨 린에게로 다가왔

    다. 어색한 웃음을 띄운 채 침묵하고 있는 린의 팔을 가볍게 잡으며 세이어가 말했

    다.

    "…갑시다, 린 씨."

    "……아…, 세이어 님?"

    "이런 곳에서 낭비할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세이어는 그렇게 말했고, 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 ……아, 이런 일에도 흥분하다니, 시린 저질∼."

    "…… 집어쳐!!…"

    발걸음을 옮기는 세이어와 린의 등 뒤로 시끌시끌한 네이시와 시린의 말다툼 소리

    가 들려왔다.

    - To be continued... -

    ===========================================================================

    열심히 쓰겠습니다! 냐핫!!…

    Neissy였습니다.

    번 호 : 7075 / 21076 등록일 : 2000년 05월 20일 22:50

    등록자 : NEISSY 조 회 : 318 건

    제 목 : [연재] ◈ 데스트로이아 ◈ # 42

    데스트로이아 DestroiA

    Fa-las de syent

    0